도전! 마라톤!

공원사랑마라톤(2019/08/04)-FULL 209

HoonzK 2019. 8. 6. 18:32

모든 상황이 최악일 때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면 어떻게 될까? 일단 폭염 경보가 내렸다. 간밤엔 열대야로 거의 자지 못했다. 전날인 토요일 대회에 나가기 위하여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다가 그냥 포기했는데 일요일 새벽은 그때보다 더 심각한 상태였다. 하지만 오늘 참가 기회를 놓친다면 다음 대회 때에는 더 힘들어질 것이었다. 그래도 마라톤 대회에 나가 달리는 것이 개인적으로 수백번 훈련하는 것보다는 운동 효과가 좋을 거라고 판단했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혼자서 달려봤자 몇 킬로미터를 달리겠는가. 돈을 내고 달리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달리려고 애쓰기 마련이었다. 보름 전 풀코스를 달리고 난 뒤 거의 운동을 하지 않았다. 햄스트링 부상에서 회복하자는 의도가 강했지만 귀찮아서 안한 이유가 더 컸다. 운동을 너무 하지 않아서 체중은 쭉쭉 늘었다. 더울 때 늘 하던대로 콜라만 잔뜩 마셨고, 유통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라면을 처리하고자 하루에 한번 이상 라면을 먹었다. 2003년 마라톤에 출전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뚱뚱한 몸이 되었지만 풀코스를 달리면서 살을 뺀다는 각오로 새벽에 나갔다. 출발하기 전부터 땀을 줄줄 흘리면서 하품을 연방 해대고 두통으로 인한 돌연사를 겁내면서도 풀코스를 완주했다. 믿기 어렵지만 이해는 되는 기록이 나왔다.


 4시간 47분 26초 79


 어디까지 바닥을 치나 궁금했는데 좀 너무했다. 나보다 조금 늦은 기록으로 골인한 낭기님이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첫 하프는 2시간 정도에 달리더니 두번째 하프를 2시간 40분 넘게 걸렸네. 지금 제 수준이 딱 그래서요. 27킬로미터를 넘었을 때 나를 추월해 나가 4시간 20분대로 골인한 샛별홍진님도 내게 초반에 너무 빨리 달린 게 문제였다고 해석했다. 그럴 수도? 기억을 지워야 하는데 기억을 지우지 못했다. 예전에 그렇게 달렸으니 이번에도 똑같이 달릴 수 있다고 착각해 버리면서 적어도 10킬로미터까지는 서브 4 페이스로 갔다. 첫 1킬로미터까지 6분이 걸렸는데 야금야금 속도를 올려 7킬로미터를 39분 40초(이건 정확히 서브 4 페이스), 10킬로미터를 56분 40초(이것도 서브 4 페이스)로 갔다. 늦추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기 전에 몸이 알아서 속도를 줄였다. 이대로 가다간 후반에 견디지 못한다고 몸이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기는 데워지고 피로는 쌓여 가니 달린 거리가 늘어날수록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1회전 때 진흙이 엉켜 있었던 구간이 2회전 때는 말라 팍팍해졌으니 온도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꾸준히 훈련을 해왔다면 지난 해 여름처럼 후반에 속도를 올릴 수도 있었겠지만 마라톤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가장 망가진 몸이었다. 천천히 달릴 것 같았던 죽음에서 살아돌아온 자, 고운인선님은 3시간 50분대로 속도를 올렸다. (후반에 조금 늦추어 4시간 2분으로 골인했다) 50미터, 100미터 차이가 나더니 나중에는 5킬로미터 이상 떨어졌다. 보름 전 30킬로미터를 넘긴 후 보였던 상태가 25킬로미터를 넘기도 전에 찾아왔다.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것 같은 상태. 15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왼쪽 무릎에 통증이 생겼다. 지난 번에는 완주한 후 저녁이 되어서야 생겼던 통증인데...... 과체중을 무릎이 감당해 내지 못하거나, 오른쪽 햄스트링 통증을 줄이기 위하여 왼쪽 다리에 너무 하중을 가하면서 생긴 통증이거나 했다. 2회전 때는 내내 통증에 시달렸다.


 풀코스 완주를 장담했다가 접어버린 주자도 몇 명 있었다. 1회전을 마친 후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러면 다음에도 그런 마음이 생길 것 같아 밀고 나갔다. 오늘은 정말 땀을 많이 흘릴테고 그만큼 그동안 못한 살빼기가 되리라 믿었다. 달리고 싶지 않으면 완주도 완주지만 살을 빼기 위하여 달려야 한다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3만원 참가비를 내었으니 이제 2만원 어치 채웠다. 이번엔 2만 5천원 어치..... 이러면서 버티기도 했다. 몸놀림은 한없이 둔해져 39킬로미터 지점에서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동반주자에게 추월당했다. 40킬로미터 지점에서 사장님이 더위사냥을 주셨다. 빨리 먹어치운다고 머리가 띵하면서 발란스를 잃어버렸다가 1.5킬로미터 쯤 남기고 회복했다. 1킬로미터를 달리는 데 8분까지 바닥쳤던 스피드를 마지막 1킬로미터 남기고는 5분 20초까지 끌어 올렸다.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운동을 하지 않은 뚱보 주자가 과거의 기억에 얽매여 자신의 현재 몸 상태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풀코스를 완주하기는 했다. 대리 출전까지 포함하여 212번의 풀코스 기록 가운데 211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6년 전 여름 4시간 59분 43초의 기록이 최악이지만 이번의 기록이 가장 나쁜 기록으로 봐도 무리가 없었다. 달리는 구간 가운데 70% 정도가 그늘이라는 혜택을 받고도 4시간 47분대로 달렸으니...... 이틀 동안 거의 자지 못하고도 2017년 여름에는 뙤약볕 아래 3시간 45분으로 달린 것과 비교하면 1시간 이상 늦어진 몸이 되고 말았다. (이런 기억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는 것인데)


 마음같아서는 8월에 네 차례 정도 풀코스를 달리고 싶지만 부상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게 답답할 따름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무릎 통증은 또 어떻게 한담? 풀코스 마라톤에서 은퇴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조성되는데...... 올해 춘천마라톤 참가는 포기해야 하나?


※ 대회장으로 가면서 도림천 위 도로변을 살피는데 바깥술님의 승용차가 보이지 않았다. 대회 접수담당 여사님에게 물어보는데 바깥술님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 연락해 보니 새벽이 다 되도록 술을 마시면서 참가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새벽에 달물영희님과 출발하려고 했다가 바깥술님의 상태를 본 달물영희님이 대회 출전을 하지 말자고 했다고 했다. 가장 더운 날이었으니 뛰지 않는 게 오히려 나았을 것이다.



뒤에서 두번째로 빠른 기록이다.

솔직히 달리면서 서브 5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매우 더운 날 달려주어야 가을에 기록이 좋아진다는 말을 급수 도우미가 했다. 

 


오래도록 기억해 두어야지.

보름 전 풀코스를 완주했을 때보다는 덜 힘들었다. 생수도 한 통만 마셨다.

다만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든 상태였다. 왼발 먼저 옮겨 놓고 오른발을 옆에 갖다 붙이는 식으로 움직였다. 절름발이가 따로 없었다. 좀처럼 이용하지 않는 엘리베이터도 타야 했다.



홈플러스 신도림점 화장실에서...... 온 김에 필요한 물품을 사가야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