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8 시즌마감마라톤대회(2018/12/02)-FULL

HoonzK 2018. 12. 5. 01:38

주최측에서 공지한 것보다 나흘 빨리 접수가 마감되어 참가신청을 하지 못한 대회였다. 전날 공원사랑마라톤에 참가했다가 마라톤힐링카페 탁자에 놓인 시즌마감마라톤대회 배번을 보았다. 안면이 있는 분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배번의 주인공과는 마라톤 완주를 마치고 돌아와 라면을 먹을 때 만났다. 내가 1등을 차지한 사실이 화제가 되었다. 올해 동마에서 3시간 15분, 춘마에서 3시간 14분으로 골인한 분보다 4분 가까이 빨리 골인한 일로 잘 달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음날 대회 신청을 하지 못해 전날 풀코스를 뛰어 아쉬움을 달래었고, 대회에는 지인들 응원하러 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때서야 대화를 나누던 분이 자신은 다른 일이 생겨서 참가하지 못하니 누군가라도 대신 뛰라고 배번을 갖다 놓았다고 했다. 이제 자신의 배번을 달고 달릴 사람을 찾았다고 했다. 네? 저요? 오늘 빨리 뛰어서 힘든데요. 풀코스를 이틀 연속 달려본 일은 없어요. 스피드칩을 반납해 드릴 순 있겠지만.


 뛰기 힘들면 칩만 반납해줘요. 그럼 하프만이라도 뛰어요. 서브 4로 풀코스는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왕이면 3시간 40분대로 부탁해요. 대화가 길어질수록 감당해야할 기준치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이 제안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이 3시간 40분대로 골인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가장 어려운 제안을 선택했다. 이틀 연속 풀코스를 달려야 하는 주자가 있다고 치자. 그럴 경우 첫날 풀코스를 달릴 때 다음날을 위하여 힘을 조금이나마 아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다음이 없다는 각오로 풀코스를 달렸다. 다음날 풀코스가 있으리라는 상상을 하지 않고 12월 최고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부었다. 배번을 가방에 챙겨 넣으면서 한번도 해보지 않아 두렵지만, 해보지 않아 한번쯤 해보고 싶다는 도전 의식도 생겼다. 이틀 연속 풀코스를 42회나 경험한 바깥술님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날 같은 대회에서 참가하게 되었다고 알렸다. 바깥술님은 이틀 연속 풀코스를 달리는 것이  별 것 아니라고 받았다. 풀코스 완주 1천회를 넘은 Wan-sik님, 은기님, 용구님도 요즘 하지 않는 이틀 연속 풀코스 도전인데.....


 날씨는 쌀쌀하지만 영하는 아니었다. 반바지에 긴팔 티셔츠, 버프와 장갑. 전날과 달리 바람이 조금 있었지만 방풍 비닐을 입지는 않았다. 다리에 피로감이 찐득하게 남아 있었다. 왼쪽 뒷꿈치 테이핑, 오른쪽 뒤넙다리근 테이핑으로 부상에 대비했다.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요즘 저체온증으로 고생하는 광배님과 대화하면서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달렸다. 4시간 페메와 100번은 넘게 보조를 맞추었던 이력으로 아직도 구간 소요 시간은 외우고 있었다. 1킬로미터 5분 40초, 2킬로미터 11분 20초, 3킬로미터 17분, 4킬로미터 22분 40초, 5킬로미터 28분 20초, 10킬로미터 56분 40초..... 그 페이스로 나아갔다.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구장을 빠져나오자 바깥술님은 어느새 몇 백 미터 거리를 벌이며 치고 나갔다. 옆에 있던 광배님도 우리와 함께 가는 페메가 4시간 페메라는 사실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너무 늦다며 앞으로 갔다. 나만 남아 한필희 페메, 류성룡 페메와 인사를 나누었다. 3킬로미터를 넘었을 때 조금 앞으로 치고 나갔다. 거기서 인천고 기옥님, 길석님을 만나 인사드렸다. 춘효님은 오지 않았다고 했다. 기옥님 옆에 달리던 홍주님과는 처음 만났지만 늘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대화하면서 5킬로미터 이상을 달렸다. 4시간 20분 주자를 3시간 10분대 주자로 만들어 주었던 에피소드나 마라톤 참가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고수들의 뒷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매우 흥미진진했다. 대화하면서 달리는 것을 나만큼이나 좋아하는 분과 만나 힘든 줄 몰랐다. 대회 최고 난코스인 암사 오르막을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내가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서 대화는 끊어졌다. 오르막을 달리면서 여러 사람을 제치고 나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등을 탁 쳤다. 최ㅍㅈ님이었다. 내게 하프를 뛰느냐고 물었다. 풀이라고 했더니 풀이 벌써 스퍼트를 하느냐고 의아해 했다. 오르막이니까요. 그렇게 말하고는 좀더 속도를 뽑았다. 건너편에서는 3시간 30분 페메 그룹, 3시간 45분 페메 그룹이 순차적으로 나타났다. 초반에 숱하게 내 앞으로 치고 나갔던 하프 주자들 가운데에서는 보이지 않던 로운리맨님이 거기 있었다. 주변을 살피지 않고 3시간 45분 페메인 헬스지노님, 박연익님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나를 전혀 보지 못한 것같았다. 오르막을 넘어갔다 오는데 조금 버거운 느낌이었다. 암사 오르막은 사실 갈 때보다 올 때가 좀 나은데 나의 경우는 반대였다. 반환해서 오는 주자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오늘 왜 이렇게 늦게 뛰느냐는 말을 수십 번쯤 들었다. 이틀 연속 풀코스를 달리기 때문이라는 말을 그만큼 해야 했다. 나중에는 녹음기처럼 그 말을 하는 것도 지겨워 사정이 생겨서요라는 식으로 다르게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는 사이 내 옆에는 인천고 기옥님이 있었다. 기옥님은 끝까지 나와 보조를 맞추려는 것같았다. 12킬로미터, 13킬로미터.....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제치는 주자들이 늘어나는데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앞으로 치고 나가는 법도 없었다. 급수대에서 잠시 엇갈렸다가도 바로 내 옆에 왔다.


15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 한구님을 따라잡았다. 서브 4로 달릴 때 수십 번 동반주를 했던 분과 옛 추억을 더듬어 1킬로미터 남짓 함께 달렸다. 16킬로미터를 넘어서면서 내 옆에 있는 분은 기옥님뿐이었다. 풀코스를 달린 후 하프코스를 달린 일이야 여러 번 있기 때문에 하프까지는 어떻게든 달려내겠지만 그 다음이 걱정이었다. 체력의 부담보다 더 두려운 것이 심리적 부담이었다. 어쨌든 달리고 있었다. 5분 30초와 40초 사이의 페이스로. 20킬로미터 지점. 잠실종합운동장 방향으로 꺽는 하프 주자들을 보며 아주 잠깐 하프만 뛸까 망설였다가 양재천 방향으로 나아갔다. 생전 처음 해 보는 미지의 세계로. 후반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일단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달렸다. 21킬로미터 표지판에서 대충 백 미터를 간 거리에서 하프 기록을 따져보았다. 1시간 56분쯤 걸렸다. 달려온 만큼의 속도로 나머지 거리를 달리면 3시간 52분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몇 분만 빨리 달리면 3시간 49분대로 들어갈 수 있겠는데......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허기가 자꾸 져서 급수대를 만날 때마다 초코파이와 바나나를 꾸준히 먹었다. 이번처럼 간식을 자주 먹은 일은 처음이었다. 기름이 줄줄 새는 고장난 차를 달래가며 몰고 나간다는 상상이 자주 들었다. 


 틀림없이 힘은 점점 떨어져가는데 페이스는 21킬로미터부터 23킬로미터까지 킬로미터당 5분 20초까지 좋아지고 있었다. 23킬로미터 표지판을 지났을 때 기옥님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내게 먼저 가라고 했다. 고독한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로운리 러닝, 로운리맨님이 떠오르네. 로운리맨님이 나타났다. 양재천 둔덕에서. 환영 아닌가? 주로가 아닌 둔덕에서 로운리맨님이 나타날리가 없는데..... 드디어 내가 맛이 갔구나 싶었다. 로운리맨님의 환영이 말을 걸었다. 어제 풀코스를 뛰고 오늘 또 풀코스를 뛰느냐고? 이런 일은 처음 아니냐고. 로운리맨님의 실체였다. 다행히도 아직 내 정신이 멀쩡했다. 로운리맨님은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둔덕에 있었다고 했다. 로운리맨님과는 2킬로미터 정도 함께 달렸다. 27킬로미터 쯤에서 구간마라톤 주자들이 오면 그때 되돌아 뛰겠다고 했다. 하프 종목이긴 하지만 아직 골인하지 않았으며 5분 넘는 페이스로 30킬로미터 남짓 달릴 것이라고 했다. 현재 5분 40초 페이스임을 알려주며 서브 4는 무난하겠다고 했다. 오늘 달리기를 풀코스 완주 기록에 산입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럴 일은 없다고 했더니 그럼 이만큼만 달리고 자신과 되돌아 가자고 했다. 단칼에 거절했다. 이 와중에 양재천에 훈련나온 달림이 한 분이 로운리맨님과 아주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로운리맨님과 다니다 보면 자주 겪는 일이었다. 로운리맨님은 달림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분이니까. 그런데 로운리맨님과 인사를 나눈 분이 건달님도 파이팅하세요라고 했다. 이 분이 나까지 아시네. 로운리맨님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분처럼 인사를 나누었는데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출발하기 전 자신은 모르던 기업님과 인사를 나누었다고 했다. 달리는 동안 10번 넘게 응원을 보내었는데 자신을 모르냐는 말, 셋이서 식사도 한번 하자고 했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로운리맨님, 너무 유명해져 버린 것 아닌가요?


 로운리맨님이 반환하기로 했던 27킬로미터 지점이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구간마라톤 주자들이 나타나자 저 주자들을 따라가 보겠다고 했다. 4분대 초반으로 달리는 주자들을 뒤쫓기 시작하는 로운리맨님. 이 모습을 본 풀코스 주자들이 완주한 뒤 내게 물었다. 오늘 로운리맨님이 서브 3 하신 것같던데 맞지요?


 다시 외로워진 주로. 표지판이 늦게 나타났다. 시계는 보지 않았다. 그냥 달릴 뿐이었다. 추월당하지는 않고 가끔 몇 사람을 추월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잘 가고 있는 것이었다. 찬일님이 반환해서 오고 있었다. 손을 흔들며 응원했더니 찬일님이 말로 받아주었다. 30킬로미터를 2시간 45분 언저리로 통과했다. 하루만에 20분 늦게 통과하는데 훨씬 힘들었다. 3시간 30분 페메 그룹이 나타나고 십여 미터 뒤에 특전사님이 보였다. 서브 330하세요라고 외쳤다. 그럼 해야지라고 받을 때의 표정은 여유있어 보였다. 바깥술님은 보이지 않았다. 건너편 32킬로미터 급수대에서 간식을 챙겨 먹은 후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왜 걸으세요? 퍼졌어. 그래도 1킬로미터 이상 앞에 있으니 내가 따라붙을 수는 없는 거리였다. 바깥술님은 3시간 45분 45초로 완주했다.


 31킬로미터 직전 마침내 반환했다. 반환하고 나니 맞바람이 있었다. 누적된 피로와 싸우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바람과도 싸워야 했다. 32킬로미터 급수대에서 게토레이, 초코파이, 바나나를 챙겨서 빠져나왔다. 이제 10.2킬로미터. 남은 거리를 54분 정도로 달리면 3시간 49분대가 가능해 보였다. 서브 4 페이스로 갔다간 절대 달성하지 못할 기록이었다. 3시간 40분대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고 조심하면서 달리면 3시간 52분대에서 53분대 정도로 골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 몸에 무리도 없겠다 싶었다. 5분 X 10km = 50분, 30초 X 10km = 5분, 거기에 195미터가 있으니 5분 30초 페이스로 가도 여지없이 3시간 50분을 넘고 마는구나. 5분 20초로 가도 어렵고, 5분 19초로 가면 가능성이 있어 보이고. 그걸 어떻게 일일이 계산하나. 앞에서 달리는 4시간 이내 레이스패트롤은 통증을 호소하는 주자들에게 스프레이를 뿌려주고 있었다. 그 스프레이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내게 달려왔다. 이게 다 맞바람 때문이었다. 저 냄새를 맡지 않으려면 레이스패트롤을 제쳐야 했다. 이러는 사이 고운인선님을 비롯한 몇 분의 주자도 제쳤다. 건너편에서 오는 태현님, 맹순여사님과도 인사를 주고 받았다. 35킬로미터 지점이 나오면 서브 4 할 때의 추억을 더듬어 스퍼트할 수 있을까, 생전 처음해 보는 84.4킬로미터의 장벽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지 않을까, 어차피 3시간 40분대는 불가능한 기록이었어, 3시간 50분대로 들어간 것만 해도 다행이야 하며 자족하지 않을까.... 생각이 복잡했다. 급수대를 만나면 게토레이, 초코파이, 바나나 들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먹어대는데도 오늘은 화장실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네. 36킬로미터 지점에서 수원FC 유니폼을 입은 주자를 제쳤다. 그 순간 수원FC 주자가 바짝 쫓아오더니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축구 유니폼에 스타킹까지 신고 있었다. 신발만 축구화가 아닌 러닝화를 신고 있었다. 현역 선수처럼 젊어 보였다. 궁금해서 물었다. 혹시 축구하는 분이세요? 아니라고 했다. 축구 매니아는 맞겠다. 뒷심이 참 좋다는 칭찬을 드렸다. 이 축구 유니폼 주자는 속도를 올려 내 앞쪽으로 나아갔다. 이제 내 눈 앞에는 이 주자만 있었다. 페이스를 체크해 보긴 하지만 어차피 3시간 40분대는 못 들어갈 것이고 이 분과 비슷하게 골인하자는 목표가 생겼다. 40킬로미터를 달릴 때까지는 시계를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풀코스를 이틀 연속 달려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역사가 되는데 굳이 3시간 40분대 골인까지야. 기록은 말고 완주만 떠올리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틀 동안 풀코스를 달리고 있으니 틀림없이 살이 많이 빠질 거라는 즐거운 상상도 해 보자.


 어느덧 40킬로미터였다. 이제 다 온 것이었다. 3시간 39분과 40분 사이였다. 40.2킬로미터였다면 3시간 49분 59초가 보이는데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 아! 3시간 40분대 버리기로 했지. 그런데 왜 또 3시간 40분대 타령이람. 축구 유니폼 주자 따라가기는 계속되었다. 양재천도, 탄천도 모두 뒤로 보내고 드디어 한강이었다. 완만한 오르막이 있었다. 거기서 41킬로미터 표지판을 지났다. 3시간 45분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1.2킬로미터를 5분 이내로 달릴 수 있을까, 어느때보다 힘든 후반인데.... 또 그러네. 내내 3시간 40분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내 입에서 다 왔을 때 터뜨리는 그 말이 터져나온다. 에라 모르겠다. 축구 유니폼 주자를 제친다. 누가 쳐다보든 상관하지 않고 미간을 찌푸리고 이를 악문다. 보기 싫은 꼴상으로 찻길을 건너고 굴을 빠져나간다. 종합운동장 건물지대를 돌아 몇 명의 주자를 제친다. 트랙으로 들어서는데 여유가 없다. 카메라맨들이 찍는 사진에는 형편없는 몰골이 찍히겠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3시간 40분대 골인이 가능하다고 목숨을 건다. 골인 패드를 밟고 시계의 스톱 버튼을 누른다. 3시간 49분 59초다. 실제 기록은 3시간 49분 54초 87이었다.


 내 뒤를 따라 골인한 축구 유니폼 주자와 인사를 나누었다. 이 분의 기록은 3시간 50분 29초였다.



아슬아슬하게 3시간 40분대에 들어갔다.



다시는 이틀 연속으로 풀코스를 달리지는 말아야겠다.


 대리 출전 3회를 포함하여 올해 벌써 풀코스를 36회나 달렸다.



이 대회의 먹거리는 어묵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