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날씨였다. 새벽 4시 15분 종각역 1번 출구 앞에서 셔틀버스를 탔다. 내가 첫번째 탑승자였다. 새벽 3시가 되기 전에 1.5킬로미터를 걸었다. N15번 버스를 타고 종로에 왔다. 일부러 전날 저녁을 오후 5시 30분에 먹고 9시가 되기 전에 누웠지만 잠들지 못했다. 수면 앱까지 동원했지만 소용없었다. 내일 원정 마라톤이니 일찍 자자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더 잠이 안 오는 법이었다. 쌀 기념품도 미리 배송받았겠다 못 일어나면 마라톤 그냥 안 가고 말지 하면 잠이 올텐데...... 요리를 하고 철학책도 읽고 있었다. 단 10분이라도 눈을 붙이면 아예 날밤을 샌 것보다는 나을 거야라고 나 자신을 설득했지만 새벽 2시는 너무 빨리 와 버렸다.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잘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4시 30분. 차가 출발했다. 단 세 명이 타고 있었다. 5시 여의나루역에서 몇 명이 더 탔다. 希洙형님을 만났다. 5시 30분 잠실종합운동장역. 꽤 많은 인원이 탔다. 타야 할 사람 가운데 로운리맨님이 통 보이지 않았다. 거의 마지막에 모습을 보였다. 발뒤꿈치 부상 때문에 완주가 불가능하다고 밝혔기 때문에 불참하는 줄 알았다. 짐칸 열리는 소리가 로운리맨님 때문이었고, 아세탈님 선물 한아름을 거기에 실었다고 확신했다. 맨 뒷 좌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후배 원희님은 타지 않았다. 선배따라 같은 대회에 나올 것같았는데 상주로 갔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애써 눈을 감고 있었다. 6시에 또 차가 섰다. 신갈IC, 6시 20분에도 마라톤 참가자를 태웠다. 빈 자리 하나 없이 꽉 찼다. 일부러 맨 뒷 좌석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비어 있던 내 옆자리까지 채워졌다. 매년 11월 셋째 주에 열리는 대회 가운데 손기정평화마라톤이 10월 초 열리면서 상대적으로 서울 참가자가 늘어난 게 틀림없었다. 수시로 하는 정차, 대화 소리, 휴대폰 액정 불빛, 옆사람의 뒤척임 등으로 신경은 더 날카로워졌다. 최고로 휴식을 잘 해도 어려울 풀코스를 앞두고 고된 전초전을 치르고 있었다. 7시에는 휴게소에도 들렀다. 10분간 정차한다고 했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모자를 눌러쓰고 또 다시 잠을 청했다. 안 자면 달리다 죽을 수도 있으니 제발 좀 자라고. 마당을 쓸고 있는데 공중에서 물이 떨어졌다. 덩어리지고 끈적끈적한 것이 빗물이 아니었다. 침이었다. 대문 밖에서 학생들이 키득거리며 우리집 마당으로 침을 뱉어대고 있었다. 다분히 나를 침으로 맞추겠다는 의도였다. 침의 포격을 피해서 수돗가의 바가지를 집어들었다. 어떤 녀석은 대문 위로 얼굴을 밀어올리고 내쪽으로 침을 뱉었다. 내 발 끝에 떨어졌다. 아깝네. 이번엔 꼭 성공시킬거야. 밖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대문 위로 얼굴을 보이렴. 물바가지를 씌워주지. 어깨에 힘을 빼고 물바가지를 휘두를 동선을 예상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자 준비하고 얼굴이 보이기가 무섭게. 그때 옆에서 누군가 나를 건드렸다. 옆좌석 참가자였다. 꿈이었구나. 꿈이었다면 잤단 것인데.... 짧지만 잤으니 오늘 마라톤에서 생명을 보전할 수는 있겠구나 하고 안도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서브 330을 하러 고창에 온 것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심각해졌다.
8시 50분 고창공설운동장에 도착했다. 5년만에 돌아왔다. 생애 30번째 서브 330에 도전하는 날이었다. 5년 전 3시간 57분대로 달렸으니 이번에는 3시간 27분대로 달려 대회 기록을 30분 가량 단축하고 싶었다. 서울에서 평탄한 코스를 달리는 것보다 훨씬 잘 달려야 이룰 수 있는 기록이었다. 예상대로 로운리맨님의 짐보따리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오롯이 아세탈님만을 위한 선물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내 선물과 希洙형님 선물도 있었다. 로운리맨님을 위해 준비한 담배와 술을 가방에 넣었다가 전날 밤 도로 꺼내어 놓았기 때문에 로운리맨님 드릴 선물은 없었다. 내년 동아마라톤에서 서브3를 달성하기 위하여 프로젝트팀에 참가해서 몸에 좋지 않은 것은 모두 걸러내기로 단단히 결심한 로운리맨님, 그런 분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아세탈님과는 전화통화가 되지 않았다. 아세탈님 선물까지 물품 보관을 두 번 할 수밖에 없는 로운리맨님. 뒷꿈치 부상으로 완주가 불가능하다든지, 아세탈님과의 선물 배틀 때문에 참가한 것이라든지 하는 로운리맨님의 말에는.... (이하 문장 생략)
운동장에 들어서는데 비가 내린 것처럼 트랙이 반짝거렸다. 새로 깐 우레탄이 아직 양생이 되지 않은 것이었다. 비가 내린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밟아보니 더 난감했다. 신발 바닥이 달라붙었다. 접착제가 발라진 신발을 신고 오가는 느낌이었다. 출발하고 골인할 때 찍찍이 트랙을 밟아야 하다니......
로운리맨님이 살이 빠진 게 틀림없다며 공언한 대로 2킬로그램 빼었지요라고 묻는데 그냥 그렇다고 했다. 살을 빼기는? 더 찐 것같은데. 새벽에 옷을 들춰보고 옆구리살이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보고 낙담했던 사실을 말할까? 불과 이틀 전 바깥술님을 만나 돼지고기를 열심히 씹었던 이력을 자랑할까? 바로 전날에도 라면, 돼지고기 김치찌개, 각종 스낵을 닥치는대로 입에 쑤셔 넣었다는 사실을 실토할까? 그냥 오늘은 싸늘한 날씨의 도움도 받을테니 힘으로 밀고 나가기로 각오했다고 떠벌일까?
화장실에 다녀오고 스트레칭까지 마치는 등 준비 과정은 순탄했는데 문제는 배가 몹시 고프다는 것이었다. 새벽 4시에 먹은 삼각김밥으로는 5킬로미터를 달리기도 전에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을 것같았다. 공설운동장이 도심에서 떨어져 있는 변두리성(城) 같아서 편의점 같은 것은 없었다. 소고기 시식하는 코너가 있었다. 로운리맨님이 일단 먹자고 했다. 풀코스를 달린 후에는 남은 것이 없을테니 미리 먹어두자는.... 로운리맨님은 복분자주도 한 잔 했다고 했다. 소고기를 먹고 나니 허기가 가셨다. 물품 보관이 좀 늦어졌지만 풀코스 참가자가 많지 않아 물품보관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초겨울 날씨가 되었어도 영상이기 때문에 반바지를 입었다. 긴팔이냐 반팔이냐로 잠시 고민했다. 로운리맨님은 반팔이냐 민소매냐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냥 반팔을 입었고, 로운리맨님은 민소매를 입었다.
오전 10시 정각 트랙을 한바퀴 돌아 운동장 남문으로 빠져 나갈 때 내 이름을 부르며 응원하는 분이 있었다. 아세탈님이었다. 하프 종목에 참가하는 아세탈님이 어느새 도착하여 나를 찾아낸 것이었다. 손을 들어 답했다.
싸늘한 날씨와 초반 내리막 덕분에 첫 2킬로미터를 9분 20초만에 주파했다. (이 9분 20초는 후반 2킬로미터를 달릴 때 걸린 시간과 동일했다.) 서브 330이 아니라 서브 320 페이스였다. 3시간 15분 페이스메이커가 바로 앞에 보이고 로운리맨님이 보였다. 3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바짝 따라붙어 대화를 시도했다. 초반에 이렇게 빨리 달리는 것이 의외인 듯 로운리맨님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로운리맨님은 프로젝트팀과 헬스지노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하프만 달린다는 생각으로 초반에 질주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눈에 띄게 빨리 달리는 것이었는데도 따라잡았으니 깜짝쇼는 성공했다. 인터벌하듯이 이렇게 달릴까요 하면서 잠깐 전력질주해서 앞으로 나갔다가 돌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내 수준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뒤로 빠졌다. 휴식이 절대 부족한 마당에 초반에 도발을 할 수는 없었다. 다만 5킬로미터까지는 23분대로 달렸고 그 이후 조금 늦추었는데 뒤쪽에서 여러 명의 발걸음 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렸다. 처음에는 하프 선두 주자들인 줄 알았다. 풀코스 주자들이었다.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 두 사람과 보조를 맞추는 주자들이었다. 벌써? 좀 빠른 것 아닌가? 고창고인돌마라톤 코스의 특성상 후반에 밀릴 수밖에 없으니 미리 빨리 달려 놓는 것일까? 지난번 식사 자리에서도 박연익님이 귀띰한 팁이 있었다. 고창에서 서브 330을 하려면 초반에 빨리 달려 놓아야 한다는 것. 5년 전 전반보다 후반을 빨리 달려 서브 4를 달성했는데 그 후반이 몹시 힘들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다.
구름이 잔뜩 끼었고 맞바람이 있어 음산한 날씨였다. 3시간 29분대 기준에 부합되는 페이스를 보이고 있어 3시간 30분 페메와 조금 떨어져도 신경쓰지 않고 내 나름대로 달렸다. 3시간 15분 페메, 달해아름다워님, 헬스지노님, 로운리맨님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8킬로미터 지점에서 오르막이 있었다. 이 오르막 덕분에 3시간 30분 페메에 따라붙었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가끔 억새풀, 이따금 감나무를 보면서 달렸다. 빛바랜 풍경에서 하얀색과 주황색을 찾아내는 것은 달리기의 지겨움을 잊는 방법이었다. 차들은 거의 지나가지 않았지만 고향에 내려와 있는 JT님이 자가용에서 고개를 내밀고 나를 부르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JT님에게는 3시간 20분대로 골인할테니 13시 20분 이후에 공설운동장에 오면 된다고 알린 상태였다. 그 시간을 맞추어야 하니 이 페이스에서 크게 떨어지면 안되었다. 다른 대회에서 3시간 10분대로 달리는 것처럼 달려야 3시간 20분대로 달릴 수 있는 상황임에는 틀림없었다. 지난해 3시간 27분 38초로 달렸던 부산마라톤이나, 올해 3시간 26분 29초로 달렸던 서산마라톤이나 모두 다른 대회 때보다 훨씬 큰 힘을 내어 달렸던 대회였다. 이번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보다는 체중이 불어나 있으니 더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하프 반환점에서 만나는 고인돌 유적지는 고창고인돌마라톤만의 특징이었다. 447기에 달하는 고인돌을 모두 살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4분 45초를 전후한 페이스로 달리면서도 고인돌 보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눈이 전방을 향했다가도 안돼, 고인돌을 봐야 해 하면서 좌우를 살폈다. 경사지에도 수백 개의 고인돌을 올렸으니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을까? 막강한 파워로 군림한 존재가 적지 않았다는 의미인데. 원시인 모형도 있고, 원시인 가옥과 짐승 모형도 있었다. 이곳이 석치동인 것이 아마 돌이 배치된 지형에서 유래한 명칭이겠지 하는 분석도 했다. 전봉준 생가나 선운사 이정표도 보았다. 고창 해리면의 대학생 농촌봉사활동, 고창군청을 지나갔던 서해안 도보여행, 전국소년체전 축구경기 관전, 고창 방장산과 선운산 등산, 삼시세끼 고창편 열렬 시청, 이제는 고창이 고향인 JT님까지..... 고창과의 인연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2010년 <남자의 자격>을 시청한 한 여성분이 하프마라톤 도전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또 한 분은 내게 전화를 걸어 <남자의 자격>을 보고 자신도 하프마라톤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며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3년 후 나는 방송에 나왔던 그 대회에 참가했다. 그게 바로 고창고인돌마라톤 대회였다. 이것은 2005년 초 영화 <말아톤>을 보고 2006년 춘천마라톤에 참가한 것과 같은 경우였다.
봉사 요원 한 분이 내게 42등이라고 알려주었다. 깜짝 놀랐다. 내 앞에 41명밖에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선운산의 암벽을 바라보며 바람을 뚫고 쭉 나아가면서 버프를 귀까지 덮었다. 16킬로미터를 넘었을 때 공터에 불쑥 쏟아오른 바위를 보았다. 클라이머들이 암장에 매달려 있었다. 싸늘한 날씨 속에서도 암벽 등반 훈련을 하는 모습을 흥미로운 눈길로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우리 동네의 화강암과는 너무 다른 선운산의 바위를 유심히 살폈다. 바닷가에 있는 해식동굴의 재질과 너무 비슷하지 않았는가? 선운산도 바다 속에 있다가 융기되어 육지로 올라온 경우일 듯 싶었다.
내 앞에는 전주마라톤클럽의 정OK님이 있었다. 페이스가 꾸준하여 내 임시 페메가 되고 있었다. 칠갑산마라톤의 김SS님까지 세 사람이 함께 달리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잠시였다. 어깨를 나란히 하기가 무섭게 내가 앞으로 치고 나갔다. 추월도 당했다. 내 뒤를 꾸준히 따라와 추월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모두 기아자동차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18킬로미터에서 속도를 조절했다. 딱 봐도 하프까지는 1시간 43분이 걸리지 않을 것같았다. 앞쪽에서 달리는 분 가운데 헬스지노님이 있었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3시간 15분 페메와 함께 가던 분이 왜 이렇게 늦었지? 20킬로미터를 넘기도 전에 오버페이스에 걸린 것인가?
3시간 15분 페이스메이커 그룹이 지나가고 난 뒤 로운리맨님이 나타났다. 뒷 일은 생각하지 않고 초반 하프까지는 속도를 내기로 했다지만 풀코스 마라톤을 이렇게 빨리 달리는 로운리맨님은 처음 보았다. 반환점을 1시간 36분에 돈 것이었다. 후반에 더 끌어올리면 싱글 기록(3시간 00분 00초~3시간 9분 59초)도 가능한 페이스였다. 내가 늘 바깥술님에게 떠들어대는 싱글 달성의 요령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초반 하프를 1시간 36분, 후반 하프를 1시간 33분으로 뛰어 3시간 9분대에 골인하는. 여자부 1등을 하게 되는 달해아름다워님보다 앞에 있었다. 로운리맨님은 지쳤다고 했지만 계속 밀고 나가라고 말했다. 지쳤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더 힘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이때 알았다. 로운리맨님이 나중에 아무리 페이스를 늦춘다고 해도 골인할 때까지 로운리맨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으리란 사실을.
부안용산마을에서 반환했다. 5년만에 달리는 것이지만 반환점이 기억에 생생했다. 당시 박연익님이 이끄는 4시간 페메 그룹에게 반환하자마자 추월당했는데..... 이번에는 3시간 30분 페메 그룹에게 추월당했다. 시계를 보았다. 내가 반환점을 1시간 42분 31초로 돈 것이 맞는데 벌써 추월당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 3시간 30분 페메는 1시간 44분 후반대로 반환했어야지. 후반이 힘들다는 고창고인돌마라톤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조금 빨리 달린 것인가? 페이스메이킹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븐 페이스로 달리는 게 풀코스에서는 적용되긴 힘들긴 하겠다. 대회마다 코스가 다르니..... 정확한 페이스메이킹으로 정평이 나 있는 광화문페이싱팀에서 맡고 있으니 이들의 레이스 운용이 맞을 것이었다.
22킬로미터 지점에서 걷고 있는 헬스지노님을 제쳤다. 파이팅을 외치고 지나갔지만 다른 대회와 마찬가지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한 셈이 었다. 17킬로미터 지점에서 제쳤던 정OK님이 내 앞으로 나왔다. 3시간 30분 페메 가운데 천만미터님이 내 뒤에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었다. 이 분은 화장실에 들르면서 다른 페메와 떨어졌지만 이 분 페이스가 3시간 29분대에 잘 맞았다. 설사 이 분에게 추월당하더라도 내 나름대로 페이스를 유지하여 달리면 되었다. 초반보다 5분 정도 늦추어 후반 하프를 1시간 47분대로 달려도 3시간 29분대는 보장된 것이었다. 건너편에서 오는 제비한스님은 내 닉네임을 부르며 응원해 주었고, 希洙형님은 스마트폰으로 달리는 모습을 찍어주기까지 했다.
希洙형님이 찍어주신 사진..... 希洙형님은 아깝게 서브 4에 실패했다. 4시간 51초라고 했다.
사진 찍어준다고 시간을 쓰지 않았다면 서브 4 하시지 않았을까?
3시간 30분 페메와는 100미터 이내의 거리를 유지했다. 급수대는 빠뜨리지 않았다. 생수보다 파워에이드를 마셨다. 지나가면서 컵에 파란물이 담겨 있는지 보고 손에 들었다. 4등분된 초코파이를 두 차례 먹었다. 암벽 클라이밍을 보면서 지나갈 때 길 안내 도우미로부터 순위 안내를 또 들었다. 48등이라고 했다. 42등이었는데 48등으로 떨어진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3시간 30분 페메 그룹이 내 앞으로 빠져나갔으니. (이 순위는 최종 30위가 된다. 315 페메를 빼면.... 후반에 나름대로 여러 명을 제친 것이었다.) 대여섯 명이 동반주하는 페메 그룹과는 100미터 이내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27킬로미터를 넘으면서 200미터 이상 떨어졌다. 정OK님을 다시 제치긴 했지만 3시간 30분 페메와의 격차를 통 줄일 수가 없었다. 그럼 내가 이렇게 늦은 것인가? 어쩌면 이제 고단한 티가 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후반에 강했지만 원정을 와서 휴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피로를 누적시켰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1킬로미터 기록을 체크했다. 4분 50초, 가끔 5분 10초... 그 선에서 왔다갔다 했다. 30.2킬로미터 통과를 2시간 27분대로 했다. 남은 것은 12킬로미터. 킬로미터마다 5분을 지켜낸다면 3시간 27분대 골인이었다.
힘을 짜내기 위하여 바나나를 씹었다. 남은 12킬로미터는 내게 있어 지옥의 레이스였다. 4분 40초가 나오는 구간도 있었는데 그건 일시적인 현상이었고, 5분을 넘는 경우가 허다했다. 고인돌 유적지를 빠져나가면서 동네 주민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았다. 손을 흔들고 물을 받아마시며 환하게 웃어드렸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면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10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2시간 38분이었다. 계산은 간단했다. 남은 10킬로미터를 52분에 뛰면 서브 330 주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면 생애 서른번째 서브 330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풀코스 126번째에서야 처음으로 달성했던 서브 330이었는데 어느새 2년만에 30회. 점점 힘들어지는데 과연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산술적으로야 5분 12초로 딱딱 끊으면 3시간 29분 59초로 골인이 가능한데 35킬로미터에서 38.5킬로미터까지 이어지는 긴 오르막과 운동장 직전 100미터의 가파른 오르막은 어떻게 감당할지....
화장실에 갈까 말까 고민했다. 소변이라도 보고 달리면 좀 편할 것같았다. 끝까지 참지 못할 것도 없어 보이긴 했지만. 내 11월의 최고 기록은 3시간 27분 38초였다. 지난 해 부산마라톤에서 세운 기록이었는데 11월 최고 기록이 3시간 26분대일 것이라고 착각했다. 달리기를 멈추고 볼 일을 보기로 마음먹었던 것이 8킬로미터가 남았을 때였다. 결과적으로 이 바람에 나는 13초 차이로 11월 기록을 경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조금 더 참고 골인한 후 화장실에 가도 되었을텐데. 화장실 가고 싶은 마음이 지난 3월 동아마라톤 때보다는 크지 않았는데. 볼 일을 보고 나니 뒤쪽에 있던 3시간 30분 페메 천만미터님이 내 앞으로 치고 나갔다. 따라가 보는데 쉽지 않았다. 나는 꽤 빨리 달린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5분 10초가 넘었다. 체감 속도가 바뀐 것으로 보아 몹시 지친 것이었다. 옆구리 살을 여러 차례 잡았다 놓으며 반성했다. 내 레이스 운용 스타일로 볼 때 35킬로미터 이후부터는 치고 나가야 하지만 고창고인돌마라톤에서는 제동이 걸린다. 35킬로미터에서 39킬로미터 지점의 월곡지하도까지 오르막이 이어지기 때문에. 초반에 저축해 놓은 기록을 여기에 쓰게 된다. 이래서 고창고인돌마라톤은 초반에 빨리 달리라고 한 것이었다. 30미터 이내에서 천만미터님을 꾸준히 따라갔다. 더 떨어지지는 말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36.2킬로미터, 37.2킬로미터. 시계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페이스가 뚝 떨어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더 빨리 달리지는 못하더라도 이 페이스는 꼭 지키자 다짐하며 달렸다. JT님과 아세탈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테니 그 분들을 만나는 시각을 조금이라도 당겨 보자고 각오했다. 잠을 못 자서 서브 330을 못 했어요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 해 33번이나 풀코스를 달리고 있어 힘을 다 썼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 해 100번 이상 달리는 분들도 허다하니까.
3시간 30분 페메 두 분이 만나는 순간 나 역시 가까이 있을 수 있었다. 오르막이 끝났다. 운동장 최후의 오르막은 잊었다. 40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3시간 30분 페메 앞으로 나아갔다. 몇 명의 주자를 제쳤다. 2킬로미터 남았을 때 내겐 11분 남짓 여유가 있었다. 2.195킬로미터가 아니라 2킬로미터였다. 3시간 18분 30초 경과. 최근 마지막 2.195킬로미터를 모두 9분대로 달려내었으니 2킬로미터를 9분대로 달리는 것이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운동장 오르막이 문제였다.
41킬로미터를 지나고 운동장이 보였다. 다 왔다는 안도감이 들기가 무섭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오르막이 보였다. 고개를 숙였다. 바닥을 내려다보며 오르막이 아니라 평지라는 착각을 끌어내었다. 이러는 동안 전방을 살필 수 없었는데 JT님이 사진을 찍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눈을 들어 살핀 것은 내가 진입할 운동장 남문이었다. 남문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생애 최고 기록을 세웠을 로운리맨님이 가까이 뛰어와 열렬히 응원했다. 쩍쩍 달라붙는 우레탄 트랙을 어떻게 달려내는가가 관건이다 싶었다. 앞 주자가 트랙을 뛰지 않고 왜 잔디를 달리는 반칙을 하나 의아했다. 주로가 바뀌어 있었다. 운동장 안쪽의 천연잔디쪽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한 주로로 바뀌어 있었다. 내년 있을 전북도민체육대회를 대비하여 우레탄 트랙을 불과 이틀 전 깔면서 사람이 달리는 데 문제가 있었다. 하프 주자들 가운데에는 힘이 빠진 상태에서 양생이 덜된 우레탄 트랙을 달리다 넘어져 병원에 실려간 일이 있었다고 했다. 속도를 올리다 넘어진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고 했다. 주최측에서는 사고 방지를 위하여 뒤늦게나마 주로를 잔디쪽으로 바꾼 것이었다. 덕분에 달리는 거리가 조금 줄어들었지만 잔디의 완충 효과는 일주일 전 은행잎을 밟고 달린 것과 비슷하게 속도를 잡아먹었다. 갑자기 크로스컨트리가 되어버린 마라톤. 운동장 오르막에서 시간을 잃고도 마지막 2킬로미터는 9분 20초로 달린 덕분에 3시간 27분대로 골인할 수 있었다.
3:27:50.44
치열하게 이룬 서브 330이었다. 5년 전 고창고인돌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57분대로 완주할 때만 해도 3시간 27분대 주자로 돌아오리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풀코스는 무조건 4시간 이내로만 달리면 만족하던 내가 그동안 많이 변했구나 싶었다.
로운리맨님이 내 분전을 위로하듯이 안아주었다. 로운리맨님은 몇 분 전 골인했다고 했다. 그럴리가? 최고 기록을 세웠을텐데. 못해도 3시간 15분 전후로.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3시간 25분대가 사실이었다. 그래도 원정 최고 기록에 11월 최고 기록을 세운 것이었다. 이건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지난 5월 대회에서는 걸었는데도 3시간 27분대로 골인한 적이 있는 분이었으니까.
셔틀버스가 들르는 데가 많아 가장 먼저 탑승한 나로서는 힘들었다.
N15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12분을 기다려야 탈 수 있다.
5년만에 돌아왔다. 사진 우측 하단에 希洙형님이 보인다. 내가 몇 년 전 선물했던 배낭을 메고 계신다.
希洙형님과 함께.... (로운리맨님이 찍어주심)
완주 후 먹은 두부김치와 떡국
국물을 매우 많이 주어 처음에는 떡이 보이지 않았다. 주신 분도 국물을 너무 많이 주었다며 웃었다.
닭강정, 돼지고기.... 이건 인기가 좋아 남은 것이 별로 없었는데 나는 운이 좋게 제법 받았다.
콘으로 코스가 바뀌었음을 표시해 두었다. 안내 요원이 내게 달릴 방향을 알려주었다. (아세탈님이 찍어준 사진)
잔디쪽으로 달리게 되어 있었다.
골인 직전 경합을 벌여 추월을 시도했다.
추월했다.
덕분에 뒤 주자보다 공식 기록에서 2초가 빨랐다.
JT님이 찍어준 사진도 있다.
손을 든 장면이 찍혔다.
시계의 스톱 버튼을 누르는 장면도 찍혔다. (운동장 오르막을 오를 때 찍어준 사진도 있는데 찾아내어야 한다.)
올해 달린 서산마라톤, 평화통일마라톤, 고창고인돌마라톤은 모두 서브 330이 어려운 대회였는데 악착같은 노력으로 서브 330을 달성한 대회로 기억될 것이다.
로운리맨님부터 希洙형님까지.... 어떻게 주최측은 골인 예상 순위를 미리 알고 번호를 정했을까?
쌀 10킬로그램을 배번과 함께 미리 배송해 준다는 사실.....
로운리맨님이 주신 선물..... 칫솔 세트는 여러번 주셨는데.....
누룽지는 바로 먹었고, 체다치즈 크래커는 아껴두고 있다.
포스트잇이 특이했다. 교차해서 떼어내게 되어 있었다.
귀여운 장바구니... 무엇이라도 주시려고 하시니 늘 감사할 따름이다.
선물 배틀은 백기를 들어 투항한 지 오래다.
LED 터치 램프....
눌러 보았는데 불이 들어왔다. 무엇으로 작동하는지 궁금했다.
선물 모두 사용할 때마다 주신 분이 떠오를 것이다.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것은 希洙형님이 주신 것. 자주 주시는 영양식이다.
직장에 놀러갔을 때에도 늘 받았던.....
아세탈님이 주신 봉투에 '부담 갖지 마!'라고 적혀 있었다. 부담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있던 거야.... 결코 있던 것이 아닐텐데.....
파워젤과 아에드용 에너지 정제가 가득차 있다.
이런 것을 선물받고도 잘 못 달리면 벌받을 것이다.
스포츠 뉴트리션.... 내 마라톤 기록을 업그레이드시킨 아에드의 후신....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충전이 된다.
아세탈님에게도 선물 배틀, 백기 투항한 지 오래이다.
내 최대 감사의 표현은 마라톤에서 좋은 기록으로 달려내는 것일 것이다.
아세탈님은 대회 기념품인 쌀도 주셨다. 집에서 밥을 먹는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 쌀값이 비싼데 대통령 당선 공약 때문에 정부미를 풀어 가격을 내리지 못한다고 한다.
쌀 수확기를 맞아 쌀값을 인하하겠다고 한 입장을 최근 정부 관계자가 뒤집었다.
80킬로그램 쌀이 19만원대인데 당선 공약은 21만원, 농민들은 24만원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쌀 소비자 입장에서는 눈물나게 힘들다. 그 고충을 덜어주시니 아세탈님에게 정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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