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KOREA 마스터즈 마라톤 최강전.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나가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DSLR 카메라를 갖고 나갈 수 없겠구나 하는 아쉬움만 컸다.
이 대회를 참가신청한 것은 아니었고, 현장 접수할 마음도 없었다.
지인분을 응원하면서 가볍게 운동할 의도만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창밖을 보니 눈이 제법 내려 있었다.
대회 운영이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직감으로 알았다. 스마트폰으로 대회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
| ||||||||||||
안녕하세요 전국마라톤협회 사무국입니다. 제3회 코리아 마스터즈 마라톤 최강전 당일 폭설(천재지변)으로 인하여 대회가 12월 24일로 연기됩니다. 코스 상황이 크게 문제가되어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해 부득이 연기라는 결정을 하게된 점 양해부탁드리며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배번호와 칩은 그데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추후 또 정확한 안내 예정이오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또한 행사장이 모두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미니 훈련 마라톤 (5km, 10km)으로 대처하여 무료마라톤으로 진행합니다. 먹거리, 간식이 모두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주최측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사진
아세탈님과 만난 지 석달이나 되었는데 이번에도 못 만나겠구나 싶었다.
-오늘 대회장 오신 건 아니지요. 대회가 연기되었는데.... 혹시 대회장에 오셨다면 지금이라도 출발하고요.
-연기되었습니까? 막 대회장 주차장 왔습니다.
-무료마라톤은 한다니까 뛰고 계시면 가겠습니다.... 저는 9시 넘어 도착합니다. 운동하고 계시면 그 때 뵙겠습니다.
마당과 집 앞에 쌓인 눈은 급히 치우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 이동은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지하철역까지 가고, 지하철역에서 내려 대회장까지 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날 대회는 10킬로미터는 2회전이었다. 2.5킬로미터 지점에서 반환해 돌아온 뒤 한 차례 더 갔다 오면 끝나는 것.
아세탈님이 1시간 잡고 달린다고 했을 때 2회전에 나서자마자 대회장에 도착한 셈이 되었다.
상기님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대회장 아치를 지나 올림픽대교 방향으로 열심히 걸었다. 눈이 진눈깨비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다. 옷과 가방이 젖었다. 좀더 일찍 왔더라면 어차피 무료마라톤이니 짐을 맡기고 10킬로미터를 달려도 되었을텐데.... 쌓인 눈이 녹아서 주로는 몹시 질퍽거렸다. 주로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열심히들 달리고 있었다. 아예 추웠다면 눈밭이 되어 덜 불편했을 것이다. 지난 겨울 나 홀로 22킬로미터를 달렸던 코스였으니 오늘도 그렇게 달려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걷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이건 아니다 싶었다. 점점 눈이 녹아내려 경치도 별 볼 일 없었다.
눈이 빠져라 아세탈님을 찾았다. 올해 오사카마라톤 기념품 자켓을 입고 달리고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몇 차례 엉뚱한 사람을 아세탈님으로 착각했다. 87세의 노령으로 대회장에 나오셔서 운동하고 계신 어르신을 만나 인사드렸다. 압록강국제마라톤 대회 다녀올 때 룸메이트. 변함없는 달리기 열정 앞에 고개를 숙였다.
1킬로미터 남짓 걸었을까, 달릴 때는 금방 가는데 걸을 때는 왜 이리 멀까 하는 생각이 들 즈음 아세탈님이 보였다. 사진을 찍어드리고 되돌아서 걸었다. 골인 아치에서 다시 만나 사진을 찍어 드렸다. 오랜만에 뵈었으니 배웅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달려볼 생각이었다. 달리기 힘든 주로에서 하프 이상의 거리를 달릴 각오를 했다. 짐은 뚝섬유원지역 물품보관함에 넣어두고.
아세탈님이 식사부터 하자고 했다.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계획을 수정했다. 밥을 먹고 운동하는 것으로. (밥먹고 바로 운동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사거리의 아침
눈이 그치질 않고 있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
뚝섬유원지역에 도착했다.
멀리 대회장이 보인다.
파장 분위기이네.
출발점으로 이동한다. 아무래도 스키장 분위기가 나는데....
골인하는 분들이 보인다.
주로 상황이 최악이다. 눈이 녹아 질퍽거린다.
드디어 아세탈님을 만났다.
먼저 골인한 후 기다려 주신 아세탈님
걷기만 해 놓고 간식까지 받았다. 염치없이....
아세탈님의 차를 타고 쿠우쿠우 건대점으로 갔다. 출입구에서 제지를 당했다. 식당은 11시부터 연다고 했다. 아직 20분이 남아 있었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근처의 알라딘 중고서점 건대점에 가자고 했다. 거기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책 두 권을 득템했다. 아세탈님도 두 권을 샀다. 책은 완전히 새 것이나 다름없는데 저렴해서 놀랐다고 했다. 쿠우쿠우 건대점으로 돌아왔더니 어느새 손님들이 꽤 많았다. 오픈 시간을 다들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전날 하프 대회에 출전하고 당일 10킬로미터까지 뛴 아세탈님이야 실컷 드셔도 상관없었지만 나는 못할 짓을 했다. 전날 운동을 쉬고 당일 2킬로미터 남짓만 걸은 주제에 다시는 이렇게 먹지 못할 것처럼 먹어대었다. 밥을 먹고 난 뒤에 운동한다고? 2시쯤 하려던 운동이 4시가 되고, 4시가 6시가 되고..... 안할 수는 없는 노릇.....
알라딘 중고서점 건대점.... 오랜만에 들렀다. 원서 서가대
여기서 책을 득템했다.
The Best American Essays..... 2006년부터 매년 샀던 책. 늘 비싸게 구입했는데 이번에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나오기를 기다려 봤다. 정말 나왔다.
아모스 오즈의 대표작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영어본. 이스라엘어를 영어로 번역한 책이다.
쿠우쿠우 건대점에 들어서기 직전
넉달 전 왔을 때보다 1900원이 올랐네. 그 때 주말 공휴일 가격이 18900원이지 않았나?
첫번째 접시. 역시 초밥 위주로
육회도....
두번째 접시도 초밥을 빼어놓을 수는 없다. 시앙라시아라는 이름의 새우튀김도 담았다.
반대편에 아세탈님의 접시도 보이게끔.....
옆쪽에 모밀국수를 갖다 놓고....
세번째 접시에도 역시 초밥을 빼어놓을 수 없는데.... 쌀국수 닭고기볶음, 연어회도 함께....
네번째 접시에는 튀김류 위주로....
아세탈님의 소식(小食)과 너무 비교된다.
콜라까지.....
직원이 와서 대기 손님이 있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1시간 30분이 제한시간이었고 우리는 들어온 지 1시간 20분이 되었지만 마무리짓고 나왔다.
집에 와서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배가 꺼지지 않았다.
결국 저녁 먹을 시간에 운동을 나가야 했다.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루었다간 마스터즈의 도리가 아니었다. 잘 먹고도 달리지 않는다고? 그래서는 안 되지.
그냥 다음날 달리는 게 낫지 않나? 그래서는 안 되지.
덕성여대 맞은편 우이동솔밭 산책로까지 달려가 8바퀴를 돌았다. 한 바퀴에 775미터이니 이곳에서만 6킬로미터를 넘게 달렸다.
하프 이상은 달렸어야 하는 오전 운동 계획에 비하면 성에 차지 않지만 추운 날씨에 땀을 꽤 흘렸으니 만족하였다.
도로가 얼어붙었다. 질퍽거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빙판길이니 조심해야 했다.
우이동 솔밭에 왔다. 자주 오는데도 이 인형들을 보고 사람으로 착각하고 추운데 뭐하는 짓이람 하고 중얼거렸다.
우이동 솔밭 산책로. 한 때는 울타리가 없었다.
자생 소나무가 천 그루가 자란다. 어릴 때는 이쪽 공터에서 야구 시합도 했다. 3루수.
어둠 속을 미약한 불빛에 의지하여 달린다.
다소 밝은 곳도 지난다.
이 사진을 찍은 것은 첫번째 바퀴를 돌 때 뿐이었다. 나머지 일곱 바퀴 때에는 오로지 달리기만 햇다.
사람 만나기 힘든 러닝이었다.
오후 7시가 될 무렵 달리기 시작한 러닝이 오후 8시가 넘어서도 계속되었다.
온통 얼어붙었고 음산한 느낌까지 들었다.
이 이정표를 9번 만났다.
이제 도로변을 따라 달릴 것이다.
달리다가 소주병 꾸러미를 얻었다.
오는 도중에 소주병 한 병을 추가했다. 이 병 꾸러미를 들고 얼음길을 달렸다.
캔도 몇 개 들어 있었다.
소주병이 열 다섯 병이나 되었다. 열 다섯 병이 든 꾸러미를 들고 1킬로미터 이상 달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편의점에 갔다 주면 1천 5백원을 받을 수 있다.
갖고 달린 아에드는 거의 마시지 않았다.
※ 아세탈님의 선물 포스팅은 별도로 올립니다.
'달리기는 생활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을 읽기 위하여 달리다(2017/12/13) (0) | 2017.12.16 |
---|---|
12월 12일 영하 12도 달리기 12킬로미터(2017/12/12) (0) | 2017.12.14 |
아식스 연신내점까지 달리다(2017/12/08) (0) | 2017.12.14 |
2017 춘천마라톤 기념 신문+영화 <말아톤> (2017/12/01+12/04) (0) | 2017.12.06 |
의정부에서 영화보고 서울까지 달려오다(2017/11/28) (0) | 2017.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