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11회 동대문마라톤(2017/10/22)-HALF 162

HoonzK 2017. 10. 24. 21:43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내 하프 기록증에 생애 최고 기록이 찍혔다.


1:31:27


 지난 6월 7년만에 경신한 하프 기록을 넉달만에 2분 가까이 줄였다.
 참가할 수 있는 대회를 조기 접수마감과 개인 사정으로 모두 놓치고 동대문마라톤 현장 접수로 달렸다. 기념품 없이 1만 5천원에...... 8년 전 1시간 56분 55초, 6년 전 1시간 44분 13초로 달렸던 대회였다.


 너무 일찍 나가다 보니 수면욕에 시달려야 했다.(늘 그런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화장실 문제는 왕복 1킬로미터 떨어진 한적한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으로 해결했다.


 앞쪽에서 그냥 달리는데 첫 1킬로미터 4분 44초, 다음 1킬로미터가 4분 19초가 나왔다. 숨이 차거나 버겁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10월 하순의 선선한 기온과 서늘한 바람이 자연스럽게 페이스를 끌어올려 주었다. 동호회 몇 사람과 본의 아니게 경쟁을 했는데 그때마다 이겼다. 5킬로미터까지 22분 30초를 조금 넘겨 달렸다.


 5킬로미터를 달리고 나자 매우 익숙한 공간이 열렸다. 자주 달리는 우이천 코스와 중랑천 코스가 보였다. 내 구역으로 돌아왔다는 편안함이 들었다. 코스는 어떨까? 오르막은 어디에 있을까? 얼마나 더 달려야 반환할까? 이런 걱정이 전혀 없었다. 중랑천변의 잡초 한 포기까지 익숙했다. 그저 자전거만 조심하면 되었다. 늘 산책로를 달리다 이제는 자전거 도로를 달린다는 것이 조금 어색하다고 할까?


 가까이 달리던 주자들을 모두 제치고 나니 한동안 내 앞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제쳐서 이제 아무도 남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어이없는 착각까지 했다. 나는 25등 전후로 달리고 있었다. 10킬로미터는 45분이 걸리지 않았다. 반환은 47분 정도 걸렸으니 이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1시간 34분의 완주가 가능했고, 좀더 스퍼트한다면 지난 6월 세운 1시간 33분 15초의 기록을 깨뜨릴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하지만 초반에 너무 달려 후반에 체력이 달릴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그래도 이번 기회에 기록을 단축해야겠다는 오기가..... 마라톤이란 것이 복합적인 감정에 끊임없이 휘말리는 운동이라.....


 반환점 급수 담당이신 동대문마라톤클럽의 두경님과 반갑게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눈이 너무 부셨다. 돌아가는 10.55킬로미터는 줄기차게 햇빛을 마주보고 뛰어야 했다. 어느새 기온도 제법 오른 것같았다. 땀이 점점 많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빨리 달리기나 하는가? 갈증을 자주 느끼니 돌아가는 길에 만나는 급수대는 빠지지 않고 들렀다. 한번만 들르지 않아도 몇 초 정도는 단축할 수 있을 것같은데.... 이것 때문에 기록을 깨뜨리지 못하면 억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앞에서 아득히 멀리 떨어져 달리던 하늘색 바람막이 주자와 점점 가까워지더니 급기야 이 주자를 제쳤다. 머릿 속은 복잡해졌다. 괜한 짓 하는 것 아닌가? 1시간 34분대도 잘 달리는 것인데 1시간 33분 초반의 기록을 깬다고? 그래도 달리고 나서 아쉬움은 없어야지,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은 가지고 돌아가야지. 
 
 하프 주자 가운데 유일하게 아는 사람을 만났다. 효준님을 만났다. 다음 주에 요코하마 마라톤에 참가한다는 효준님을 보고 박수치며 응원했다. 우이천 갈림길에 나와서 응원해주는 돌곶이 마라톤 회원들에게는 일일이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6킬로미터가 남지 않았으니 이제 스퍼트해야지. 나름대로 스피드를 올린다고 애를 쓰고는 있지만 어느 정도 스피드로 달리고 있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빨리 달리려고 해도 내 몸을 주저 앉히는 훼방꾼이 있었다. 바로 체중이었다. 살을 좀더 뺐어야 했다. 돼지처럼 먹고, 그것도 밤에 먹고, 빨리 뛰려고 하니 힘들 수밖에......


 뒤에서 바짝 따라오는 발걸음을 몇 번이나 떨구어 버렸다. 반환 후 추월한 사람은 여자 1등을 포함하여 단 세 사람. 여러 사람을 제치지 못한 것으로 보아 내 페이스가 매우 더딘 것은 아닐까 싶었다. 킬로미터 표지판도 너무 뜸하게 나타났다. 마침내 만난 5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 1시간 10분 중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남은 5킬로미터를 22분대 중반으로 달리지 않는 한 기록 경신은 어려워졌다. 단 몇 초 차이로. 아이구 아까워라. 조금만 더 스퍼트할 걸. 이렇게 아쉬워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인상을 쓰면서 달렸다. 남은 5킬로미터에서 분투했다. 21분이 걸리지 않았다. 골인하기 직전 계시기를 보고 너무 놀랐다. 1시간 32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1시간 31분 27초 312


 킬로미터당 4분 20초로 내내 달려야 가능한 기록이었다..... 나보다 앞에 골인한 분은 나보다 3초 빨랐는데 3초 먼저 출발한 것이었고, 그 앞의 분은 7초가 빨랐는데 나보다 7초 먼저 출발한 것이었다. 같이 출발했다고 해서 같이 들어가지는 못했겠지만. 나는 22등을 했고, 23등은 내가 골인한 후 1분이 지나서야 들어왔다. 10킬로미터에 참가하여 조깅하듯이 뛰었다고 한 상기님은 내가 곧 1시간 29분대 들어가겠네라고 격려해 주었다. (조깅하듯 뛰어도 40분...와!) 이 대회에는 아는 사람이 너무 없었다.

 
 기록을 경신한 내게 반바지를 선물했다. 기록 경신을 가능하게 해 준 반바지와 똑같은 종류의 반바지를 마라톤 용품 단골 판매상에게서 샀다. 장한평역 근처 교동짬뽕에서 자장면을 사 먹으려다 그냥 참고 귀가한 후 직화짜장을 끓여 먹으며 기록 경신을 자축했다. 저녁에는 돼지고기, 호로요이로 리커버리했다.



 이제 춘천마라톤이다. 춘천댐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제하고 또 자제하리라. 특히 신매대교를 지나고 나서는 악착같이 속도를 늦출 것이다. 춘천댐을 지나기 전에 속도를 올려서 기록이 좋았던 춘천마라톤은 지난 11년간 한 차례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춘천마라톤부터 7주 연속 풀코스를 달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장한평역에서 20분을 걸어야 하니 이런 이정표가 없으면 대회장을 찾아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중랑천이 내려다 보인다.


멀리 도봉산도 보인다.


내가 이용한 화장실이 보인다.


큰 대회는 아니지만 칩을 쓰는 대회이다.


올해 마지막일 수도 있는 하프 기록을 새로 썼다.



올해 달린 12번의 하프 가운데 11번 1시간 30분대에 들어갔다. SUB 135는 세 차례.

풀코스를 달리고 난 바로 다음 날 뛴 하프(1시간 45분)를 제외한다면 올해 하프는 100% 1시간 30분대.

2004년부터 2016년까지 달린 하프 150회 가운데 1시간 30분대에 들어간 것은 19차례.

올해 11회의 1시간 30분대는 해 놓고도 믿기질 않는다.

 



사진찍는 줄도 모르고 눈을 감고 골인하네. 형광색 티셔츠는 1년만에 입었다. (으이구... 살 좀 빼자)



현장접수는 입상이 되지 않으니 배번이 시작하는 숫자도 다르다.





시상식이 진행중인데......


2차 경품 추첨 행사가 있었지만 그냥 빠져나왔다.


산책로 따라서 걸어간다.


아에드에 감사하면서.....


가을이 깊어간다.



사실.... 참가 신청을 했었는데 돈을 입금시키지 않아서 현장 접수를 해야 했다.




기념품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념품 없이 참가신청하겠느냐는 물음에 좋다는 대답이 바로 나왔다.



익숙한 구간이라 달리기 좋았다.


나 자신에게 선물한 반바지.....


반바지를 샀더니 사장님이 장갑을 선물하셨다.


돼지 목살로 에너지 보충을 했다.



호로요이 술도 한 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