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브릴랜드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 황근하 옮김
(주) 도서출판 강 1판 1쇄 2008. 8. 5
화가 르누아르가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이라는 대형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일일이 모델을 섭외하고 꼼꼼하게 붓을 놀린 그 순간이 생생하게 소설에 담겨 있다. 르누아르의 전 생애를 담기 보다는 삶의 한 순간을 기록한 소설이다.
저한테는 어길 수 없는 원칙이 둘 있어요. 언제나 삶 속에서 그릴 것, 내가 즐기지 않는다면 그리지 말 것, 제가 그리는 인물이 살고 있는 바로 거기서 그려야 해요. 31
난 사회를 냉혹한 눈으로 관찰하는 그런 화가가 아니에요. 난 단지 아름다운 날을 보내는 즐거운 한때를 그리려는 거예요. 58
삶에는 이미 불유쾌한 것들이 너무 많아. 굳이 그림으로까지 그려내지 않아도 말이야. 난 비참한 생활의 묘사가 싫어. 난 빛을 더하는 그림을 그린다네. 어둠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66
난 그저 내 눈에 아름다운 걸 그리고 싶은 것뿐이에요. 212
이런 르누아르(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태도는 철저한 사실주의자인 에밀 졸라같은 작가에게는 탐탁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파상도 지적한다.
당신은 유행에 뒤처져 있어요. 르누아르. 지금 먹히는 건 사실주의예요. '장미빛 인생'이 아니라 '라 비 모데른'을 그리는 리얼리즘 말이죠. 당신은 현실도피주의자예요. 222
왜 굳이 비참한 현실을 묘사해야 하는 비극주의를 종교처럼 믿어야(224) 하는가? 이에 의문을 다는 것이 르누아르이다. 그림까지도 우울한 삶을 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인상파 화가의 지론이다. 그리고 내용보다는 전달 방법에 주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야기를 원한다면 역사적 그림을 찾아봐요.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가 아니라 여기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요.....
그림, 그림을 그리는 행위. 그게 중요한 거죠. 그저 눈 앞에 있는 그림을 보라는 거예요. 캔버스에 두껍게, 얇게 바른 물감, 부드럽고 거친 느낌, 서로 다른 색깔이 붓질 속에서 한데 섞인 모습, 대비되는 색깔이 나란히 놓인 것., 내게는 그게 바로 라 비 모데른이에요. 281
어여쁜 장미빛 세상을 작품에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한 화가가 르누아르인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원서와 달리 번역본에는 르누아르의 총천연색 그림이 실려 있다. 익히 본 바 있는 '그네'나 '물랭 드 라 갈레트' 등이 책을 읽는 중간 중간 나올 때 미술관에 와 있는 환상에 빠져 들기도 했다. 유화의 물감이 손에 묻어날 것같은 소설에 흠뻑 빠져들어 있었다. 그림 그리기의 배경이 되었던 메종 푸르네즈에 가서 르누아르의 모델이 되어 그의 열정이 만들어내는 존재로 탈바꿈하는 느낌마저 받았다.
르누아르를 중심으로 알폰진, 잔 사마리, 앙젤, 폴 로트, 샤를 에프리쉬, 귀스타프, 키르케가 내 옆에서 살아 나왔다. 급기야 화가의 반려자가 된 알린까지...... 그림에 등장하여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실존 인물을 다루다 보니 인물 평전같은 느낌도 살짝 받았다. 어빙 스톤이 반 고호를 주인공으로 써낸 <Lust for Life>가 떠올랐다. 분위기는 전혀 다른 소설이지만 화가의 열정만은 그대로 전해진다. 화가의 삶을 소재로 소설을 계속 써내는 수잔 브릴랜드의 역량이 대단하다. 얼마나 자료 조사를 해야 백 년도 지난 시간,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으로 사람을 끌어올 수 있는가? 이 작가는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를 주인공으로 한 <델프트 이야기>도 썼다. (2015. 3. 24)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일화를 소설로 읽을 수 있다.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
출처: 네이버
<그네>
출처: 네이버
※ 이레저레 화가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 떠오른다.
슈발리에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화가 베르메르의 이야기. 이 책은 원서로 먼저 읽고 영화로도 보았다.
20년 전 내가 쓴 단편소설 <산 로마노 기마전투>도 떠오르는데 좀 주제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파올로 우첼로의 작품을 탐닉할 기회이긴 했지만 쓰레기같은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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