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대전마라톤(2017/03/26)-HALF 152

HoonzK 2017. 3. 27. 16:24

2011년 10월 30일
2013년 9월 15일
2015년 9월 12일
2017년 3월 26일

 

 대전마라톤은 2년 터울로 출전하게 된다. 늘 하프를 달렸던 이 대회, 올해는 대전에 사시는 김선생님이 출전을 권유하여 나가게 되었다.


 로운리맨님은 인천에서 하프를, 허수아비님은 울산에서 하프를, 아세탈님은 제주에서 풀을 달린다고 했다. 지난 주 한 군데에서 풀코스를 달렸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달리게 되었다.

 

 동아마라톤을 마치고 몸을 버렸다. 메이저대회에서 풀코스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하자마자 너무 방심했다. 과식으로 체중이 불고, 과로로 감기 몸살까지 앓았다.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각성제를 먹은 것처럼 잠을 못 자고 두통에 시달렸다. 대회 전날 23시 30분쯤 잘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자정을 넘겼고, 곧 새벽 1시를 넘겼다. 새벽 2시 30분도 넘겼다. 그 사이 수면 앱을 가동하여 자 보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했다. 새벽 3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무렵 나는 등산복을 입고 산악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봉역 근처에 사시는 분과 설악산 무박 산행을 간다며 산악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 간식 거리를 마련한 후 화장실에 들러야 했다. 그러나 소변을 볼만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노상방뇨조차 할 수 없었다. 무척 난감해 하는데 건너편 둑방길을 따라 걷는 한복입은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빛을 내는 풍선을 들고 있었다. 그 풍선에서는 연기같은 것이 뿜어나왔다. 내 옆에는 소녀가 있었다. '저 여자는 음모를 꾸미고 있어'라고 외치기에 나는 '그럴리가.....'라는 말을 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녀는 내 뺨을 때리더니 내 머리 위쪽에 떠서 온몸에서 서슬푸른 빛을 뿜어내었다. 온몸에서 분노가 표출된다면 이런 모습일거야. 눈이 번쩍 뜨였다. 새벽 4시 9분이었다. 꿈이었던가? 꿈이었다면 잔 것아닌가? 소변이 몹시 마려웠다. 화장실 찾아다닌다고 애먹었던 이유가 있었구나.

 

 좋지 않은 컨디션에 잠까지 부족해서 대전행을 포기할까 고민하면서도 아침 식사를 하고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 대전역에 도착할 때까지 잠은 자지 못했다. 그저 눈만 감고 있었다. 대전정부청사역에서는 한밭수목원까지 3킬로미터 남짓 걸었다. 걷는 동안 지난 2월 5일 로운리맨님이 준 스포츠겔을 먹었다. 피로야 싹 날아가라. 오늘의 달리기 복장은 반 팔, 반 바지 차림. 조금 싸늘했다. 구름도 잔뜩 끼어 있었다. 물품을 보관하러 가는 사이 김선생님과 의찬 아빠를 만났다. 이분들은 5킬로미터 걷기를 하면서 나를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벤치에 누워 단 몇 분이라도 자려던 계획을 바꾸어 몸만 꾸준히 움직여 주었다. 추워서 누워 있을 수 없었다. 대전마라톤은 10킬로미터, 하프, 5킬로미터 순으로 출발하였다.

 

 3가지 악재(惡災)

1. 체중 증가
2. 감기 몸살
3. 수면 부족

 

 완주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엑스포 다리를 바라보며 출발선에 섰다. 건너편에는 대전엑스포의 상징물 한빛탑이 보였다.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감기 때문에 휴지를 말아쥐고 있었다. 코를 풀며 기침을 하면 가래가 나왔다. 허수아비님이 감기약을 먹지 말라고 해서 오전에는 약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 바로 뒤에 섰다. 따라가면서 후반에 스퍼트하는 방식을 채택하자. 출발 신호와 함께 튀어 나갔다.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를 바로 제쳤다. 선두 주자들이 그리 빠르지는 않다고 느껴졌다. 엑스포다리를 건너가기도 전에 숨이 몹시 찼다. 헉헉거리면서도 스피드를 늦추지 않았다. 1킬로미터 거리 표지판을 4분 25초만에 지났다. 곧 둔산대교를 건너 갑천변을 따라 달리게 되었다. 거리 표지가 1킬로미터마다 있는 게 아니라서 페이스를 가늠할 수 없었다. 주변의 주자들과 보조를 맞추고만 있었다. 지난 주에 비하여 매우 싸늘한 날씨라 오늘은 긴팔 티셔츠를 입는 게 나았을 것같았다. 엑스포 다리 아래를 지나는데 5킬로미터 주자들이 출발하고 있었다. 그쪽에서 손을 흔들어 응원해주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산책하는 사람, 축구하는 사람, 자전거타는 사람을 보며 그저 발을 앞으로만 내밀고 있었다. 오르막이 없이 평탄한 길을 따라 꾸준히 달렸다. 갑천을 건너가면 5킬로미터 표지판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전에 급수대가 나왔다. 350밀리 It's 水 생수통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었다. 들고 뛰면서 뚜껑을 따서 마시고 물통을 주로 바깥으로 던졌다. 5킬로미터 24분 10초. 첫 1킬로미터 이후 속도가 떨어졌다는 뜻이었다. 22분대가 나왔던 2주 전보다 힘들었다. 5킬로미터를 더 느린 속도로 달린 셈이지만 그 거리는 더 멀게 느껴졌다. 갑천을 오른편에 놓고 달리는 동안 몇 명의 주자에게 추월당하였다. 그 주자들과는 달리면 달릴수록 100미터, 200미터, 나중에는 500미터 이상 차이가 나 버렸다. 국립종합과학관쪽으로 틀면서 대전마라톤만의 특징이 시작되었다. 꺽고, 또 꺽고, 다시 꺽고, 이리 꺽고, 저리 꺽고, 사정없이 꺽고, 꾸준히 꺽는. 방향 전환만 25회 이상되는 코스로 마치 미로를 헤매는 느낌으로 달려야 했다. 국립종합과학관, 대전교육과학연구원, 화폐박물관, 지질박물관, 카이스트 연구단지 일대를 누비며 쉴새없이 꺽다 보면 어디로 달려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거리 표지는 1킬로미터, 5킬로미터, 10킬로미터, 15킬로미터, 20킬로미터만 있었다. 무작정 달려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탄동천을 따라 달리다 보면 만났던 급수대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주로 오른편에 설치하지 않고 왼편에 설치했고, 10킬로미터 주자들이 많다 보니 가려서 그만 놓친 것이었다. 갈증을 느끼면서 달렸다. 10킬로미터 표지판이 나오기는 할까? 시계를 볼까? 1시간쯤 지난 것같은데 10킬로미터 표지판이 통 보이지 않네. 표지판보다 더 필요한 급수대도 안 보이고. 아주 죽을 지경이었다. 뒷골이 당기면 바로 달리기를 멈출 생각이었는데 아직 뒷골이 당기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내 뒤에서는 나를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으니 내 페이스가 아주 처지는 것같지는 않았다. 7킬로미터 이후부터 골인할 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추월당하지 않았다. 마침내 10킬로미터 표지판이 나왔다. 48분 15초. 50분이 넘을 줄 알았는데......생각보다는 빠른 편이었다. 이 48분이 내게는 다른 대회 68분처럼 느껴졌으니 내 몸상태를 알만하였다. 10킬로미터가 이렇게 멀게 느껴지다니 거리를 길게 느끼는 비법이 있다면 살이 찌는 것이구나. 이건 아무래도 1시간 39분대의 달리기는 아니었다. 1시간 44분대의 달리기였다. 연구단지 종합운동장쪽에서 유턴해서 빠져나오는데 1시간 45분 페메가 바로 뒤에 있었다. 나와 페메 사이에는 어떤 주자도 없었다. 1시간 45분 페메 바로 앞에는 나뿐이었다. 지난 주 풀코스를 달리는 중간 하프 기록이 1시간 41분대였음을 기억하니 내 몸이 어떤 상태로 곤두박질쳤는지 알 수 있었다. 달리면서 왼손으로 내 옆구리를 잡으며 한탄했다. 한움큼 잡히는 옆구리살. 살찐다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이었다. 도무지 견딜 수가 없구나. 살이 찐 상태에서 스피드를 올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일단 악착같이 15킬로미터까지 달리다 보면 조금이라도 살이 빠질 것이다. 그렇게 살을 조금이라도 뺀 상태에서 남은 6.1킬로미터에서 스퍼트하여 1시간 39분대에는 진입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급수대는 어디 있나? 7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물 한 방울 입에 못 대다니. 주로 유도하시는 자원 봉사요원들 주변을 살폈다. 그분들이 소지한 물이라도 있으면 얻어먹고 싶었다. 물도 없는데 오르막까지 나오는 주로. 오르막을 넘고 난 13킬로미터 쯤에서 급수대가 나왔다. 이번에는 뚜껑이 따진 500밀리 생수병이 배치되어 있었다. 잡아채어 물을 마시는데 한동안 그 물병을 버리지 못했다. 물이 너무 소중했다. 얼굴에도 뿌리고 몇 번 더 마시면서 수백미터를 달린 후에야 버렸다. 연구단지 내에서 꺽임이 많다 보니 주자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 나 홀로 달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오르막도 많아 1시간 39분대 진입의 희망을 번번이 꺽어 놓았다. 다음에 만난 급수대에는 물컵이 있었다. 바나나 한 개를 잡고 물컵도 잡았다. 포카리스웨트였다. 포카리스웨트만 물컵에 따르고 물은 병채로 제공한다는 방침을 정한 듯했다. 미로를 헤쳐 나가는 느낌 속에서 15킬로미터 표지판을 보았다. 1시간 12분 30초 정도가 경과했다. 남은 6.1킬로미터에서 27분 30초로 달려야 1시간 39분대 후반 골인이 가능했다. 앞으로 킬로미터당 4분 30초로 계속 달려야 가능했다. 몹시 피곤했지만 피곤함은 잠시 잊기로 했다. 오로지 속도만 생각하기로 했다. 몇 명의 주자를 제쳤다. 여성 1위 주자를 제칠 수 있을 것같았지만 함께 달리는 레이스패트롤 남자분이 레이스를 이끌어주고 있어서 쉽지 않아 보였다. 탄동천의 좁은 주로에서 빠져나와 대덕대교부터는 갑천변을 달리면서 넓은 주로가 되었다. 미로가 끝났다. 미로의 특징 하나가 길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지만 또 하나의 특징이 출구가 있다는 것이니......  시야가 트이면서 앞에서 달리는 주자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엑스포다리를 만나면 10킬로미터 주자들은 바로 올라가면 되었지만 하프 주자들은 둔산대교를 지나갔다 와야 했다. 그 거리가 꽤 큰 부담이었다. 엑스포다리쪽으로 되돌아와 1킬로미터가 남았을 때 1시간 34분대 후반이라도 되어준다면 1시간 39분대 골인이 가능할 것같았다. 둔산대교 아래를 지나 수풀을 감아돌 때 보니 1시간 45분 페메는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앞의 여성 1위 주자는 제치기 힘들 것같았다. 1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에서 시계를 보니 아직 1시간 34분이 넘지 않고 있었다. 되었구나. 1시간 39분대. 그래도 이건 아니다. 앞으로 몸관리 좀 잘하고 나와야지. 엑스포 다리를 건너가며 골인 지점을 향하여 쉴새없이 스퍼트하고 있을 때 의찬아빠와 김선생님이 보였다. 의찬아빠는 DSLR 카메라로 나를 찍고 있었다. 오늘 웬일이예요? 하프 10등인 것같은데 이게 도대체 웬일이예요? 진짜요? 제가 왜 이럴까요?

 

 내 바이저 버프의 뒤쪽 펄럭임 때문에 주최측에서 잠시 여자 2위로 착각했던 해프닝이 있었다. 결승선 테이프를 설치했다가 남녀 식별이 가능해지자 급히 치웠다.

 

1:37:52.41

 

후반 6.1킬로미터를 킬로미터당 4분 10초로 계속 달렸던 것이다. 3가지 악재 가운데 하나만 없었어도 나는 대전마라톤 최고 기록 1시간 36분 13초로 경신할 수 있었을까? 이 기록을 세울 당시 13살이었던 의찬이가 이제는 19살이 되었는데......

 

 오랜만에 이로운님도 만났다. 의찬아빠와 김선생님은 천천히 걸어서 5킬로미터를 완주했다고 했다. 50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고 했다. 중학교 육상선수 시절 800미터를 2분 이내에 달리고, 1만미터를 28분대에 달렸던 의찬아빠에게 마라톤 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의찬아빠, 김선생님과는 점심을 먹고 책방에 들르고 커피숍에도 갔다. 마라톤 완주 후 포상으로 마셨던 콜라를 오늘은 마시지 않았다. 

 

 

 

빨간 화살표 아래에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프코스 출발 직전

 

 

 

엑스포다리 위를 달리며 골인 지점을 향하여 질주하고 있다. [의찬 아빠 촬영]

 

 

 

 

 

 

 

힘들었어도 엄지척은 했다.

 

 

의찬 아빠 감사합니다.

 

 

 

 

 

원경으로 찍힌 내 모습. 내 뒤에는 아무도 없다. 따라 오는 주자가 한 명도 없다.

 

 

 

엑스포다리 위의 나, 내 뒤로 한빛탑

 

 

사진찍는 의찬아빠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기 시작한다.

 

완주 후 메달과 기록증을 받고 김선생님과 사진을 찍었다.

 

 

 

이로운님과도 함께.....

 


 

이번 대회 기념품

로운리맨님이 준 스포츠겔

 

한밭수목원을 향하여 걷던 도중 먹었다.

 

집결지 도착

 

 

 

 

 

5킬로미터 코스도

 

10킬로미터 코스도

 

하프코스도.... 미로가 따로 없다. 이런 코스를 만들어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2011년 대전마라톤은 한밭운동장에서 출발하여 차량 통제를 하면서 대로를 달렸는데 시민들의 불만이 많아 결국 이런 코스로 바뀌었다. 대전마라톤의 내 하프 최고 기록은 대로를 달려서 세운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