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文化生活)

유만주를 만나다(2017/03/08+03/12)

HoonzK 2017. 3. 13. 13:13

 조선시대의 선비 유만주(兪晩柱)를 만났다. 1755년부터 1788년까지 별다른 직분없이 33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던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삶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바쳤다. 21세부터 죽기 전까지 쓴 13년간의 일기를 묶어 '흠영(欽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흠영(欽英)'은 꽃송이와 같은 인간의 아름다운 정신을 흠모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유만주는 죽기 전에 자신의 글을 모두 불태우라고 유언했지만 부친과 친구가 기록으로 남겼다.

 

 서울 역사박물관에서는 1784년 일기에 초점을 맞추어 전시장을 꾸몄다. 신년 맞이부터 시작하여 여행, 건강, 가옥매매, 담배, 과거시험, 홍대용 집 방문 등까지 일기에 담겼다. 18세기 말의 조선시대 미시사를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2017년 3월 8일 청수 도서관, 알라딘 중고서점 대학로점을 거쳐 12킬로미터 남짓 달려 서울역사박물관에 닿았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장을 누볐다. 젖은 옷을 갈아입어야 했지만 지식을 갈구하는 마음에 축축한 옷을 1시간 남짓 버티었다. 내 가방에는 <일기를 쓰다>라는 유만주의 일기가 담겨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유만주의 일기를 발견한 것은 우연일까?

 

 3월 12일에도 갔다. 공식적으로 유만주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다. 이번에는 여성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는데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그는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특히 눈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절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부터 늙을 때까지 책을 몇 만 권 읽기를 일각도 그치지 않으면서도 눈이 흐리거나 침침하지 않아 달빛처럼 환하게 볼 수 있겠소이까? (1784년 6월 12일)

 

 안 그래도 연필이 많은데 또 연필을 샀다. 자신의 삶과 생각을 기록으로 남긴 유만주를 만난 영향이 컸다.

 

 

 

전시가 시작된 지 100일이 넘었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다.

2017년 3월 8일과 12일, 부랴부랴 두 차례 찾았다.

 

 

한양선비의 한해살이.

운을 맞춘 것같은 소개문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왔다.

 

 

바닥을 서울 옛지도로 꾸며 놓았다.

 

 

무료관람이다. 입장료를 내었던 기억이 있는데......

 

 

 

박물관 1층 로비

 

 

 유만주의 한양. 기획 전시실 입구

 

흠영각이다.

 

 

열심히 글을 쓰고 계시네.

요즘 태어났다면 편하게 연필이나 볼펜으로 썼을텐데......

아니면 노트북 컴퓨터를 갖고 다니면서 엄청나게 많은 글을 썼을테고 24권이 아니라 100권을 넘게 남겼을 수도 있겠다.

 

 

 

 

전시관 가운데 원형으로 돌아간 벽이 있고 그쪽에 1년간의 일기 발췌 내용이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다. 각 달 게시관으로 들어서기 전에 한 바퀴 돌아보는 게 좋다.

 

 

 

 

 

월별로 독립관을 만들어 놓았다.

 

 

 

 

 

중앙은 곡선, 외벽은 직선을 활용했다.

 

 

 

중앙에 서면 어느 달로든 갈 수 있다. 3월이든 10월이든......

 

 

 

천정에는 조형물이 붙어 있다.

 

 

유만주의 인형. 생생한 느낌을 준다.

유만주의 초상화가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아버지 유한준의 초상화를 토대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아마 아들은 이렇게 생겼을 것이라고.....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관람객들(2017/03/12 오후 2시경)

 

 

모니터를 통해서도 유만주의 일기 소개는 이어진다.

 

 

 

여기 있는 전시물 대부분이 유만주와는 직접 관련이 없고 유만주의 시대와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이 시대를 알려주는 물품을 전시했다고 보면 된다.

 

 

바닥에 그려진 유만주의 이사 동선. 1784년에 명동으로 이사했기에 그 기록이 1784년 일기에 남아 있다.

 

 

 

유만주의 일기를 토대로 구성한 유만주의 3월 3일 동선

 

 

지도와 작은 안내 수첩, 나침반이 달린 소품.

요즘 네비게이션과 같은 기능을 갖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옛날 사람 방식대로 여행 정보를 확보하였다.

 

 

 패철선추. 부채 끝에 다는 소품인데 나침반이 달려 있었다.

 

 

 

건강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유만주. 당시의 약에 대해 배울 수 있다.

(해설사 분의 모습이 유리에 비쳤다. 2017. 3. 8 오후 2시 반경)

 

과거제도와 관련된 소품

 

 

읽기 편한 중국 소설도 유만주는 읽었다.

 

 

담배와 관련하여. 당시에는 임금 정조를 비롯한 대신들 대부분이 담배가 몸에 좋다고 했다. 담배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피울 수 있는지 고민까지 했다고 했다.

그에 반하여 유만주는 담배를 반대하고 있었다.

 

 

집 매매 계약문서이다. 물론 유만주가 살았던 집과 관련된 문서는 아니다. 유만주가 소장하고 있던 물품은 이 전시장에 없다.

 

 

 

유만주가 1784년 구입한 가옥은 매우 비쌌다고 했다. 돈벌이도 없는 양반이 아버지의 돈으로 구입한 것인데 8인 가족이 125개월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과거 시험 맞춤 교과서같은 것이다.

유만주는 과거를 평생 준비했지만 끝내 급제하지 못했다.

1784년에는 시험장에 들어갔다가 답안지도 내지 않고 나왔다고 했다. 그렇게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썼는데 2천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극복하기는 어려웠나 보다. 1784년이 아니더라도 평생......

 

 

책을 많이 읽어서 책을 구할 수 있으면 어떤 노력도 다 했다고 한다.

 

 

 

홍대용의 집에서 유만주가 본 물품들. 망원경, 자명종, 양금.....

 

 

 

 

유만주가 들렀던 곳이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함을 배우 브래드 피트가 인상적으로 보았다고 했다.

 

 

 

책주릅, 책쾌 이야기가 나온다. 붉은 수염을 지닌 책장사 조생을 통하여 유만주도 책을 구입했다고 한다. 김영주의 소설 <책쾌>를 읽은 적이 있어서 매우 반가웠다. <책쾌>는 다음에 포스팅하기로 한다.

 

 

 

신년에 주고 받았던 다이어리같은 것이다.

 

 

유만주가 엮어 만든 일기

 

 

신년에 선물했던 먹, 세화판......

 

 

윷놀이판

 

 

열심히 쓰세요. 제 그림자 보이시나요?

 

이렇게 앉아서 썼을테지.

과거로 돌아가 책상과 하이팩 의자라도 선물하고 싶네.

 

 

강북문화정보도서관에서 빌린 흠영선집.

이 전시회를 알기 전에 빌린 책이다.

이 책을 통하여 유만주를 알게 되었다.

 

 

<흠영>은 서울 사대부가의 구체적인 생활상이 저자 특유의 미시사적 시선으로 밀도있게 재현했다는 평이 달려 있다.

18세기 후반 조선의 삶을 그 자체로 보여주는 보기 드문 자료라 이 책을 연구하여 학위 논문을 받은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요절한 아들 유만주의 조문을 아버지 유한준이 썼다.

유한준은 오래 살아서 손자, 아들의 죽음까지 모두 봐야 했다.

 

 

 

우리 말은 엄청 긴데 영어는 매우 짧네. 압축해서 영역한 모양이다.

 

 

 

박물관에 온 김에 <일기를 쓰다>를 읽었다.

 

 

한글 안내문이 없어서 영어 안내문을 받았다.

 

 

휴식 공간에 앉아서 노트를 꺼내어 놓고......

 

 

밖에는 탑이 보이니 이 곳이 박물관임을 알겠다.

 

돌아오는 길에 연필을 샀다. 다섯 자루에 1천원 주고. 유만주 전시장에 들르지 않았다면 사지 않았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