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애환(讀書哀歡)

철학은 운명이다

HoonzK 2017. 2. 15. 14:06

헬렌 S. 정 <철학은 운명이다> 인라잇먼트 2014. 11. 24 인라잇먼트

 

 

 

 

 일단 철학책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사정없이 날려버린 책이 <철학은 운명이다>이다.

 

 <별에서 온 그대>, <너의 목소리가 들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클라우드 아틀라스>, <매트릭스>, <호빗>, <꽃보다 할배>, <응답하라 1994>, <슈퍼스타 K>, <스타워즈>, <겨울왕국>, <홀리 모터스>,<다빈치 코드>, <파이 이야기>


 이런 작품들이 책에서 언급될 때 모름지기 철학서가 꼭 학술 서적같을 필요는 없다고, 꼭 어렵게 쓸 필요는 없다고, 아울러 철학은 우리 가까운 데 있는 것이라고, 바로 옆에 사람을 생각하는 방법이 있는데 무시하는 것이라고, 그저 스쳐 지나쳐 버릴 수 없는 매체에도 삶을 변화시킬 사고가 버티고 있다고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된다.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칸트와 데카르트를 이야기하지만 지나간 철학을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변해갈 수 있다는 동기 부여를 받는다. 꿈을 잘 해석하여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데카르트와 융, 상징적인 죽음으로 새로운 탄생을 꿈꾸는 니체, 끊임없이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하야 자신의 운명을 이해해야 한다는 플라톤. 이 책을 읽고 난 직후 이 철학자들이 무척이나 가까이 있음을 깨달았다. 철학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지 알게 된다. 세상에 대하여 투덜거리지 말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나를 둘러싼 세상을 해석해 보라. 그러면 세상을 보는 혜안이 열리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먹고 살기, 잠과 꿈, 삶과 운명의 문제를 두고 철학자들의 미스터리 해법 방식으로 써내려간 <철학은 운명이다>는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연금술사>와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어봐야겠어. 칸트의 3대 비판서를 늦기 전에 읽어 봐야 하지 않겠어. 염세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읽어서 미래에 대비해야겠어. 니체를 읽어 변화하는 삶을 맞이해야겠어. 철학은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므로 끊임없이 해야겠어. 철학자들을 직접 만날 수는 없으니 그들이 쓴 책, 그들에 관하여 쓴 책을 통하여 진지하게 내 삶에 대하여 고민해 봐야겠어. 그러면 나에 대해 알게 되겠지. 그리고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알게 되겠지.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여 나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 내생이 있어 삶은 윤회한다는 것, 고래로부터 축적되어온 것이 현재의 사람을 만든다는 것, 고무적인 내용이다. 나 홀로 이 곳, 이 시간에 있다면 얼마나 서러운 일인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철학은 그런 것이 아니다. 곡 해야 하는 운명같은 것이다. 그것이 <철학은 운명이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먹고 사는 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 있겠는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기본적인 욕구 충족에서 철학은 시작된다. 에피쿠로스, 몽테뉴, 칸트가 음식을 통하여 거론된다. 잠을 자지 않고 꿈을 꾸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는가? 데카르트, 칼 융, 쇼펜하우어는 꿈을 통하여 인생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제 삶이다. 운명이다. 니체를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 삶을 배우고, 세네카를 통하여 삶을 돌아보고 평정심을 유지한다. 플라톤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배운다.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철학의 생각과 어울려 내내 주의를 끄는 책이다. 모르고 있던 것을 많이 알았다. 그럼에도 재독(再讀)하고 싶은 책이다. 좋은 책이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에 답한 책이 바로 <순수이성비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는 책이 바로 <실천이상비판>,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이 마지막 물음에 충실히 답하기 위해 <판단력 비판>과 함께 많은 역사와 종교 그리고 철학을 다룬 글들이 쓰여졌다. 182 (칸트)

 

 인간의 일생은 처음 40년 동안은 인생의 본문을 쓰는 시기이고 그 다음 30년은 이 본문에 대한 주석을 달아가는 시기이다. 348 (쇼펜하우어)

 

 죽어야 깨달을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치 나인양, 나의 분신인양 붙들고 아끼던 고정된 생각, 고정된 관념이 죽어야 비로소 삶의 판도가 바뀌게 되고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그 어떤 장애물도 넘어설 수 있다. 437

 

 소위 '고난'이란 하나의 마디를 넘기 위해 내가 치러야 할 우주적 대가인 셈..... 460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무척이나 일상적이지만 신비로운 것이다. 놀랍게도 모든 독서가들은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면서 자신들의 지식, 경험에 얽힌 기억과 글로 쓰여진 문장, 절과 단락 사이의 관계를 구축해 나감으로써 의미를 만들어낸다. 576

 

 철학자들의 말처럼 인생이 연극에 불과하다는 전제를 받아들일수록 나 자신을 연극에 끌려다니는 무력한 존재로 볼 것인지 아니면 내 삶의 시나리오를 써나가는 작가인 동시에 배우로 볼지에 따라 우리의 삶 자체가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 고통의 수준이 한층 더 심각해질 것이고 후자의 경우 기쁨과 자유의 양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도 있다. 5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