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애환(讀書哀歡)

치누아 아체베 <신의 화살>

HoonzK 2017. 2. 15. 12:35

치누아 아체베 Chinua Achebe의 아프리카 3부작을 모두 읽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신의 화살>

 

 나이지리아 인들의 이름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프리카 문학을 이해하는 선결 과제였다. 뭐가 그리 헤깔리는지.

 

에제울루, 우고예, 오두체, 오비카, 오쿠아타, 아데제, 오지우고, 아쿠에케, 우나추쿠, 오비아겔리, 오푸에두, 오케케.


 이 비슷비슷한 이름을 구분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차라리 러시아 인물 이름 파악하는 게 쉽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 콘스탄친 드리트리치 레빈. 결국 책을 달력으로 포장한 뒤 볼펜을 들고 읽었다. 이름이 나오면 책 포장지에 적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설명도 달았다. 그랬더니 그나마 겨우 파악이 되었다. 70여쪽을 읽어두었다가 몇 일이 지나 책을 다시 잡으니 줄거리가 헤깔렸다. 결국 첫장부터 다시 읽었다.

 

울루신(神)의 대사제 에제울루는 기독교와 토착 종교의 갈등을 목도한다. 영국의 힘을 그저 간과할 수 없어 아들 오두체에게 백인의 비밀을 습득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오두체는 열렬한 기독교도가 되어 버린다. 남부 나이지리아 이보 부족의 전통 사회질서와 가치가 무너져 가는 상황을 아체베는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사이에서 담담하게 묘사한다.

 

 <신의 화살> Arrow of God 1964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2011. 8. 26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6

 

 

 

 아프리카의 전통 구전 가요와 민담이 마치 아프리카에 닿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아프리카의 세시 풍습이 소설 속에 녹아든다. 나이지리아의 특정 지역인 이보족의 특별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아프리카의 구체적인 사례가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닿아 있음을 느낀다. 기존에 갖고 있던 가치관과 새롭게 밀려 들어오는 사상의 충돌이 어찌 나이지리아 이야기만이겠는가? '자신들의 경험과 운명적 가치 외엔 그 어떤 타당성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 것'이 아체베가 밝히는 글쓰기의 욕망이라면 그는 <신의 화살>에서 성공한 듯이 보인다. 우리는 이국적인 스토리에 분명히 우리 삶을 대입해 보기 마련이니까.

 

 전통의 울루신을 섬기는 우무아로와 일찌감치 백인문화를 수용한 옥페리 부족은 토지 문제가 발단이 되어 심각한 갈등을 빚게 된다. 지역 행정관인 윈터바텀 대위가 개입하여 갈등을 풀어보고자 한다. 그는 우무아로의 사제 에제울루를 대족장으로 임명하여 간접 지배 방식을 택하고자 한다.

 

 유일하게 한 사람 그러니까 우무아로의 사제이자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단 한 사람만이 마을 사람들과 반대되는 증언을 했다네. 75

 

 그러나 에제울루는 현실을 직시하기 보다는 자기 자리에 대한 고집을 버리지 않는다.

 

 자네의 주인에게 전하시오. 에제울루는 자기 움막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이오. 만약에 나를 보고 싶다면 백인이 이리로 와야 한다고 전해주시오. 247

 

 백인에게 말하시오. 에제울루는 울루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의 족장도 되지 않을 거라고 말이요. 306

 

 에제울루는 한 달이나 투옥되어 있어야 했다. 그는 유연한 대응도 못하였고, 소통에도 실패하여 파멸을 피할 수 없었다. 에제울루는 화해의 상징인 햇얌 축제를 승인하지 않는다. 얌은 밭에서 썩어가고 마을 주민들은 기근으로 고통받는다. 주민의 불평은 거세지고 대사제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급기야 자신이 아끼는 아들 오비카도 죽는다. 고집, 오만, 분노 때문에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 리더는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다. 사제의 책무보다는 사제의 권리에 주목한 댓가였다. 식민지 시대의 부족의 수장이자 한 가정의 권위있는 가장으로서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이건, 신들의 싸움이었다. 에제울루는 신의 활시위에 걸려 있는 화살에 불과했다. 336

 

  아체베는 서구 문화의 수용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대사제의 좌절을 통하여 슬픈 식민지의 비극을 그려낸다. 부족의 집단적 열망과 개인의 욕망을 조율하지 못한 위정자의 실패가 <신의 화살>에는 그려져 있다. 아체베는 사실 기독교도라고 한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의 고유 전통인 이교도 축제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등 한쪽에 치우친 인상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종교를 떠나 전통과 신문화의 충돌을 주목하고 어떻게 한 시대가 저물고 새시대로 나아가는지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고 있다. 결국 이러한 태도가 극동의 한 독자로 하여금 그의 아프리카 3부작을 모두 읽게 만든 이유가 되지 않았겠는가? (2012.10)

 

 

 

 

 

 

 


이 두 편의 독후감도 노트에 기록해 놓았는데 노트가 100권 가까이 되니 찾기가 쉽지 않다.

언젠가 찾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