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설날맞이 공원사랑 마라톤대회(2017/01/29)-FULL 131

HoonzK 2017. 1. 30. 11:17

 수면 부족.
추위보다 무서운 수면 부족.
풀코스 7시 출발 주자가 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수면 한 시간이 싹둑 날라간다. 수면만 날아가는 것이 아니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 까짓것 일어나지 못하면 대회에 불참하면 되지 하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오히려 잘 자겠으나 로운리맨님과의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가면(假眠) 상태에서 세 시간을 보내고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블로그에 접속해 보니 아세탈님이 새벽 1시에 댓글을 달고 가셨다. 확인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새벽 4시 쯤 아침을 먹었다. 명절이니 전과 LA갈비를 반찬으로. LA갈비? 마라톤을 목전에 두고...... 이건 아닌데. 요즘 거울에 나 자신을 비추어 보면 턱선이 지난 달에 비하여 둥그스럼해지고, 옆구리살은 살짝 삐져 나온 듯한데 딱 봐도 3시간 30분대 진입이 어려운 비주얼이다.


 공원사랑 마라톤 대회장으로 가면서 버스나 전철에서 한숨 자면 좋겠으나 자지 못했다. 내릴 곳을 지나칠까봐. 좀 지나치면 어떤가? 그런 느긋함이 있어야 하는데. 대회장에 갔다가 너무 피곤해서 바로 돌아오고 말았던 일이 생각나기도 했다.(2016/09/07)

 대회 접수처에 갔더니 로운리맨님도 오시느냐고 묻는다. 다들 눈치챈 거다. 절친인 것을.

 옷을 갈아입을 때 반바지로 달리기 복장을 꾸리니 중무장하는 마스터즈 한 분이 중얼거렸다.

 

 "내가 부끄럽네."

 

 출발 10분 전 수십 명 주자 가운데 오로지 나만 반바지이니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왔다. 용구님, 준한님, 바깥술님, 달물영희님.... 청춘이라며 다들 한마디씩 하셨다. 은기님은 요즘 왜 이렇게 빨라졌느냐고 물었다. 가까스로 SUB-4 진입하던 모습에 익숙해져 있던 분들로서는 나의 도발이 의외인 듯 반응하셨다. 태현님은 요새 빨라진 사람이 몇 명 있는데 그 중 '강ㅎㅅ씨'가 들어간다고 했다. 내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겨울에도 무조건 반바지는 헬스지노님 전유물이라고 하는데 출발 직전 천군만마를 얻었다. 뒤늦게 나타난 로운리맨님도 반바지 차림이었다.

 

 

    출발 1분 전 로운리맨님이 찍어주신 사진

 

   아직 밤이다.

 

 

 이틀 전 답사하며 사진까지 찍은 이 코스의 최고 기록은 지난 12월 세운 3시간 33분 24초. 그 기록에서 얼마나 밀릴까 회의하며 출발했다. 깜깜한 밤이었다. 이것은 야간마라톤이었다. 겨울 오전 7시가 이렇게 어두웠던가? 로운리맨님은 역시 앞에서 달리셨다. 3시간 29분대 페이스(10킬로미터 49분 44초)로 가시는 것같았다. 이틀만에 다시 풀코스를 달리시는데 대단했다.


  어둠 속에서 2킬로미터 지점을 찾아내어 확인했다. 얼마나 늦어졌는지. 체중 증가에 수면 부족이 겹쳤으니.... 그런데 10분 30초. 공원사랑 풀코스 2킬로미터 지점 최고 기록과 일치했다. 오늘 출발은 괜찮은데. 아! 오늘은 고단하니 후반에는 페이스가 떨어질 것이다.


 고가 아래 주로는 LED 등으로 밝혀져 있었다. 바깥쪽은 어두워 보이지 않으니 불켜진 동굴로 들어가는 느낌이었고 자꾸 눈이 감기니 꿈을 꾸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에 젖어 달리고 있었다. 100미터 이내의 거리에서 형광색이 어른거리는데 그 형체는 꼿꼿하게 서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바로 형광색 티셔츠를 착용한 로운리맨님이었다. 오늘 내 기준이 되고 계셨다. 지금 질주할까? 함께 달릴까? 몸이 무겁다. 확실히 체중이 느껴진다. 꾸준히 체중 감량에 신경을 써야겠다. 오늘 이 순간부터 체중 감량에 들어가는 거다. 풀코스를 달리고 나면 살이 빠질테니.....


 뉴욕시티 마라톤 Inspiration 영상과 노래가 찾아오지 않는다. 그 영상을 떠올리고 노래를 기억하면 힘이 났는데 오늘은 지난번처럼 오지 않는다. 지난번에는 오지 말라고 해도 사정없이 달려들어 스피드를 올려 놓더니..... 아프리카 육상 선수들의 힘찬 동작도 아련하게 멀기만 하다. 왜 이렇게 되었담? 그래도 다행히 2킬로미터부터 5킬로미터까지는 킬로미터당 5분 이내의 페이스를 보이고 있었다. 6킬로미터를 가기 전 유인 급수대에서 따뜻한 보리차를 얻어 먹었다. 목재 데크를 건너 안양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 로운리맨님이 응원해 주셨다. 나는 조금씩 처졌다. 5킬로미터 이후 5분 이상의 페이스로 올라가고 있었다. 로운리맨님과의 거리가 100미터에서 200미터 차이로 벌어졌다. 한 분이 나를 제치고 나갔다. 10킬로미터는 50분대 후반이 나올 줄 알았는데 51분대가 나왔다. 로운리맨님과 마주한 뒤 반환하고 초코파이와 콜라로 영양 보충을 하였다. 어느새 어둠이 걷혔다. 햇빛은 들지 않았다. 비나 눈이 내린다는 예보도 있었다. 가끔 추위를 느끼긴 했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건너편에서 바깥술님과 달물영희님이 오고 계셨다. 백 미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금방 오실 것같았다. 특전사님은 비니에 후드 쓰고 넥워머까지 두르고 달리고 계셨다. 초반에 나보다 늦는 경우는 없었던 분인데. 오늘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벌써 사흘째 풀코스를 달리고 계시고 내일부터 사흘 연속 달려 6연풀 완주를 목표로 하시니 얼마나 힘들까? 그저께는 3:29, 어제는 3:39. 게다가 어제는 12시 출발했으니 상대적으로 휴식 시간이 짧았다. 결국 4시간 29분 완주로 타협하셨다.

 

  나 홀로 페이스를 조절하며 달리고 가끔 100미터 이상 떨어진 로운리맨님을 보고 있으니 외롭기 짝이 없었다. 건너편에서 오는 달림이들을 응원하면서 힘을 얻었다. 늦게 출발하신 한구님을 뵈었는데 만감이 교차하였다. 한동안 3시간 59분 페이스로 동반주하다가 이제는 내가 너무 앞으로 나와 버렸으니 미안하기도 했다. 반갑게 인사드리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하였다. 주로에서 담배 냄새 때문에 세 번이나 페이스를 잃었다. 이 이른 시각에 굳이 도림천까지 와서 담배를 피워야 한단 말인가?

 

 눈을 감고, 하품하고, 고개를 흔들면서 졸음을 이겨내며 달린 거리를 늘렸다. 과연 풀코스 완주가 가능할까? 이대로 달려가 하프만 달릴게요라고 할까? 피곤하니 소변이 마려웠다. 17킬로미터 지점 근처에서 근심을 풀었다. 너무 빨리 화장실에 다녀왔으니 후반에 또 가야겠구나 싶었다. 잠결에 거리를 줄이긴 했으나 여전히 100미터 이상 앞서 있는 로운리맨님. 19킬로미터 직전 급수대에서 물을 따라 마시고 계셨다. 이틀 전의 경험이 도움이 되는구나. 미리 탈수를 예방하고 계시니. 나도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신정교 앞에서 안양천을 마주 보고 다리를 건너 출발점을 향하여 달렸다. 출발점에 도착하기 직전 로운리맨님의 행동이 이상했다. 자신이 벗어놓은 폴라폴리스 자켓쪽으로 달려갔다. 아직도 21.0975킬로미터를 더 달려야 하는데 왜? 하프만 달리려고 옷을 집어드는가? 아니었다. 다시 출발하셨다. 그러셔야지. 로운리맨님은 에너지젤을 주셨다. 자켓 쪽으로 달려간 이유가 미리 챙겨놓은 에너지젤을 주기 위함이었다. 건네주는 도중 에너지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달리는 걸 멈추고 집으려고 하셨다.

 

 "그냥 가세요. 제가 주울게요."


 에너지젤을 왼손에 말아쥐고 출발 아치로 돌아가 1시간 47분대임을 확인했다. 공원사랑마라톤 코스 최고 기록을 세울 때보다 1분이 빨랐다. 그렇다고 하여 기록 경신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과체중과 수면 부족에 피곤까지 쌓는 바람에 첫 하프만큼의 속도로 두번째 하프도 달려 낸다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초반과 후반을 똑같은 속도로 달린다고 해봐야 3시간 34분대가 된다. 코스 기록 경신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이를 어쩌나? 어떻게든 후반에 빨리 뛰어야 하는데. 잠깐 낙천적이 되어 본다. 코스 기록 경신을 못하면 또 어떤가? 3시간 39분대도 잘 한 거지. 배를 한 조각 베어먹고 다시 출발한다.

 

 사고가 나를 기다린다. 23킬로미터 직전 노천 구간이 나왔다. 사고가 있었다. 왼쪽은 보행로, 오른쪽은 자전거도로였다. 빙판 지대를 피해 효율적으로 달리려면 일단 보행로로 달리다가 자전거도로쪽으로 넘어가면 좋을 것같았다. 보행로에서 자전거도로쪽으로 넘어가다 미끄러지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얼음이 길게 덮여 있어서 어떻게 해 볼 도리도 없이 한바퀴를 굴렀다. 오른쪽 손바닥과 손등, 오른쪽 무릎, 오른쪽 어깨가 시끈거렸다. 그 와중에 로운리맨님이 주신 에너지젤을 찾고 있었다. 넘어지면서도 절대 놓치지 않고 왼손에 단단히 쥐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면서 보니 오른쪽 무릎에 피가 보였다. 제대로 살피면 전의를 상실할까봐 일부러 자세히 보지 않았다. 500번 가까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면서 한번도 넘어진 일이 없었는데. 달릴 수 있는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달릴 수 있지. 끊임없이 하품하고 눈도 감고 하면서 달렸는데 이 사고로 정신이 번쩍 뜨였다. 단단히 열도 받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며 회의적인 생각은 바뀌지 않았는데 사고를 당하고 나서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며 도전적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와 다리를 절면서까지 끝까지 완주해낸 기요세 하이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이제 라스트 스퍼트하는 기요세 하이지가 되련다. 밤이 어느새 낮이 되어 있었던 것처럼 회의적인 뇌까림은 도전적인 몸동작과 함께 사라졌다.


 4분 50초, 4분 45초, 4분 40초. 페이스가 올라가고 있었다.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로운리맨님 바로 뒤에까지 따라붙었다. 아식스 타사재팬 마라톤화의 발디디는 소리를 로운리맨님도 들었을 것이다. 바로 뒤에서 에너지젤을 먹었다. 유인 급수대에서는 따뜻한 보리차 대신 차가운 콜라를 마셨다. 26킬로미터 지점. 드디어 로운리맨님과의 동반주. 동반주는 길지 않았다. 먼저 가라는 말을 듣고 내가 앞으로 나와 버렸으니...... 성큼성큼. 음산한 날씨 속에서 과감하게 달렸다. 4킬로미터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Wan-sik님과 만나 일찍 출발했느냐고 물어보았다. 지나가시면서 가볍게 답해 주시면 되는데 일부러 발걸음을 멈추고 뭐라고 묻는지 정확하게 확인까지 하시니 송구스러웠다.  30.1킬로미터 지점에서 시계를 보니 2시간 32분대였다. 12.1킬로미터 남았는데 2시간 32분대라! 12.1킬로미터를 57분대에 달릴 수 있을까? 뭐냐? 이 계산을 왜 하는데? 3시간 29분대 골인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3시간 33분 24초 기록을 경신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고 건방지게도 3시간 29분대로 달려보겠다고 하니. (건달: 건방진 달림이)

 

 2차 반환.


급수대에서 콜라만 마시고 건너편에서 바로 따라오는 영희님에게 응원을 보내었다. 바로 뒤에 계신 로운리맨님에게는 '무리하지 마시고요. 잘 조절하세요.'라고 말했다. 건너편에서 오시는 분들은 오늘따라 많았다. 스피드는 올리고 있었지만 인사는 빠뜨리지 않았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페이스를 잃어버린 바깥술님은 '요새 도대체 뭘 먹길래 이렇게 빨라요?'라고 물으셨다. 태현님, 용석님, 윤동님, 용구님, 한구님, 준한님, 경두님, 의계님, 맹순여사님..... 모른 분들에게 일일이 인사하였다.

 

 10킬로미터가 남았다. 2시간 42분 30초를 넘어가고 있었다. 남은 10킬로미터를 47분 20초대에 달려야 3시간 29분대가 가능했다. 지난 해 딱 한번 출전한 10킬로미터 대회. 거기서 나는 47분 21초로 달렸다. 그런데 이제 그와 같은 스피드로 마지막 10킬로미터를 달려야 했다. 그것도 32.2킬로미터를 달려 피로를 잔뜩 쌓아놓고 47분 20초대로. 꼼꼼하게 따지면 전의가 상실될 수밖에 없었다. 포기할 순 없지. 하는 데까지는 해 보자. 소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에서 육상부 감독이 한 말이 있다.
 
 잘 달리기 위한 비결을 알려주지.
좌우의 다리를 번갈아가며 앞으로 내밀거라!

 

 그대로 했다. 양쪽 다리를 번갈아가며 앞으로 내밀었다. 시계 보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래도 도림천 건너편에서 보내오는 로운리맨님의 응원에는 꼭 답했다.

 

 어느새 5킬로미터가 남았다. 내게는 23분의 여유가 있었다. 3시간 29분대 주자는 5킬로미터를 24분 52초에 달리게 된다. 나는 초반에 시간을 잃은 결과 2분의 갭을 매꾸어야 했다. 치달렸다. 走魂! 走魂! 走魂! 3킬로미터를 남기고 14분의 여유가 생겼다. 노천 구간에 나가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미끄러지지는 말아야지. 정신 바짝 차리고. 넘어진 것을 생각하니 무릎과 어깨가 아프네. 소변을 또 봐야 할 것같은데 그냥 참자. 마지막 급수대. 그냥 넘기자. 눈을 감상하면서 달렸다. 미셸 루이스의 'Run, Run, Run'의 영상과 노래가 들려왔다. 드디어 노래가 들린다. 아! 2킬로미터 남았을 때 9분 20초의 여유가 생겼다. 안양천을 바라보며 우회전했다. 골인 지점을 얼마 남기지 않고 도림천 건너편에서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로운리맨님이 나를 부르며 파이팅을 외쳐 주셨다. 오른팔을 크게 흔들어 답했다. 어깨가 아프네. 그래도 질주. '풀코스 골인합니다'라고 기록 계시원에게 외치며 골인했다.

 

3:29:42

 

마지막 10킬로미터를 47분 10초에 달렸고, 두번째 하프는 1시간 42분대로 달렸다. 무릎 아래쪽으로 길게 핏자국이 흉물스럽게 말라 붙어 있었다. 달리는 내내 응원해주신 로운리맨님을 기다렸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올해 1월 달린 3번의 풀코스, 모두 3시간 20분대 골인했구나. 

 

 

 

완주 후 로운리맨님이 찍어준 사진. 오른쪽 무릎 쪽으로 피를 흘린 흔적이 남아 있다.

 

기록증을 들고.

기록 경신보다는 장거리주 운동의 개념, 풀코스 완주 횟수를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달리는 공원사랑마라톤에서 코스 신기록을 작성하다니.....

 

한바퀴 구른 흔적이 웃도리에 남아 있었다.

 

오른쪽 어깨쪽으로 구르며 충격을 줄였던 것이다.

 

접수하시는 분이 이 할인권은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했다.

2017년 12월 31일까지로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드렸다. 지난 11월 스포츠서울마라톤대회에서 지급된 할인권임을......

 

 

 

지난 12월 공원사랑마라톤 코스 신기록을 세울 때 갔던 그 식당으로 갔다. 제육볶음을 로운리맨님과 함께......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떡국을 먹고, 또 한번의 영양 보충. 잘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