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14회 한강 동계 풀코스마라톤대회(2017/02/12)-FULL 132

HoonzK 2017. 2. 13. 22:35

 풀코스에 대비한 훈련을 대회 이틀 전 끝내었다. 그리고 저녁에 과식을 했다.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그 후유증을 다스린답시고 대회 바로 전날 오후에, 오전도 아닌 오후에 1시간 남짓 산길을 달렸다. 과식과 운동. 두 번의 악수(惡手)였다.
 
 대회 당일 5시간 정도 잤다. 더 자고 싶었지만 다른 대회 때보다는 많이 잔 셈이라 수면이 부족해서 고생할 것같지는 않았다. 최저 기온은 영하 7도, 기온이 올라간다고는 하지만 츄리닝 바지를 입고 달리기로 했다. 물품을 보관하기 직전 바람이 잠잠해서 반바지를 입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초반에는 쌀쌀한 느낌이겠지만 후반을 위해서 아랫도리는 단출한 게 낫겠다 싶었다. 두 장의 티셔츠를 입고, 버프를 두르고, 바이저 버프를 쓰고, 장갑을 끼었으니 윗쪽으로는 중무장이었다.

 


 물품 보관을 준비하면서 希洙형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로운리맨님이 옆에 있었다. 로운리맨님은 아세탈님을 찾고 있었다. 소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를 드려야 하니 아직 짐을 맡길 수가 없다고 했다. 아세탈님은 하프 출전이라 미리 만나지 않으면 선물을 드릴 타이밍을 잡을 수 없으니 걱정이라고 하였다. 하프 출발이 풀코스보다 20분 늦으니 아직 오시지 않았을 것같았다. 물품을 보관하고 돌아나오다 특전사님을 뵙고 사진을 찍었다. 아세탈님이 나타났다. 로운리맨님 앞으로 안내하였다. 책을 건네는 로운리맨님, 뉴트리션 정제를 건네는 아세탈님. 거기에 내 것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로운리맨님은 전날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셨으니 천천히 완주할 생각이며, 그것도 힘들면 하프만 달리고 말 수도 있다고 하였다. 경황이 없어서 시계도 차고 나오지 못했다고 하였다.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 따라 달리면 자기 페이스를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좋은 생각이네요. 따라 뛰다가 포기하면 되겠네요. 아니, 말을 그렇게 쉽게 하시다니.

 

 

특전사님과 함께......


 다음 주 일본 마라톤에 참가하신다는 효준님 만나 앞으로의 출전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장실에 다녀오니 풀코스 주자 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9시 1분 전이었다. 대기중인 32킬로미터, 하프, 10킬로미터 주자들 사이로 빠져 출발선을 지났다. 늑장 부리며 설렁설렁 뛰면서 希洙형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希洙형님은 집에서 대회장까지 9킬로미터 정도 달려서 왔고, 이번에는 달려서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패딩을 입고 계시니 배번만 아니라면 대회 참가자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었다. 잠시 후 옆에 나타난 로운리맨님과 대화하면서 달렸다. 주로 곳곳에는 카메라맨과 카메라들이 넘쳤는데 어차피 우리를 찍는 것은 아니었다. EBS 대국민 건강프로젝트 아! 기적의 달리기 프로그램 출연자를 위한 것이었다. 스피드가 지지부진하여 4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보다 뒤에 있었다. 1킬로미터 지점을 5분 30초에 지났다. 이제는 스피드를 올려야 할 때였다. 불에 데인 것처럼 달아났다. 모철님이 큰 소리로 응원해 주었다. 오른팔만 들어 감사를 표했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와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를 삽시간에 제쳤다. 2킬로미터 지점에서 시계를 보니 10분이 흘러 있었다. 반바지에 웃도리마저 맨살을 드러낸 민소매를 착용한 헬스지노님도 제쳤다. 3킬로미터 지점을 넘기 전에 3시간 30분 페메와 동반주를 시작했다. 4킬로미터 지점은 19분만에 지났다. 5킬로미터 급수대를 먼저 이용하기 위하여 치고 나가다 보니 3시간 30분 페메보다 앞에 있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너무 빨리 몸이 풀린 것 아닌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3시간 30분 페메를 제친 일이 있었나? 이 대회 나 자신 최고의 순간은 2킬로미터부터 8킬로미터까지로 끝났다. 8킬로미터 지점부터 3시간 30분 페메 그룹에게 따라잡혔고, 그 이후부터는 악착같이 3시간 30분 페메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자신을 회유하고 압박하는 레이스가 되어 버렸다. 이번에도 3시간 20분대에 진입할 수 있다고 믿어 준 로운리맨님과 아세탈님에게 응원이 아니었다면 3시간 20분대로 완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반바지를 선택한 것은 다행이었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으니 영하의 날씨라도 견딜만 했다. 10.5킬로미터 지점에서 1차 반환하고 난 후에는 해를 마주 보고 달렸다. 해를 등진 건너편 주자들은 나를 금방 알아보고 인사해 오는데 나는 햇빛 때문에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지인들을 찾아 인사하는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데 그쪽에서 먼저 알아보는 경우가 많았다. 로운리맨님은 바로 내 뒤에 있었다. 잠깐 스퍼트하면 따라올 수 있는 거리였다. 아주 천천히 뛰실 줄 알았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달리기 능력은 감출 수가 없구나. 낭중지추(囊中之錐). 태현님, 한구님, 은기님, 맹순여사님..... 32킬로미터 선두 주자, 하프 선두 주자들이 내 앞으로 쭉쭉 치고 나갔다. 32킬로미터 주자 가운데에서는 상기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하프 주자 가운데에서는 한 분만 찾으면 되었다. 아세탈님, 아세탈님. 어디 계시나?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외롭지만 여유롭게 달리고 계시는 분이 눈에 띄었다. 만세 세레모니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주로에서 뵐 기회는 없겠구나.


 3시간 30분 페메는 50미터 정도 차이로 잡힐 듯 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았다. 15킬로미터 지점에서 안양천 방향으로 꺽었을 때는 100미터 이상 벌어졌다. 누구도 내 옆에 없으니 혼자서 생중계하며 달렸다. 네, 강건달 선수. 오늘 3시간 20분대 진입할 수 있을까요?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데요. 이틀 전 과식하고, 바로 어제 오후 1시간 넘게 운동을 했다고 하는데요.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지요. 풀코스 완주는 인간 한계의 도전입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달려도 쉽지 않은 마당에...... 중얼중얼..... 안양천에는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가제가 쯔요꾸 훗테이루. 風が强く吹いている. 페메와의 저 정도 차이는 괜찮겠네요. 어차피 강건달은 조금 늦게 출발했으니까요. 급수대는 빠뜨리지 않네요. 수분이 많이 필요하다는 뜻인데 몸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뜻입니다. 200미터까지 거리가 벌어지네요. 앗! 강건달과 하이파이브하는 사람은 누구지요? 광화문마라톤클럽의 안수길님이네요. 안수길님은 뛰지 않고 응원만 하고 있습니다. 강건달 선수, 빨라집니다. 안수길님으로부터 기운이라도 전해 받았나요? 100미터 이내로 거리가 좁혀지네요. 중계방송. 별 짓을 다하고 있다. 21킬로미터 지점에서 건너편 고척스카이돔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광명대교를 지날 때 지난 해에는 앞서 달려 건너편에서 오던 로운리맨님과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이 났다. 아, 그 지옥의 레이스. 그 때 나는 3시간 57분대로 간신히 완주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부상에 시달렸다. 그런데 오늘 3시간 20분대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해보다 30분이나 빠른 페이스로 나아가고 있다. 네 차례나 그렇게 달리고도 아직 믿어지지 않는 스피드였다. 하프 지점 표시가 없으니 하프 통과 기록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대략 1시간 44분대로 달린 것같았다. 철산교 아래를 지나 25킬로미터를 넘어서야 반환하였다. 3시간 30분 페메 두 분의 스피드가 갈렸다. 필희님은 앞으로 나아갔고, 순동님은 뒤에서 달렸다. 헬스지노님이 세상에, 손을 들어 아는 체 했다. 습관대로 눈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로운리맨님은 하프만 달리셨을까? 그런데 곧 로운리맨님이 보였다. 자신의 49번째 풀코스를 오늘 달성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이제 어쩔 수 없어요. 끝까지 달리셔야 해요. 여기까지 온 이상 17킬로미터를 더 달릴 수밖에 없었다. 힘들었는데 응원군을 얻었다. 그리고 특전사님. 아니, 어떻게 형님이 제 뒤에 계세요? 주로에서 뵙지 못했는데 뒤에 계셨던 것이었다. 안양천변에는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한강변이 오히려 따뜻했다. 한강을 만나는 36킬로미터 지점까지는 꼼짝없이 바람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도 여전히 100미터 앞에서 달리는 3시간 30분 페메와의 동반주를 꿈꾸었다. 30.2킬로미터 지점은 2주 전보다 몇 분 빨랐다. 10킬로미터 남았을 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지 궁금했다. 여러 명의 주자를 제쳤다. 3시간 30분대 페메 앞뒤에서 초반에는 힘찬 레이스를 펼치던 주자들이 지쳐서 내 뒤로 오고 있었다. 32.2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하면서 계산했다. 남은 10킬로미터를 48분 40초에 달릴 수 있는가? 2주 전 마지막 10킬로미터를 47분 10초에 달렸으니 못할 것은 없을 거야. 48분 40초에 달릴 수 있다면 내 기록은 3시간 26분 30초가 된다. 최고 기록을 경신할 수 있다는 뜻. 강건달 선수. 지난 풀코스 후반의 질주를 보여준다면 최고 기록을 다시 깨뜨릴 수 있겠네요. 가능할까요? 머리 속에서는 또 중계방송을 하고 있다. 달리면서 풀코스 완주기를 모조리 중계 방송 스타일로 기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그런데..... 몸에서 신호가 왔다. 이쯤에서 그만 달리는 게 좋겠다는...... 결국 전날 달린 10킬로미터 만큼 덜 뛰어야 한다고 몸이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 몸을 달래면서 악착같이 뛰는데 무슨 수로 스피드를 올리겠는가? 도무지 5분 이내의 페이스가 나오지 않았다. 기껏해야 5분 페이스였다. 마라톤은 정직한 운동이었다. 준비하는 만큼 결과가 나온다. 소변을 참았다. 소변을 보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심을 풀고 달리는 게 더 낫지 않았겠는가? 누구는 화장실에 다녀오면 페이스를 잃어서 늦어졌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늘 그 반대였다. 급수대에서는 장갑도 벗지 않았다. 물을 마실 때면 늘 장갑을 벗었던 내가 이제는 그 행동도 피했다. 걷어올렸던 소매는 찬 바람 때문에 내려야 했는데 그것도 귀찮아서 내버려 두었다. 악수다 악수. 전날 그냥 푹 쉬고 말았어야지. 몸에 붓기 뺀다고 발버둥치더니.....


 올해 들어 세 차례 연속 3시간 20분대에 진입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버겁게 달리면서도 35킬로미터 지점에서 3시간 30분 페메 한 분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골인할 때까지 누구에게도 추월당하지 않았다. 5분이거나 5분에서 몇 초 넘거나 했다. 5분 이내로는 들어가지 못하다가 마지막 1킬로미터는 4분 50초에 달렸다. 앞에서 달리는 3시간 30분 페메를 끝내 따라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3시간 20분대 진입에는 성공했다.

 

 3:29:00

 

 이 코스에서 세웠던 최고 기록이 3시간 54분대였는데 엄청난 발전이긴 하다. 올해 기록만 본 사람이라면 강건달은 늘 3시간 20분대 진입하는 주자로구나 할 것이다. 대비도 잘못했고, 레이스 운용도 잘못했다. 어차피 3시간 29분대로 달릴 것이라면 초반을 1시간 47분, 후반을 1시간 42분으로 달리든가, 초반을 1시간 48분, 후반을 1시간 41분으로 달리는 게 나았다. 초반과 후반을 똑같이 1시간 44분대 중반으로 달려 3시간 29분에 들어가는 것은 아닌 것같다. 그보다 더 큰 문제점은 식사 관리와 효율적인 운동을 하지 못하고 풀코스에 도전한 것이었다.

 

 로운리맨님에게는 대회 당일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니 풀코스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고 농담을 했지만 사실 그 말은 내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로운리맨님은 음주 후유증을 안고도 완주해 내셨다. 내가 SUB 330 달성했다고 하니 아낌없는 환호를 보내주셨다. 간섭포(간신히 서브4 완주)했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헬스지노님은 기회가 왔을 때 더 박차를 가하여 기록을 당기라고 당부하였다.

 

 

 

 

 

 

 

 

아! 일요일 기적의 달리기 방송 녹화는 자주 보네. 오늘도 연예인을 보지는 못했다.

 

완주 후 로운리맨님이 찍어준 사진

 

 

 

 

완주 후 커피를 마시는 여유를 갖고 있을 때 로운리맨님이 찍어준 사진

 

 

 

 

 

 

 

 

 

힘들다 힘들다 해도 골인하기 직전에 카메라맨을 발견하고 V자를 날리네.

앞에 골인한 3:30 페메의 기록은 3시간 28분 59초였다. 나와는 1초차.

 

 

 

1초만 빨리 뛰었으면 3시간 28분대였을텐데..... 그럼 기록의 느낌이 다르긴 하겠다.

생애 네 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로운리맨님, 찬일님, 석근님과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엄니식당 부추비빔밥과 제육볶음.

좋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맛있는 식사도 하고......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로운리맨님께 감사한다.

 

 

로운리맨님과 횡성사랑 석근님은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소주를 마셨다. 찬일님과 나는 대각선으로 마주 보며 비주류파로 남았다.  

 

제육볶음

 

반찬이 늘 같은 것은 아니구나. 맛있어서 가장 빨리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