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15회 한강시민 마라톤대회(2016/12/18)-FULL 128

HoonzK 2016. 12. 19. 13:26

 2016년 11월 17일 유튜브 영상 하나가 카톡으로 배달된다. Michelle Lewis의 'Run Run Run'이다. 감미로우면서도 힘찬 음률에 가사가 심금을 울렸다. 보스톤마라톤 완주를 위해 훈련하는 모든 주자들에게(to all runners training for Boston)라는 자막이 눈길을 끌었다. 달리는 사람들이 나온다. 신발끈을 동여매고 시계를 맞추고 거침없이 달린다. 눈이 쌓인 차로나 낙엽깔린 보도든, 물 고인 웅덩이나 빙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 격려하며 힘차게 달리고 또 달려나간다. (달리기한다는 일이 이토록 값진 일인가?) 그 영상에 노래가 깔린다. 콜로라도 산맥에서 캘리포니아의 햇빛 풍성한 평야까지 멈추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리리라. 오랫동안 외로웠지, 늘 누군가 찾아다니며. 아직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끊임없이 달려 나가리라. 당신을 만나 사랑했다. 당신이 내가 찾던 바로 그 사람인 걸 알았네.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하면 당신 곁으로 달려 가겠네. 달리고 또 달리겠네.

 

 이 유트브 링크를 걸어주신 분은 파일까지 보내주셨다. 내 반응이 열광적이라 영상 하나를 더 보내주셨다. New York City Marathon Inspiration Video.mp4. 감동에 사로잡혔다. 먼저 보내온 파일의 감동을 넘어섰다. 생애 첫 풀코스를 달린 게 10년이 넘었지. 잠실대교를 건널 때 오른편으로 골인 지점인 올림픽 주경기장이 보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단 말인가? 체감온도 영하 15도의 날씨에.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잠실대교 위에 종이컵이 낙엽처럼 날아다녔다. 36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면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전율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의 풀코스 여정이 생생한 기억으로 다가왔다. 처음 풀코스 배번을 받았을 때의 두려움과 설레임이 다시 찾아왔다. 음악과 영상의 힘.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달림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그저 습관적으로 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적당히 타협하면서 그저 횟수만 늘리며 도전한다고 해봐야 4시간 이내로만 달려내면 매우 만족하고. 기록 도전해 보겠다는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고, 3시간 30분대로 달리는 춘천마라톤만 신경쓰면서. 춘천마라톤도 더 빨라지기 보다는 3시간 30분대에만 들어가면 충분히 만족하고 말았지. 2010년과 2016년. 뉴욕과 서울. 영상 하나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사람을 이렇게 뒤흔들 수 있단 말인가? 미루고 있던 풀코스 100회 완주기 편집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그 다음 풀코스에 출전하여 달릴 때 태도가 달라졌다. 태도가 바뀌었다고 엄청나게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체중 감량과 맞물린 시점이 절묘했다. 몸이 의지를 따라주니 달리기 투혼, 주혼(走魂)이 살아났다.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까지 받았다. 이 영상을 거의 매일같이 보게 되었다. 대회장에 오는 동안 꼭 보는 습관까지 생겼다. 이 영상을 처음 접한 지 사흘 째 되는 날 손기정 평화마라톤대회가 있었다. 3시간 32분 08초로 개인 기록을 경신하였다. 그리고 이주일 후 다시 기록을 경신하였다. 12월 11일 홀로 연습주나 다름없는 대회에서도 3시간 33분 24초로 완주하였다. 예전같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기록이다. 12월 3일 국민건강마라톤은 3시간 54분이 최고 기록이었으며, 12월 11일 공원사랑마라톤은 3시간 43분이 최고 기록이었다. 그리고 12월 18일. 2016년의 마지막 풀코스 대회가 다가왔다. 한강시민마라톤. 지난 해 3시간 42분이 최고 기록이었다.

 

 여러 가지로 여건이 좋지 않았다. 대회 전날 아침 일찍부터 쉬지 못했다.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추위에 떨고 서 있거나 왔다갔다 해야 했다. 허리 통증이 재발하였다. 무거운 가방을 메면 통증이 심해져 배낭을 손으로 들고 다니기도 했다. 점심은 삼각김밥으로 때웠다. 저녁 때 바로 와서 쉴 수도 없었다. 저녁 식사는 밤 11시가 되기 직전 마쳤다. 추위에 떨었으니 따끈한 국물이 있는 식사로 선택한 것이 나주곰탕이었다. 배가 꺼져야 하니 기다렸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잘 수 있었다. 새벽 5시 4분 기상. 조금이라도 더 누워 있고 싶었지만 5시 20분에는 일어나야 했다. 풀코스 출발시간이 9시에서 8시로 당겨져 수면 시간 한 시간이 달아났다. 아침 식사는 여의나루역 세븐일레븐에서 구입한 참치 마요네즈 삼각김밥이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찍은 사진. 야간마라톤처럼 보인다.

 

 

 

 

이 나주곰탕의 사진을 찍은 시간이 전날 밤 10시 35분경이다.

 

   은기님의 풀코스 800회 완주 기념패부터, 여러분들의 공로패, 기념패가 있다.

 

 

      로운리맨님이 찍어서 보내준 사진

 

 

 

 여의도 이벤트광장으로 내려서기 전에 마라톤 판매상으로부터 반바지와 근육테이프를 샀다. 6시 45분이 되지 않았다. 계속 밤이 이어질 것처럼 칠흑같이 어두웠다. 기념품과 배번은 현장 배부라 어둠 속에서 줄을 서야 했다. 내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직원이 내 것을 갖다 주었다. 사회 보는 해병대 정의님을 뵐 수 있었는데 정의님은 악수만으로는 부족하다며 한참동안 나를 껴안아 주었다. 풀코스 457회를 뛰셨는데 야간 근무가 많아서 최근에는 마라톤을 뛰지 못했다고 하였다. 13년 내리 달린 중앙서울마라톤마저 올해는 넘겨야 했다고 했다. 커피 한잔 마시고 왕복 1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화장실에 갔다 왔다. 대회장으로 돌아오기 전에 스트레칭을 마치고 달리기 복장을 갖추었다.

 

 헬스지노님이 오늘 같이 뛰자고 했다. 두 세번 정도 힘들게 달리고 나면 실력이 확 는다며 오늘 여성 주자를 이끌기로 했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완곡하게 거절했다. 지난 주 로운리맨님처럼 될 수는 없지. 내게 동영상을 보내어 주혼(走魂)을 깨우신 분은 어디 계신가? 로운리맨님, 오늘은 분홍색 모자를 쓰고 계시니 찾기 쉬었다. 로운리맨님은 횡성사랑님을 소개해주셨다. 로운리맨님은 파워젤 두 개를 챙겼는데 한 개면 충분할 것같다며 하나를 주셨다. 바로 먹었다. 류성룡님과 함찬일님을 뵈었다. 그리고 지난 주 제주도에서 4일 연속 풀코스 대회에 참가하셨던 바깥술님과 재회하였다. 3일 째 되는 날 1등, 4일째 되는 날은 3등을 차지하여 4일간의 기록 결산 4등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 그 이야기를 꺼내며 축하해드렸다. 그리고 아쉬웠다고 했다. 지난 주에 공원사랑에서 함께 보조를 맞추어 줄 분이 없어서..... 특전사님, 용구님, 은기님, 준한님을 뵈었다.

 

 내 등에는 근육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초반에는 감당하기 힘들 허리 통증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 전날의 과로로 쌓아 놓은 피로감과 늦은 저녁 식사(곰탕)로 남아 있는포만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3주 연속 풀코스도 쉽지 않은 일이다. 12월에 풀코스를 세 번이나 달리는 것은 처음이다. 3시간 28분대와 3시간 33분대로 달렸으니 피로 누적은 없을까? 아주 망치는 것 아닐까? 간신히 SUB-4를 하기라도 할까? 춘마, 손기정, 국민건강, 공원사랑.... 최근 잘 달렸던 마라톤은 하루 전날 철저히 휴식을 취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랜만에 나는 위기에 놓인 것이었다. 그런데......

 

 반바지에 장갑 끼고 티셔츠 한 장만 걸쳐도 되는 날씨. 출발했다. 내 바로 앞에 로운리맨님이 있다니 무슨 일인가? 어느 때보다 천천히 달리시는 것같았다. 바짝 쫓아가 대화 시도. 5분 10초 페이스라고 했다. 로운리맨님은 자기 페이스대로, 늘 해오던 대로 달리고 있었고, 내가 느리다고 착각했을 뿐이었다. 족저근막염 때문에 춘마와 중마를 아예 못 뛰었다는 은수님과도 만났다. 꼬꼬마라톤 한 주자의 유니폼이 너무 깨끗하니 동료가 '너 교복 왜 이렇게 새 거냐?'라고 물었다. 나도 빠지지 않고 한 마디했다. 유니폼을 교복이라고 부르는군요. 바깥술님과 달리는 물개들 영희님(달물영희님) 등장.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가고 계셨다. 나더러 먼저 가라고 했다. 2킬로미터 지점에서 로운리맨님과 다시 만나 대화 시도. 제가 너무 빠른 것같아요. 조금 늦출게요. 로운리맨님이 주신 파워젤의 힘인가? 초반에 좋다고 무리하면 안된다. 오늘 달리는 코스는 지난 5월 22일 가족의 달 마라톤과 9월 11일 국제관광마라톤의 코스가 정확히 일치한다. 그 두 대회는 내게 지옥을 선사했다. 잘 나간다고 까불다가 후반에 너무 힘들어 달리기 의욕을 상실했고, 거의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악착같이 달려낸 후 앓아 눕고..... 좋은 기억이 없는 코스였다.


 미세 먼지가 가득 들어찼지만 영상의 날씨라 달리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요즘 주중에는 그렇게 춥다가 주말만 되면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다. 우리같이 주말 마라톤 대회 참가자는 그런 혜택이 고마울 따름이다.  한강의 흔들림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바람도 없었다. 5킬로미터 25분 30초로 통과. 5분 6초 페이스. 몸이 좋지 않은 것 맞는가? 전혀 졸리지도 않네. 4시간밖에 안 잤는데 피곤한 만큼 깊이 잔 것인가? 지하철로 이동 중에 잠을 보충하지 않고 로운리맨님과 카톡하고, 뉴욕시티마라톤 동영상을 보고 있었으니 피곤했다면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으리라. 좀 늦추자. 급수대는 빠뜨리지 않고. 펩시콜라도 마시고 초코파이도 먹고. 고구마는 그냥 내 버려두고. 다음 5킬로미터 구간을 26분으로 달렸기 때문에 몇 명 주자가 나를 제치고 나갔다. 그래도 지난 주 10킬로미터 기록보다 30초 빨랐다. 안양천변으로 들어서면 왼편으로는 제방이 나오고 오른편으로는 빛바랜 수풀이 주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어두운 구름이 내려앉아 땅거미가 내릴 무렵의 분위기가 내내 이어졌다. 겨울은 이런 것이었다. 음산한 기운이 빠질 수 없었다.


 안양천에서 도림천으로 들어서면서 12킬로미터 지점을 만나 시간을 체크하니 1시간을 넘었다. 돌아올 때는 남은 12킬로미터를 1시간 이내로 달릴 수 있을려나? 13킬로미터 지점에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내 앞으로 나선 무리가 있었다. 광화문 페이싱팀 필희님이 이끄는 3시간 45분 그룹. 네 명이 뒤따르고 있었다.  거기에 미정님(지난 12월 4일 3시간 26분 기록), 영희님(지난 12월 4일 3시간 32분 기록), 바깥술님(지난 12월 4일과 12일 3시간 32분 기록)이 함께 있었다. 왜 뒤에서 와요? 바깥술님이 물었다. 화장실 갔다 왔지요. 이 때부터 함께 달렸다. 이런 잡담 저런 잡담 해가면서. 도림천 주로, 고가 아래를 달려나가는데 바람이 잔잔하여 마치 실내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헬스지노님은 주자들을 왜 교육시키려고 하는가? 특전사님은 주로에서 만난 사람을 어느 지점에서 만났는지 어떻게 정확히 기억하는가? 로운리맨님과 강건달은 어떻게 알게 된 인연인가? 태현님이 올 한 해 풀코스 100회를 기록한 저력은 무엇인가? 은기님이 풀코스 800회를 달성하기까지 얼마나 열심히 달렸는가? Wan-sik님은 풀코스 1천회를 내년 언제쯤 할 것인가?  바깥술님의 지난 주 제주도 4연풀은 어떠했는가? 화제 거리가 풍성하여 달리기가 지겨운 줄 몰랐다. 미정님이 지난 11월 200회 하셨지요 했다가 300회 달성을 100번이나 줄이면 되느냐는 야단도 맞고. 풀코스 100번 달리려면 얼마나 오래 걸리는데. 내가 100회 하는데 10년 걸렸다고 하니 남의 10년을 싹둑 잘라먹는 실수를 했다며 지적 한 다발. 모든 것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이루어져 참 즐거운 달리기였다. 3시간 45분 페메와 달리면서도 이렇게 여유있게 달릴 수 있다니 이렇게까지 올라온 페이스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16.5킬로미터 지점. 간식과 음료수를 챙겨먹으며 데크를 건넌 후 이제는 건너편에서 오는 분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1등, 2등 주자 지나가고 불과 몇 십 초 후 3등은 함찬일님. 함찬일님에게는 역전할 수 있어요라는 응원을 보내었다. 빠르게 달리시면서도 손을 흔들며 파이팅으로 답해주시니 정말 좋았다. 우승권 주자라도 저런 여유가 있어야 해.


 SUB-3 주자들이 한 데 모여서 달리고. 싱글 주자들이 오고. 3시간 10분대와 20분대 주자들이 오고. 특전사님 지나갈 때는 응원하면서 우리가 응원한 사실을 완주기에 실어주세요 하고 외쳤더니 3:45 페메 무리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미정님이 조금 앞으로 나아갔다. 바깥술님이 내게 권했다. 미정님 속도를 올리는데 따라가요. 계속 저렇게 뛰실까요? 계속 간다니까요! 따라가면 339 여유 있어요. 일단 따라붙었다. 미정님과 보조를 맞추며 달렸다. 조금 있다가 바깥술님과 영희님도 따라붙자 345 페메 필희님이 유쾌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나만 버리고 다 가는 거요? 그런데 그것도 잠시다. 결국 3시간 45분 페메 그룹에 다시 모였다. 분홍색 모자를 쓰고 있어서 알아보기 쉬운 로운리맨님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반환 지점의 급수대를 먼저 이용하기 위하여 잠시 전력질주했다. 덕분에 1시간 48분대 후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3시간 37분대는 무난했다. 속도를 살짝 올렸다. 나는 먼저 갑니다라는 말을 속도로 한 셈이었다.

 

 고가를 받치는 기둥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서 속도를 올려서 달리다 보면 꼿꼿이 선 줄무늬처럼 보였다. 날씨가 흐려 어두침침한 느낌마저 드니 몹시 단조로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단조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건너편에서 오는 지인들 찾기였다. Wan-sik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은기님, 800회 축하드려요. 태현님, 용구님, 준한님, 경두님 파이팅. 인사를 나눌 분도 없으면 뉴욕시티마라톤 동영상에 깔리는 All These Things That I've Done 노래가 들려왔다. 한 여성이 풀코스를 좋은 기록으로 완주하기 위해 훈련을 거듭한 끝에 대회 당일 마침내 꿈을 이루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럼 힘이 났다. I need direction to perfection, no no no no. Help me out. Yeah, you know you got to help me out. Yeah, oh don't you put me on the back burner. You know you got to help me out.

 

 25킬로미터 지점을 지나기 전에 헬스지노님과 여성 주자를 제쳤다. 이 분들은 15킬로미터 지점을 달릴 때만 해도 3백 미터 이상 내 앞에 계셨던 분들인데 여성 주자가 힘들어서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땅바닥 보지 말고 고개 들어 앞을 보란 말이야. 아주 혹독한 교육을 하고 있었다. 인사를 하긴 했는데 헬스지노님은 인사를 받지 않았다. 인사를 나눌 분위기가 아니었다. 로운리맨님. 지난 주 얼마나 힘들었을까. 로운리맨님을 생각하면서 건너편을 보니 로운리맨님은 데크 다리를 건너서 이미 안양천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도림천 건너에서 이름을 부르는데 발음이 쉽지 않았다. 로운리맨님 파이팅. 혀가 도네. ㄹ 발음 때문에. 로운리맨님이 큰소리로 답해주시니 잔잔하던 도림천에 파도가 이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나와는 300미터 정도 차이가 나 있었다. 따라붙을 수 있을까? 소변이 또 마려우니 화장실에는 한번 더 갔다 와야 하는데. 피곤하면 소변을 자주 보는데다 남들 의식을 많이 하니 아무데서나 소변을 볼 수도 없고. 30킬로미터를 넘어서 생각해 보자. 데크 다리를 건널 때 보니 심판원이 내 번호를 기록했다. 입상권 주자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내 페이스는 어느 정도일까? 도림천 구간은 킬로미터마다 거리 표지판이 모두 배치된 것이 아니라서 페이스 산출이 어려웠다. 27킬로미터 지점에서 29킬로미터 지점 사이에 공원사랑마라톤 거리 스티커가 고가 기둥에 붙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9킬로미터 표식에서 10킬로미터 표식까지 얼마나 걸리는가 체크해 보자. 기록 체크한다고 일부러 속도를 올리지는 말자. 4분 45초가 걸렸다. 이제는 12킬로미터 표지판, 즉 30.2킬로미터 지점의 기록을 체크해 보자. 2시간 33분대였다. 손기정 평화마라톤 때보다 좀 빠르다. 하지만 컨디션은 그때보다 나쁘다. 화장실 이용에 1분을 써야 하는 문제가 있고. 화장실에 가지 않고 끝까지 밀고 갈 수도 있겠지만 12킬로미터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달리는 것은 싫고.

 

 로운리맨님과는 150미터 이내 차이. 만나서 함께 달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속도를 올리신다면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고. 10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나를 제친 백색 유니폼 주자는 로운리맨님을 페이스메이커로 삼은 듯이 바짝 따라붙으며 달리고 있었다. 언제라도 치고 나가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안양천에 들어섰을 때 로운리맨님과는 100미터 이내 차이. 물어보고 싶었다. 오늘 지난 해 3시간 34분 기록을 깰 수 있나요? 조금 페이스를 늦추신 것같기도 하고. 내 앞에는 르노삼성자동차 대야점 유니폼을 입은 분이 계셨다. 하프 반환점 급수대 도우미가 내게 42등이라고 말해주었다. 순위는 상관없었다. 곧 10킬로미터가 남았다는 표지판을 통과했다. 2시간 43분이 될락말락. 남은 10킬로미터를 47분에 달리면 3시간 29분대로 골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야 하니 46분에 달려야 한다. 풀코스의 마지막 10킬로미터를 46분으로 달리라고? No. No. 오늘은 더욱 안된다. 로운리맨님과 백색 유니폼 주자는 50미터 차이. 오목교 아래 9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을 만나기 전에 수풀쪽으로 빠졌다. 근심을 풀었다. 그 바람에 로운리맨님과의 거리는 100미터 이상 벌어졌다. 7킬로미터 남기고 스퍼트할까? 그런데 오늘은 11월 20일의 손기정 평화마라톤 때의 후반, 12월 3일 국민건강마라톤 때의 후반과는 다르다. 후반에 미친 듯이 달려나갔던 그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피로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허리가 아프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스퍼트할 타이밍을 35킬로미터 지점이 아닌 6킬로미터 남은 36.2킬로미터 지점에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과연 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앞의 주자분들과 매우 가까워졌다.

 

 백색 유니폼 주자는 어느새 로운리맨님 앞으로 나아갔다. 한강을 만났다. 우회전. 성산대교 방향으로 달리는데 맞바람이 있었다. 스피드를 올리기 쉽지 않겠네. 로운리맨님 바로 옆에 붙었다. 확실히 오늘은 천천히 뛰시네요. 함께 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냥 나가게 되었다. 지난 주 너무 힘들게 달린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고, 몇일 전 밀에서 달리다 종아리 부상까지 생겼다고 하셨다. 단번에 상기님과 르노삼성자동차대야점 주자를 제치고 나갔다. 잠깐이나마 매섭게 속도를 올렸지만 3시간 29분대에 들어가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었다. 5킬로미터 남았을 때 기록을 체크해 보니 21분대로는 내달려야 3시간 29분대 진입이 가능해 보였다. 아! 두 번의 화장실. 그게 족쇄가 되는구나. 거기서 2분만 잃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그 부분도 내가 몸관리를 못한 까닭이니 내 자신이 감수해야 했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와 어떻게든 해 보겠다는 도전 정신이 부딪쳤다. 의심과 확신은 그 경계선을 허물며 뒤섞였다. 너는 안 될거야라는 패배의식과 나는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은 뒤엉켜서 오는 복합적인 감정인 것같았다. I got soul, but I'm not a solider. I got soul, but I'm not a soldier. 4킬로미터를 남기고 특전사님을 제친다. 제치면서도 이건 현실이 아닐거야라는 생각까지 했다. 세상에, 제가 형님을 다 제칩니다. 초반에 나를, 후반에 로운리맨님을 제친 백색 유니폼 주자를 따라갔다. 50미터 이내의 거리를 유지하며. 남은 거리 3킬로미터, 거리 표지판이 조금 늦게 나타난다는 느낌이 드는 것으로 보아 나도 많이 지쳤다. 상체가 앞으로 기우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팔을 앞뒤로 크게 흔들어 줄 수도 없었다. 남은 2킬로미터를 7분대로 달리면 3시간 29분대가 가능했다. 하지만 내 몸무게가 60킬로그램대가 아닌 이상 킬로미터당 3분 30초 페이스로 달릴 수는 없다. 킬로미터당 3분 내외의 스피드는 19살 때에나 가능한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운동장에서 습관처럼 오래 달리기를 시작하면 공놀이하던 중학생들이 '저 형 또 뛴다'라고 말하던 시절에나 가능한 것. 안된다는 생각이 들자 다소 전의를 상실하였다. 그래도 스퍼트했다. I wanna stand up. I wanna let go. I wanna shine on in the hearts of men. 여러 명의 주자가 내 뒤로 왔고, 500미터 정도를 남기고는 백색 유니폼 주자까지 제쳤다. Over and in, last call for sin. 한달 전 세웠던 생애 2위 기록이었던 손기정 평화마라톤의 기록(3:32:08)을 3위로 밀어내며 골인하였다.

 

 3:31:49.25

 

 돌아오는 하프를 1시간 43분대로 달려낸 덕분이다.

 

 ....the battle is won, with all these things I've done. All these things that I've done. If you can hold on.......


 

 기록증을 받은 뒤 로운리맨님을 기다렸다. 사진 작가 앞에서 양팔 벌리는 세레모니를 하는 로운리맨님. 저런 모습, 보기 좋네. 다음에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함께 달리던 여성 주자와는 헤어져서 헬스지노님이 미정님과 함께 들어오셨고, 영희님과 바깥술님이 보조를 맞추며 들어오셨다. 한동안 나와 함께 달렸던 미정님은 여자부 2위, 영희님은 여자부 3위를 차지하였다. 3시간 39분대로 골인한 바깥술님은 나에게 농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리없게 먼저 가고 그래요.


 광화문 페이싱팀의 박연익님은 간식을 챙겨주셨다. SUB-3 문턱에 계신 이 분은 부상 때문에 몇 달을 쉬었고 내년 3월에 복귀하신다고 하였다. 나를 수 차례 SUB-4 페이스로 이끌어주셨던 페이스메이커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이 바로 박연익님이시니. 셔틀버스 타고 갈 때 늘 맨 뒷좌석에서 만나는 안수길님도 뵈었다.

 

 로운리맨님과는 엄니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하였다. 1년 동안 주신 고마움에 감사하며 선물을 드릴 기회도 있었다. 지난 해 같은 대회에서 먼저 아는 체 하셨을 때만 해도 이런 순간이 올 줄은 몰랐다. 

 

 올해 25번째 풀코스. 풀코스를 100회 채우고 난 후 맞이한 해이기에 이렇게까지 많이 달리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내년에도 주혼(走魂)이 나와 함께 할 것인가?

May the force(走魂) be with you!

 

 

대회장을 떠나기 전 로운리맨님이 찍어준 사진......

 

 

 

바깥술님, 특전사님, 영희님과 함께..... 모두 3시간 30분대 주자가 되었네.....

 

 

 

 

 

 

 

 

 

7개월만에 다시 간 엄니식당. 5월 22일 나는 대회를 망치면서 로운리맨님을 너무 기다리게 했었다. 부추비빔밥에 제육볶음.... 최고. 반찬 및 된장국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