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를 축하드립니다.
강훈식님 기록은 04:18:06.26입니다.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강훈식님 기록은 04:13:53:39입니다.
이 문자의 발신번호는 02-2157-0822이었다. 지난 5월 8일 의병마라톤과 6월 5일 새벽강변마라톤의 기록을 보냈던 이 번호는 오늘도 기록을 보내왔다.
제18회 평화통일마라톤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강훈식님 기록은 03:51:00.17입니다.
-2016/10/09(일)-
결코 수월하지 않았던 마라톤 풀코스였다. 올 가을 들어 가장 싸늘해진 가을 날씨 덕을 보았으니 SUB-4를 했겠지만 쉽게 이룬 것같지는 않다. 구름 한점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햇빛이 강했다. 골인할 무렵의 시각이 오후 1시를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날씨가 더 이상 싸늘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덥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달리는 동안 수시로 만나는 오르막은 몸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며 힘을 빼어놓고도 남았다. 게다가 지난 주 3시간 40분대에 진입했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바람에 기준을 높이 잡는 개인적인 실수도 있었다.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를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며 호기를 부린 것이다. 1킬로미터 지점을 넘기도 전에 4시간 페이스메이커와 작별을 고하고 앞으로 치고 나가 펄펄 나는 기세로 달렸다. 초반 10초 빠르면 후반 10분 고생한다는 사실을 잊었던가? 6킬로미터 지점부터 7킬로미터 지점까지는 스피드를 가동하여 4분 50초 페이스로 달리기까지 하였다. (이 때는 내리막 구간이니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러고도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지 못했다. 코스가 쉽지도 않았거니와 지난 일주일 동안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한 이유도 있었다. 25킬로미터 이후 어느 누구에게도 추월당하지 않아서 후반에는 그런대로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유지했지만 힘들었던 마라톤 대회로 기억하게 되었다.
1번 국도, 37번 국도, 1번 국도. 국도를 달리는 동안 1차선으로만 달렸다. 2차선을 질주하는 차량 행렬의 소음이 줄곧 신경을 날카롭게 하였다.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는 운전자 때문에 호흡이 망가지는 일도 잦았다. 이동식 화장실이 드문드문 보였는데 무용지물이었다. 서행하라는 안내문에도 불구하고 차는 무서운 스피드로 내달리고 있으니 목숨을 걸지 않는 한 차도를 가로지를 수 없었다.
드디어 간식이 제공되는 25킬로미터 지점을 만나기 직전 화장실이 보였다. 뒤를 돌아보니 차가 보이지 않았다. 차도를 건너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차량들 때문에 주로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량. 건너가라고 배려해 주는 차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차가 더 이상 지나가지 않기를 마냥 기다렸다. 달리기의 리듬이 깨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 4시간 페메와 내내 함께 달릴 것같던 제비한스님이 언제부터 스퍼트를 했는지 손을 흔들며 나를 제치고 나갔다. 제법 시간을 까 먹은 뒤 주로로 돌아왔다. 25킬로미터 지점에서 바나나와 초코파이를 먹었다. 파워젤 대신이니 잘 먹어두어야 했다.
나는 검정색 아식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최근 들어 잘 달린 것은 곤색 아식스 티셔츠를 입을 때였다. 검정색을 입으면 언제나 SUB-4에 실패했다. 징크스를 깨고 싶어 일부러 검정색을 입었던 것이다. 달리는 동안에는 옷에 대한 징크스를 잊었다.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옷이 아니라 15킬로미터 이후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을 어떻게든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차라리 여수마라톤과 같이 대형 오르막이 있었으면 각오하고 견디어 내었을 것이다. 평화통일마라톤은 오르막처럼 보이지 않는데 오르막이라는 게 문제였다. 내리막은 몇 백 미터요, 오르막은 몇 킬로미터라는 느낌으로 내내 다가왔다. 코스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전혀 파악하지 않고 달리다 보니 아주 애를 먹고 있었다. 코스의 어려움을 미리 알았다면 결과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막연하게 코스가 평탄하리라는 안이한 생각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세상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늘 염두해 두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21킬로미터 지점을 지나고 1백 미터 쯤 더 왔다고 생각하고 시간을 재어 보니 1시간 56분 정도가 흘러 있었다. 이대로만 달릴 수만 있다면 3시간 52분대로 골인할 것이었다. 22킬로미터 지점에서 수시로 걸으면서도 내 앞에 있었던 은수님을 제치고 달린 거리를 늘려 나갔다. 나름대로 뛴다고 뛰는데 추월당하기를 거듭하였다. 무리지어 달리는 클럽 주자들, 번호 맞추어 달리는 커플 주자들에게 추월을 당하였다. 이제 더 이상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는 보이지 않았다. 3시간 49분대 골인이 목표가 되었지만 그마저도 하향 조정해야 했다. 이대로 달리다가 4시간 페메가 따라붙으면 함께 달리겠다는 마음까지 먹었다. 다리가 잘 나가지 않고 피곤이 몰려오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는 늘 오르막이었다. 이 오르막만 넘고 나면 달리기가 수월해질 거야라는 주문을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다. 민통선에 들어서는 주로가 나오면 그 색다름으로 달리기의 지겨움을 견디어낼 것이라는 기대감도 가졌다. 통일대교를 건너기 직전, 즉 검문소를 넘기 직전 30킬로미터 지점이 있었다. 얼마나 처졌을 것인가? 2시간 46분이 넘지 않았다. 화장실 문제로 시간을 제법 까먹은 것같은데도 지난 주와 비슷한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고됨은 지난 주의 두 배였다. 이제 시간은 정오를 넘어갔으니 뙤약볕 때문에 덥기 짝이 없었다. 맞바람이 그 더움을 지워주었지만 전진을 어렵게 하기도 하였다. 개성쪽에서 불어오는 북풍(北風)에 은근히 이어지는 오르막이 버거웠다. 판문점 방향을 알리는 게시판이 나오기가 무섭게 1사단 헌병대가 출입 차량을 일일이 검문하는 관문을 지났다. 차량은 모두 검문을 기다리며 정차하고 있었지만 마라톤 주자들은 배번을 달았다는 이유로 민통선 지역으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32킬로미터 지점. 군내삼거리를 돌아 남북출입사무소를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개성이 18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니 정말 북한이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화통일마라톤만 갖고 있는 특색이 이 구간에서 있었다. 1차선은 주로, 2차선은 차로가 되었는데 1차선과 2차선 사이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었다. 바리케이드와 바리케이드 사이를 비닐 끈으로 막아 놓았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형광색 조끼를 입은 운영 요원들이 늘어서서 주자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일종의 감시자같다고나 할까? 이곳은 민통선 지역이니 절대 주로를 벗어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같았다. 주로와 차로의 구분을 콘으로 했던 초반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32.195킬로미터 지점을 2시간 57분 정도에 지난 것같았다. 이제부터는 킬로미터당 6분이 넘는 페이스로 달려도 SUB-4를 이루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대청호마라톤이나 인천송도마라톤의 후반페이스로 치달리면 2시간 49분대가 무난했지만 5주 연속 달리면서 나도 이제 지쳤다. 코스를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달리는 바람에 초장에 힘을 너무 많이 쓰기까지 했다. 남북출입사무소를 앞에 두고 풀코스 2차 반환을 하였다. 오른팔목에 두르고 있던 통일 기원 초록색 리본을 풀어서 날렸다. 35킬로미터 지점을 지났다. 은식님, 은수님에게 손을 흔들고 치고 나갔다.
개성과 다시 멀어지는 달리기를 계속하는 가운데 군내 삼거리에서의 우회전. 바리케이드 때문에 크게 원을 그려야 하는 것이 왜 그리 싫은지. 고작 몇 미터 차이가 나지 않을텐데 부담스러웠다. 우회전하자마자 내리막이 시작되는 게 느껴지는데 이번에는 해를 마주하고 달려야 했다. 다시 검문소 방향.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햇빛은 괴롭지만 바람이 뒤에서 밀어준다고 생각하자. 이제 고비는 다 넘은 것 아닌가? 지난 5월 22일 불쑥 찾아들었던 걷고 싶은 마음을 단속하는 게 중요하다. 38킬로미터 지점에서 체크한다. 7분 페이스로 달려도 SUB-4는 가능하다. 그러나 늦추지는 않는다. 추월은 해도 추월을 당하지는 않으니 잘 나가고 있는 것이다. 39킬로미터 지점. 급수대가 있었다. 여기 급수대가 있을리 없다. 건너편 주자들을 위한 급수대였을 것이다. 이제 건너편에서 오는 주자들은 거의 없으니 급수 봉사하는 학생들은 돌아오는 주자들을 위하여 물을 제공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학생 한 명이 스케이드 보드를 타고 내게로 달려왔다. 양손에 물컵을 든 채. 물컵이 내게 제대로 전달되자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페이스를 절대 떨어뜨리지 않았다. 몸이 몹시 피곤해졌지만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전날 마라톤대회장에 나가 뛰지는 않았지만 이것저것 신경쓰다 보니 풀코스를 달릴 때처럼 피곤해졌던 일이 떠올랐다. 점심을 굶고 저녁으로 돼지고기 수육을 잔뜩 먹었던 일도 떠올랐다. 그리고 수요일 저녁 롯데마트에 들렀다가 세일 태그를 붙인 음식에 혈안이 되었던 일까지 떠올랐다. 씨푸드바 2개, 생선초밥 12개, 사발면 1그릇, 소불고기 김밥 1팩, 참치 김밥 1팩, 순살씨앗닭강정 1묶음을 삽시간에 먹어치웠던 일.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하면 뭐하는가? 과도한 열량 섭취로 살을 다시 찌우고 있는데.
40킬로미터, 41킬로미터. 우회전. 골인 아치가 보였다. 직선 1킬로미터가 어찌나 길게 느껴지는지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제비한스님이 골인하는 모습이 보였다. 3시간 49분대가 틀림없었다. 함께 갈 수 있었다면 나도 349를 했을 것이다. 1.1킬로미터 남았을 때 시계를 보고 349의 꿈을 접었다. 이미 3시간 47분이 되기 직전이었다. 내가 무슨 수로 1.1킬로미터를 3분만에 달린단 말인가?
내가 만약 여자였다면 오늘 기록으로 풀코스 3위였겠지만 시상에서는 제외되었을 것이다. 여자부의 경우 3시간 50분 이내 골인해야 시상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이 대회에는 있었다. 초반에 늦추어 달리고 후반에 질주하는 방식을 고수했다면 3시간 40분대가 가능했을까? 아니다. 절대 시간 부족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다만 골인한 후 힘들어 죽겠다는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달리면서 2006년부터 2009년까지의 춘천마라톤이 떠올라 자신감을 계속 잃었다. 그때 얼마나 힘들었던가? 2주 후 있을 춘마를 도대체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SUB-4라면 부담될 것도 없겠지만 춘마는 내게 있어서 상징성이 너무나 큰 대회이니...... 3시간 30분대 완주가 내 생애 8번이 있었다. 한 번은 손기정평화, 두 번은 중앙서울. 나머지 다섯 번은 모두 춘마에서였다. 내 생애 최고 기록 역시 춘마에서 세웠다. 그런 춘마가 너무 부담스러워졌다. 평화통일마라톤을 달리고 나니 더 부담스러워졌다. 도대체 나는 춘천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 것인가?
이 자켓 때문에 참가 신청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셔틀버스가 운행되는 고양종합운동장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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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을 빠져나오는 중..... 바리케이드 인상적.....
고개를 젖히는 못된 버릇이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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