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를 앞두고 새벽 1시 30분까지 축구 한일전(올림픽팀)을 다 보고 잤다. 2대0으로 이기고 있다가 2대3으로 역전패당했으니 잠드는 순간까지도 불쾌감이 온몸에 퍼져 있었다. 2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다. 새벽에 몸을 일으키는데 너무 힘들었다. 마라톤 대회만 없으면 그냥 몇 시간이고 퍼져 자고 싶었다. 대회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지하철에서 잤으면 했지만 실패했다. 잠을 자기에는 이동 거리가 너무 짧았다.
화장실 때문에 1킬로미터나 떨어진 63빌딩 근처까지 갔다 오다 보니 몸은 더 피곤해졌다. 강변을 따라 북서풍이 어찌나 부는지 여의도에서 가양대교 방향으로 두 차례 갔다 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비닐봉투를 한 장 얻어 목과 팔이 나올 자리에 구멍을 뚫어서 입었다. 신발끈은 화장실에 가서 단단히 묶었다. 츄리닝 바지를 입고 뛰기로 했다. 지난 주보다 기온은 높았지만 춥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압록강 국제마라톤 다녀올 때 룸메이트였던 85세의 어르신과 용왕산 희수 형님을 만나 인사드렸다. 10시 정각 풀코스와 하프코스가 동시에 출발할 때 나는 어떤 페메보다도 뒤쪽으로 물러났다. 하프에 출전한 희수 형님과 함께 달리고 싶어서였는데 희수 형님은 통 앞으로 나올 생각이 없었다. 달리다 보니 4시간 40분과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가 뒤엉켜 달리고 있었다. 하프 2시간 20분 페메도 보였다. 3킬로미터 통과 기록이 16분 초반대였으니 늦은 건 아니었다.
맞바람이 지독하게 쓰렸다. 버프를 끌어올려 얼굴을 가렸다 다시 내렸다를 반복하면서 달렸다. 전마협에서 무료로 제공한 귀마개가 짐이라 생각했는데 착용하니 바람이 견딜만 하였다.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달렸다. 건너편에서 오는 찬일님, 상기님, 특전사님, 은식님에게 꼭 인사를 빠뜨리지 않았다. SUB-4 기준 기록보다 2분 이상 빠르게 10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하였다. 1차 반환하기 직전에야 제비한스님과 만나 인사를 건네었다. 반환하고 나자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감싸고 있던 비닐을 찢어서 벗었다. 귀마개도 빼어 팔에 걸었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 무리에 합류하며 속도를 늦추었다. 13킬로미터를 지나 쉬고 있는 줄넘기 마라토너를 보았다. 응원을 보내었다. 잠시 후 내 앞으로 다시 나오는 줄넘기 마라토너는 몇 킬로미터를 더 진행하기 전에 내게 추월당하였다.
-오늘 힘드신가 봐요.
그렇게 인사를 건넨 후 앞으로 나아갔다. 17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면서부터는 4시간 페이스메이커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내내 함께 달릴려고 했던 계획이 깨어졌다. 페메 그룹에서 빠져나오면 잠시 눈을 감고 달려도 충돌 사고날 일이 없으니 나 홀로 달리게 되었다. 단 몇 초 눈을 감는다고 하여 잠을 자서 피로를 풀었다는 느낌이 들기나 하겠는가? 어이없는 행동이지만 그렇게 해서 달려야 했다. 내가 1회전 하기 전에 희수 형님이 치고 나올 줄 알았는데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1시간 53분에 21.0975킬로미터를 달렸다. 반환하자마자 인절미 두 조각과 꿀물을 먹으며 기운을 북돋우었다. 22킬로미터를 달리기 전에 건너편에서 희수 형님이 나타났다. 나를 보기가 무섭게 스마트폰을 꺼내셨다. 나는 옆을 지나며 소리쳤다.
-지금부터 스퍼트하셔야 2시간 이내 들어갑니다.
-사진 찍어주려고 했는데.
그렇다면 멈춰야지. 시간을 잃게 되지만 달리기를 멈추고 몸을 돌려두 팔을 들어올려 포즈를 취했다. 잘 돌아가시라 인사드린 뒤 돌아섰다. (희수 형님은 내 사진을 찍어주시고도 하프 1시간 59분 1초에 들어가셨다.)
졸린다, 졸린다. 졸려 죽겠다는 강박 관념 속에서도 한 명씩 제쳐 나가고 있었다. 24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 이미 건너편에서 1위 그룹이 나타났고, 뒤에서도 발걸음 소리가 크게 들렸다. 파이팅 외치는 사람은 제비한스님이었다. 오늘은 지난 1월 3일 대회보다 일찍 스퍼트 하고 계셨다. 나는 곧 화장실에도 들르다 보니 삽시간에 수백 미터 이상 차이가 나게 되었다.
졸음을 찬 바람으로 견디며 한 발 한 발 옮겼다. 하프만 뛰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을 줄곧 하였다.
시계는 보지 않았다. 얼어붙은 한강만 내려다 보았다. 도대체 지난 주에 얼마나 추웠기에 아직도 얼음이 녹지 않았을까.
건너편에서 오는 주자들에게 꼭 파이팅을 보내며 달렸다.
달리다 보니 27.0975킬로미터, 29.0975킬로미터..... 달리는 거리는 늘어났다.
30.0975킬로미터 지점. 통과 기록이 2시간 43분대였다. 어느 때보다 빨랐다.
ㅅ민님이 앞에서 나타나 '안녕하세요'라고 외치니 정말 반가워 하셨다. 거기서 힘을 얻고 가양대교 방향으로 달렸다.
반환했다. 반환한 후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귀마개는 빼어 팔에 끼웠다. 이제 더 이상 맞바람이 아니니 부담은 덜었다. 잠은 완전히 깼다.
32.195킬로미터 지점. 이제 10킬로미터가 남았다. 2시간 54분대를 기록중. 킬로미터당 6분 30초 페이스로 달려도 SUB-4가 가능했다. 그렇지만 남은 10킬로미터를 50분에 달렸다. 이 이후에는 누구에게도 추월당하지 않았다. 3:45 이내로 들어가 보자는 마음은 40킬로미터를 넘어서 가졌다.
3:44:55.00
기록 참 기가 막힌다. 일부러 맞춘 것도 아니고.
피곤한 데도 불구하고 3시간 44분대로 들어갔으니 3월 동마에서 동마 개인 최고 기록을 깨뜨릴 수도 있겠다.
(동아마라톤 개인 최고 기록> 3:44:25.150)
살만 찌지 않으면 된다.
비닐을 입고 출발한다. 아식스 타사질 2 와이드를 신었다. 요즘은 이 신발이 풀코스에 선택된다.
메달이 워낙 커서 양산마라톤 메달과 비교해 보았다.
1. 대회요강
2. 참가종목
◈ 매니아란? 기념품을 원하시지 않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제도 입니다 3. 시상내역 5Km,10Km, Half, Full (단, 등록된선수 및 현장접수자는 시상에서 제외)
6. 접수안내
※각 대회별 환불처리는 접수마감 후 10日이내에 처리완료 됩니다. |
나는 이 기념품과 상관이 없었다. 매니아였으니까.
지난 해 7월 연대별 입상하면서 받은 2만원 티켓과 만원을 보태어 매니아로 출전하였다.
이 대회는 풀코스 주자가 300명이 넘게 나왔고, SUB-3 주자도 20명이 넘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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