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5 불우이웃돕기 송년마라톤(2015/12/27)-HALF

HoonzK 2016. 1. 1. 20:10

 아무리 풀코스가 아닌 하프코스라지만 부담스러웠다. 뛰지 말아야 했다.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사흘 연속 밤잠을 설쳤다. 막막하고 서운한 감정이 쏟아져 들어와 가슴이 뻥 뚫린 것같은 상태가 되었다. 머리는 송곳으로 쪼듯이 쑤셨다. 공황장애가 이런 것일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웬만한 감정은 잘 추스릴 수준이 되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비관적인 습성을 위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민해봐야 내게 닥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묘연하기만 하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낙관적인 자세로 일단 넘어가는 게 나으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파멸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새해가 오면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해. 지금까지 영위해온 삶의 패턴을 바꾸기엔 너무 늙었어.


 다음날 마라톤이니 전날 무조건 사전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쉽게 잠들지 못했다. 몇 시간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었으나 얼마 자지 못하고 잠을 깼다. 수면은 고통스러운 꿈으로 채워졌다. 그러니 잠을 잤어도 잤다고 할 수 없었다. 새벽 4시. 두 시간 남짓이라도 더 자 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실패했다. 결국 극도의 피로감을 고스란히 안고서 마라톤 대회장에 갔다. 춥기는 또 오지게 추웠다. 영하 7도. 달리는 내내 피곤함을 느꼈고, 마음은 천근만근이었다. 달리기가 이렇게 힘들 수 있을까? 마음이 즐겁지 않으면 아무리 달려도 개운해지지 않는구나. 풀코스가 아닌 하프인 게 다행이라고 나 자신을 달래고 또 달래었다. 그래도 힘들다는 느낌은 어떤 느낌보다도 강했다.

 

 3킬로미터 쯤 달렸을까? 2년 전 압록강국제마라톤 참가할 때 만났던 효준님이 따라붙었다. 자주 만난다며 반가워 하였다. 전국의 마라톤을 섭렵하고 있는 Hoonz에게 앞으로 정보를 얻어야겠다는 말도 했다. 대화를 하면서 달리다 보니 더 힘들 수 있겠지만 대화를 하면 그래도 내가 안고 있는 고통은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6킬로미터를 넘어서면서 구리에 들어섰고, 그때부터는 나 홀로 달렸다. 혼자 되기가 무섭게 근심 걱정 고민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풀코스보다 갑절은 힘든 코스로 변했다. 10킬로미터 53분대. 반환은 55분 40초에 했다. 가끔 오르막이 있고, 날씨가 춥고, 츄리닝 바지를 입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난 여름처럼 1시간 50분을 넘기는 하프 주자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풀코스에 자주 신고 달렸던 아식스 젤라이튼 마라톤화가 탄력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내가 피곤해서 그런 것일까? 그동안 너무 자주 신고 달렸으니 운동화의 수명을 다했을 수도 있다. 
 
 완주한 뒤 쾌감을 느끼는 마라톤의 장점. 이번 마라톤에서는 그런 장점을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도대체 왜 달리는 거야? 습관이야? 5일 후 또다시 하프인데 그 때는 또 어떻게 감당한담?

 

 55분 40초에 반환하고 계속 피곤했던 점을 감안하면 1시간 52분이 넘어가야 하는 기록이었지만 1시간 48분 05초에 완주하였다. '하프'라고 테이프를 붙인 완주메달을 보았다. 완주메달. 엄청난 가치가 있는 표식이었다. 올해 10번째 하프, 생애 132번째의 하프는 이렇게 끝났다.

 

들어가 쉴 수 없었다. 완주한 후 추위 속에서 떠는 일정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