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종교는 마라톤교이다.
일요일이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니 마라톤 완주는 종교 행사 참여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주중에는 마라톤교 행사를 위하여 열심히 달려주어야 한다.
그런 내가 패턴을 깨뜨렸다.
문화의 날과 함께 하는 수요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수요일은 훈련 요일이지 대회 요일은 아니니 제대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을 것같았다.
새벽 6시가 살짝 넘어 신도림역에 내렸을 때는 반대편 승강장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바로 귀가하고 싶을 정도로 피곤하였다. 어디선가 몇 시간이고 더 늘어지게 자고 싶었다. 게다가 지난 6월 6일 풀코스 완주 이후 쉴새없이 먹어대어 옆구리는 두툼해졌다. 밤마다 먹고 싶은 게 왜 그리 많은지 이겨내지 못하니 배둘레햄이 되었다..... 쿠션이 좋은 운동화를 신어도 발목에 통증이 느껴진다는 것. 비만 상태에 빠진 것이다. 몹시 더운 날 뚱뚱한 몸을 하고 풀코스 도전에 나선다. 이건 풀코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분명히 대가를 치를 것이다.
하품을 연방 해대며 마라톤TV 사무실에 가서 현장 접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대회장으로 갔다. 벌써 6시 50분이었다. 스트레칭하고 화장실에 들르니 6시 56분. 옹기종기 모인 15명 정도의 마라톤 마니아들 틈에 선 것이 6시 58분. 7시가 살짝 넘어 출발하였다.
오늘 코스는 신도림역에서 대림역을 거쳐 신대방역까지 갔다 오기를 다섯 차례 왕복하는 코스. 재미없어라. 다섯 번이나 왕복해야 하다니.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초반에는 SUB-4 페이스로 달리고, 후반에는 몸 상태에 따라 사정없이 느리게 달리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초반 하프는 1시간 59분대로 레이스를 펼치고, 후반 하프는 아무리 늦어져도 상관하지 않고 LSD 방식을 고수하기로 했다. 8.439킬로미터를 다섯 차례 달린다고 했을 때 한 바퀴를 48분 이내로 달리면 SUB-4 기준에 맞았다.
참가 인원이 적다 보니 함께 보조를 맞출만한 주자가 없었고, 거리 표지판도 없어서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없었다. 무작정 달려보는 스타일을 견지하기로 했다. 반환점이 가까워졌을 무렵 자전거를 탄 대회 관계자가 나를 추월해 갔다. 내 앞에 반환 표시 콘을 세웠고, 급수대도 설치하였다. 이 분이 늦게 왔으면 반환점을 지나치고 물도 마시지 못할뻔했네. 물 반 컵 마시고 레이스를 계속하였다. 원래 거북이 도장을 배번에 찍어주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두번째 반환할 때 확인 도장 두 개를 받았다. 첫번째 바퀴는 46분 초반으로 달렸다. 2바퀴 반을 달렸을 때, 즉 하프 기록을 보니 1시간 57분 10초였다. SUB-4에 여유가 있는 페이스. 하지만 3회전을 마치고 나니 무리가 생겼다. 이미 내 모양새는 옷입고 샤워한 것처럼 젖었다. 허리 통증도 생겼다. 지난 번 제주도에서 당한 사고 후유증이 남아 있는 것이다. 4회전 들어갈 때부터는 몹시 피곤하고 지겨워져서 완주나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도림천 구간 경치는 볼만한 것이 없는데다 다섯 차례 왕복이라니 주변이 지겨워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섯차례 왕복하는 동안 한번도 몸을 일으키지 않고 자고 있는 노숙자들 보는 재미나 있을까? 수시로 괴롭히는 담배 냄새는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점점 더워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새벽 7시와 오전 10시의 기온차는 컸고, 안 그래도 고단했던 몸은 더욱 황폐해졌다. 풀코스 500회가 넘는 완주자 아홉용(龍九)님이 걸을 정도였다. 수요일까지 나와서 달리는 분들은 연로하신 분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2위로 달리고 있었는데 차츰차츰 뒤로 밀렸다. 칠마회분에게 추월당하였다. 5회전 들어갈 때 건너편에서 오는 아홉용님에게 마지막 8.439킬로미터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까지 했다. 5회 반환했을 때 '좀더 열심히' 도장을 받으면서 천도복숭아와 메로나 아이스크림도 받았다. 물을 두 잔 마셔서 수분을 보충하고, 복숭아를 폭풍흡입했다. 아이스크림은 음미하면서 먹었는데 이러다 보니 걷는 것인지 뛰는 것인지 모를 움직임이 되었다. 스카프를 두른 주자에게 추월당하여 뒤로 밀렸다. 초반에 가깝게 느껴졌던 대림역과 신대방역 구간이 누군가 요술을 부린 것처럼 다섯 배쯤 거리가 늘어났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느낌에 시달렸다. 그래도 달리다 보면 거리는 줄어들거야. 그렇게 달래면서 달리기를 거듭했다. 달리고 있었는데 워낙 슬로우모션 스타일이라 아홉용님과 자연보호마라톤 주자도 앞으로 보내어야 했다. 이분들은 1.5킬로미터 남기고 500미터쯤 걸어갔다. 그 덕분에 다시 거리를 줄였고, 100미터 남기고 추월할 수 있었다.
들어와서 생수와 콜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투덜거림.
-더울 때는 정말 힘들어요.
-그래도 도림천 구간은 그늘이 많아 좀 낫지요.(골인 지점의 급수대 담당)
-그렇긴 합니다. 다른 코스는 더 힘들겠지 하면서 마음을 달래긴 했어요.
-바람이 불어주면 좋았을텐데.
4:15:41
첫 하프는 SUB-4에 부합했고, 두번째 하프는 4시간 37분 페이스로 달렸다. 엄청나게 페이스를 늦추어 생명을 보전한 것이다. 올해 가장 늦게 달린 레이스가 되었다. 칠십대 어르신이 1등을 하였다.
마라톤 완주 후 2차전이 남아 있었다.
마라톤 사무국 사무실(건물 5층)까지 가서 옷을 갈아입고 완주기록증을 받아야 했고, 봉투에는 완주 메달이 들어있는지 꼼곰하게 챙겨야 했다.
(이 대회에 자주 오시는 분들은 메달이 똑같으니 안 받고 가는 경우가 많아서 완주메달을 요구하지 않으면 주지 않는 일이 있었다. 실제로 봉투에는 완주 메달이 없었고, 메달을 달라고 해야 했다.)
펩시콜라 600ml, 엔젤리너스 카페 모카 250ml, 립톤 아이스티 캔 355ml, 생수 500ml.
연타로 마셨다. 더운 날 풀코스 달리면서 감량이 조금 되었을텐데 모조리 복구해 놓으려는 심산인 듯.
도대체 더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9월까지 어떻게 버틴담.
6월 28일 열리기로 한 새벽강변마라톤 대회는 메르스가 진정되지 않아 7월 26일로 연기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홍천, 옥천 대회와 겹치는데. 주최측은 '7월에는 날씨가 무더워지기 시작하므로 가급적 풀코스는 자제하여 주세요'라는 말도 보태었다. 6월 28일 풀코스 대회가 없어졌으니 무엇으로 대체한담. 또 공원사랑마라톤 대회에 와서 현장접수하고 달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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