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북동해안에서 생애 처음으로 마라톤에 나선다.
재작년 소년체전과 겹치는 바람에 신청하지 못해서 아쉬웠던 대회.
지난 해 압록강국제마라톤 대회에 가면서 그저 달리고 싶은 마음만 보내었던 대회.
드디어 제주관광마라톤축제에 나선다. 황금연휴(6월 6일~8일)와 겹쳐 항공요금도 오르고, 렌트카 이용료도 올랐지만 올해만큼은 놓칠 수 없었다.
덥고 습기찬 날씨와 생소한 코스 때문에 근심이 많았지만 이번 달리기는 제주도의 해변 풍광을 실컷 즐기면서 4시간 20분 정도에 달릴 것이니 우려감은 많이 줄었다. 3주 연속 풀코스에 나선다는 것이, 그것도 더운 날씨에 달린다는 것이 부담될 수는 있었다. 일단 달려보는 거다. 전날 대회장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은 뒤 오후 6시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금요일 새벽 3시간, 토요일 새벽 2시간 잔 게 전부이니 일찍 잘 수밖에 없었다. 운전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중앙선을 넘는 일까지 있었으니 얼마나 피곤했던가? 토요일 오후 6시부터 일요일 오전 6시까지 누워 있었으니 간만에 마라톤 대회 전날 잘 잔 것이다.
참가 인원 4천 명 가운데 1천 명이 외국인이니 국제 대회에 참가한 느낌이었다. 풀코스는 280명이 참가했지만 이 종목에도 외국인이 넘쳤다. 제주도의 이국적인 풍광까지 어울려 이곳이 우리나라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감바레, 짜이요. 고우(Go)... 이런 말을 얼마나 자주 들었던가?
4시간 페이스로 보았을 때 5킬로미터를 26분 20초에 달리면 되는데 나는 첫 5킬로미터를 24분대에 달렸다. 왜 이러는 거지? 오늘 4시간 20분에 달리기로 했는데 3시간 40분대 페이스로 달리고 있다. 조심스럽게 오버페이스가 아닌가 나 자신에게 물었다. 잘 잤으니 컨디션이 좋은 것이겠지. 이때 해조류의 짠내가 코를 자극했다. 제주 바다. 현무암 해변. 풍력발전기. 풍력발전기의 프로펠러는 돌지 않고 있었다. 바람이 거의 없었다. 외국인들은 달리면서도 이국적인 풍광에 매료되어 스피드를 줄이고 바다를 바라보거나 아예 그쪽 방향으로 코스를 빗겨서 달리기까지 했다. 하나라도 더 추억에 남기려고 제주도 해변을 살피는 외국인처럼 나 역시 도전의 레이스가 아닌 감상의 레이스가 되어야 한다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지만 초반 페이스가 좋으니 자꾸만 도전의 레이스가 되고 있었다. 김녕의 옥빛 바다를 바라보며 한산한 해안도로를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역주하려고만 하였다. 제주세계 7대경관 유네스코 3관왕이라는 문구를 새긴 도르미마라톤클럽의 고태진씨를 따라갔다. 줄곧 내 앞에서 달리고 계셨기에 기준이 되었다. 반환점에 가서 그 분을 제쳤다. 3시간 49분 페이스였다.
중간 점검.
눈이 따가웠다. 잠을 못 잤을 때처럼 쓰리기 짝이 없었다. 내가 잠을 못 잤다고? 12시간이나 누워 있었는데? 간밤엔 3번이나 일어나 텔레비전을 시청하였다. 계속 자기만 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었다. 충분히 잤다고 생각한 것은 자기기만이었다. 그저 지난 대회보다 조금 더 잤을 뿐이었다. 그 잠마저 단속적으로 끊어졌고. 토요일 직전 이틀 동안 5시간밖에 못 잔 것이 여전히 후유증으로 남았다.
너무 젖었다. 해안도로를 달리니 습도가 높았다. 주최측에서 밝힌 습도는 83.9%였다.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흠뻑 젖었다. 러닝 팬츠는 촘촘하게 젖어 땀을 떨구고 있었다. 젖은 바지 가랑이가 흔들리며 사타구니에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되돌아가는 구간에서는 허벅지 안쪽의 쓰라림을 견디어 내어야 했다. 상의도 사정없이 젖어서 손으로 쥐어짜면 물이 흘러내렸다. 배번을 부착한 옷핀에서 녹이 묻어날 정도로 젖었다. 흘러내린 땀이 종아리를 타고 흘러 내려 양말까지 축축해졌다. 맨살에 달라붙은 티셔츠는 수시로 떼어주어야 했다. 몸이 좋을 때에는 상체의 근육이 볼만했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두툼한 살덩어리가 혐오감스럽게 드러났으니. 10년 전보다 쌀 10킬로그램 한 푸대를 몸에 넣고 달리는 셈이니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뚱보가 풀코스를 달리는 것은 미스터코리아가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하프 이후 25킬로미터 지점까지는 중국인과 함께 달렸다. 그는 건너편에서 오는 일행에게 일일이 파이팅을 외치며 힘을 내고 있었다. 그의 왼쪽 뒤에서, 가끔 오른쪽 뒤에서, 자주 옆에서 달리면서 페이스를 맞추었다. 그렇게 25분 정도를 함께 달리는데도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다. 묵언수행하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초반에 너무 아파서 앞이 잘 보이지 않던 눈은 이제 어느 정도 진정된 듯하였다. 페이스가 떨어진 것 같았지만 시계로 체크하지는 않았다. 시간으로 나 자신을 압박하고 싶지는 않았다. 늦었다고 하여 스피드를 올릴 힘도 없었다. 30킬로미터 지점에 와서야 시계를 보았다. 2시간 49분. 페이스가 많이 떨어졌지만 초반에 저축해 놓은 게 있어서 그렇게 달려낸 것이었다. 32킬로미터 통과 기록은 3시간 2분. SUB-4는 충분하였다. 나머지 10.195킬로미터를 58분에 달리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터. 그러나 상황은 돌변하였다. 오르막이 많았다. 이제 구름이 해도 가려주고, 풍력발전기의 프로펠러가 돌아갈 정도로 바람이 불어주었지만 땀을 너무 많이 흘린 상태에서, 또 30킬로미터를 넘게 달린 상태에서 만나는 오르막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이제서야 도전의 레이스를 감상의 레이스로 바꾸고자 마음먹었다. 25킬로미터 지점까지 내가 제쳤던 주자들이 다시 내 앞으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동요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앞만 보고 달릴 수는 없었다. 오른편에 펼쳐진 제주의 바다를 보면서 차를 타고 지나면서 보았던 때와 비교하였다. 천천히 달리면서 보는 맛이 괜찮았다.
걸어가던 주자 한 명은 내가 가까이 가면 일단 달렸다. 몇 백 미터 달리다가 또 걸었다. 내가 천천히라도 달려서 가까이 가면 불에 데인 것처럼 확 달아났다. 몇 백 미터쯤 거리를 벌리면 또 걸었다. 네가 가까워지면 나는 또 이렇게 스피드를 올릴 거야라고 말하는 것같았다. 그렇게 걷다 뛰다 한 사람이 나보다 빨랐다. 지지부진한 스피드로 관광 모드로 돌입한 내가 줄곧 달리는 것보다 빨랐다. 35킬로미터 이후 빨라지지 않을까 기대해 보았지만 35킬로미터 지점에 와서야 알았다. 걷지 않고 달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는 사실. 그리고 초반에 왜 그렇게 빨랐던가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초반에 내리막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가속도가 붙었지. 이제는 반대로 오르막이다. 35킬로미터 이상을 달려 물에 빠진 돼지같은 꼴이 되어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힘든데 오르막이라니. 코스의 이동 경로만 파악하고 코스 고저는 인지하지 못한 것이 사람을 힘들게 만들었다. 여름의 풀코스에 대한 이해를 못한 것도 문제였다. 여름에 달리는 풀코스, 그 후반은 늘 지옥같지 않았던가? 욕심내지 말고 처음부터 룰루랄라 관광마라톤을 했어야지. 이 대회 명칭은 분명히 제주'관광'마라톤 축제 아니었던가?
포카리스웨트, 포카리스웨트 하던 내가 이제 달짝지근한 맛이 지겨워 생수만 찾고 있었다. 30킬로미터 지점을 지나 먹은 스포츠겔의 당분도 싫기만 했다. 아무리 천천히 달려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골인지점은 시시각각 가까워졌다. SUB-4를 포기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58분에 달려야 할 거리를 68분으로 늦추어 달렸다. 골인 직전 10킬로미터를 남기고 나서야 제주도 북동 해안을 실컷 감상하였다. 올레길 코스 표식도 여기 저기서 발견하고, 바닷가의 강태공도 살피고, 어부들의 어망도 눈여겨 보고, 바람은 많으나 곶이 없어 바다 위에 지지대를 설치하고 풍력발전기를 세운 이채로운 구조물도 보고, 무엇보다 바다 빛깔이 어떻게 옥빛일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이랬어야지.
어느덧 40킬로미터 지점. 신의 영역에 들고, 다 왔다는 생각에 스퍼트를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터벅터벅.
골인 아치를 지났다. 66번째 풀코스 완주.
04:09:26.67이 나의 넷타임이었다.
달리면서 땀을 많이 흘리다 보니 화장실에는 한 차례도 가지 않았다. 도중에 화장실에 가지 않은 세 번째 풀코스. 골인 후 제주 삼다수를 실컷 마셨다. 빈 천막 안에 들어가 앉아 있다가 나왔다. 내가 앉았던 자리만 동그랗게 물무늬가 남았다. 그냥 갈까 하다가 추첨 게시판 앞에 가 보았다. 제주그랜드호텔 부페이용권이 당첨되었다. 이용할 수 있는 날짜는 6월 9일 저녁식사부터 6개월 동안. 미리 전화 예약하고. 이런, 제주도에 다시 오라는 말씀?
▶ 행 사 명 : 제19회 제주관광마라톤축제
▶ 일 시 : 2014년 6월 8일(일) 09:00
▶ 출발시간 : 09:00 Full코스, Half코스
09:10 일반코스(10Km)
09:20 워킹(10km)
▶ 코 스
구좌생활체육공원운동장(김녕해수욕장) ↔ 월정해수욕장(10km 반환점) ↔
평대 한동해수욕장(Half 반환점) ↔
세화해수욕장 ↔ 하도해수욕장 ↔ 하도철새도래지 ↔ 종달해안도로 서측입구 동쪽 1.1km 지점(Full 반환점)
▶ 경기종목 : Full코스42.195KM(제한시간6시간), Half코스21.0975KM(제한시간4시간),
일반코스10KM(제한시간2시간), 워킹10KM(제한시간5시간)
▶ 주 최 : 제주특별자치도
▶ 주 관 :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
▶ 경기진행 : 제주특별자치도육상경기연맹
▶ 공 인 : K.A.A.F(대한육상경기연맹)
흠뻑 젖었다. 힘들지만 V자를 날린다.
왼손에 말아쥔 스포츠겔이 살짝 보인다.
30킬로미터 지점을 지나서 겔을 섭취했으니 그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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