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대부분의 마라톤 대회가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경기마라톤은 풀코스만 취소시켰다.
내가 신청했던 예산벚꽃마라톤은 그대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부대행사와 이벤트만 취소되었다.
여관주인은 내가 마라톤 대회 때문에 왔다고 하자 마라톤대회가 열리느냐고 의아해하기까지 하였다.
3년을 기다려 온 내게 다가온 예산벚꽃마라톤은 큰 난관이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목숨걸고 달린 레이스에서 35킬로미터 이후 41킬로미터까지 이어진 오르막에 20도가 넘는 날씨까지 가세하여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았다. 고됨을 달래줄 벚꽃, 벚꽃은 이미 진 지 오래라 오로지 주로만 보고 달려야 했다. 지난 해 달림이들 사진이 전시된 것을 보면 배경으로 벚꽃이 만발한데 올해는 평범한 들판을 보고 거름냄새 정도를 맡으며 달리는 데 만족하여야 했다.
왜 나는 잠을 자지 못했던가?
일부러 예산에 미리 내려가 여관까지 잡았는데.....
천안에서 전설의 짬뽕을 먹고 난 뒤 예산에서 봉구스 밥버거 2개를 먹었다. 그게 과했다. 맵고 짠 것을 먹어 물을 계속 마셔야 했다. 게다가 예산에 도착해서 숙소부터 잡은 게 아니라 PC방부터 달려갔다.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지 궁금했다. 스마트폰이 아닌 것이 이럴 때 가장 불편하다. 문의가 많았는지 주최측에서는 공지사항에 개최 여부를 알리고 있었다.
마라톤대회는 차질없이 진행됩니다. 사무국 2014-04-18 조회수: 699 | |
---|---|
첨부파일 | 없음 |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분들의 삼가명복을 기원합니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과 관련하여 마라톤 행사여부
문의가 많습니다.
마라톤대회는 일정 변경없이 진행되오니 참가에 차질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
여관을 너무 늦게 잡은데다 소음이 심한 여관을 잡은 게 문제였다. 대부분 정수기나 냉장고 소음이 문제인데 이 여관은 여관 내부를 울리는 온수 보일러 소리가 문제였다. 자정 가까이 버티다 주인에게 달려가 하소연했으나 나같은 사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온수보일러를 꺼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했다. 환불받고 나갈 수는 없었고 그냥 버티어 보기로 했다. 귀마개라도 챙겼어야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소리가 줄어들겠지. 3층 객실로 돌아가 잠을 청해 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실패했다. 그때마다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여객선 침몰 생존자 구조 작업 특보만 나왔다. 새벽 1시, 2시..... 이러면 안 되는데. 하프라면 신경도 안 쓸테지만 풀코스를 달려야 하잖아. 전전반측. 새벽 3시가 넘어 버렸다. 자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예산까지 내려와 숙소까지 잡았는데 대회장에 가서 칩만 반납하고 기념품(예산 미황쌀 4kg/사과잼)만 받아 귀경하라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는 말, 실감하겠네.
새벽 6시에 거울보고 놀랐다. 너 누구니? 노인네가 있었다. 요즘 들어 퍽 늙는 얼굴, 정도가 더 심했다. 생명 보존을 위해서라도 잠은 자야 하는 것인데 풀코스에 도전하기 전 날 잠을 못 자다니 말이 되는가?
100킬로미터 달리던 때를 떠올렸다. 아예 잠을 자지 않고 달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에 비하면 오늘은 괜찮은 거야.
하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몇 년 더 젊을 때였지.
몹시 피로한 날 장거리 훈련 나왔다고 생각하자.
정말 피로하면 달리기하러 나가질 않지.
정식 마라톤 대회가 아니라 내 개인 훈련이라고 생각하자.
개인훈련하러 지방까지 와서 숙소잡은 일은 없는데.
스피드를 늦추는 식으로 몸을 아끼자.
달리기는 하겠다는 말이네.
예산역에서 운행하는 35인승 셔틀버스를 타고 예산공설운동장으로 갔다. 아직 한산했다. 풀코스 주자 가운데 짐을 1등으로 맡겼다.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보관봉투가 너무 작아 내가 가져간 봉투에 담았다. 서두르다 보니 스포츠겔 챙기는 것도 잊었다. 기본적인 스트레칭만 마치고 어디 구석에라도 가서 잠을 청할까 했는데 고개 몇 번 돌리니 출발 시간이었다. 농담 잘하고 장난기 가득한 사회자이지만 오늘만은 숙연하였다. 조용히 출발하였다. 나 역시 일부러 검정색 티셔츠를 입었다. 풀코스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갔다. 금새 몇 십 미터 뒤쳐졌다. 1킬로미터 가기 전에 바닥에 떨어진 울트라겔을 보았는데 미처 줍지 못했다. 절 도와주세요. 바닥에 하나 더 떨어져 있기를. 거짓말같이 또 한 개의 울트라겔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발로 차서 온전한 울트라겔임을 확인하고 손으로 집어들었다. 4시간 페메보다 쳐졌고, 숨도 차고 고단하기 짝이 없는데 1킬로미터 통과 기록이 5분 40초였다. 2킬로미터 통과 기록은 11분 40초였다. 1킬로미터 이후 늦어진 것이다. 3킬로미터 기록은 16분 50초로 SUB-4에 충분히 들었다. 앞에 나타난 향천교가 황천교가 보이는 일도 있었다. 어느덧 4시간 페메와 동반주. 도움을 요청하며 계속 따라 달리겠다고 했다. 결국 거짓말이 되었지만.
4시간 페메보다 앞에서 일정한 페이스로 달리는 일산호수마라톤 3인방을 따라가게 되었다. 그들은 현재 3시간 56분 페이스로 달리고 있다고 했다.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달리다 보니 10킬로미터를 54분대에 통과하였다. 10킬로미터를 달리고 나니 졸린 기분은 사라진 것같았다. 일산호수마라톤 3인방이 50미터 정도 앞에서 달렸다. 하프 1:45 페메그룹이 지나갔다. 잠시 후 너무도 낯익은 모습의 주자가 나를 제치고 나갔다.
-宋希洙 형님!
용왕산마라톤클럽에서 단체로 하프에 참가했기에 풀코스를 뛰려다가 하프로 전환했고, 1시간 45분 이내로 들어가려고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하셨다. 바쁜 와중에 악수까지 했다. 풀코스 1차 반환 이후 만나는 12킬로미터 지점에서는 송희수 형님이 1시간 45분 페메를 제치고 나오고 계셨다.
-1시간 45분 페메 제치셨네요!
그렇게 사라지시고 나는 과묵해졌다.
일산호수마라톤 3인방(여성 포함)은 100미터 이상 앞으로 나갔다. 근심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몸이 피곤하다 보니 소변이 자주 마렵다는 거였다. 마땅한 화장실을 찾을 수가 없었다. 11킬로미터 지점부터 화장실을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주변엔 죄다 벚나무인데 어디 몸을 숨길만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마스터즈들 앞에서 소변보는 모습을 공개할 수는 없었다. 참고 달리다 주유소를 찾았다. 주로에서 제법 이탈했지만 그래도 편하게 용변을 보고 나왔다. 18킬로미터 가기 직전이었다. 아직 4시간 페메는 보이지 않는 것같았다. 그러나 합천에서 24킬로미터 지점에서 당했던 일을 오늘은 18킬로미터 지점에서 당했다. 4시간 페메 그룹에게 추월당한 것이다. 기를 쓰고 따라갈 수는 없었다. 여전히 고단했고 오르막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프 주자에게는 후반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17에서 20까지는 오르막이니. 스피드를 올려야 하는 구간에서 스피드를 제한당하는 느낌을 받고 달려야 한다는 것. 그래도 하프가 부러웠다. 20킬로미터를 달리고 나면 예산공설운동장쪽으로 빠져 내려가니. 풀코스는 아직도 멀었다. 21킬로미터를 지나 조금 더 가니 마스터즈 누군가의 전자기기에서 경음이 울렸다. 아마도 하프 지점임을 알리는 것이이라. 그렇다면 내 기록은 1시간 59분 30초이다. 지치지만 않으면 SUB-4가 가능한데. 일산호수 팀은 200미터 앞에서 발맞추어 달리고 있었다.
모르겠다. 미래를 어떻게 알겠는가?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다 못해 뒷골이 당기고 자신도 모르게 쓰러질지.
하프 지점에서는 다시 4시간 페메와 동반주했다.
22킬로미터 지점에서는 앞으로 나아가기까지 했다. 내리막이니까.
그리고 오르막. 다시 내리막, 그리고 오르막. 이런 식이다.
점점 깨닫는다. 예산벚꽃마라톤 코스가 결코 녹록치 않음을.
급수대 봉사 활동 나온 예산여고 학생들과 동네 주민들의 열띤 응원.
힘들지만 손을 흔들어 주면 반응은 더욱 뜨겁게 돌아왔다.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예산을 담는 사람들'을 만나면 하트 표시를 하거나 V자를 날려 포즈를 취했다. 힘들면서도 즐거운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억지 웃음을 지었는데 어떤 모습으로 찍혔을지 매우 궁금하다. 사진작가분들에게는 고맙다는 말을 꼭 하였다.
4시간 페메와 함께 달리던 63토끼마라톤 소속의 한 분은 엄청난 스퍼트를 보였다. 페이스가 올라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분은 너무 빨리 승부를 걸었다. 나중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더니 30킬로미터를 넘어서서는 현저하게 속도가 줄었다.
25킬로미터를 넘어섰을 때 만난 급수대. 스포츠겔이 제공된다. 내내 손에 쥐고 달리는 수고가 무색하게. 여고생이 귀퉁이를 뜯어준 스포츠겔을 받아서 먹었다. 스포츠겔을 먹은 힘으로 더 갈 수 있다고 믿었다. 30킬로미터 통과 기록이 2시간 47분대이기를 빌었다. 그러나 2시간 49분. 킬로미터당 6분 페이스로 가도 SUB-4가 가능하려면 좀더 속도를 내어야 한다. 오르막이 많은데 가능할까?
2차 반환하고 나니 32킬로미터 표지판을 만났다. 정확히 3시간 경과. 급수대에서 일산호수마라톤 3인방과 재회했다. 32킬로미터부터 34킬로미터까지 함께 달렸다. 32킬로미터부터 33킬로미터 지점까지의 랩타임은 4분 50초. 아무리 내리막이라지만 너무 빨랐다. 그 다음 조금 속도를 줄였다. 35킬로미터 이후 힘을 써야 하니까. 33-34킬로미터 랩타임은 5분 10초였다. 이제는 6분 페이스로 뛰어도 SUB-4는 충분히 가능했다. 그때는 모르고 있었다. 35킬로미터 이후 41킬로미터 사이의 오르막이 예산벚꽃마라톤의 최고 난코스임을. 아울러 정오를 넘기면서 기온은 20도 이상 치솟고 있음을. 35킬로미터 지점에 닿기 전에 손에 쥐고 달렸던 울트라겔을 먹었다. 힘이 더 날거야. 일산호수마라톤 3인방이 어느새 내 뒤로 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들은 4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그만큼 후반이 힘든 레이스였다.
설사 오르막이라고 해도 다리 놀림을 늦추지는 않았다. 피곤함은 아예 잊은 것같았다. 밤새고도 SUB-4가 가능할까? 제치고, 또 제치고.....
신의 영역인 40킬로미터까지만 가자. 그 다음부터는 내리막일테니.
하지만 40킬로미터부터에서 오르막이 끝나지 않는다. 40-41킬로미터 구간은 가공할 오르막이다. 주자들이 기를 쓰고 달리다 터널 앞의 41킬로미터 표지판을 놓아두고 대부분 걸었다. 나는 걷지 않으니 몇 명의 주자를 제칠 수 있었다. 41킬로미터 이후는 그야말로 내리막이다. 그 동안 달려온 수고를 보상받는 기분으로 달렸다. 운동장 입구에서 피니시라인까지 200미터는 왜 그렇게 먼지 알 수가 없었다.
3시간 56분대로 골인, SUB-4에 성공했다.
잠을 못 자고도 이게 가능하다니.....
쌀 4킬로그램 받고, 완주메달, 사과잼, 홍보용 쌀 500g 받고 물품을 찾아서는 탈의실로 갔다. 나를 본 달림이가 말했다.
-소금 지도가 아주 멋지게 그려졌네요.
그러고 보니 검정 티셔츠에 허연 소금기가 목 둘레부터 가슴까지 번져 있었다. 풀코스 완주의 흔적인 것이다. 자랑스러운.
먹거리 좋기로 소문난 예산벚꽃마라톤.
어죽은 사라졌지만, 돼지고기, 두부김치, 국밥, 막걸리는 충분하였다.
땀으로 살을 뺀 만큼 보충하려는 기세로 열심히 먹었다.
오후 1시가 되기 전에 골인했고, 서울 가는 열차는 오후 4시 이후이니 여유가 많았다.
기록 문자가 날아오지 않아 스트레스가 쌓였다. 골인할 때 아무 소리가 나지 않은 게 문제였을까?
다음날 오후까지도 기다렸다. 니시스포츠에 전화했더니 내 기록이 2차 반환점에서만 나타난다고 하였다. 어이없어라.
2차 기록 업데이트할 때 찾아주겠다고 했는데 과연 가능할까? 무슨 수로......
대회 홈페이지에 다시 한번 하소연하는 글을 올렸다.
니시 스포츠측과도 통화했지만
제 기록을 꼭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칩이 방전되어 2차 반환 기록만 남아 있다고 하는데......
완주 기록 문의
강훈식 작성일: 2014-04-21 21:03:41 조회수: 11
니시 스포츠측과도 통화했지만
제 기록을 꼭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칩이 방전되어 2차 반환 기록만 남아 있다고 하는데......
1005 강훈식(풀코스)
3시간 56분 10초 전후로 완주했습니다.
1004번 주자가 저보다 몇 십 초 앞에 골인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사회자가 번호 좋다, 천사(1004) 들어온다고 해서 기억을 잘 하고 있습니다. 제가 바로 뒷 번호인 1005번이니 잊어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21킬로미터 1시간 57분대, 30킬로미터 2시간 49분, 32킬로미터 3시간 00분, 40킬로미터 3시간 42분으로 개인 체크하였습니다.
3년을 기다린 끝에 예산벚꽃 마라톤 풀코스에 참가한 것이니 기록을 찾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모자: Salewa 바이저 버프
겉옷: 하프마라톤 100회 완주 기념 특별 제작 기념 티셔츠
속옷: 없음
신발: 아식스 젤 SP트레어너(하프마라톤 대회 전용)
장갑: 미착용
바지: 월드런 반바지
양말: 디아도라 중목
목도리: 없음
테이핑: 왼쪽 종아리 세 줄/ 오른쪽 무릎 두 줄
'도전! 마라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 백마강 마라톤대회(2014/05/04)-FULL (0) | 2014.05.09 |
---|---|
4주 연속 풀코스 완주 메달을 모아서 (0) | 2014.04.22 |
제13회 합천벚꽃마라톤(2014/04/06)-FULL (0) | 2014.04.16 |
2014 제주 MBC 국제평화마라톤(2014/03/30)-FULL (0) | 2014.04.02 |
제9회 정남진 장흥 전국마라톤대회(2014/03/23)-FULL (0) | 2014.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