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0시 05분 서울을 출발하여 울산 신복로터리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 50분쯤.
좌석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눈만 감고 있었지 도무지 잤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것도 지난 해 고흥녹동마라톤 다녀올 때와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태화강대공원을 내려다 보는 전원아파트에서 사시는 지수 아버지와 3년만에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야식으로 돼지국밥을 함께 먹었는데 무리수였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긴 했으나 배가 꺼져야 잠시라도 눈을 붙일 것 아닌가?
누울 수 있는 공간을 얻었는데 눕지 못한다는 것은 아주 고역이었다.
속을 비운 채로 누웠으면 세 시간 남짓 숙면을 취할 수 있었을텐데.....
요 위에 앉아서 벽에 등을 붙이고 꾸벅꾸벅 조는 식으로 아침을 맞았다.
고단함과 피곤함, 수면욕과 두통.
그 상태에서 십리대밭교를 건너 마라톤 대회장까지 갔다.
지수아버지는 대회장 앞까지 배웅해 주고 돌아갔다.
일단 짐부터 맡겼다. 사람이 가득 들어찬 태화강 둔치를 떠나 십리대밭교를 다시 건넜다.
다소 번거로운 행보였는데 덕분에 화장실에는 사람이 없었다.
달리기 직전 내게 인사하는 분이 있었다.
큼직한 이름이 찍힌 배번에는 '박유근'이라고 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 블로그에 들러 방명록을 남겼던 허수아비라고 하시는데 정말 반가웠다.
온라인에서의 만남이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지다니.....
2주 전 풀코스를 3시간 40분대에 달리고, 지난 주 하프코스를 1시간 38분에 달린 페이스로 볼 때
컨디션만 조절을 잘 했다면 아예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서 뛰어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면 부족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따르기로 했다. 강윤중 진인규씨.
강윤중씨는 경남고성마라톤 때에도 인연을 맺었던 페이스메이커였다.
거의 10킬로미터까지 페이스메이커를 따르는 사람은 딱 두 사람이었다.
나와 8216번 주우남씨.
줄곧 내 옆에 있으니 익숙해지고 친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먼저 물었다.
-지금 입으신 아식스 티셔츠는 어느 대회 기념품인가요?
-작년 경주동아마라톤 대회 기념품이예요.
-늘 춘천마라톤 1주일 전에 있어서 나갈 수 없었던 대회네요. 하지만 올해는 꼭 나갈 겁니다.
그 분과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 분도 경남고성마라톤에 참가하였으며, 이번이 78번째 풀코스 도전이며, 그동안 살이 10킬로그램이나 쪄서 SUB-3에 도전하던 일이 너무 오래 전의 느낌이라고 했다.
벚꽃이 만발하니 눈이 호강한다. 태화강 벚꽃마라톤이라고 이름을 바꿔도 되겠다.
10킬로미터가 54분대이니 빠르다. 페메들이 초반에 일부러 빨리 달리고 후반에 속도를 늦춘다고 했다.
저쪽이 신시가지이다. 바닷가쪽에 대형 사장교를 만들고 있다.
어릴 때 태화강은 중간 중간에 흙더미가 많았다. 바닥을 정비한 것이다.
일본사람 몇 사람 나왔다고 국제마라톤이라고 명명했는데 좀 문제가 있다.
서울에서 밤차타고 오다 보니 무척 졸렸는데 하프 정도 달리고 나니 이제 정신이 돌아온다.
다음 주에는 소백산영주마라톤 나갑니다. 저는 합천마라톤에 나가는데요.
그 다음 주에는 경주벚꽃 마라톤 나간시단고요. 저도 그것 나가고 싶었는데 경주벚꽃마라톤 다음 날 대구국제마라톤 풀코스를 달려야 해서 포기했답니다.
올해 6대 광역시에 열리는 마라톤 풀코스를 모두 나가려고 하는데 지난 3월 1일 광주는 다녀왔고, 오늘이 울산, 4월 14일이 대구, 4월 21일이 대전이지요. 가을에 인천과 부산에서 달리면 목표 달성이 됩니다.
울산 지리 공부를 제대로 했다.
30킬로미터 지점까지 갈 때까지 대화는 끊어지지 않았다.
말을 하면 에너지 소비가 되기 마련이지만 달리기가 덜 힘들고 덜 지겨워진다.
많은 정보도 얻는가 하면 사람사는 이야기도 듣게 되는데 기록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주우남씨는 지난 1월 고성에서 4시간 15분으로 달렸다고 했다.
오늘은 SUB-4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했다.
나는 계속 물었다. 힘들지 않느냐고.
그 분은 30킬로미터를 가기 전에 먼저 치고 나가라고 했다.
35킬로미터가 나오기 전에는 좀 참아야 하니 같이 가자고 했다.
30킬로미터를 지날 때 내가 귀띰하였다.
-지금 시간으로 볼 때 이제부터 KM당 6분씩에 달려도 충분히 SUB-4는 합니다.
내 말을 듣고 여유가 생기셨는지 속도를 조금 늦추시는 것같았다.
레이스 순서는 강훈식-주우남-4시간 페이스메이커가 되었다.
35킬로미터 지점을 지났다.
강건달 타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피곤했다. 올 해 네 번의 풀코스에서 보여 주었던 후반부 역주를 하기가 어려웠다.
좀 두려웠다.
뒷골이 당기는 것같고, 가슴이 아픈 것같기도 하고.
앞에 있던 주자들이 내 뒤로 밀려오고, 뒷 주자들은 나를 추월하지 못했지만 내가 35킬로미터 달릴 때 경험했던 광분의 스피드는 아니었다.
38킬로미터쯤 가니 대회장 애드벌룬이 보이는데 그게 더 힘들었다.
좀처럼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느낌이었다.
참! 40킬로미터까지 가면 인간이 할 일은 다 한 거지.
남은 2.195킬로미터는 신이 도와준다고 믿어야지.
40킬로미터를 달려온 인간에 대한 보상을 신이 해 줄테니 하나도 힘들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착각이다.
힘든 것은 힘든 것이고, 고통을 다르게 이겨 보려는 자기 암시일 뿐이다.
동아마라톤에서 앞꿈치를 너무 많이 써서 피멍을 들게 하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착지에 특별히 신경을 썼더니 오늘은 그런 일이 없었다.
40킬로미터 지점에서 만난 일본인에게는 '감바테 구다사이'를 외치는 여유를 부렸고,
41킬로미터 지점에서 걷고 있는 달림이에게는 '다 왔는데 함께 뛰시죠'라고 독려도 했다.
35번째 풀코스 완주.
풀코스를 35번 도전하여 35번 모두 완주한 건 행운이다.
골인한 후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부재중 전화 한 통.
지수 아버지였다.
울산역까지 태워주시겠다고 하였다.
1킬로미터 남짓 전원아파트쪽으로 걸었다.
걸으면서 웜다운을 제대로 했다.
오늘부터 시작된 5주 연속 풀코스 도전.
다음 주에는 수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영주로 가야 할지 고민이다.
4월 7일 영주, 14일 대구, 21일 대전, 28일 군산.....
5월 1일과 4일과 5일은 하프 달리고, 5월 12일이나 19일 중에 한번은 하프, 다른 한번은 풀,
5월 26일은 압록강.
6월 2일은 하프, 6월 6일은 풀.
계획이다.
모자: Salewa 바이저 버프
겉옷: 2006년 춘천마라톤 아식스 기념 티셔츠
속옷: 민소매
신발: 아식스 타사게일 와이드2 마라톤화(풀코스 전용)
장갑: 지하철에서 구입한 코리아 장갑(천원짜리)
바지: 아식스 반바지
양말: 아디다스 중목
목도리: 밀레 버프
테이핑: 오른쪽 무릎 두 줄/ 왼쪽 종아리 세 줄..... (선물받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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