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마라톤은 올해 다섯번째였다.
2006년 풀코스 머리를 얹은 것을 시작으로 늘 짝수년도에만 달렸는데 올해는 홀수년인데도 달렸다.
작년에 동마 기록을 깨뜨렸는데 올해는 그것보다 1분 30초 정도 빨랐다.
봄에는 기록 같은 것을 신경쓰지 않는 내게는 어부지리같은 수확이었다.
만약 B그룹에 4시간 페메가 있었다면 나는 줄곧 4시간 페메를 따라붙었을 것이다.
4시간 페메는 C그룹에 있다. B그룹에는 3시간 40분과 3시간 50분 페메가 있었다.
일단 3시간 50분 페메 그룹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내 몸이 못 따라가 주면 과감하게 즐런(Fun Run)으로 전환하겠다는 융통성을 부리기로 했다.
여느때보다 조금 늦게 광화문 광장에 닿다 보니 엄청난 인파가 보였다.
달림이뿐만 아니라 달림이를 응원하는 가족들까지.
화장실 한번 가려고 해도 늘어진 장사진(長沙陳)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소변 한번 보려고 10분 이상 기다리는 건 못할 짓이었다.
광화문광장에서 좀 떨어진 방송통신위원회 건물 화장실을 이용하니 조금 여유가 있었다.
8시 엘리트 그룹이 출발하고 난 뒤 나는 8시 10분이 되기 직전 출발하였다. 3시간 50분 페메를 100미터 쯤 앞에 놓고 달렸다.
너무 사람이 많다 보니 1킬로미터 표지판을 찾지 못했다. 내가 어느 정도 페이스로 달리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날씨는 지난 해보다 쌀쌀했다.
2킬로미터 지점에서 기록을 체크해 보니 내 페이스는 3시간 58분 정도였다.
가림막으로 막혀 있던 숭례문을 보고 잠시 감회에 잠기고, 늘 그랬던 대로 청계천을 왔다갔다 하며 거리를 늘렸다.
부모산 마라톤 클럽 회원에게 '부모산'이 무어냐고 물어 보았다. 청주에 있는 산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지난 주 청주에서 무심천 따라 달릴 때 매우 궁금했었다고 하니 그분은 내가 청주에 들렀다가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동질감을 느끼는 것같았다.
5킬로미터를 가기 전에 소변이 마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7킬로미터까지 버티다 골목길에서 달림이가 튀어나온 것을 보고 소변볼 자리가 있구나 하고 그 방향으로 뛰어들어갔다. 볼 일 보는 데 꽤나 걸렸다. 소변볼만한 자리도 아니라서 그야말로 노상방뇨가 된 것같아 미안했다. 상가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는데 가게 주인이 오늘 문을 열지 않기를 빌었다. 오늘 저녁에 비가 온다고 했으니 바닥을 말끔하게 씻어줄 거야. 소변 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가게 주인이 나를 욕하지 않기를!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고 차분하게 달렸다.
이번처럼 주변을 살피면서 달린 것은 처음이었다. 시민들이 응원을 보내주는데 작년까지도 이러지는 않았던 것같다.
언젠가는 운전자가 우리에게 '야! 이 *새*들아!'라고 욕을 퍼부은 적도 있었는데.....
17킬로미터를 지나면서 종로로 들어왔다.
5층 건물의 다이소도 보이고, 알라딘 중고서점 종로점도 보였다. 서울극장도 보였다.
하프 기록은 지난 해보다 2분 가량 늦었지만 초조해 할 것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 해보다는 후반 레이스 운용을 잘 할테니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지난 해에는 15킬로미터부터 20킬로미터까지의 5킬로미터 구간 기록이 가장 빨랐지만 올해는 35킬로미터부터 40킬로미터 지점까지의 기록이 가장 빨랐다. 다른 5킬로미터 구간 기록과 비교할 때 2분 30초 이상 빠를 때도 있었다.
하프를 넘기면서 3시간 50분 페메 그룹을 제쳤다.
하지만 신답초등학교 앞을 지나면서 화장실에 들렀다 오다 보니 다시 밀렸다.
페메 김종우씨는 함성을 유도하면서 달림이들의 파이팅을 이끌어내었다.
개중에는 '힘이 남아 도나?'라고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용왕산마라톤클럽을 발견했지만 영훈이 아빠는 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27킬로미터 지점을 지나서는 죽기전에님을 1년만에 볼 수 있었다.
죽기전에님은 '강훈식선생님 파이팅'을 외쳐 주셨다.
나는 내내 35킬로미터 지점을 기다렸다. 잠실대교 북단.
35킬로미터 지점에서 잠실대교를 올라탈 때는 오르막이라 바로 스피드를 올릴 수는 없었다.
잠실대교를 빠져나가는 36킬로미터 지점에서 쿵쿵거리며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다.
피치를 올린 후 줄이지 않았고, 딱 두 사람에게 추월을 허용하였다.
오른편으로 잠실종합운동장이 보였다.
41.195킬로미터 지점에서 나는 알았다.
동아마라톤 최고 기록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골인한 이후 기다렸다.
권대현님을.....
(기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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