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애환(讀書哀歡)

길 위에서

HoonzK 2013. 3. 27. 20:48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길 위에서 다 읽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6번과 227번으로 두 권짜리 책이지만

부산까지 갖고 갔다.

부산 가는 열차 안에서, 장산초등학교 찾아가는 43번 버스 안에서, 장산초등학교 밖과 안에서 1권을 다 읽고, 2권에도 달라붙었다.

하프 타임 때마다 시간을 내어 몇 쪽씩 읽어 나갔다. 철저한 자투리 시간의 활용.

해운대구 재송동 발렌타인 모텔 201호에 들어선 것이 오후 6시 경.

들어가자마자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정수기와 냉장고 코드를 뽑고 내내 2권을 읽었다.

거침없는 자유인 딘 모리아티와 샐 파라다이스의 미대륙 종횡 여행기.

출판되자마자 잃어버린 세대의 다음 세대인 비트세대가 열광했던 책이다.

1947년부터 1949년의 미대륙 횡단기를 담은 책이지만 1957년에야 출간된 책이었다.

우리나라에는 2009년에야 소개되었다.

수시로 서가에서 보았고, 제목 때문에 자주 끌렸지만 두 권이라 부담스러워 차일피일 미루고 있기도 했고, 영어가 원작이니 원서로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여 선뜻 독서에 나서지 못했다. 영어권 명작은 거의 다 원서로 읽었던 경험이 브레이크를 걸었던 것이다.

프란시스 코폴라 제작, 월터 살라스 감독, 그리고 크리스틴 스튜어트, 샘 라일리, 비고 모르텐슨 등 출연하며 2012 깐느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On the Road>의 원작인데 영화를 언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벡스코 마라톤 대회장에서도 몇 부분을 읽었고, 부산 도시철도를 이용하면서도 부지런히 읽었다. 구포역 근처의 장수돼지국밥을 먹는 중에 2권까지 다 읽었다.

 

번쩍이는 거리 저편에는 어둠이 있었고, 어둠의 저편에는 서쪽이 있었다. 난 가야 했다. (1권 97쪽)

 

나는 최소한 미국 일주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거기에서 할리우드로 갔다가.... 텍사스를 지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다음 일이야 알게 뭐람. (1권 127-8쪽)

 

샐, 어디 있든간에 내 트렁크는 침대 밑에서 언제든지 꺼낼 수 있게 돼 있어.언제든지 나갈 수 있어. 언제 쫓겨나도 괜찮아. 나는 결심했어. 모든 것을 던져 버리기로 말이야. (2권 116쪽)

 

이들은 거침없이 떠난다. 나 역시 거침없이 떠나는 편이지만 샐과 딘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는다. 나도 20대 때에는 이들처럼 서울을 떠나 부산까지도 걸어가고, 제주도 해안도로를 따라 한 바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스케일에는 세 발의 피 수준이다. 뉴욕을 출발하여 시카고, 솔트레이크 시티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간 다음 로스엔젤레스,, 인디애나 폴리스, 피츠버그를 거쳐 뉴욕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조금은 다른 코스로 세 차례나 미대륙을 횡단한다. 급기야 덴버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멕시코 시티까지도 간다. 처음에는 히치하이크를 하여 이동하고, 현지에서 일을 하여 필요한 돈을 충당하기도 하고, 간단한 물품은 훔치기까지 한다. 매력적인 여자는 결코 그냥 지나치는 법이란 없으며, 형식이나 절제에 얽매이는 경우란 결코 없다.  땀과 즉시성, 본능에 의거한 움직임.

 

1993년 8월 서울-대전-대구-부산, 제주도

1994년 1월 7번 국도

1995년 1월 서울-아산-군산-영광-목포-강진-하동-진주-부산

 

거의 잠을 자지 않고 국도를 따라 500킬로미터도 걷고, 찬 바람과 눈을 맞아가며 800킬로미터도 국도를 따라 걸으며 나는 쉴 때마다 기록했었다. 펜의 잉크가 겨울에는 얼어붙기 마련. 그래서 샤프나 연필을 써서 수첩에 글을 적었고 삼각대를 이용하여 인증샷 개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간단한 문집으로도 내 기록을 타이핑하여 낸 적이 있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 글로 옮기고 싶다.

소설을 쓰는 것이다.

잭 케루악은 친구 닐 캐시디와 함께 사무치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는 기행문을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담을 소설로 승화시켰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경험. 그게 필요하다.

아웃도어 라이프. 그저 아웃도어 라이프의 기록으로만 끝낼 거라면 너무 허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