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8회 고흥우주마라톤(2012/11/25)-FULL

HoonzK 2012. 11. 26. 16:12

원래 나는 원주치악마라톤에 참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풀코스 연속 도전 공언을 실천하다 보니 행선지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풀코스가 열리는 대회가 극히 드물었다.

결국 나로호 발사하는 고흥 녹동까지 가야 했다.

2012년 11월 25일 자정 서울을 떠났다. 새벽 3시 20분 광주버스터미널 도착.

5시 3분 광주를 떠나 벌교 고흥 지나 녹동에 도착한 것이 7시.

거의 잠을 자지 못하였다. 자더라도 수시로 깼다. 새우잠조차 1시간도 채우지 못한 것은 풀코스를 앞에 둔 주자로서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미리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마라톤에 나섰다가 쓰러져 유명을 달리했거나, 정신연령이 유아 수준으로 떨어져 버린 사례를 이따금 접한 나로서는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오전 10시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어떻게든 쉬어 보려고 애썼다. 녹동신항 연안여객선터미널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출발 시간을 놓칠까봐 신경을 쓰다 보니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주로에서 눈을 감고 달리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어제 왔어야 했는데. 어제 와서 숙박했으면 이렇게 고생할 일이 없는데.....

양구에서 달렸던 대회와 많이 닮아 있었다. 그때도 잠을 자지 못하고 풀코스를 달렸으니.

그때는 더웠고, 후반부에 오르막이 너무 많았고.

이번에는 덥지 않고, 이따금 큰 오르막만 있을 뿐 비교적 평탄한 편이고.

7킬로미터쯤부터 4시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렸다. 하지만 화장실에 다녀온 13킬로미터 지점부터 떨어져 반환점까지 100여미터 뒤쳐져 달렸다. 시간에 대한 집착은 버렸다. 빨리 달리려다가 죽을 수는 없으니.

고흥의 바다를 즐기려 애썼다.

스태프들에게 지명을 묻기까지 했다.

-저기 저 산 이름이 뭐예요?

-천등산이요.

-아! 천등산이요.

거금대교도 바라보고 풍남항도 내다보고.

견딜만했는지 반환한 이후부터는 4시간 페메인 박경오, 김양수씨와 동반주를 했다.

반환하기 전까지 내 앞에서 4시간 페메와 동반주했던 현대삼호중공업마라톤 삼총사는 앞으로 치고 나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내 페메가 되어줄 수 있을 것같았다. 오르막이 나오면 문춘식씨는 큰소리로 구령까지 붙이고 있었으니 조용한 페메보다는 훨씬 나아보였다. 하품하면서 열심히 달리고 있으니 뒤에서 서슬푸른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는 나를 따라붙어 기어이 제쳤다. 100회 마라톤클럽의 홍문성씨였다. 기세좋게 달리고 있었다. 그와 다시 가까워질 때도 있었지만 그는 12킬로미터 이상 내 앞에서 100미터 앞서서 달렸다. 목표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고도 싶었지만 SUB-4라는 대답이 나올 게 예상되어 말을 걸지는 않았다. 혹시 모르지. 그는 나를 제치고 싶었는지도.

 

열심히 달리다 보니 머리를 말아 묶은 날씬한 각선미의 달림이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사람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 백석기씨.

-와! 전 여자인지 알았어요.

-그랬나요? 죄송합니다.

 

가공할 오르막이 몇 차례 나타났다.

홍문성씨는 오르막을 만나면 걷기도 하는 것을 보아 서서히 지쳐 가는 것같았다. 치고 나가지 말고 나와 동반주를 했다면 좋았을텐데.

35킬로미터 이후 그는 내 뒤로 사라졌고, 이후 내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나보다 4분 14초 늦게 골인하였다.

현대삼호중공업마라톤 삼총사는 도대체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았다. 내내 이븐페이스였다. 또한명의 현대삼호중공업마라톤 동호회의 김영진씨는 몹시 쳐졌다가도 기세좋게 내 앞으로 달려 나갔는데 이번 대회에서 35킬로미터 이후에도 나를 제친 유일한 마라토너로 남을 것같았다.

현대삼호중공업마라톤은 어느새 사총사가 되어 동반주를 하고 있었다.

어느새 40킬로미터. 인간이 할 수 있는 소임은 다했다. 40킬로미터 이후는 신의 영역이라고 하니까 부담은 덜었다.

41킬로미터를 지나면서 발걸음은 빨라졌다. 어느새 삼호중공업팀을 제치고 있었다. 그들은 따라올까? 승부욕이 강한 김영진씨가 나를 내버려둘까? 그는 후반부에 나를 네 번 넘게 제친 사람인데. 남은 거리 700여 미터 내 뒤에서 바짝 따르는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중공업팀은 나를 내버려 두었다. 그들보다 나는 44초 빨리 골인하였다.

죽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뒷이야기는 있다. 15시 30분 녹동 출발한 버스가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23시 30분이었다. 주차장같은 경부고속도로였다.

휴게소에 6시 40분경에 들른 후 화장실을 5시간 가까이 가지 못했는데 이건 지옥같은 고통이었다. 이인휴게소에서 왜 나는 롯데리아에 들러 불고기버거세트를 시키고 콜라를 실컷 들이켰던가?

23시 38분 독립문행 3호선 지하철 막차를 달려가서 탔다. 대회장에서 얻은 생수 20병 한 상자를 들고 뛴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생수 때문에 고흥 해풍미 5킬로그램까지도 사 오지 못했는데...... 충무로역에서 내린 사람들이 빛의 속도로 달렸다. 4호선 열차를 잡으려고. 그러나 시간은 23시 55분. 일요일에는 4호선 막차가 23시 51분에 끝난다. 솔직히 일요일에 지하철 운행 시간을 더 늘여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방에서 늦게 출발해도 막히지 않아 서울에 빨리 도착하는 평일에는 1시간쯤 지하철 운행 시간이 긴데.... 이해할 수 없다. 지하철이 끊긴 나는 얼마나 고생했는가? 비도 쏟아지고 있는 자정의 서울.  

 

 

 

 

 

 

 

 

 

 

 

 

 

모자: Salewa 바이저 버프

겉옷: 2011년 춘천마라톤 아식스 기념 티셔츠

속옷: 없음

신발: 아식스 타사게일 와이드2 마라톤화(풀코스 전용)

장갑: 지하철에서 구입한 코리아 장갑(천원짜리)

바지: 아식스 반바지

양말: 아디다스 중목

목도리: 시장표 버프

테이핑: 오른쪽 무릎 두 줄/ 왼쪽 종아리 세 줄..... (선물받은 것)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따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