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를 완주한 후 지인과 엄니식당에서 식사를 했던 것은 지난 20회 대회와 똑같았다. 1년 전에는 내가 풀코스에 참가한 로운리맨님을 기다렸고, 올해는 10킬로미터를 완주한 아세탈님이 나를 기다렸다. 지난해와 똑같은 코스를 달리고 나이는 한 살 더 먹었지만 기록은 2분 가량 빨라졌다. 완주한 후에도 풀코스 달리는 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과 10킬로미터를 달린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의 차이가 기록을 다르게 만든 것 같다. 사실 몸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두 달 넘게 대회에 참가하지 않으면서 몸을 방치하고 있은 셈이라 3주 전까지만 해도 두툼하게 잡히는 옆구리살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 하프를 두 시간 넘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러닝 앱을 동원하여 부랴부랴 훈련해서 살을 뺐다.
지난 해 하프 완주자는 483명이었지만 올해는 1259명이나 되었다. 이 대회에서 풀코스 종목이 없어진 것이 하프 인원이 많아진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프 출발이 8시 30분이라 여느 겨울 대회보다는 빠른 것이었다. (2월 25일 열리는 챌린지 레이스는 풀코스 출발이 9시 30분이다.)
출발 전에는 아세탈님을 보지 못했다. 대회를 마치고 식사하자는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골인점에서 아세탈님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었다. 첫 1킬로미터를 6분 20초에 달렸지만 마지막 1킬로미터를 5분 이내로 달린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면 아무래도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기게 마련이었다.
2시간 페이스메이커 세 명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출발했지만 페메도 나 자신도 속도가 지지부진했다. 참가자가 1200명이 넘으니 시장통처럼 붐벼서 속도를 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유를 갖고 달렸다. 주로가 정리되면 자연스럽게 빨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가끔 무릎이 아팠지만 그때마다 주법을 고쳐서 회복시켰고, 슬슬 땀이 나면서 속도를 올려보기도 했다. 가끔 느끼는 햄스트링 통증은 달리는 동안 없었다. 한강 주로에 새로 설치된 거리 표지 기둥과 주최측에서 설치한 거리 표지판이 차이가 있었지만 신경쓰지 않고 달렸더니 5킬로미터를 28분 16초에 통과할 수 있었다. 5분 40초 1시간 59분대 골인이 가능해졌다. 이때부터는 페이스메이커 앞에서 달렸고, 10킬로미터를 달리고 난 뒤에는 2시간 이내 완주에서 1분 이상 여유가 생겼다. 반환점은 57분 37초에 돌았다. 현상 유지만 하면 예상 기록은 1시간 55분 14초였다. 실제 기록은 1시간 51분 59초 76이었다. 돌아올 때 화장실에도 들렀는데 갈 때 보다 올 때 3분 이상 빨라졌다. 이따금 버겁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늘 해오던 대로 꾸준히 발걸음을 놀리다 보면 골인 지점이 멀지 않을 것이라며 마음을 달래었다. 월드컵대교, 성산대교, 안양천 합수부, 서강대교, 마포대교는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이흥의님을 만나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하프 주자 가운데 아는 사람은 단 두 사람이었다. 이흥의님과 달해아름다워님. 달해아름다워님은 1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 풍선을 달고 있어서 애당초 함께 달릴 수 없었다.
출발할 때는 체감온도가 영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온도가 오를테니 반바지를 입어 맨살을 드러냈다. 긴팔 티셔츠 한 장에 장갑만 끼고도 견딜만 했다. 초미세먼지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지만 쓰고 있던 마스크는 몇 백 미터를 가지 않아 벗어서 팔뚝에 걸었다. 바람은 조금씩 불었다. 견딜 수 있을 정도였다. 반환한 후에는 역광 속에서 달려야 했지만 구름이 끼어 햇빛을 가려준 덕분에 눈부실 일은 확 줄었다. 후반에 갈수록 속도가 붙어서 초반에 킬로미터당 6분 전후로 달린 것이 내가 맞나 하는 생각도 여러번 했다. 5킬로미터를 채 남기지도 않고 화장실에 들렀는데 참고 달려도 괜찮았겠지만 달리면서 한 순간이라도 화장실을 머리 속에서 지우고 싶어 들렀다. 화장실에 들른 후 오히려 빨라졌다. 시간을 잃은 것을 보상받으려는 심리 아니었을까 싶다. 후반에 빨라진 것은 금천병민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반환점을 나보다 1분 20초 빨리 통과한 이 분을 골인하기 몇 백 미터 전에 추월하여 이 분보다 10초 쯤 기록이 좋았다.
아세탈님과 식사를 하고 난 뒤에도 11시밖에 되지 않아 한강변에 앉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봄 날씨같은 기온 속에서 마라톤 이야기, 경제 이야기, 영화 이야기, 여자 이야기 등등. 대회장에서 만난 것은 무려 5년만이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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