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15회 구로구청장배 마라톤대회(2022/11/20)-10KM

HoonzK 2022. 12. 6. 16:35

지하철 1호선 구일역에서 안양천변광장까지는 몇 십 미터 떨어져 있지 않았다. 대회장에 너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천변에 앉아 1시간 정도 책을 읽고 있어야 했다. 원래 나는 그 시각에 손기정평화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고 있어야 했다. 풀코스 준비가 되지 않아 못 달린다면 손기정 대회에서 10킬로미터라도 달려야 했다. 참가 신청을 하기도 전에 접수가 마감되어 버렸다. 希洙형님도 손기정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했는데 신청 후 결제를 했다고 착각한 탓이었다. 배번과 기념품이 오지 않아 확인해 보았더니 접수는 했지만 결제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다. 형님 사는 동네가 구일역 안양천변광장과 멀지 않으니 이 대회에라도 나와 함께 달리시길 권유했지만 거절하셨다. 이번엔 쉬고 그 다음주 영등포구청장배 대회에서 보자고 했다.


대회 출발 시각은 9시 30분이었다. 대회장에서 몇 백 미터 떨어져 책을 읽다가 행사가 한창 진행중인 9시 10분 쯤 이동했다. 참가 규모가 200명 전후라 물품을 맡기는 데 시간은 걸리지 않았지만 화장실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 하나로는 참가 인원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몇 백 미터 떨어진, 책을 읽었던 곳까지 돌아가 소변을 보려고 했지만 공공시설물엔 아예 큰 글씨로 공지된 글이 있었다. 화장실 이용 불가. 일반인은 들어오지 말라는..... 결국 9시 25분 쯤 대회장으로 돌아오는데 10킬로미터 주자들이 출발하고 있었다. 예정된 출발 시각보다 빠른데! 신정교, 오목교, 목동교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둔덕에 화장실이 있으니 거기서 근심을 풀기로 마음먹고 나도 재빨리 출발 대열에 합류했다. 오늘 목표가 1시간 이내 완주인데 화장실에 다녀오면 1분 이상 손해 볼 것이었다. 화장실 이용 시간을 벌어 두어야 했다. 1킬로미터마다 거리 표지판이 있는 게 아니라 페이스를 파악할 수 없었다. 마스크를 내렸다 올렸다를 거듭하며 6분 정도 달리다 마스크를 아예 벗어 오른쪽 팔뚝에 걸었다. 그 이후 골인할 때까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2킬로미터 표지판이 있었다. 10분 15초가 걸렸다. 화들짝 놀랐다. 5분 7초대의 페이스라니. 속도를 늦추면서 호흡 조절을 했다.(사실 속도를 늦추었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3킬로미터 표지판은 없고 4킬로미터 표지판이 있었다. 20분 09초였다. 2킬로미터에서 4킬로미터 가는 데 걸린 시간은 9분 54초. 믿기 어렵지만 5분 안쪽의 페이스로 들어온 것이었다. 반환점 기록이 25분 7초였다. 조금 더 빨라지고 있었다. 반환한 이후에는 더 맹렬하게 달렸다. 훈련 때 아무리 빨리 달려봐야 6분대였고, 대부분 7분 페이스였는데 속도를 올리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지난 주 5킬로미터 대회를 준비하면서 10킬로미터 이상의 훈련을 월, 화, 수, 금요일 소화했지만 정작 이번 주에는 거의 뛰지 않았는데..... 돌아오는 5킬로미터는 4분 40초대의 페이스인 23분 22초에 달렸다.

48분 29초 25

코로나 유행 이후 최고 기록이었다.

2020/07/26 56분 40초
2021/03/14 49분 59초
2021/05/29 49분 58초
2021/06/19 49분 44초
2022/04/16 53분 50초

이게 개별 출발이 아닌 동시 출발이라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고, 주변의 비슷한 페이스로 달리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승부욕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라톤 대회의 묘미가 이런 것일 수도 있다. 혼자 훈련하는 것과 함께 달리는 것의 차이는 극명하다. 그동안 대회가 있어도 개별 출발이라 내내 혼자 달리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의외로 빠르긴 했지만 달리기 모양새는 영 아니었던 것 같다. 골인점이 가까워질수록 오만가지 인상을 쓰고 숨을 헐떡이는 꼴이 스스로도 보기 싫게 느껴졌다. 미리 훈련을 잘하고 출전한 것이 아니라 대회에 나와 훈련하는 셈이니 그런 몰골이 되었다. 10킬로미터 지속주를 해 본 것이 7개월만이라 두려움도 있었다. 마라톤 대회에서 사고는 10킬로미터 종목에서 많이 나니 주의해야 한다고 허수아비님과의 통화에서도 확인하지 않았던가? 반환한 이후 어느 누구에게도 추월당하지 않고, 반환하기 전 나를 추월했던 주자를 다시 추월하면서 오랜만에 달리기에 진심이었다. 반환하기 전까지는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반환한 후에는 참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달리면서 완주한 후 화장실에 들르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10킬로미터를 48분대에 다시 달릴 수 있어 자신감은 얻었지만 따라온 것이 있었다. 다리에 알이 배겼다는 것. 세상에, 10킬로미터를 달리고 알이 배기다니.....

구일역에서 하차하니 대회장이 바로 보였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라 관계자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주최측은 마라톤 홈페이지를 마라톤 TV에서 빌려서 접수를 받았다. 대회 직전까지도 입금 확인이 되지 않았고, 대회 전 참가 안내 문자도 없었다.

 

한강 방향으로 달려갔다 돌아오는 것으로 주로가 준비되어 있었다.

 

10킬로미터, 5킬로미터 종목 남녀 1위부터 3위까지 시상하는데 시상품은 쌀 10킬로그램이었다. 젊은 친구들은 이 상품을 받아보고 싶었던 모양인데 주로에서 포기 모드로 들어가 서로 대화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아저씨들 ㅈ나 빨라!

 

고척스카이돔이 보이는 곳에 앉아 책을 읽었다. 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11월이었다.

 

캡 창 부분이 땀으로 흐뻑 젖었다. 날씨가 더웠다는 뜻이다.

 

참가비 1만원에 기념품은 물통이다. 보온 보냉이 되는 제품으로 보인다.

 

상상하기 힘든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