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생활이다

JTBC 서울마라톤, 달린 건 아니고(2022/11/06)

HoonzK 2022. 11. 18. 11:37

새벽 6시 30분 서울월드컵경기장 앞에 있었다. JTBC 서울마라톤 참가자가 아닌 관람자 또는 응원객 입장이었다. 만여 명의 인파 속에 둘러싸여 마라톤 메이저 대회의 규모가 어떠한 것인가 되새기고 있었다. 서울에서 메이저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것은 코로나 대유행 이후 처음이었다. 코로나 이후 내 생애 다시는 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모이는 마라톤 대회는 없을 수도 있다고 믿었다. 1시간 밖에 자고 나오지 않아 비몽사몽간을 헤매고 있어 언뜻 꿈을 꾸고 있지 않는가 싶었다. 성하형, 희규형님, 로운리맨님을 차례로 만나면서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하형의 딸과 사위도 만나 인사도 나누고, 로운리맨님의 보온용 비옷도 맡아주고, 사진도 찍어주면서 잠은 완전히 달아났다. 3년 전 한숨도 못 자고 달렸던 이 대회에 다시 돌아왔지만 나는 결국 마라톤 참가자가 아니었다. 1월 1일 풀코스를 달린 이후 몸을 망가뜨리는 나날을 보내온 나머지 풀코스 완주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14년 내리 달렸던 춘천마라톤까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전 7시 30분 출발이라 별로 기다릴 것도 없었다. 출발 직전 던져 버리기에는 너무 비싸 보이는 로운리맨님의 비옷을 받아 배낭에 넣으면서 로운리맨님에게 했던 경고(?)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골인지점인 잠실종합운동장에 먼저 가 있을게요. 11시 30분까지 골인하지 않으면, 즉 SUB-4 하지 않으면 이 비옷은 돌려받을 수 없을 거예요. 바리케이드 밖에서, 계단 위에서, 육교 위에서 출발 장면을 지켜보는데 처음 보는 장면도 아닌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대로를 꽉 채운 거대한 에너지가 앞으로 밀려나가는 것 같았다. 나도 저 에너지의 일원이 되어 서울 도심을 누빌 수도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 정상적으로 열린 두 개의 메이저 대회를 가차없이 날려버렸다.

광화문에서 1차, 군자역에서 2차 응원을 할까 하다가 25킬로미터 지점인 군자역에서만 응원한 후 잠실종합운동장으로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공덕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군자역까지 이동하는 동안 열심히 졸았다. 군자역 커피숍에 자리 잡고 앉아 책을 읽다가 3시간 10분대 주자가 지나갈 무렵부터 노변에 나가 있으려고 했다. 군자역에 도착해서 커피숍을 찾다가 엘리트 선수들과 마스터즈 고수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그냥 밖에 있게 되었다. GS25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커피를 사서 먹었는데 삼각김밥 먹는 시간도 줄 여유가 없어 보이는 주인이 청소한다고 자리를 비켜 달라고 해서 노변에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 텅텅 비어 있던 주로가 마스터즈들로 서서히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놀림을 보고 아무리 요즘 운동을 안하고 있어도 내가 평소에 저 정도는 달리지 않을까 하는, 아주 건방진 생각을 했다. 페이스메이커가 달고 지나가는 파란 풍선에는 3시간이라고 찍혀 있었다. 아니, 이렇게 달리기 감이 없어졌나? 2시간 50분대 주자의 발놀림을 보고 얼마나 빠른 것인지 모르고 있단 말인가.

지인들 가운데 가장 빨리 만난 사람은 희규형님이었다. 그리고 로운리맨님이었다. 3시간 20분대의 질주였다. 헬스지노님, 성하형, 의계형님, 기옥형님 등을 물밀듯이 밀려오는 인파 속에서도 찾아내었다. 4시간 10분대 주자가 지나갈 때까지 군자역에 있었다. 잠실종합운동장에 가서 그 동네 사는 차니부를 만났다가 골인 지점으로 갔다. 시간이 지체되어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부터 보게 되었다. 3시간 30분 03초에 골인한 희규형님은 볼 수 없었고, 후반에 페이스를 늦춘 로운리맨님은 볼 수 있었다. 일정한 페이스로 달리는 주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추월을 시도하는 주자를 보기도 했는데 나도 저랬을까 되묻게 되었다. 이들의 달리기는 나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메이저 대회에 나와 열심히 달리는 주자들을 보면서 응원하다 보면 나도 다시 달리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거라고 믿었는데 더이상 내가 순진하지는 않은가 보다. 마라톤하는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처럼 느껴지고 있으니. JTBC 마라톤 대회에 나와 더 그렇게 느끼고만 있었다.

오마이걸 유아가 모델이었다. 그녀가 출연한 MNET 예능프로그램 '달리는 사이'를 빼놓지 않고 본 기억이었다. 'RUN'이 남성, 해외 버전이었다면 '달리는 사이"는 여성, 국내 버전이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대비되는 프로그램. 즉 대규모 집합과 거리두기 달리기의 극명한 차이.

성남까지 왕복하던 코스에서 벗어나 서울 도심을 뚫고 달리는 새로운 코스


상암월드컵경기장 앞 (START) – 양화대교 – 여의도 – 마포대교 – 충정로 – 서소문 고가도로 – 시청 – 광화문 세종대로 – 종로 – 신설동
– 신답역 사거리 – 군자역 사거리 – 아차산 천호대로 터널 – 천호대교 – 한체대 둔촌사거리 – 가락시장 사거리 – 수서IC – 삼전사거리
– 잠실 종합운동장 메인 스타디움 (FINISH)


오전 6시 42분 월드컵 공원

성하형 가족들.... 아빠가 풀코스 700번을 넘게 뛴 분이니 딸과 사위도 10킬로미터 종목에 참가하게 되었다.

신발끈을 동여매는 성하형

물품보관 트럭 앞에서 만난..... 로운리맨님, 희규형님도 함께.....

출발 직전의 광경

월드컵경기장 계단 위에서 내려다본 주자들


대회 책자를 한 권 구했다

인형같은 외모의 유아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요즘 오마이걸 멤버들은 바쁘다. 래퍼 미미는 예능프로그램에, 막내 아린은 광고 모델로....

3년 전보다 참가인원이 줄었는데도 어마어마한 참가자다

군자역에 도착했다

엘리트 선수가 지나가고 있었다

간단하게 요기할 생각으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커피를 샀다

광진군자역점 앞 의자에는 거의 앉아 있지 못했다. 삼각김밥 한 개를 입에 물었는데 청소한다고 주인이 비켜달라고 했다.

2시간 50분대 주자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파란 풍선을 단 페이스메이커를 따라가면 서브3 주자가 될 수 있다.

여유있어 보이는 희규형님

힘이 넘쳐 보이는 로운리맨님

팔까지 들어 답할 정도로 여유있어 보이기까지

성하형 찾아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응원나온 아우를 발견하지 못하고 질주를 거듭한다

뒤늦게 알아보고 돌아보는.....

골인 지점 앞쪽 바리케이드에 자리잡고 있다가 로운리맨님을 발견했다

로운리맨님이 줌

잠실새내역 근처 용추골 식당에서 로운리맨님, 희수형님과 순대국을 먹었다. 주로에서는 희수형님을 보지 못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순대국.... 운동은 하지 않고 잘 먹기만 한다. 돌아오는 일요일에 5.7킬로미터 종목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