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광진구청장배 마라톤대회. 예전같았으면 무조건 하프를 신청해서 달렸을텐데 이제는 운동 부족으로 대회 참가 신청하는 것도 두려워졌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대회 신청 마감이 되고 말았다.
2019년 10월 19일 제4회 마라톤대회 하프 종목에 참가해서 49위에 입상하여 트로피를 받았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2020년, 2021년 대회가 열리지 않았고 이번이 5회 대회였다. 이번에도 100위까지 트로피를 준다고 했는데 100위 기록이 1시간 45분 20초였다. 요즘 몸상태로는 절대 입상이 불가능할 기록이었다. (4회 대회 때에는 1시간 42분으로 달렸었다.)
대회장에 가긴 가야 하는데 현장 접수할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대회장에 가서 10킬로미터 쯤 달리고 돌아와 은수님을 만날 계획을 세웠다. 대회 전날 밤 계획을 수정했다. 은수님을 만나기는 만나는데 집에서 출발하여 대회장인 뚝섬수변공원까지 달려가서 만나기로.
10시 30분 전후 골인할 은수님을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대회장까지는 15킬로미터 남짓 될테니 2시간 전인 8시 30분쯤 출발하면 되겠다 싶었다. 왜 그런 착각을 했을까? 대회장까지는 하프를 훌쩍 넘는 거리였는데. 찬찬히 생각해 보면 청계천 합수부까지만 가도 17킬로미터가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달리는 도중 20킬로미터는 조금 넘겠지만 하프(21.0975킬로미터)까지는 안 될 거라고 믿었다. 대회장에서 2시간 전후해서 골인할 은수님을 만나면 '오늘, 형님보다는 조금 짧게 뛰었네요'라고 달리기 소회를 밝힐 생각이었다. 내가 실제로 달린 거리는 24.55킬로미터였다. 편의점에 들르면서 거리가 조금 늘어나고, 대회장에 와서 스트라바 러닝앱 가동을 멈추지 않아 좀더 보태어졌지만 하프를 3킬로미터 이상 상회하는 거리를 달린 것은 틀림없었다. 요즘 훈련량으로 볼 때 무지막지한 오래달리기였다. 이 정도 거리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거였다. 당초 계획보다 한 시간 일찍(7시 30분) 출발한 덕분에 그래도 늦지는 않았다.
속도를 최대한 늦추어 버티기에 들어갔지만 칠부바지에 사타구니가 쓸리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우이천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그만 달리고 돌아갈까 하는 회의도 들었다. 은수님을 만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정말 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우이천 중랑천 합수부 광장에는 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혀 정보를 얻을 기회가 없었는데 이 무슨 뜬금없는 상황인가? 대회장으로 이동중인 동대문마라톤클럽 두경이 형님까지 만났다.
그리고 외롭고 지겨운, 느리디 느린 발놀림. 언젠가 이 달리기도 끝나겠지, 자신을 꾸준히 달래가며 나아갔다. 잔뜩 흐린 날씨라 햇볕을 받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습도가 80%라 땀은 어지간히 흘렸다. 웃도리는 말할 것도 없고 아랫도리까지 축축해졌다. 러닝앱에 2시간 58분 21초 동안 달린 것으로 기록되었다. 구간 기록 가운데 가장 빠른 게 6분 04초였고, 대부분 7분대였다.
대회장에 도착했을 때 2시간 페이스메이커가 들어왔다. 이리저리 대회장을 누비다가 주로로 나아가 은수님을 마중나갔다. 2시간 10분 페이스메이커도 들어오고 있었다. 지친 기색으로 다가오는 주자가 매우 낯익었다. 로운리맨님이었다. 이렇게 늦게 올 주자가 아니니 처음부터 늦게 출발한 것 같았다. 로운리맨님과 마주친 것은 그야말로 고작 몇 초 정도. 대화 한 마디 나누지 못하고 만나자마자 끝이었다. 정말이지 출전할 줄 몰랐는데.
잠시 후 은수님이 보였다. 하얀 장갑을 낀 은수님과 하이 파이브했다.
이 대회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그 인원이 팬데믹 유행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어마어마해! 거리두기가 필요없어 보였고, 마스크를 쓴 사람은 백 명 중 한 명 꼴이었다. 24.55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동안 KF94 마스크를 내내 쓰고 있던 나 자신과는 너무 비교되었다.
돌아올 때는 은수님과 동행했다. 웃도리야 미리 준비해 갔던 옷으로 갈아 입었지만 아랫도리는 축축하게 젖어 땀냄새를 피할 수 없었다. 전철에 앉을 자리가 나도 가지 않고 먼발치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땀냄새가 제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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