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치는 오월 하순 일요일 새벽
비옷을 걸치고 마스크를 쓴 채
도림천을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잡담도 하면서
달리기의 지겨움을 잊던 일은
코로나19 이후 아득한 과거가 되었다.
105길을 달리는 내내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하며
힘든 일도 내게 하소연하고
기쁜 일도 내게 떠벌린다.
철저하다 못해 처절하게 고독해야지
이 역주가 마무리되리라 연신 되뇌이며......
폭우가 쏟아지는 새벽이었다. 간헐적 게릴라성 폭우이긴 했지만 비가 내릴 때는 무서울 정도로 들이치니 코로나19의 위협도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마라톤 참가가 우려될 수밖에 없었다. 대회 참가를 망설이는 사람이 신도림역 앞에 있었다. 로운리맨님의 후배 원희님이었다. 전화 통화하다가 인사를 받는데 전화상으로 건달을 만났다고 하니 전화 통화 상대는 로운리맨님인 듯 했다. 내가 안내할테니 마라톤 힐링카페에 가자고 했으나 따라나서지 않았다. 비가 많이 내려 미끄러운 만큼 위험해서 안 될 것 같다는 말만 하고 전화 통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후 달리는 동안 원희님도 로운리맨님도 만나지 못했다. 원희님은 대회장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 버린 것이다. 로운리맨님은 아예 집을 나서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발길을 돌린 것인가?
나 역시 그냥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전투 의지를 끌어올려 달릴 준비를 하고 마라톤 힐링카페 지하에서 올라왔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굵은 장대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직 접수를 하지 않은 참가자 한 사람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바깥만 내다 보고 있었다. 이미 배번을 달았지만 나도 인천연형님, 긴팔병준님과 비를 피하고 있어야 했다. 이미 출발했을 성하형과 달물영희님은 흠뻑 젖었을 것이다. 비가 조금 잦아들 무렵 재빠르게 출발점으로 이동했다. 그칠 것 같던 비가 다시 들이치기 시작했다. 주최측으로부터 비옷을 얻어 입었다. 개별 출발이니 나 혼자 출발했다. 출발하기가 무섭게 발이 젖었다. 발목까지 차오른 주로의 물은 개울을 건너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릇된 선택을 한 것 같았다. 이미 달리기 시작했으니 끝까지 달리겠지만 몸은 고단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킬로미터 기록은 5분 40초였다. 이건 3시간 59분대 후반, 즉 간섭포(간신히 서브 4의 페이스)였다. 물길이 막고 비옷이 제어한 초반은 이렇게 속도가 지지부진했다. 오늘 3시간 30분대를 목표로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비가 내리니 3주 전보다는 덥지 않을 것이라 살짝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 몸은 내내 처져 있었다. 스피드를 올릴 수 없는 몸이었다. 누적된 피로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었다. 허기는 어찌나 자주 지는지 급수대를 지날 때마다 초코파이나 바나나를 먹어야 했다. 새벽에 삼각김밥 한 개 먹은 것으로는 에너지를 충전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거센 비에 두들겨 맞은 풀은 일제히 드러누워 마라톤 대회가 끝날 때까지도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물을 좋아하는 도림천의 오리도 불어난 물살을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산책로까지 올라와 뒤뚱거리며 걸었다. 유난히 크게 꽥꽥거리는 소리가 자신들에게 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던 비는 조금씩 잦아들었지만 적어도 하프를 넘을 때까지 내렸다. 5킬로미터는 올해 들어 최악이었다. 28분 20초. 여전히 간섭포였다. 발 아래 물웅덩이를 피해 보려고 애쓰지만 손익 관계를 따져 보니 그냥 밟고 나가는 것이 디딜 자리를 찾느라 신경쓰고 몸을 비트는 것보다 훨씬 현명했다. 나보다 늦게 출발한 인천연형님은 내가 1킬로미터를 달리기도 전에 앞으로 치고 나갔고, 동갑내기 운기님은 14킬로미터 쯤 달리고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 내 앞으로 나아갔다. 11년 전 3시간 10분 이내로 달렸던 운기님은 그때보다 7킬로그램 불어난 85킬로그램이었다. 이 주자는 나와 100미터에서 300미터까지 거리를 벌리면서 치고 나갔다.
3킬로미터를 지나 어느 정도 비를 피할 수 있는 고가 구간이 나오기가 무섭게 비옷을 벗어던졌다. 마스크는 허리 춤에 끼웠다. 고가 구간이 나오면서 비를 피할 수는 있게 되었으나 비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자전거타는 사람과 걸으며 담배피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이따금 머리가 아프기까지 했다. 겹겹이 쌓인 피로에 당일 수면까지 부족한데다 비까지 맞아 몸이 축축 늘어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 속도를 올린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였다. 뒷골까지 당기는 일은 없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달렸다. 하프까지 2시간이 걸렸다. 간섭포의 페이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간섭포하는 동료를 얻고 싶었다. 샛별홍진님을 만날 때마다 서브4 하라고 외쳤다. 샛별홍진님은 그때마다 자신은 4시간 12분이 적당하다고 했다. (4시간 13분대로 골인함)
나 자신과 소리 없이 끊임없이 대화했다. 느려도 발을 꾸준히 놀리니 어느덧 30킬로미터를 넘겼다. 운기님과의 거리가 조금 좁혀졌다. 31.6킬로미터 반환점에서 콜라를 마시고 돌아 뛰는데 운기님이 걸어가고 있었다. 힘들다고 했다. 휘문19님은 생전 처음으로 풀코스를 포기하고 하프만 달렸다고 했다. 힘든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띄었다. 다들 천천히 도림천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 와중에 슬로우로 돌린 화면을 찢고 나오는 고수 한 사람이 있었다. 2시간 40분대로 달려서 입상도 자주 하는 용민님이었다. 상금이 걸린 대회에서는 아무리 인사를 해도 받을 여유가 없이 달리던 분이 오늘은 먼저 인사를 하고, 추월해 갈 때는 파이팅도 보내주곤 했다. 그동안 마라톤 대회가 너무 없으니 훈련삼아 나온 듯 했다. 훈련삼아 달리는 것 같아도 이 분은 서브 3를 여유있게 달성했다.
내내 외로운 달리기를 이어나간다고 생각했는데 35킬로미터 쯤 지나 뒤에서 바짝 쫓아온 사람이 있었다. 놀랍게도 운기님이었다. 31킬로미터를 지나 걷기 시작했다면 페이스를 잃어버리고 따라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내 뒤를 바짝 쫓아온 것이었다. 가민 시계가 잘 맞지 않는데 서브 4가 가능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보다 늦게 출발했으니 나와 함께 골인하면 서브 4는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한 가지 사실은 비밀로 했는데 5킬로미터 쯤 남으면 질주를 시작한다는 계획이었다. 5킬로미터를 남기고 6분 페이스로 가도 서브 4가 무난했지만 속도를 냈다. 불어난 물살에 쓸리고 폭우에 두들겨 맞은 풀은 아직도 몸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나는 슬며시 몸을 세웠다. 자꾸 숙여지는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비에 치이고 피로에 치이고 담배냄새에 치이면서 지지부진한 페이스로 완주 모드, 서브 4는 하자는 모드를 이어나가며 여기까지 왔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악착같이 스피드를 올렸다. 전체적으로 몸이 가라앉아 있어서 마지막 5킬로미터는 26분을 넘길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처음 달릴 때 보다는 2분 이상 빠른 것이었다.
3:56:08.59
올해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서만 풀코스를 7번 달렸는데 가장 나쁜 기록이었다. 운기님은 내가 골인한 지 2분 쯤 지나 들어왔다. 3시간 58분 33초로 달렸는데 정말 오랜만에 서브 4를 한 것이라고 했다. 언젠가 서브 4로 달리기도 너무 힘들 때 그냥 특별한 목표 없이 달려도 늘 서브 4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이 있었다. 요새 그렇게 되고는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햄스트링 쪽에 고약한 느낌이 생겼다. 겁이 덜컥 났다. 또다시 한 해를 고통 속으로 밀어넣을 것인가? 바닥을 친 컨디션으로 마라톤 대회에 나온 것은 잘못이었나? 요즘 건강하지 못하다. 건강 달리기를 못한다는 뜻이다. 건달의 닉네임이 건강 달리기의 줄임말임을 잊은 것인가? 5월에 3시간 39분으로 달리겠다고 한 목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현재 몸 상태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 토니 모리슨의 표현을 빌자면 시적 감수성이 올바른 판단력을 누르는 고집은 그만 부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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