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공원사랑마라톤(2020/07/19)-31KM

HoonzK 2020. 7. 23. 11:00

 40명이 풀코스에 도전했다. 두 명이 포기했다. 성하형과 나였다. 성하형은 컨디션 난조로 레이스를 접었지만 나는 도림천 범람으로 그만 달리게 되었다. 다들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폭우 속에서도 달리기가 가능한 주로를 찾아가며 42.195킬로미터를 달려 기록증을 받아갔지만 나는 달린 거리도 달릴 거리도 정확하지 않아 혼란에 빠졌다. 첫 하프를 1시간 57분 정도에 달렸으니, 후반에 스퍼트를 할 것을 감안하여 3시간 55분 내외만 달려 풀코스 완주 기록증을 달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달리기의 두 가지 방식. 거리주와 시간주.
정해진 거리를 달리는 것과 일정한 시간을 달리는 것.
이미 정해진 거리를 달리는 일은 어려워졌으니 예상 기록만큼 달리기로 한다. 과연 42.195킬로미터를 달리게 될까? 시간주를 선택하면 속도가 느려지기 마련이었다. 훈련으로 경험한 바이지만 시간을 정해 놓고 달리면 거리를 정해 놓고 달리는 것보다 속도가 나는 법이 없었다.

 

 노천 구간에 들어서면 비는 위협적이었다. 옷입고 샤워하는 느낌일 때는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는 내리는 속도가 빨라지고 빗방울도 굵어져 몸에 타격을 입히는 느낌이었다. 특히 입술이 아팠다. 허리춤에 끼어 놓은 마스크를 다시 써야 하나 싶기까지 했다. 주로는 물이 차올라 수건을 풀어 놓은 것처럼 발목을 휘감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첫 하프를 1시간 57분으로 끊었다. 노래 '인생은 마라톤'으로 알려진 양만석 김정자 부부는 10킬로미터를 뛰었는데 그 분들이 반환할 무렵 그 반환점을 지나고 있어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노래 가사를 꺼내 놓으며 여유를 부릴 정도로 활기찬 레이스를 펼쳤다. 19킬로미터 직전 화장실까지 다녀오고도 서브4 페이스주에서 여유가 있었다. 지난 6월 풀코스 때보다 달리기 지수가 꽤 좋아져 있었다. 6월은 30도, 7월은 오히려 25도 이하의 날씨로만 보아도 이것은 7월이 줄 수 있는 최대의 혜택이었다. 비가 내리거나 조금이라도 기온이 낮은 날을 기다리고 있던 내게 주어진 7월 서브 4 달성의 좋은 기회였다. 이런 서늘한 여름이 언제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고가 아래에서 비를 피해 달리면서 한결 시원한 공기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장대비는 도림천으로 쏟아지는데 고가를 만나 물 커튼을 친 것 같은 운치도 있었다.

 

 과다한 잠으로 퉁퉁 부은 얼굴의 카우치포테이토(couch potato)가 되느니 수면이 부족한 러너가 되기로 결심했던 강건달은 1회전을 마치면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골인 지점이 물에 잠겨 골인 아치와 칩 인식 장치를 옮기는 장면을 보았다. 골인할 때 내 기록이나 제대로 나올 것인가 하는 걱정부터 되었다. 하류 쪽의 징검다리는 급격하게 불어난 물로 자취를 감추었으니 상류쪽의 상황은 더 심각할 게 뻔했다. 지금 다시 상류 방향으로 달려가야 하는데 징검다리 데크를 건너보지도 못하는 것 아닐까. 도림천 하폭은 좁고 하상은 깊지 못해 웬만한 폭우로도 범람하기 일쑤인데...... 신정교 아래쪽을 돌아 도림천을 건너가는 것도 쉽지 않구나. 발목까지 차오른 개울을 건너오는 것 같았으니 얼마나 시간을 잃은 것인가. 그래도 가 보는 데까지는 가 보자.

 

 24킬로미터 지점을 지나 꿋꿋이 달려가는데 샛별홍진님이 건너편에서 오며 도림천이 범람하여 주로가 침수되었다고 했다. 그 때 그 정보를 듣고 거리 조절에 들어갔어야 했다. 나는 일단 더 가 보겠다고 했다. 25킬로미터를 채 넘기 전에 급수 요원이 자전거를 몰고 오고 있었다. 도림천이 넘쳐서 자리를 옮기고 있다고 했다. 이 때라도 돌아서서 물에 잠기지 않은 주로를 오가며 거리를 채우는 게 현명했다. 하지만 나는 좀더 가 보겠다고 했다. 급수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게 더 걱정이었다. 25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무섭게 밀려오는 물살을 만났다. 물을 피해 주로 옆에 다소 높이 설치된 경계석을 밟으며 더 나아가 보다가 도림천 건너편은 주로가 멀쩡해 보여 육교를 건너기로 했다. 육교까지 진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육교 하단까지 차오른 물 때문에 물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가 없었다. 예상한 것보다 물이 깊으면 어쩌나. 거센 물살에 휩쓸려 내 몸이 순식간에 하류로 떠내려갈 수도 있었다. 도림천 범람으로 마라톤 참가자 숨져. 이런 기사의 주인공이 되지는 말아야 했다. 다행히 육교 쪽 물은 깊지 않았다. 육교에 다가서기가 무섭게 번개처럼 계단 손잡이를 끌어잡아 몸을 올렸다. 살았다. 시간 손해는 봤지만 건너편에서 달리다 징검다리 데크까지 갔다가 내려오면 되겠다 싶었다. 주로만 확보되면 스퍼트를 거듭하리라. 하지만, 하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주로 사정은 나빠졌다. 물이 차 오르지 않은 주로가 없었다. 고가 안쪽의 높은 돌밭을 밟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일도 한두번이었다.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번번이 리듬이 끊기니 이건 뛴다고 할 수 없었다. 산책나온 시민들을 철수시키는 경찰도 보였다. ROTC SSS님은 상류쪽 주로가 잠겨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냥 지금부터라도 돌아뛰어 왔다갔다 하며 풀코스 거리를 채우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육교를 건너고, 얼마나 달렸는지 판단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되돌아 달렸기 때문에 도무지 달린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다. 아무렇게나 달려도 서브 4가 가능하다면 모르겠으나 요즘은 기를 쓰고 달려야 서브 4가, 그것도 간섭포(간신히 서브 4)가 가능했다. 3시간 59분쯤 달리고 풀코스, 아니 풀코스보다 긴 거리를 달렸지만 그냥 손해보는 셈치고 풀코스 기록증만 받아갑니다. 이럴 수가 없었다. SSS님을 따라가다가 금새 100미터 이상 뒤떨어지는 내 모습을 보며 전의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매우 힘차게 내딛던 발걸음이 터덜대며 끌리고 있었다. 몇 차례 달리기가 제어당하면서 페이스를 잃고 의욕까지 사라진 것이었다. 한 달에 한번 시간을 내어 달리는 풀코스, 코로나19 감염의 위협에도 꿋꿋이 참가했던 대회인데 서서히 레이스를 접는 수순을 밟았다. 나이키 줌X베이퍼 플라이 넥스트%를 신고 날아가는 로운리맨님, 일흔 살이 되기 전 풀코스 1천회를 채우기 위해 달리는 긴팔병준님, 다음 주 풀코스 300회 완주를 위하여 달리는 샛별홍진님, 알아서 시계로 거리를 맞추면 된다고 하며 달리는 달물영희님, 이런 일은 새롭지도 않다는 느낌으로 질주해 거리를 채우는 인천연형님과 달물춘식님(이 분들은 3시간 30분대 기록을 세웠다.) 3주 연속 풀코스를 달리는 연익님, 격주로 풀코스를 달리는 격주재혁님, 행사에 참가한 수많은 ROTC 출신 주자들. 나는 그들처럼 할 수 없었다.

 

  전투적인 달리기 모드를 잃어버렸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버티기도 곧 마무리되기 직전이었다. 도림교가 보였다. 침수 때문에 몇 미터 앞으로 옮겨진 골인 아치가 보였다. 그냥 골인해 버렸다. 칩인식음이 들렸다. 계시원이 정말 그만 뛸 거냐고 물었다. 거리를 가늠할 수 없어 더 이상 도전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했다. 안양천을 바라보고 도림천을 감아도는 코스에서 개천 달리는 수고를 몇 번이고 반복하기도 싫었다. 다음에 다시 도전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32킬로미터 기록증이냐 31킬로미터 기록증이냐가 문제였는데 32킬로미터를 넘었는지 장담할 수가 없어 31킬로미터 기록증을 받았다. 그냥 손해보는 셈치고 31킬로미터 기록증만 받아간다는 생각으로. 레이스를 포기한 성하형은 아예 기록증을 받지 않았는데 내가 굳이 왜 기록증을 받는지 의아해 했다. 돌이켜 보면 하프 기록증을 받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0킬로미터나 31킬로미터 종목은 내 인생의 마라톤 횟수에 산입하지도 않는데.....

 

 여전히 체력이 남아 있어 아쉽기만 했다. 남은 10여 킬로미터에서 쏟아부어야 할 체력을 고스란히 남기고 있었다. 불가피하게 당한 일이라 다음 대회를 무료로 참가하게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으나 주최측에서 천재지변이었으니 보상해 줄 수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나를 빼고는 어떻게든 거리를 채워 완주하고 있지 않는가? 7월 서브 4 달성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졌다. 올해는 영영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 다시 달리는 날 7월.... 이런 서늘한 여름을 베풀어줄리 없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레이스를 접으면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시간이 남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데 다리가 영 불편했다. 1년 넘게 나를 괴롭혔던 햄스트링이 관리가 필요하다며 울고 있었다. 7월이 가기 전에 다시 풀코스에 도전해야 하는데 이래서는 곤란한데...... 발가락에 찰과상이 생겨 쓰린 것도 신경쓰였다.

 


 로운리맨님은 기다려 달라고 했었다. 서로 연락하지 않고도 텔레파시로 4주만에 출전한 인연이기도 하고, 요즘 자주 보지도 못하니 당연히 식사라도 함께 해야 했다. 노트를 꺼내어 31킬로미터 달리기의 기억을 기록하면서 시간을 보내었다. 여차하면 독서라도 하려고 했는데 로운리맨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골인했다. 골인 아치 안쪽의 의자는 비어 있는 게 없어 운동 기구쪽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대회장의 의자가 꽉 찬 이유는 행사가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은 까닭이었다. 산악인 故박영석씨와 생전에 한 약속을 지키려고 ROTC 10기인 이영균님이 나와 달리고 있었다. "네가 에베레스트 8,848미터를 등정한다면 나는 마라톤으로 8,848킬로미터를 뛰어 가겠다."고 했다고 했다. 8,848킬로미터를 달리려면 풀코스 210회를 완주해야 하는데 그 210회를 이 날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영균님은 배번도 8848번을 달고 있었다. 이 분이 골인하는 장면은 나중에 올라온 동영상으로 보았다. 로운리맨님과 식사하고 있을 무렵 골인했을 것이다. 로운리맨님은 다리를 절면서 걷기도 했는데 그동안 훈련을 하지 못해 후반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내가 풀코스를 접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도 했다. 나는 다른 날 다시 나와 달리겠다고 했다. 7월에 서브 4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그게 아쉽다고 했다. 내가 다시 달리는 날 서늘한 여름 날씨를 기대하기는 아무래도 불가해 보인다고 했다. 풀코스는 요행으로 완주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신도림역을 빠져나오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새벽 6시 5분경
징검다리는 흔적을 감추었다. 10시 04분경
참가자 한 분은 엄청나게 화가 나 있었다. 달리기 어렵게 된 주로에 대한 상황을 주최측이 미리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참지 못했다.

 

풀코스 참가비를 내고 31킬로미터 장거리 훈련을 한 셈이 되었다.
도림천.... 그나마 비가 잦아져 물이 준 것이었다.
로운리맨님과 식사했다.

 

 

 

 

이영균님의 풀코스 마라톤 210회 도전은 의미가 있었다.
산악인 박영석씨와 한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KBS에서도 취재를 나왔다.
샛별홍진님이 여유있게 골인하고 있다. 299회 풀코스. 전날 풀코스를 4시간 10분에 달렸는데 이날은 4시간 9분으로 달렸다. 다음 주 일요일 풀코스 300회이니 내게 참석하라고 했다.
신성범 씨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