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공원사랑마라톤(2020/01/05)-FULL 219

HoonzK 2020. 1. 10. 11:10

2020년이 밝았다. 1월 1일에 달리지 못하고 1월 5일이 되어서야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졌다. 풀코스 참가자가 되어 달리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꿈에서 깨지 않은 것처럼 몽롱했다. 신정교 아래를 감아돌아 얼어붙은 도림천을 따라 달릴 즈음 해가 떠올라 주로를 환하게 비추었다. 달물영희님과 성하형이 1월 1일 달릴 때 아쉬웠던 일출을 오늘에야 제대로 본다며 감탄하였다. 비록 1월 1일 달렸다고 하더라도 일출다운 일출을 보지 못했겠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1월 1일 달리지 못한, 아니 달리지 않은 내 자신의 결정이 못내 아쉬웠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1월 1일 늘 하는 일이 있었다. 마라톤 대회 참가. 언젠가는 북한산에도 오르고, 동해바다에도 가고 하면서 일출 보기에 열혈 의지를 불태웠지만 2014년부터는 새해 첫날이면 어김없이 마라톤 대회장으로 갔다. 풀코스가 되었든, 10킬로미터가 되었든 일단 달리면서 새해를 맞았다. 그런데 2020년 1월 1일에는 마라톤 대회를 등졌다. 몸이 좋지 않아서이기는 했지만 정말 이것은 아니었다. 1월 1일 혼자서 긴 거리를 뛰었지만 풀코스 대회 참가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1월 1일 대회 참가를 못 했으니 1월 4일 토요일에 뛰려고 했다가, 1월 4일에도 일어나지 못했다. 1월 5일 일요일, 이 날마저도 상황이 좋지 못했다.


 마라톤 힐링카페까지 가기는 했다. 과거에도 몇 차례 그랬던 것처럼 바로 귀가할 수도 있었다. 그게 맞았다. 집의 난방이 고장나 간밤엔 추워 너무 자주 깨었고, 4시를 넘어서는 다시 잘 수가 없었다. 휴식이 몹시 필요했다. 달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동하는 동안 잠이라도 잤어야 했는데 스마트폰으로 탑골 GD 양준일 기사만 내내 검색하고 있었다.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찬일님과 달물영희님이 악수를 청하며 반겼다. 성하형을 보고 형에게 온다고 약속해서 왔지만 그냥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성하형이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간다고? 운동한다고 생각하고 그냥 뛰어. 그 말이 맞긴 했다. 요즘 너무 운동량이 줄어 운동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미리 약속을 해야 했다. 기록에 연연해 하지 않을 것이며,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어떤 기준을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쉬고 싶은 마음을 달래었다. 주로에서 나 자신을 단련시키기로 했다. 접수담당 여사님에게 만원짜리 지폐 3장을 내밀고 칩이 달린 배번을 받았다.


 영하 4도라지만 달리는 동안 영상으로 기온이 오를테니 지난 12월처럼 반바지를 입어도 되었다. 하지만 츄리닝 바지를 입었다. 정말 나는 훈련으로 생각하고 마라톤을 뛸 요량이었다. 꾸물대다가 주자들이 출발한 지 40초가 지나서야 뛰게 되었다. 앞서 출발한 분들을 하나 둘 추월하자 해병정의님이 지적했다. 아우, 엄살을 부리더니 잘 뛰는구만. 1킬로미터는 5분 10초에 지났다. 곧 성하형과 달물영희님 옆에 붙었다. 성하형은 내게 서브 330을 하라고 했다. 앞으로 나섰다. 킬로미터마다 5분 10초 페이스였다. 다섯 차례 연속. 5킬로미터는 25분 50초였다. 이대로 나가면 3시간 38분 골인이 예상되었다. 철원에서 온 익현님, 죽음에서 살아돌아온 자 고운인선님을 제치고 나갔다. 5킬로미터를 지나 급수대를 만나기가 무섭게 몹시 피로해졌다. 페이스가 뚝 떨어졌다. 6킬로미터 이후 요란한 발걸음이 뒷통수를 건드리더니 이내 뺨을 스치고 바로 이마를 때렸다. 고운인선님이었다. 따라가며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짐을 진 것처럼 발이 끌렸다. 이 지경으로 풀코스를 뛰어낼 수 있을지 사뭇 의심스러웠다. 3만원을 내지 말 것을 그랬어.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뛰지 않을테니 3만원을 돌려주세요라고 할까? 2만원이라도.


 버티기에 들어갔다. 달리기 싫을 때, 또는 달리기 힘들 때 대회에 나왔을 때 어떻게 했었지? 그렇게 물으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10킬로미터까지 53분이 걸렸다. 첫 5킬로미터보다 다음 5킬로미터가 2분 이상 늦어졌다. 이 페이스는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리는 없어 보였다. 성하형과 달물영희님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13킬로미터 지점에서 추월당했다. 징검다리 데크를 건너 화장실에 다녀오고 16킬로미터 직전 급수대에서 콜라를 마시고 잠시 도발했다. 100여 미터 떨어진 성하형과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2킬로미터 쯤 속도를 올리고 나니, 어떻게 올릴 수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성하형에게 바짝 따라붙을 수 있었다. 농담으로 접근했다. 자꾸 제 그림자를 밟으니 아파 죽겠어요. 지금도 밟고 계시네요. 성하형이 이제 치고 나가는 거냐고 물었다. 고개를 저었다. 금새 처졌다. 20킬로미터를 넘어서면서 50미터 쯤 뒤로 물러났다. 그저 위안을 삼은 것은 40초 쯤 늦게 출발했으니 같은 페이스로 달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이었다.


 첫 하프는 1시간 53분을 살짝 넘겼다. 4시간을 넘기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두번째 하프를 첫 번째 하프만큼 달린다면 3시간 40분대도 가능했다. 어떤 기준도 만들지 않기로 했으니 시간을 따지지 말아야 했다. 비공식적으로 222번째 풀코스를 완주하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4시간 싱글 또는 서브 4를 목표로 했다는 성하형과 달물영희님이 몹시 빠르다는 느낌을 받는 와중에 그분들과 내 사이에 출발이 늦었던 명호님이 들어왔다. 한 달 전에 3시간 18분으로 달렸던 분이니 앞의 분들을 줄줄이 추월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철원익현님이 보이지 않는 게 궁금했다. 2연풀을 위해 서울에서 잤다는 이 분은 중도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27킬로미터를 넘겼을 때 찬일님이 앞에서 오고 있었다. 시계를 차고 있지 않았다. 서브3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으로 현재 2시간 28분이 지났어요라고 외쳤다. 찬일님은 바람처럼 날아가는 와중에도 감사의 표현을 잊지 않았다. 파이팅이라고 했다. 2시간 54분에서 55분 사이로 골인할 것 같았다. 실제로 2시간 54분 55초로 골인했다.


 고단한 달리기를 거듭하면서도 주자들을 만나면 응원했다. 도림천을 사이에 두고 성하형을 보게 되면 반드시 손을 들었다. 성하형과 달물영희님은 속도를 올리면 올렸지 떨어뜨리지 않았다. 30킬로미터 이후 명호님에게 잡힐 줄 알았던 두 사람은 오히려 거리를 벌리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후반에 속도가 줄 수도 있다던 분들이 전혀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5분 20초 이내의 페이스로 전진하고 있었다. 그분들에게서도 200미터 이상 떨어져 버렸다. 10킬로미터가 남았을 때 나는 2시간 54분이 되기 직전이었다. 남은 거리를 56분에 달리면 3시간 49분대 후반이 가능해졌다. 달리면 달릴수록 힘을 내긴 했다. 몹시 지쳐버린 명호님을 35킬로미터 쯤 지나 추월할 수 있었다. 명호님은 한 달 동안 운동을 등한시해서 20분이나 늦어지는 댓가를 치렀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나도 운동 부족이었다. 그동안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전날 밤엔 저녁을 많이 먹고 바나나와 스니커즈를 연달아 섭취하고 잤더니 얼굴이 부어 있었다. 그나마 후반 햄스트링 통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5분 30초에서 40초 사이로 떨어졌던 페이스가 10킬로미터를 남기고는 5분 20초 이내로, 5킬로미터를 남기고는 5분 10초 이내로 좋아졌다. 3킬로미터를 남기고 성하형, 달물영희님과 함께 달리게 되었다. 그렇다고 쭉 치고 나갈 수는 없었다. 성하형에게 최근 페이스와는 달리 빠른 이유를 물었더니 '그때 그때 달라요'라고 했다. 3시간 40분대 목표도 생겼다고 했다. 달물영희님은 두 사람이 앞에서 끌어달라고 했다. 성하형은 힘차게 앞서 나갔다. 꾸준히 뒤따랐다. 42킬로미터를 넘어서야 성하형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었다. 제칠 수 있는데 일부러 제치지 않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예고한 바 있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달래어 그래도 운동을 하다니. 그것도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운동을. 마지막 10킬로터를 51분대, 마지막 5킬로미터는 25분대로 달려 3시간 45분대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간만에 후반이 초반보다 조금 빨랐다.


 3:45:49.43


 성하형은 3시간 46분 30초, 달물영희님은 3시간 46분 59초였다.


 도림천 중앙에 박힌 기둥에 올라선 고가철로, 그 위에서 떨어지는 햇살이 도림천 주로에 희뿌연 사선으로 내려 꽂히는 순간이 기억났다.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터덜대며 달리며 완주를 의심하던 주자가 2020년의 첫 풀코스를 완주했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꿈에서 확 깨는 느낌이었다.



2020년 공원사랑마라톤의 첫 메달이니 받았다.



기념품은 양말, 지난 해와 똑같다.



마라톤 힐링카페에서 완주 후 제공되는 떡국을 먹었다.



 떡도 먹고......



힘들어도 완주한 증거를 이렇게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