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9 시즌마감 42195레이스(2019/12/07)-FULL 217

HoonzK 2019. 12. 14. 23:22

  지금은 대구국제마라톤 마스터즈 풀코스 종목이 없어졌지만 한 때는 참가 자격 제한으로 있었다. 풀코스 완주를 목표로 한다고 아무나 참가할 수 있는 종목이 아니었다. 3시간 30분 이내(서브 330)의 기록 보유자만 참가할 수 있었다.


 서브 330


 그게 최고는 아니어도 제법 달린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준이었나 보다. 서브 330으로 달려본 지 1년이 넘었다. 그 동안 부상으로 현저히 느리게 풀코스를 달렸다. 달릴 때마다 요행을 바랬지만 마라톤 풀코스에서 요행은 없었다. 2019 시즌마감 42195레이스에서 서브 330에 도전했다. 직전 하프코스에서 좋은 기록으로 달리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하프와 풀은 엄연히 달라서 객기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를 맡고 있는 박연익님에게 따라붙었다. 첫 1킬로미터를 5분만에 통과했다. 박연익님이 입을 열었다. 아니, 오늘 서브 330하려고? 아직은 모르겠는데 나중에 떨어질 수도 있어요. 2킬로미터 쯤 지나 살짝 쳐지자 레이스패트롤을 맡고 있는 헬스지노님이 뒤돌아보며 손짓했다. 앞으로 오라고. 6일 전 하프를 1시간 38분대로 달리면서 너무 큰 자신감을 얻은 듯 밀고 나갔다. 3킬로미터를 지나서는 페메 앞으로 나아가 달렸다. 첫 5킬로미터를 직전 하프 때보다 1분 빨리 달리고 있었다. 올해 처음으로 서브 330을 노리는 은식님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대회는 지난 해 내게 햄스트링 부상을 입힌 대회였다. 1년 전 자신에게 부상을 입힌 대회에 돌아와 1년간 못했던 3시간 20분대를 달성한다. 그런 동화같은 이야기를 실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꿈만 클 수도 있었다. 내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게 내 삶이 아니었던가?


 코인 형태의 스피드칩이 종이 스티커칩으로 바뀌어 편해졌지만 20일 전 상처입은 발가락을 신경쓰면서 신발끈을 단단히 동여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깜박했다. 덜렁거리는 신발을 끌고 아이유 3단 고개를 넘었다. 10킬로미터 지점을 49분 초반에 지났기에 여유가 있었다. 신발을 다시 매는 지점을 선택해야 했다. 1차 반환한 후 아이유 3단 고개를 넘다가 만나는 벤치를 눈여겨 보았다가 주로에서 이탈했다. 두 번 둘러 맨 신발 끈은 푸는 데도 다시 묶는 데도 오래 걸렸다. 오른쪽은 풀고 묶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풀고 묶었다. 다시는 신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는 일념으로 귀중한 시간을 2분이나 썼다. 이 사이 3시간 30분 페메를 400미터 이상 앞으로 보내어 버렸다. 초반에 조금이나마 벌어두었던 여유는 완전히 사라졌다. 치열한 달리기를 해야 했다. 35킬로미터 이후 해야 할 속도 올리기를 11킬로미터 지점부터 시작했다. 4분 30초 페이스 연속 두 차례. 덕분에 박연익 페메에게 100미터 이내로 따라 붙었지만 피로감이 밀려왔다. 초반 하프까지는 1시간 44분 초반에 갔지만 후반 하프는 그보다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22킬로미터를 넘어가자 눈도 내리고 있었다.


 눈발을 맞으며 한겨울을 달리고 있었다. 흘러내린 땀은 영하의 차가운 공기와 만나 얼어붙어 머리 끝에 달렸다. 머리 끝에 달린 고드름은 머리띠 장식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귓전을 때렸다. 장갑을 끼고 있었고, 목에는 버프를 두르고 있었으며, 긴팔 티셔츠 두 장을 입고 있었지만 다리는 맨살을 드러낸 반바지였다. 우븐 트레이닝 긴바지를 입으려다가 영하 4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반바지를 입은 것은 광배님의 복장에 자극받은 바가 컸다. 마라톤 풀코스계에서는 청춘에 속한다고 할 이 주자는 반바지에 얇은 긴팔 티셔츠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양재천에 들어서면서 매우 피곤해졌다. 초반에 보였던 활력이 사라졌다. 1년 내내 괴롭혔던 햄스트링 통증이 다시 느껴졌다. 그동안의 통증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예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던 것과는 달리 속도를 올리면서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프 이후 이런 스피드로 달리는 게 처음이라는 것이 두려웠다. 오늘 이렇게 달리고 앞으로 1년간 또다시 햄스트링 통증으로 시달린다면 그건 못할 짓이었다.
 
 페메와의 거리가 줄어들지 않자 시간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냥 무심코 달려도 킬로미터당 5분의 페이스가 나오기를 기대했건만 그런 일은 없었다.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시시각각 악착같은 몸놀림을 보여야 했다. 4분 50초면 안심하겠고, 5분이면 긴장할테고, 5분 10초면 낙담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22킬로미터 이후 페메가 멀어졌다. 5분 10초 페이스로 떨어지면서 나의 분전은 여기까지였구나 싶었다. 포기하려는 순간 이제 더 이상 밀고 나갈 힘이 없다는 결론을 짓지 않겠다는 의지가 치솟아 올라왔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을 유보하고 또 유보해야 해. 3시간 30분대 초반으로만 달려도 내게 있어서는 엄청난 사건이지만 사실 더 잘 달릴 수 있는 몸일 수도 있어. 겨우 나은 몸을 다시 부상으로 내몰 수도 있지만. 잠시 후 5분 페이스로 돌아왔다. 하지만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급수대를 지난다든지 조금 숨을 돌린다든지 하면 바로 5분 10초 페이스까지 내려 앉았다. 지난 1년간 5분 이내의 속도를 풀코스 후반에도 쭉 밀고 나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 사람을 힘들게 했다. 나를 추월하는 사람이 가끔 있었는데 구간마라톤에 나서서 짧은 구간을 달리는 릴레이 주자들이었다.


 급수대에서 들어 올리는 물마다 살얼음이 끼어 있었다. 게토레이도 마찬가지였다. 초코파이와 바나나를 가끔 먹어 에너지를 보충하면서 이렇게 여유가 없는 달리기가 있을까 싶었다. 신발 끈을 도로 묶는다고 보낸 2분만 아니었다면 3시간 30분 페메를 따라달리면서 안이한 태도를 보일 수도 있었다. 죽을 때까지 내 삶에는 여유가 없구나, 그런 것이었구나, 살면서 쉽게 되는 것은 전혀 없구나, 그런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사는 것이구나. 그런 것을 못하면 죽는 것이구나. 깊은 어둠에 잠긴 집과 고통받는 사람들이 모인 병원을 오가면서 언제까지 버티어야 하나. 10킬로미터 쯤 달리니 페메를 잡았더라, 20킬로미터나 달려서야 잡았더라.... 이런 말은 모두 생각으로만 했다. 30킬로미터를 달려도 못 잡을 것처럼 보였다. 비옷을 입은 페메는 참으로 꾸준히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페메와 함께 달리던 주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헬스지노님마저 20킬로미터 이후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나보다 뒤에 있었다. 전력질주하면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고 페메를 따라갔다. 틀림없는 사실은 풀코스 후반을 어느 때보다 힘들게 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힘든 몸을 마인드 컨트롤로 어디까지 제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긍정, 희망, 극복, 성공 등의 이미지를 새기고 또 새겼다. 이런 추운 날씨라면 화장실에 몇 차례 갔어야 했는데 전혀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게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닐텐데 화장실에 가지 않은 덕분에 시간을 더 잃지는 않게 되었다.


 2차 반환한 후 32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은식님을 제치고 36킬로미터를 넘으면서 광배님도 제쳤다. 광배님에게는 저랑 같이 가야 서브 330 해요라며 독려했다.  37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면서 이제 5킬로미터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열광할 수 있었지만 그 5킬로미터가 초반이나 중반의 5킬로미터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1킬로미터, 1킬로미터가 아득하게 멀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느껴졌던 거리의 부담감이 후반으로 갈수록 어마어마하게 커져 있었다. 그래도 야금야금 박연익 페메에게 따라붙었다. 5분 이내의 페이스가 나오고 있었다. 방심할 수는 없었다. 벼락같은 사고가 들이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 된 것 같아도 마지막 순간 일을 그르치는 사례를 한 두 번 본 게 아니었으니.... 된다고 믿고 끝까지 믿고 잠실종합운동장 건물 지대를 돌아 점점 골인 지점을 향하여 가까이 다가갔다. 여전히 박연익 페메와의 거리는 꽤 떨어져 있었다. 


 보조경기장에 들어섰다. 눈물겹게 질주했다. 그 결과 박연익 페메에 바짝 붙어 골인했다. 기록은 페메보다 내가 2초 더 빨랐다.
 
 3:29:20.94


 부상을 안긴 대회에 1년만에 돌아와 서브 330을 달성했다. 생애 32번째 서브 330을 달성한 후 33번째 서브 330을 달성하기까지 365일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박연익 페메는 놀란 표정으로 바로 따라들어오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했다. 광배님은 아쉽게 서브 330에 실패했다. 3시간 30분에서 23초를 넘겼다. 직선 거리에서 내가 바로 보이는데 따라올 수 없었다고 했다. 한강시민공원에서 굴을 들어설 때 오르막에서 잠시 걸은 것이 치명타였다고 했다. 다음날 전마협 최강자전에서 또 풀코스를 뛰기로 되어 있는데 상태가 좋지 않아 아예 출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신발끈을 다시 매고도 초반 하프를 1시간 44분대 초반으로 달렸는데, 화장실에 들르지 않았는데도 후반 하프를 1시간 45분대 초반으로 달린 것으로 보면 후반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결국 되지 않는 3시간 29분대를 지독한 버티기로 이루어낸 것이었다. 꿈같은 동화의 완성도 사실 잘 살펴보면 거듭된 시련의 결과였다.




골인점을 향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반바지를 입었다.

이렇게 보니 체중 감량이 꽤 필요해 보인다.


머리에 달린 고드름



고드름을 훑어내어......




아이유 3단 고개를 넘으면서도 하프 반환점을 51분대로 갔으니 훨씬 더 좋은 기록을 예상할 수 있었지만

신발 끈을 다시 묶고 후반에 힘겨워 하면서 조금 떨어졌다.









아이유 3단 고개가 부담스러운 코스를 지나야 했다.



이 대회의 가장 큰 특징인 구간마라톤.......





탈의실이 보조경기장 위쪽에 있었다.



대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