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9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2019/10/27)-FULL 214

HoonzK 2019. 10. 31. 21:44

  내 몸 상태로 봐서는 매년 10월 넷째 주 일요일 춘천에서 열리는 춘천마라톤을 올해는 거르는 게 맞는데 출전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14년 연속 춘천마라톤에 참가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어설프게나마 두 달 동안 특별훈련을 실시했다. 이 특별 훈련 자체도 강도가 약해서 훈련다운 훈련이라고 할 수 없었다. 입에 단내가 나도록, 볼에 바람소리가 들릴 만큼 달린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 어느 해보다 체중 감량이 부족했다. 춘천마라톤 참가 사상 가장 두꺼운 허리로 무장하고(?) 참가한 대회가 되었다. 두 달간의 훈련프로그램으로 부상만 더 키운 것 같기도 했다. 도전을 했지만 실패가 확실한 도전을 했다. 다른 대회에서는 간신히 서브 4(풀코스 4시간 이내 완주...보통 3시간 50분대 후반을 지칭함, 일명 간섭포)로 달렸다고 하더라도 춘천마라톤만은 몸도 다르고 마음가짐도 달라서 3시간 30분대로 완주하는 게 다반사였다. 1년에 25번 정도 달린다고 하면 다른 대회는 3시간 50분대 후반, 춘천마라톤만은 3시간 30분대... 이런 식이었다. 내 인생 유일한 마라톤 풀코스 메이저대회였던 춘천마라톤. 아무리 못달려도 2019년에는 2015년의 3시간 48분 48초보다는 빨리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적어도 하프까지는 1시간 54분 29초로 갔기 때문에 그 기록에 근접하고 있었다. 최근 풀코스에서 후반이 빨랐던 것과 달리 춘천마라톤에서는 후반에 느려졌다. 달리는 족족 좌절을 거듭한 대회였다. 메이저대회라고 더 잘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난 3월 동아마라톤에서 경험한 것처럼 이번에도 반전 하나 없이 끝나버렸다.


 내 기록을 끌어내리는 세 가지 제어가 있었다. 과체중의 제어, 햄스트링 통증의 제어, 피로 누적의 제어. 달리는 내내 옆구리살이 부담스러웠다. 몸무게를 무시하고 속도를 조금이라도 내려고 하면 이번엔 햄스트링이 아팠다. 일주일 전 풀코스를 달린 것을 포함하여 3주 연속 풀코스에 도전하고 있어 피로도 심했다. 게다가 대회 당일 거의 잠을 못 잤다. 이 바람에 달리기 최적의 선선한 날씨를 선물받고도 한없이 무너졌다. 불과 1킬로미터를 가기 전에 지치는 느낌이었고, 과거에는 오르막이라고 느끼지 않았던 오르막까지 부담으로 수시로 튀어나왔다. 그만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은식님이 제치고 나갔던 10킬로미터 이후 지점은 그런대로 버티고 있었지만, C그룹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가 연달아 나를 제치고 나갔던 15킬로미터 전후 지점부터는 레이스를 접고 싶었다. 근근히 버티다가 20킬로미터 지점에서 신매대교를 만났을 때는 그냥 신매대교를 건너가 회송 차량이라도 타고 싶었다. 내가 3시간 00분 00초에서 3시간 42분 59초 이내의 기록 보유자만 배정받은 B그룹에 들어갈 자격은 없었다. 올해 한번도 그런 기록으로 달려본 일이 없었다. 올해 메이저대회의 그룹 배정은 모두 지난 해까지 달린 기록으로 이루어졌다. 인천고 마라톤 클럽의 길석님은 내 배번을 보고 우와, B그룹하면서 놀라워 했는데 그럴만도 했다.


 0~5km 27분 15초
 28분 20초의 서브 4 페이스보다는 좋긴 했지만 나는 서브4가 아닌 3시간 48분 47초를 목표로 했다. 주로에는 밴드가 있어 응원곡을 들려주었다. 3킬로미터 지점의 '내 마이크 어딨어'는 서울하프마라톤 때 본 적이 있었던 밴드였다.


 5~10km 26분 52초
 오르막이 전반보다는 적게 나왔고 삼악산의 단풍과 구름 등 멋진 풍경과 함께 내리막이 자주 나와 통증이 있어도 참고 나아갔다. 내내 흐릴 것 같았던 날씨가 맑아지면서 햇빛이 비쳤지만 해를 등지고 있었고, 기온이 낮아 잘하면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15km 26분 21초
 통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피로감이 심해졌다. 페이스메이커를 포함하여 C그룹 주자들에게 끊임없이 추월당하면서도 그래도 춘마라고 생각하면서 악착같이 버티면서 조금 더 빨리 달렸다. 급수대에 있던 학생이 게토레이 마시라고 하면서 '개또라이, 개또라이'라고 하는데 웃음이 터져나와 견딜 수가 없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15~20km 28분 11초
 통증이 쭉 이어졌고 16킬로미터 지점 지나 주유소 화장실에 다녀왔고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앞 오르막이 있어 늦어졌다. 그래도 서브4 페이스보다는 좋았다. 쌀쌀한 날씨에 소변이 너무 빨리 마려워 참다가 16킬로미터 지나 만나는 주유소 화장실에 들렀다. 14번 달리는 동안 13번 들렀던. 나올 때면 입구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곤 했는데 올해의 얼굴은 너무나 늙고 쾡한 표정이었다. 2006년 거울을 보았을 때도 이번처럼 버프를 쓰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인네는 아니었는데. 춘천마라톤을 달리는 동안 폭삭 늙어버렸다는 비애감으로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이내 17킬로미터 지점.
 강사장님 안 좋아요? 묻는 은수님에게 앞 길을 내 주기를 몇 차례. 새벽 5시 30분 춘천행 첫 전철 1번칸을 전세내듯이 함께 타고 온 이 분도 햄스트링이 좋지 않았고 아킬레스건까지 말썽을 피워 나를 제치고 나갈 때마다 얼마 안 되어 바로 잡히기를 거듭했다.


 20~25km 27분 17초
 신매대교를 들어갔다 나오면서 응원을 받았고 아는 사람들 찾으면서 잠시 통증이 약하게 느껴졌다. 통증이 아예 없어지는 일은 없었다. 파워업 스포츠젤은 사과맛 밖에 없어 보였다. 지난 해에는 포도맛을 먹었는데..... 뒷 사람을 위하여 한 개씩만 챙겨가라는 문구를 따랐다. 초창기에는 두 세 개씩 챙겨서 후반에 나누어 먹기도 했는데......


 25~30km 29분 29초
 서상대교 오르막에서 동요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추월당하기 위하여 애쓰는 사람처럼 달렸다. 30분에 근접하는 가장 느린 페이스 구간이 나왔다. 절벽같은 산이 단풍을 매달고 서상대교 쪽으로 넘어질 듯 다가섰다. 그 풍경을 보면서, 아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해 하면서 두리번거렸다. 춘천댐에서는 내가 달려온 길을 돌아보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춘천댐 방향으로 오르는 주자들을 감상했다.


 30~35km 29분 10초
 어느 해보다 오르막이 잦게 느껴졌다. 35킬로미터 이후에는 무슨 일이 있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달렸다. 굼뜬 몸 동작은 그대로 이어졌다. 스피드를 올릴 수 없다는 것이 내내 부정적인 생각만 키웠고 부정적인 생각이 누적되다 보니 몸이 빨라질 수가 없었다. 29킬로미터 지점에서는 샛별홍진님이 아직도 안 좋으냐고 물어보며 내 앞으로 나갔다. 추월당할 줄 알았어요라는 말만 했다. 32킬로미터 지점에서는 충배님이 걷고 있었다. 악수만 하고 헤어졌다. 35킬로미터 지점에서 수원만우님과 인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수원만우님이 급수대 쪽에 나와있는 마라톤TV 사장님과 인사하러 가 버렸다.


 C그룹 3시간 40분 페메인 류성룡님이 먼저 지나가고, 춘천댐을 빠져나오면서 D그룹 3시간 40분 페메인 윤도경님이 인사하시며 지나갔다. 풍선을 잃어버린 E그룹 3시간 40분 페메인 칠마남수님은 손만 흔들고 앞으로 빠져나갔다. 달리면서 35킬로미터, 35킬로미터만 기다렸다. 열심히 추월당하고 있지만 그래도 발을 앞으로 옮겨 놓고 있으니 더디더라도 35킬로미터가 나올 것이었다. 34킬로미터 자유발언대. 어차피 늦은 것. 자유발언대에서 친한 달림이들에게 응원 메시지나 보낼까 했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그냥 나아갔다. 바람이 앞에서 불 때면 스프레이 냄새에 치를 떨었다. 스프레이 냄새는 담배 냄새보다도 더 고약하게 다가왔다. 서풍이 불어오고 있어 스프레이 냄새를 고스란히 맡으며 달려야 했다.


 이제 기록 인식 패드 세 번만 밟으면 모든 게 끝난다는 기대감으로 버티었다. 35킬로미터, 40킬로미터, 골인 지점. 35킬로미터 지점에서 마법이 일어나기를 고대했다. 누가 밀어주는 듯한 느낌의 맹렬한 질주. 35킬로미터 지점 급수대를 지나기가 무섭게 성큼성큼 나아가기는 했다. 29분대의 5킬로미터 구간 스피드가 26분대 초반으로 바뀌긴 했지만 그게 매우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5킬로미터 구간 기록 가운데 35킬로미터에서 40킬로미터까지가 어쨌든 가장 빨랐음) 빨라지긴 했으나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의 폭발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달리는 모습을 보며 '쟤는 뭐야?'라고 어이없어 하기 보다는 '그래 한번 붙어보자는 거지'라는 경쟁심을 부추겼을 것이다. 모자를 벗어 손에 거머쥔 형광색 티셔츠 주자는 골인 직전 반드시 제쳐야 할 타겟으로 삼은 듯 몇 차례고 나를 제쳤다. 내가 통증을 이겨내면서 꽤 속도를 뽑아 더 이상 따라오지 못하겠지 하면 어느새 바짝 쫓아와 기어이 내 앞으로 나갔다. 통증 때문에 끝까지 속도를 올릴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렇다고 그에게서 많이 떨어지진 않았다. 소양대교 건너 그를 제치자 그도 따라와 이제는 나를 제치진 못할 것이라는 스피드로 나아갔다. 5킬로미터 이상을 달리는 동안 서로의 등을 보여주기 시합이라도 하는 듯 했다. 더 이상 속도를 내다간 햄스트링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고 싶지 않았다. 꾸준히 따라가다가 골인 100미터를 남기고 전력질주해 버리면 내가 먼저 골인하겠지 하는 마음을 먹었는데 골인 아치가 너무 빨리 나타났다. 허허벌판에 세워진 듯한 느낌의 춘천역을 지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골인이라고? 골인 아치가 아니었다. 1킬로미터 남았다는 것을 알리는 구조물이었다.


 여러분 모두 영웅입니다
 you're all heroes!
앞으로 1km 남았습니다


 이 구조물을 지나면서 마음이 안정되었다. 단조로운 주로 때문에 늘 아득히 멀게 느껴졌던 골인 지점까지의 대로가 이 설치물 덕분에 지겨움이 줄어들었다. 스퍼트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던 주자 옆을 지나며 '라스트 스퍼트'라고 말했다. 화면에 슬로우비디오가 돌아가는 사이 한 존재만 원래 속도로 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밀물이 앞에서 밀어닥쳐 순식간에 내 옆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5분 20초 페이스가 4분 10초 이내까지 올라갔다. 100미터를 32초로 달리다 갑자기 25초 이내로 달리는 것과 같았다. 그러면서도 뒤에서 나를 따라오고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번 해 보겠다는 거지라는 마음이 쟤는 뭐야라는 마음으로 바뀔 수도 있었겠지만 나와 함께 추월을 거듭했던 주자는 충분히 따라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됐어라는 마음이 들지 않게 끝까지 밟고 또 밟았다. 마침내 장례식장의 휘장같은 검정색 아치를 돌파해 들어갔다. 골인한 후 울긋불긋한 단풍같은 완주 메달을 받아 든 뒤 주자들의 골인을 지켜보았다. 형광색 티셔츠 주자는 1분이 지나서야 들어왔다.


 3:51:16


 예상한대로 춘천마라톤 14번의 완주 기록 가운데 최저 기록이었다. 아무리 못 달려도 3시간 40분대는 지켰던 춘천마라톤의 기록이 이렇게 되었다.


 4:47:26 → 4:16:26 → 4:03:33 → 3:52:37 → 3:52:26 → 3:51:16


 지난 8월부터 달릴 때마다 기록이 꾸준히 좋아지긴 했지만 가장 달리기 좋은 조건, 마음가짐부터 다른 춘천마라톤의 이 기록을 보고 좋아졌다고 할 수는 없었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이제 더 이상 춘천마라톤이 내게 있어서 특별한 마라톤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여느 대회의 마라톤 대회처럼 기록도 평범한 대회가 되어 버렸다는 것. 혹시 다른 대회에서 더 잘 달리더라도 이 실패를 상쇄할 길은 결코 없을 것이다. 요즘의 몸상태로 갑자기 다른 대회에서 잘 달리게 될 일은 없을 것이고.....


※ 希洙형님은 대회 출발 전후부터 끝까지 뵙지 못했다. 9분 달리고 1분 걷고, 8분 달리고 1분 걷고.... 달리는 시간을 늘리기 방식으로 서브 5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카톡으로 주고 받았다. 부상을 당하고 수술까지 해서 불과 보름 전만 해도 모든 대회를 접었던 분인데. 로운리맨님, 후배 원희님과는 출발 1시간 전 공지천교 네거리에서 잠깐 만났다. 새로 구입한 최고가 신발을 신고 오지 않고 가방에 넣고 갖고 온 게 이례적이었다. 기록 행진을 도와주는 신발이라고 하는데 일부만 동의했다. 신발 때문이 아니라 열심히 훈련한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광배님, 은수님과는 전철을 타고 함께 상봉역까지 왔다. 몇 년만에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한 대현님과도 얼굴을 뵙지 못해 전화통화하고 문자만 주고 받았다. 마침내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달려 국내 메이저대회 3개를 모두 달리게 된 것을 축하드렸다.




두 달간 시행했던 훈련 프로그램.... 부상만 키운 셈이었지만.... 춘천마라톤 완주메달과 함께....




이런 의미가 있는 로고였다.





이 코스는 2010년부터 굳어졌다. 10년째 변함없는 코스였다.




브룩스로 바뀌면서 기념품이..... 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춘천마라톤 기념품은 소장하고 애용했는데 이제는 그럴 것 같지 않다.

아예 검정색이었으면 좋겠다.






지하철 진입구를 막고 있던 철문이 올라가고 있다.


경춘선 방향으로.... 아직 5시가 되지 않았다.




은수님이 챙겨온 간식


양갱, 감, 귤, 유산균 음료, 한과까지....



이렇게 앙증맞은 사과도 있다.



호두과자까지.....



춘천역을 나서면 늘 있는 탈의실.... 늦게 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물품보관소로 향해야 한다. 우리는 출발까지 2시간 이상 남았으니 여유가 있었다.





단풍이 어둡지만 깊게 들었네.




올해 춘마 특별판 마라톤화를 신고.....



검은색 아치가 마치 저승문 같았다. 멀리서 봤을 때 밝았으면 좋았을텐데..... 초죽음이 되어 골인할 내 자신의 모습을 예견하는 색이었다.



공지천교... 이 사진을 찍다가 로운리맨님을 만났다.


완주메달과 함께.....




지금까지 받은 600개가 넘는 완주 메달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메달이다.



이렇게 다채로운 완주 메달이 있었던가?

크기도 100킬로미터 울트라마라톤 달리고 받았던 완주메달만 하다.



이렇게 많은 짐 주인들이 주로에서 달리고 있는 중.....



골인 1킬로미터를 남기고 만나는 설치물.....














서상대교 오르는 27킬로미터 지점일 것이다.

아주 넋이 나가 있었다.


그래도 풀코스를 뛰었다고 출발할 때보다는 살이 빠져서 골인하고 있다.

악착같이 뛰면서 힘드니 입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