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한화와 함께 하는 2019 충청마라톤(2019/10/19)-FULL 213

HoonzK 2019. 10. 24. 21:15

  아프리카 돼지 열병(ASF)으로 마라톤 대회가 줄줄이 취소되지 않았더라면 서울 여의도에서 농촌사랑마라톤 하프를 달렸을 것이다. 농촌사랑마라톤 대신 충청마라톤에 참가하기로 했다.  세종시에서 열리기 때문에 달림이들이 세종시 마라톤이라고도 부르는 대회였다. 이 대회는 첫 출전이니 풀코스를 달리기로 했다. 교통편이 문제였는데 KTX로 오송역까지 이동하여 시간을 줄이고 오송역에서 16킬로미터 떨어진 세종호수공원까지는 하프에 출전하는 아세탈님이 아산에서 대회장으로 이동하는 도중 나를 픽업하기로......


 흐릿했던 시간 계획이 대회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선명해졌는데 풀코스는 8시 30분에 출발하지만 하프코스는 9시 30분에 출발한다는 사실을 대회 전날에야 알았다. 아세탈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7시 30분까지 오송역으로 나오겠다고 했다. 1시간이나 일찍 서둘러야 했는데 주저없이.....


 전날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 새벽 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변함없는 토막잠에 시달리다 4시 39분 알람을 듣고 일어났다.(알람을 맞춘다고 해도 알람을 듣고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는데...) 서울역까지 버스, 오송역까지 열차..... 2시간 이상 휴식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잠은 자지 못했다. 서울역 앞 롯데리아에서 불고기버거 세트를 먹은 포만감에도 잠들지 못했다. 노곤한 상태에서 오송역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부터 들렀다. 7시 25분경 아세탈님과 오송역 3번 출구 앞에서 만났다.


 대회장까지는 막힘없이 갔는데 16킬로미터가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아세탈님 덕분에 아주 편안하게 대회장으로 가고 있었다. 각종 정부청사 건물이 여기저기 즐비한데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내가 참가하는 마라톤이 정부청사 건물을 보면서 대로를 달리는 즐거움이 큰 대회구나 싶었다. (나중에 알게 된다. 금강과 미호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내내 따라가는 코스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제3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세종호수공원은 안개가 살포시 끼여 있었다. 햇살은 이미 강하게 비치고 있었다. 매우 더운 날씨가 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네 시간 전후의 시간을 뙤약볕에서 시달릴텐데 후반으로 달릴수록 몹시 힘들 것이었다. 미리 스포일링하자면 30킬로미터 이후 걷는 주자들이 속출했고, 35킬로미터 이후에는 내 앞의 주자들이 거의 다 걷고 있었다.


 광배님은 서울에서 6시 10분 차를 타고 세종시에 왔고 대회장까지는 1킬로미터 남짓 걸었다고 했다. 다음날도 경주에서 풀코스를 달리기 때문에 오늘은 속도를 늦추어 가볍게 달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분의 기록은 3시간 29분 59초 40이었다. 서브 330이 보이니 그 기록을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0.6초 차이로 3시간 30분대가 된다면 아쉬움은 너무 컸을테니.


 대회장은 비교적 한산하였다. 하프, 10킬로미터, 5킬로미터 주자들이 출발하려면 아직 한 시간 이상 남아 있었으니. 이 이른 시각에 한화 이글스 선수인 이태양 선수가 나와 팬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옆을 지났는데 키가 너무 커서 깜짝 놀랐다. 투수들은 작은 선수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직전 마라톤에서 신발끈 트라우마가 생겨서 두 번이나 풀었다 매면서 신발을 발에 타이트하게 붙였다. 급격한 오르막으로 시작되는 특이한 출발선을 지나며 호수를 오른편에 놓고 돌기 시작했다. 선두권 주자들이 벌써 호수를 감아돌아 건너편 주로에서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내 앞에는 4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가 있었다. 동요하지 않고 그냥 달렸다. 잠시 후 내 옆에 4시간 30분 페메가 있었다. 1킬로미터 6분 11초. 요즘 들어 가장 늦은 페이스였다. 2킬로미터는 11분 23초. 조금씩 속도가 올랐다. 4시간 15분 페메도 내 뒤로 왔다. 3킬로미터 16분 44초. 서브 4 기준에 들었다. 4시간 페메는 아직 앞에 있었지만. 어느새 호수를 감아돌아 빠져나가고 있었다. 한참 뒤에 이곳으로 돌아와 같은 코스를 달려야 했다. 4킬로미터 남짓 달리자 금강이 오른쪽에 있었다. 금강을 따라 포장된 산책로가 쭉 이어졌다. 대로를 달릴 줄 알았는데 끝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어찌 보면 서울의 우이천이나 중랑천변보다 더 비좁고 한적한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충청마라톤만의 특색이 없었다. 이런 길은 지방에 갔을 때 조깅나와 달리던 길과 다를 게 없었다. 전에는 대로를 달리는 대회였다고 했다. 길을 막고 달리는 일에 대한 민원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허긴 대전마라톤도 과거에는 도심의 대로를 달리는 대회였다가 이제는 연구단지의 소로를 미로처럼 달리는 대회로 바뀌었고,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대회도 메이저 대회가 아니면 차들이 다니는 대로를 이용할 수 없게 되었으니.


 야금야금 좋아지는 기록으로 볼 때 오늘은 3시간 40분대에 들어서지 않을까 싶었다. 4시간 10분대였다가 4시간 초반, 다시 3시간 50분대 초반, 그리고 3시간 40분대..... 이러는 게 바람직한데..... 아세탈님은 내가 3시간 45분 페메보다 빨리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정 마라톤이라 수면이 부족했고, 코스가 지겨웠고, 점점 더워지고 있어 좋은 기록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수시로 햄스트링에 통증이 발생했다. 속도를 늦추고 자세를 바꾸어 이겨내고는 있는데 일주일 전 풀코스와 비교하면 좀 심했다. 오른쪽 다리뿐만 아니라 왼쪽 다리에까지 통증이 느껴졌다. 서브 4의 페이스는 꾸준히 유지하고 있어서 5킬로미터를 지나면서 4시간 페메의 무리에 합류할 수 있었다. 20킬로미터까지 이들과 함께 갈까 하다가 돌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좀더 외롭게 달리기로 했다. 혼자 달리고 있는데 남원모철님이 따라붙었다. 지난 봄 풀코스 1천회를 달렸던 분으로 2시간 53분대의 기록 보유자였다. 여기에 보성용호님까지 함께 해서 세 명의 잡담 러닝이 이어졌다. 모철님은 기록 보다는 기록증 때문에 달리고 있다고 했다. 보성용호님이 먼저 앞으로 나아가고 단둘이서 달리고 있는데 뒤에서 풍선을 단 분이 귀에 익은 목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무지 다정하게 달리고 있네. 류성룡님이었다. 레이스패트롤을 맡고 있었다. 3인 1조가 되어 꾸준히 함께 달렸다. 어마어마한 경력의 달림이들과 함께 한 덕분에 달리기가 전혀 지겹지 않았다. 두 분의 전북 사투리를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미호천이 금강을 만나는 합강공원, 아람찬교에서 반환한 후 미호천을 따라가는 가운데 내내 함께 했다. 햄스트링 통증을 달랜다고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을 때면 그분들보다 좀 떨어지긴 했는데 급수대를 만나면 따라붙을 수 있었다. 합강공원에 비치된 급수대의 물은 견디기 힘들었다. 주자들이 뿌린 파스가 물에 들어갔는지 마시고 나면 한동안 입부터 코까지 퍼진 파스 냄새 때문에 불쾌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스프레이 파스를 물컵 바로 옆에 놓아둔 게 문제였다. 파스를 뿌리는 주자들이 자신이 뿌린 파스가 물에 들어가는지 신경쓸 겨를은 없어 보였다. 점점 더워지고 있어 급수대를 피해 갈 수도 없고.


 4시간 페메는 바로 뒤에 있었다.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추었다간 바로 추월당할 수도 있었다. 류성룡 레패, 남원모철님과 함께 달리다 20킬로미터 이후 아이언맨 복장으로 달리는 기민님과 이분들이 대화를 나누며 달리는 사이 조금 앞으로 나갔다. 아는 분이 많지는 않았지만 특전사님, 광배님, 헬스지노님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월하리 군부대 근처에서 반환하고 24킬로미터 표지판을 지날 무렵 남원모철님, 류성룡님이 속도를 올려 내 앞으로 나아갔다. 달리면 달릴수록 힘들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덥고 피곤하고 무겁고 아팠다. 11시가 넘어가면서 날은 매우 더워졌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몸은 피곤해졌다. 아직 체중은 일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무거웠고, 햄스트링은 근래 들어 가장 아팠다. 지병을 안고 사는 사람처럼 죽을 때까지 견디어내어야 한다는 각오로 버티고 있었다. 힘든데도 초반보다 속도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미세한 차이지만 후반에 조금 빨리 달렸다. 초반 10킬로미터보다 후반 10킬로미터를 빠르게 달렸다는 기록은 남겼다. 코스가 강변 소로라 주로 전환이 많았고 이따금 오르막이 나와 페이스를 망가뜨렸다. 그래도 처음 만나는 미호천을 느끼려 애썼다.  행정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의 위용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마라톤이었지만 세종호수공원, 금강, 미호천변 나무와 수풀 사이를 누비는 자연의 마라톤이 충청마라톤이었다. 29킬로미터인 줄 알았던 표지판이 28킬로미터 표지판이 되는 순간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더디게 나타나는 표지판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평소보다 길게 느껴지는 1킬로미터 구간, 달리기 조건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었다. 내내 앞에서 달릴 줄 알았던 보성용호님이 내 앞에서 별안간 멈춰 버렸다. 여기저기 걷는 주자들이 보였다. 나 역시 걷고 싶었지만 체력 소비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참았다. 그렇게 버티는데 자전거를 피하려면 조금씩 몸을 움직여야 했다. 가끔 나타나는 자전거이지만 자전거를 피하느라 옆으로 몇 십 센티미터 몸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울화가 치밀었다. 입은 바짝바짝 마르고 있었다. 허기도 자주 졌다. 물은 무조건 두 컵 이상이고, 초코파이와 바나나를 악착같이 챙겼다. 스포츠 음료나 콜라 같은 것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는데 급수대는 끝까지 생수, 바나나, 초코파이였다. 참가비 2만원의 마라톤인데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안되겠지만. 물을 그렇게 마시는데도 화장실에는 한번도 가지 않았다. 눈에 땀이 들어가 눈을 뜨지 못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이 와중에도 바닥을 기어다니는 송충이를 밟지 않으려 애썼다.


 6일전 공원사랑마라톤 풀코스보다 32.2킬로미터 지점을 1분 15초 쯤 빠르게 통과했다. 그렇다고 그 때보다 좋은 기록으로 골인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속도감이 도무지 느껴지지 않았다. 대회 당일 후반이 정말 더운지 확인하는 기준이 있는데 바로 헬스지노님이었다. 헬스지노님이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이면 그날은 정말 더운 것이었다. 33킬로미터 지점에서 헬스지노님이 걸어가고 있었다. 35킬로미터 지점에서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 앞의 주자들은 모두 걷고 있었다. 빨리 달리는 것도 아닌데 남원모철님, 류성룡 레패가 내 앞으로 나아간 이후에는 아무도 나를 추월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앞의 주자들을 추월하고 있었다. 8킬로미터 쯤 남았을 때 10킬로미터 대회에 나왔다고 생각했다. 이제 2킬로미터를 달렸을 뿐이라고. 어찌 보면 일주일 전 계란마라톤 2킬로미터를 달렸을 때보다 덜 힘든 것 같기도 했다.


 금강변을 달리다 둔덕으로 바로 올라가는 주자도 보였다. 그럴 경우 3킬로미터 이상 덜 달릴 수 있었다. 100미터 이내의 거리에서 달리는 남원모철님을 꾸준히 따라갔다. 지난 12월 진주마라톤에서 골인 지점을 앞두고 제쳤던 일을 재현할 수도 있었다. 세종호수공원 둔덕으로 올라붙을 때 가파른 오르막이 있어 앞의 주자들이 걷고 있었다. 38킬로미터 쯤 달렸으니 이제 다 온 것이었다. 세종호수공원을 한바퀴 도는 지겨운 달리기가 남았는데 6분이 넘는 페이스로 가도 서브 4는 무난했다. 둔덕에 올라 아래 주로를 보니 4시간 페메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호수공원을 달릴 때에는 감아도는 코스가 많아 회전할 때 울타리 기둥을 잡고 돌기까지 했다. 3킬로미터 남았을 때 남원모철님 앞으로 나아갔다. 바닥에는 '다 왔슈 힘내랑게'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정말 다 왔다. 안쪽 주로에는 키즈 러닝이 열렸던 장애물 구간 같은 설치물이 남아 있었다. 내가 풀코스를 달리는 동안에 많은 일이 있었다.  하프, 10킬로미터, 5킬로미터, 키즈러닝 참가자들이 대회를 마치고 돌아갔을 것이다. 오랜만에 하프에 참가한 아세탈님은 잘 뛰셨나 궁금했다. 100미터마다 표시된 거리 표지를 일일이 확인하며 달렸다. 부담스럽긴 한데 틀림없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분명히 달리는 거리가 줄어든다는 것. 1300, 1200, 1100...... 하프 꼴찌 주자를 제쳤다. 1킬로미터를 남기고 3시간 47분 50초였다.


 하프를 완주한 아세탈님이 기다리며 사진을 찍어 주었다. 손을 들어 인사하고 마지막 스퍼트를 가했다. 골인하자마자 대형타월을 받았다. 풀코스 완주 주자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었다. 바로 기록증도 받았다.


 3:52:26.37


 아세탈님이 내 기록을 보더니 또 줄이셨네요라고 했다. 대회장에서 제공하는 먹거리는 넘기고 아세탈님과 식사를 하러 갔다.(따로 포스팅 예정)
 
 다음 주는 춘천마라톤이다. 14년째 참가하는데 춘천마라톤 일주일 전 하프를 달린 일은 많아도 풀코스를 달린 일은 없었다. 이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 모르겠다. 체중은 더 빼기 힘들 것이고, 햄스트링 통증을 최소화하는 일이 급선무이겠다. 2주 연속 풀코스의 피로감이 춘천마라톤 때까지 영향을 주는 일은 없기를........
 


대형 타월을 받았다. 골인하면서 대형 타월을 받은 것은 세번째이다. (처음부터 기념품으로 대형타월을 받은 것은 한 번 있었고....)

2008년 MBC한강마라톤, 2014년 제주MBC마라톤 이후.....



일반 사이즈의 수건과 함께 찍어서 크기를 비교해 보았다.


대회 로고가 튀지 않게 새겨져 있다.






아세탈님의 최고 기록과 비슷해서.... 아세탈님은 이 기록을 보자마자 일주일 전보다 내가 기록을 단축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았다.


골인 직전의 내리막길..... 출발할 때 매우 힘들었던 구간인데 스피드가 붙은 상태에서 경사가 가파르니 넘어질까 우려되었다. (아세탈님이 찍어준 사진)



하프 주자를 제치고 있었다.


골인 지점을 향하여 열심히......




새벽에 열차나 버스를 타기 전 패스트푸드점이 있으면 무조건 먹고 보는 습관은 고쳐야겠다.

마라톤을 앞두고 불고기버거세트를 먹은 것은 잘못이다. 새우버거세트라면 몰라도......






상금이 제법 있었다.

풀코스 완주자의 경우 대형타월을 지급한다는 사실을 대회 당일 새벽에 알았다.

*타올이라고 되어 있는데 타월이 표준어이다.



세종호수공원, 금강, 미호천..... 세종시의 세 가지 물을 만날 수 있는 대회였다.

호수(湖水), 강(江), 내(川)


아세탈님이 달린 하프 코스.... 아세탈님은 오랜만에 하프를 달렸다. 요즘 포스팅을 하지 않으시니 어떤 대회를 완주했는지 잘 모른다.




키즈러닝 코스는 놀이가 결합된 코스라 매우 좋아보였다.



마라톤용품상 단골에게서 반바지를 샀다. 열심히 달린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