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의 시대'는 만화책이다. '혹독한 근대 및 생기넘치는 메이지인"이라는 부제가 붙은. 다니구치 지로가 그리고, 세키카와 나쓰오가 쓴 작품으로 이런 만화책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얄팍한 사고와 어설픈 자료조사로 그려낸 작품이 아니라 나름대로 심도가 있는, 즉 생명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메이지 시대를 생생하게 끌어낸 5부작으로 하루가 늦어 첫번째 권을 빌리지 못했다. 어떤 이가 선점한 것이었다. 결국 2부부터 5부까지 내리 읽고 1부는 나중에 읽어 전체적인 스토리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하지만 각권을 따로 읽어도 완결된 작품으로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2부 무희
3부 다쿠보쿠의 일기
4부 메이지 유성우
5부 거북한 소세키 선생
1993년 일본만화가 협회상
1998년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대상
메이지 시대의 대표 문인으로 거론된 소세키 나쓰메 긴노스케는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2014년 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어 아직 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은 소설가. 그 사람이 메이지 시대, 1800년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에 살았던 사람인지는 이번에 알았다. 시기적으로 소세키의 인생이 메이지 시대와 일치하니 그는 메이지인이라고 할만하다. 그래서이겠지만 그는 <도련님의 시대> 1부와 5부. 즉 도입부와 결말을 책임진다. <도련님>이라는 제목도 그의 소설에서 따온 것이다.
메이지 42년(1909년) 5월 10일 인도양의 벵골만에서 객사한 아사히 신문 사원 하세가와 다쓰노스케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장례식으로 2부 <무희>는 시작한다. 문인이기도 했던 후타바테이이다 보니 초입부에 당시의 문인들이 소개된다. 소세키 나쓰메 긴노스케(42세), 다쿠보쿠 이시카와 하지메(24세), 오가이 모리 린타로(47세), 시마무리 호게스(38세), 다야마 가타이, 도쿠토미 소호, 쇼오 쓰보우치 우조(50세), 나카라이 도스이, 마사무네 하쿠초, 도쿠토미 로카, 이즈미 교카 등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들이 소개된다.
2부는 군인 오가이 모리 린타로와 독일 여성 엘리제 바이게르트의 로맨스를 그린다. 독일에서 인연을 맺었지만 가문 때문에 결혼할 수 없었던 일본 장교의 이야기이다. 동양의 애인을 찾아 독일에서 배를 타고 오지만 끝내 결혼하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에피소드가 2부를 구성한다. 이 와중에 후타바테이가 등장하는데 마치 배경처럼 깔려 있다. <뜬구름>의 작가. 소설은 인간의 고뇌 그 자체를 비추고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담는 그릇이 아니겠는가? 그런 시각을 그대로 보여주며 일본 근대문학의 맹아 역할을 했던 작가였다.
오가이 모리 린타로, 엘리제 바이게그트, 하세가와 다쓰노스케 후타바테이는 2부의 주요 인물이다. 오가이는 자신의 틀을 깨기 위하여 발버둥치다 좌절하고 <무희>라는 작품을 통하여 비애를 승화시키는 문인이 된다.
3부는 요절한 다쿠보쿠 이시카오 하지메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난에 쩔어 살지만 절약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았던 시인. 집필 요금을 미리 가불하여 돈이 수중에 들어오면 하숙비 연체는 싹 잊어버리고 오입질에 술값으로 탕진해 버리는 젊은이. 그는 다른 사람의 화대와 술값까지 내주는 것을 개의치 않을 정도였다. 가족도 있었지만 객지에서 따로 생활했다. 27세에 죽은 이 시인은 낭비벽의 화신이었다. 로마자로 일기를 쓰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빚더미에 올라도 주먹구구식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가난에 허덕였던 메이지인의 극단적인 경우를 보여주는 예이다. 생활 감정을 실린 시로 일본의 국민 시인이된 다쿠보쿠. 죽은 후에는 무책임하고 향락적인 인생보다는 그의 작품으로 기억된다. 단가(短歌).
4부는 1910년 한일합방기. 헬리혜성이 다가오면서 세상이 어수선해졌던 시기. 천황 암살 계획 '대역 사건'이 주된 이야기로 여성 테러리스트 간노 스가코, 정신적인 지주 고토쿠 슈스이가 만들어내는 시기에 초점을 맞춘다.
일본 국민의 성정은 기민하지만 타산적이고, 활동적이지만 서정적이고, 일천한 사고, 다변, 쉬 흥분했다가 돌연 비관에 사로잡히는 스타일이다. 그런 모습이 그려진다.
위장병에 시달리며 고양이의 환청을 듣는 소세키의 이야기가 5부이다. 30분간 죽은 상태에서 소세키는 오가이, 다쿠보쿠, 시키, 이치요, 후타바테이, 헌, 고양이를 차례로 만난다.
청춘의 메이지 시대는 갔다. 메이지 시대의 중년도 그 종지부를 찍는 노년까지 달려왔다. 소세키의 죽음으로 메이지 시대는 마감된다. 서구화를 향한 충동, 방어적 민족주의와 국민국가의 형성(5부 313). 구시대적 가치관과 신시대적 사상의 충돌 속에 청년들이 고민 속에서 빠져 살아야 헀다. 러일 전쟁을 정점으로 서로 겹쳐졌다가 마침내 멀리 분리되어간 국가적 자아와 국민적 자아의 균열에 함몰된 불운한 사람들.(313)
2부에서 5부까지 읽고 한 달 뒤 1부 '나쓰메 소세키'편을 읽을 수 있었다. '도련님'의 작가로 알려진 나쓰메 소세키가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국 유학을 경험한 소세키는 서구와의 갈등, 신구의 충돌이 끊임없이 자신 속에서 충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갈등과 질곡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메이지 37년~38년은 서구 문물의 과도한 쇄도로 인하여 일본의 중심이 흔들리는 시기였다. 물질 사회의 변화를 정신이 따라잡기 버거운 때라고 할 수 있었다. 급속한 서구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애쓰는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인 소세키. 그는 시대의 흐름에 뒤쳐진 인물들에 대한 애정을 놓을 수 없었다. '시대는 소세키를 감싸고, 소세키는 시대를 꿰뚫는다(244)'는 말대로 그의 진지한 고민은 메이지 시대의 대표적인 문인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된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소세키의 '도련님'을 다시 읽는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와는 사뭇 느낌이 다를 것이다.
1부부터 5부까지 전 작품은 메이지 39년(1906년)부터 메이지 43년(1910년). 근대 일본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시기를 5부작에 담았다. 자신의 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고민의 주역들이 만들어내는 순간, 그 순간을 포착해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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