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킬로미터에 160미터만 달리게 했네. 지난번 서울달리기 대회도 거리가 짧더니 요새 하프가 다 왜 이러지?
-아닌데요. 21킬로미터에 97.5미터가 하프니까 오늘은 60미터 이상 더 달리게 한 거예요. 어제 달려봐서 아는데 반환점이 좀 멀게 놓였더라고요.
-아, 그렇구나. 더 많이 달렸네.
-더 달리셨는데 지난번보다 더 빨라지셨네요.
希洙 형님은 올해 하프 최고 기록을 경신하셨다. 지난 주 1시간 44분대에 이어 1시간 42분대로 들어오셨다. 希洙 형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대회장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새벽 2시 30분 잠을 깨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경주로 이동하여 허수아비님과 로운리맨님을 응원한다. 아니면 전주로 이동하여 초등학교 축구왕중왕전 경기장을 찾는다. 그도 아니면 希洙 형님의 하프 완주를 응원하면서 가볍게 조깅 정도를 해 준다. 세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갈등을 거듭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새벽에 나가야 했다. 일단 경주는 접었다. 돌아오는 교통편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 전주로 가자. 새벽 3시 40분 신라면을 끓여 먹었다. 전주행 6시 버스를 타고 가면서 2시간 30분 남짓 실컷 자는 거다. 출발 전에 배는 다 꺼질테니 상관없다. 그런데 전주는 비가 내리는 등 기상 조건도 좋지 않은데다 다녀오는 길이 너무 힘들 것같아 내키지 않았다. 시간은 자꾸만 갔다. 결국 뚝섬유원지역으로 가기로 했다. 거기 가려면 6시가 넘어 일어나도 상관없었는데 너무 일찍 일어난 거다. 2시간 반은 더 잘 수 있었는데. 라면에 밥까지 말아먹었으니 이제 잘 수도 없다. 의자에 앉아서 눈만 감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고속버스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과 똑같았다.
눈을 뜨니 6시 40분. 이제 나가야 한다. 생각해 보니 希洙 형님이 꼭 온다는 말을 한 것도 아니다. '일요일 광진대회 현장접수할까' 하는 물음에 '현장 접수 괜찮지요. 만약 제가 지방에 가게 되면 못뵐 수도 있지만'이라는 답을 했고, 그 다음 말씀은 없었으니 오실지 안 오실지 알 수 없었다. 나가면서 내가 현장접수해서 달리겠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토요일 하프 달린 것만으로도 운동은 충분하니. 그런데 대회장에 도착해서 주최측에 현금을 내밀었다. 배번호와 기념품 아식스 티셔츠를 받았다. 그리고는 希洙 형님에게 카톡 문자를 보내었다. '오늘 광진대회 오시나요?' '강남구청 통과중' 응답이 바로 왔다.
대회장에서 조금 떨어진 화장실로 향하고 있는데 希洙 형님은 부지런히 걸어오고 계셨다. 두 팔을 들고 환영하였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스트레칭하고 달릴 준비까지 마친 후 다시 만났다. 希洙 형님은 조금씩 스피드를 올려 달리는 훈련까지 하였다. 나는 절대 하지 않는 훈련이었다. 어차피 달릴텐데 왜 미리 달리지 하는 게 내 생각이니까. 형님 워밍업을 보고 있는데 아세탈(성훈,문)님이 와서 인사를 하였다. 어제는 못 뵈었네요. 어제 늦게 도착해서 10킬로미터를 달리다 보니요. 오늘도 10킬로미터 뛰시네요. 어제 53분에 달렸는데 오늘은 조금 단축해 보려고요.(나중에 알고 보니 48분대로 골인하셨다) 저는 어제 하프 1시간 47분대로 달렸는데 오늘은 모르겠어요. 아세탈님은 예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 새벽강변마라톤 풀코스 때에는 30킬로미터까지 내 뒤를 따라온 적이 있었다고 했다. 아는 체 하시지 그러셨어요. 체격이 좋은 분이라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졌다. 덩치 큰 사람이 마라톤 뛸 때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 것같았다.
希洙 형님은 이 대회에는 페이스메이커가 없으니 1시간 44분대로 달리는 여성 주자를 페메 삼아 따라 갈 것이라고 했다. 1회 대회이다 보니 운영에 미숙한 점이 있어 출발이 조금 지연되었지만 레이스를 펼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출발하기야 했지만 내가 왜 이틀 연속 하프를 달리고 있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이래도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D마라톤클럽의 두경님에게 인사를 드렸더니 오랜만이라는 답이 왔다. 지난 주 문화통일 마라톤 34킬로미터 지점에서 추월할 때 인사드리고 골인한 후에도 탈의실 앞에서 인사드렸는데 일주일이 오랜만은 아니니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예의상 인사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希洙 형님은 출발부터 빨랐다. 숏피치로 치고 나가더니 나와의 거리 차이를 눈에 띠게 내어 버렸다. 어제보다 기온도 낮고 해가 나지 않아 달리기 여건은 좋았다. 덕분에 나는 1킬로미터를 어제보다 20초 쯤 빨리 통과하는데 형님은 그냥 처음부터 5분 페이스로 끌고 가셨다. 용왕산의 하늘색 유니폼이 100미터, 200미터.... 점점 멀어져 버렸다.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형님은 내 페메였다. 주변의 달림이와 보조를 맞추기 보다는 멀리 있는 형님을 보고 달렸다. 그래서인지 4킬로미터를 21분이 되기 전에 지났다. 전날보다 매우 빠른 셈이다. 5킬로미터는 25분이 걸리지 않았다. 希洙 형님은 23분대에 통과했고. 10킬로미터 종목의 반환점이기도 한 5킬로미터 거리 표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하루 전날 달렸으니 5킬로미터 지점이 어디인지 잘 알고 있다. 물 한잔 마시고 조금 더 진행하니 바닥에 5킬로미터라고 적힌 페인트 글씨가 나왔다. 25분 후반대. 이게 맞는 거다. 그래도 빠르다. 6킬로미터, 8킬로미터, 10킬로미터 표지판은 없다. 7킬로미터, 9킬로미터 표지판은 있다. 뚝섬유원지 수변마당에서 구리까지 갔다 오는 코스는 너무나 익숙하다 보니 굳이 표지판이 없어도 페이스를 체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6킬로미터쯤 달리면 서울과 구리 경계, 8킬로미터쯤 달리면 구리암사대교, 9킬로미터 지점 왼편으로 대형태극기, 반환점은 강동대교 가기 직전. 구리에 들어서면서 분홍색 티셔츠 주자가 나를 제치고 나갔다. 철인3종 주자였다. 希洙 형님은 나와 600미터 정도 차이를 내버리는 바람에 현재로서는 동반주가 힘드니 철인3종 주자를 보면서 따라갔다. 소변을 어디서 봐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면서......
반환점은 어제보다 먼 데 설치되어 있다. 이 바람에 오늘 하프를 60미터 이상 더 달리게 되는 것이다. 希洙 형님, 빨리도 돌아오신다. 힘든 기색을 보이지만 페이스를 떨어뜨릴 것같지는 않았다. 힘들게 달려야 기량이 는다는 평소 지론대로 달리신다. '아주 잘 달리십니다. 오늘 아주 날을 잡으셨네요.' 나의 외침에 손을 흔들어주시고...... 급수대에 간식은 아예 없고 물만 있으니 시간도 별로 쓰지 않는다. 스퍼트는 하지 않는다. 53분 20초에 반환했으니 어제보다 반환점 기록이 4분 30초 가까이 빠르다. 1시간 46분 40초의 기록이 예상된다. 5분 00초 페이스로는 못 가도 5분 10초 이내의 페이스로는 나아가고 있었다. 후반에 치고 나갈 수 있다면 1시간 44분대의 골인을 장담할 수 있는 페이스였다. 다만 전날 하프, 후반에 빨리 달린 하프의 영향도 있고, 잠을 거의 못 잔 상태라는 우려감도 있으니 속단할 수는 없었다. 초반에 빨리 달리고 있는 만큼 후반에 스피드를 낼 수 있는 힘이 과연 남아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정말 오랜만에 하프를 달리면서 헉헉거리며 지옥의 후반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쓰러질 수도 있고.
힘이 드는 것같으면 경주국제마라톤에서 풀코스를 달리고 있을 허수아비님, 로운리맨님, 정명진님을 떠올렸다. 잘 달리고 계실까? 정명진님은 오늘 풀코스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울 수도 있으리라. 요즘 페이스가 좋으시니. 로운리맨님은 다음 주 춘천마라톤이 있으니 생각이 많으시겠지만 주로에 들어선 이상 페이스를 늦추지 않고 3시간 20분대로 들어가기 위하여 노력하실테고. 허수아비님은 부상으로 애를 먹었지만 끝까지 완주해 내실테고. 하지만 나는 하프다. 풀코스보다는 훨씬 편안한 하프. 금방 끝나 버리는 하프. 하지만 경주에는 비도 내리고, 여진이 있을 수도 있고.
한참 스퍼트를 해야 할 13킬로미터 지점에서 소변을 보았다. 그냥 참고 완주할 수도 있었지만 걱정거리 하나라도 덜고 싶었다. 소변을 보는 동안 나를 제쳤던 주자들은 100미터를 넘기 전에 모두 따라잡았다. 어제의 4분 40초대 페이스가 나와주길 바라면서 철인3종 주자를 따라갔다. 16.1킬로미터 지점까지 꾸준한 기세로 나아간 덕분에 아득하기만 했던 希洙 형님과의 거리는 300미터 정도로 줄어 들었다. 어떻게든 希洙 형님과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니 스피드를 올리면 올렸지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덕분에 철인3종 주자를 따라잡았다. .16.1킬로미터를 1시간 20분을 넘겨서 통과했지만 이제 5분 페이스로 나아가도 1시간 44분대가 가능했다. 주최측의 실수로 5킬로미터가 남은 것이 아니라 4.8킬로미터 쯤 남았을 것이라는 계산이 도움이 되었다. 17킬로미터와 18.5킬로미터 부근의 오르막. 기세 좋게 넘었다. 希洙 형님과 이제 100미터 차이. 20킬로미터를 넘어섰는데 내 옆에 누군가 나타났다. 철인3종 주자. 그에게는 내가 페메가 된 셈이이었다. 인사를 나누었다.
-철인3종을 하셔서 그런지 참 잘 달리시네요.
-그동안 살이 쪄서 너무 힘들어요.
-그래도 뒷심이 좋으세요. 저 앞에 달리시는 분이 친한 형님인데 못 따라잡겠어요.
-지금이라도 힘을 내면 따라잡으실 것같은데요.
-이제 500미터도 남지 않은 것같은데 그럼 해볼까요?
팔을 크게 휘젓고 다리를 재빠르게 움직였다. 100미터 차이였던 希洙 형님을 골인 아치 100미터를 남기고 제쳤다. 전력질주. 춘천마라톤을 준비하면서 인터벌 훈련을 했던 덕분이겠지.
1:42:33.03
형님은 1시간 42분 49초. 올해 최고 기록이었다. 순두부와 떡을 먹으면서 하프 시상식 이후 이어진 경품 추첨이 끝날 때까지 있었다. 양말, 커피포트, 축구공, 운동화, 자전거, 전자레인지, 32인치 LED TV.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세 자리까지는 두 번이나 맞았지만 마지막 자리가 맞질 않았다. 탈의실에서 주운 배번을 손에 수북하게 들고 있던 사람은 선물을 받아가던데 경품 추첨이 꼭 운만은 아닌 것같다.
希洙 형님과는 나이키 건대점까지 걸어갔다. 나이키 페가수스 여성용 신발을 구입하시는데 그게 잘 맞는다고 했다. 점심은 닭칼국수로 먹었다. 형님은 이제 일주일 동안 진도에서 객지 생활을 하고 토요일 담양에서 하프마라톤에 참가하신다고 했다. 자신의 고향집을 지나는 코스라 선택했다고 하셨다. 바로 다음날 춘천마라톤인데 무리 아닌가요 여쭈었더니 아주 천천히 달릴 것이라고 했다. 춘천마라톤도 4시간 15분대 예상하면서 뛸 거라고 했다. 춘천마라톤에서 같은 C그룹으로 배정되었으니 함께 달리기를 원했던 내 바램은 멀어졌네.......흑흑흑. B그룹인 로운리맨님에게 같이 달리자고 할 수도 없고......
형광색으로 코디를 했다. 希洙형님이 완주 후 찍어주신 사진...... 배번을 떼었다가 다시 붙였네.
하프 때에는 한번도 신지 않았던 타사재팬 마라톤화를 신었다. 지난 인천송도에서 엄지발가락에 피멍을 남긴 신발이지만
얇은 양말을 신고 짧은 거리를 달리니 전혀 문제가 없었다.
希洙형님과 함께 한 닭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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