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마라톤대회하면 늘 떠오르는 이미지.
2012년 11월 11일 풀코스 완주하는 동안 내내 폭우를 맞으며 달리는 나 자신.
후반 역주, 다른 주자들을 추월하면서 용왕산 희수 형님을 처음 보고 응원보내던 모습.
지난 해부터 스포츠서울마라톤대회에서는 풀코스 종목이 없어졌다.
하프를 희수 형님과 함께 달렸다.
대회장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희수 형님은 전화를 걸어 나를 찾았다.
그때부터 함께 움직였다.
금색 풍선을 단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와 빨간색 풍선을 단 2시간 페이스메이커 사이에서 출발을 준비하였다.
형님보다 5초 늦게 출발했다. 출발하는데 누군가 달려들어와 내 팔을 부여잡았다. 박성국님이었다.
원래 참가신청했었는데 밤을 새는 바람에 오늘은 쉬기로 했다고 했다. 다음에 꼭 함께 달려요.
100미터를 가기 전에 희수 형님과 동반주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스포츠중계 캐스터처럼 떠들어대는데 아마 말을 너무 많이 해서 후반에 체력 소비로 애를 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첫 1킬로미터는 늘 그랬던 것처럼 5분 30초.
차츰 페이스가 올라붙었다.
짙은 안개가 끼어 몇 킬로미터 달리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안개낀 날씨는 뙤약볕 작렬하는 날씨로 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5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안개는 모두 사라지고 날씨는 말끔히 개었다.
아직은 덥지 않았다.
지난 주 제주에서 2킬로미터를 넘기가 무섭게 땀으로 범벅이 되었던 것과는 달랐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라 달리기가 아주 수월하였다.
하늘 공원과 노을 공원을 감아 도는 코스는 적당한 오르막과 흙길이 있어서 달리는 재미도 있었다.
5킬로미터를 25분 20초 정도에 통과했다. 특별히 스피드를 올리는 것도 아닌데 희수 형님과 나는 10킬로미터를 48분 20초대에 통과하였다.
-점점 빨라지는데 1시간 39분대 도전해 보시죠.
내 말에 희수 형님은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1시간 45분 페메가 아직도 100미터 앞에 있었다.
10킬로미터 가기 전에 따라잡을 수 있어요라고 장담했었는데......
-일단 따라잡은 뒤 천천히 따라갈게요.
급속하게 스피드를 올렸다. 11킬로미터를 가기 전에 1:45 페메와 함께 달릴 수 있었다.
형님도 스피드를 올려 따라와 내 옆에 있었다. 그리고는 내가 스피드를 내면 따라가겠다고 하였다.
-저는 15킬로미터 이후 스피드를 올릴 건데 괜찮으시면 먼저 가세요.
희수 형님은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속도를 올렸다.
1시간 45분 페메와 함께 달리니 편안하였다. 무난한 달리기가 되었다.
돌기둥에 전시한 르느와르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여유를 부렸고, 홍제천 절벽의 단풍의 빛깔에 감탄사를 발하기도 했다.
14킬로미터를 넘으니 2차 반환점이 나왔다.
먼저 반환해 오시는 희수 형님은 힘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역주하고 계셨다.
-아주 날아가십니다.
저 정도 스피드라면 후반에 내가 아무리 스피드를 올려도 따라잡을 수 없다.
15킬로미터 이후 쵸코파이 조각을 먹고 게토레이를 마시면서 에너지를 보충하였다.
이제 스피드를 올릴까 하다가 그냥 머물렀다. 17킬로미터까지 페메와 동반주하기로 했다.
16.5킬로미터를 넘어섰을 때 슬금슬금 속도를 올렸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스피드.
아쉬운 것은 달릴 때 옆구리가 조금씩 흔들리는 느낌.
살집이 있다는 것. 그 살집 때문에 더 빨리 달리기는 힘들다는 것.
다이어트해야 해.
주법을 바꾸었다.
발을 가볍게 들어 바닥을 스치듯 밀고 나가는 식으로 수많은 주자들을 떨구었다.
18킬로미터 지점을 지날 때 1시간 42분대가 예상되었다.
19킬로미터 지점을 지날 때 1시간 32분이니 1시간 41분대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수 형님의 용왕산 하늘색 조끼도 눈에 띠었다.
그런데 힘들 것이라던 희수 형님은 여전히 역주하고 계셨다.
죽었다 깨어나도 못 따라잡겠구나.
골인하기 직전 고비가 있었다. 월드컵 공원으로 진입하는 연결 브릿지. 가공할 오르막이었다.
오르막을 치고 계시는 희수 형님이 보였다.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았다.
30초쯤 뒤 나도 오르막을 타게 되었다. 다 왔다고 소리지르는 응원자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무릎을 들어올리는 주법으로 바꾸어 오르막을 넘었다.
이제 평화의 공원 평지 코스.
질주. 또 질주.
골인하였다.
01:40:38.28 (104등)
양산마라톤을 앞두고 고무적인 결과였다.
이렇게까지 기록이 나올 줄은 몰랐다.
희수 형님 덕분에 이런 일이.
지난 해 11월 16일 기록이 1:40:42.03이었는데 그 때는 아주 힘들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어쩌면 양산에서 1시간 30분대로 들어 올 수도. 12월 최고 기록인 1시간 35분 57초 기록을 깨뜨리긴 힘들겠지만.
(20일 동안 살을 조금만 더 빼자. 살을 빼는 것은 아주 간단하지. 야식을 끊으면 된다.)
이것은 내 생애 130번째 하프코스 완주였다. 올해 8번째 하프코스 완주.
희수 형님의 기록은 01:40:15.67 (101등)이었다. 마지막에 오르막만 아니었다면 1:39도 가능했는데라고 하며 아쉬워 하셨다.
처음에는 1:45도 따라가기 힘들 거라고 하시던 분이....호호호.
헤어지는 길에 가방(28리터) 선물하고, 다음 주 손기정평화마라톤 풀코스 때에는 SUB-4로 동반주해요라고 하니 손사래를 치신다.
하프는 몰라도 풀코스에서 후반에도 속도를 유지하기는 힘들 거라고 하신다.
그건 모르지요. 다음 주에도 오늘같은 역주를 보여주실지......
나중에 출발 전에 찍은 사진을 보내주시며 문자를 덧붙이셨다.
오늘 함께 달릴 수 있어서 좋았고
가방 선물 감사합니다.
담주에...
11/15 12:47 pm
나의 답장은.....
무서운 저력을 보여주신 인상깊은 레이스였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오전이었습니다.
11/15 12:5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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