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래딧(ending credit)이 올라가는 순간
내 앞에 앉은 젊은 친구는 눈물을 닦아내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의 박수에 호응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너무 길다 느낄 만큼 오래도록.
엔딩크래딧이 올라가면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나가기 바빴던 관객들은 숙연해진 듯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어도 사나'가 울려 퍼지는 영화관에서 대부분의 관객이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영화를 본 이 날은 4월 3일이기까지 했다.
(4월 3일이라 1천원 추가 할인까지 받았다.)
제주도, 아름다운 섬.
하지만 거기엔 잊을 수 없는 슬픔이 있다.
빨갱이로 내몰린 제주 중산간 사람들.
무려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도륙된 4.3 사건.
비좁은 공간에서도 서로 양보하며 몇 일만 지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꿈꾸며 농담을 나누던 사람들.
자막에서는 쉴새없이 그들이 구사하는 제주도 방언을 표준어로 해석해 나가며 1948년 제주도민이 처한 순간과 공간으로 들어와 동참할 것을 강변한다.
짙은 연기 속에서 보일 듯 말 듯한 실체를 찾아가며 과거를 더듬어 나간다. 어느덧 우리는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제주도 동굴의 어둠을 함께 느낀다. 그저 평범하게 살았을 사람들이 어떻게 희생되었는지 생생하게 목도하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한다. 지슬은 제주도 사투리로 감자를 뜻한다. 몇 개 남지 않은 감자를 나누어 먹으며 별별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누며 내일 모레면 평소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영화 화면에는 네 차례에 걸쳐 글씨가 찍힌다.
신위(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 앉힌다)
신묘(영혼을 모시는 장소)
음복(제사 음식을 나눠 먹는 일)
소지(제사에 사용한 지방지를 태우는 일)
영화가 바로 제사의 순서를 따르는 것이다.
소지 부문에서는 최고의 엔딩이 된다.
스포일러가 되고 싶지 않으니 구체적인 언급은 회피하겠다.
영화가 주는 이미지. 부분부분 강렬하다.
철모를 눌러쓴 주정길의 눈빛.
몸을 가누기 힘든 무동이 노모의 감자 보듬기.
군인에게 유린당하는 순덕이의 절규.
칼과 연기. 감자와 돼지. 물과 불.
강렬한 메타포.
에피소드를 훑을 때마다 딸리어 나오는 이야기.
한이 없다.
1948년 크리스마스 이브
정방폭포에서 조기 두름처럼 묶여서 바다로 내던져진 제주도민.
그들에게 바치는 위령제.
<지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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