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부터 22일까지 제주도에 다녀왔다.
수요일 밤에 도착하여 금요일 아침에 떠났으니 매우 비효율적인 여정이었다.
제주도를 밤에 들어가 아침에 나오는 것은 여느 사람들과는 전혀 반대로 하는 것이다.
아침에 들어가 몇 일 있다가 당일 관광 다 하고 저녁에 나오는 게 정상 아닌가?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금요일 오전에 빠져 나오지 않았다가는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비행기 표를 구할 수가 없으니.....
지난 해에는 K5 렌트를 하면서 일주일 동안 머물렀는데, 올해는 똑같이 K5 렌트를 하면서도 2박 3일, 시간상으로 따지면 이틀이 채 되지 않는 37시간 정도 머물렀다. 자차보험은 괜히 들었다. 사실 보험료는 비합리적으로 날짜별로 처리하니 37시간을 이용하고도 사흘치를 지불해야 했다. 지금까지 재미있는 사실은 자차보험을 들면 차에 손상을 입혀 변상하는 일은 결코 없었고, 보험을 들지 않으면 차 다치게 한 값을 물어야 했다.
지난 해에는 499킬로미터를 운전했다.
올해는 짧은 이용시간에도 불구하고 200킬로미터 이상을 몰았다.
제주공항에서 서귀포로 넘어올 때 좀 길게 운전한 이후 서귀포를 맴돌았다.
의찬이와 의찬이 아버지 만나러 516도로(지금은 1131도로라고 부르는 게 맞겠지)를 달렸다.
어설픈 운전 실력에 뱀처럼 꾸불꾸불한 산길을 밤 10시가 넘어 따라간다는 일이 쉽지 않았다.
왜 내가 한화 리조트까지 가겠다고 했을까?
516도로야 전에도 많이 다녀 본 길이긴 했지만 밤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라이트를 수시로 올렸다 내렸다 하며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였다.
지독한 거북이 운행을 했다.
뒤에서 차가 따라 붙으면 비상등을 켜서 추월시켰다.
그래도 불안했다. 갓길에는 눈이 쌓여 있어 몇 일 전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히터를 틀지 않아 차 내부는 지독하게 싸늘했지만, 소매까지 걷어부치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사려니 숲길을 빗겨 달려가 마침내 한화리조트에 닿았다. 밤 11시 20분이었다.
이곳은 별천지였다. 제주도 렌트카란 렌트카는 다 이 곳에 모인 것 같았다.
차를 세우기 위하여 깊이 들어갔다간 빼내기가 힘들 것같아 최대한 멀리 세우고 걸어 들어갔다.
한화 리조트 프런트에서 의찬이와 의찬이 아버지를 30분 가량 만났다.
악수를 하기가 무섭게 하는 말씀.
-손이 왜 이렇게 차요?
-히터를 틀지 않거든요.
자정이 될 무렵까지만 머물렀다.
조지아 오리지널 캔커피를 마시며 짧은 해후를 한 셈이었다.
내가 무리해서 운전해 가지 않았다면 제주도 하늘 아래 있으면서 못 보고 올 뻔 했다.
말씀을 들어보니 올해는 지난 해처럼 자주 뵙기가 어려워 보인다.
의찬이가 2학년으로 올라가니 시합장에 더 자주 찾아가야 하니 주말에 뵐 기회는 거의 없어 보인다.
한화리조트를 떠나 김녕 해수욕장쪽으로 갔다.
달리다 달리다 지쳐 구좌체육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잠을 청하였다.
아무도 없는 차량처럼 보이기 위하여 시동을 껐는데 어찌나 추운지 수시로 잠을 깨고 소변을 보러 나가야 했다.
군대 시절 혹한기 훈련이나 다를 바 없었다.
2시간 남짓 있다가 항몽유적지를 향하여 차를 몰았다.
마라톤 코스 표시가 있을 때마다 반가워 라이트를 비쳐 올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항몽유적지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자리였는가? 아직도 원혼들이 이 주변을 맴돌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아늑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1시간 남짓 잘 잤다.
오전 8시가 넘었다. 공항을 향하여 차를 몰았다.
차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숙박비를 절약했는데도 불구하고 제주도에 다녀온 비용은 무려 32만 4천 3백 5십원이었다.
2013년 2월 20일 밤부터 2월 22일 오전 8시 30분까지 이용한 굿모닝렌트카의 K5차량.
2012년 2월 20일부터 27일까지 이용한 제주올레렌트카의 K5차량. 700킬로미터 이상을 몰았다. 당시 5천킬로미터도 운행하지 않은 2012년 신차였다. (지난 해에도 항몽유적지 주차장에 잠시 들렀다. 그때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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