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에 나서기 이틀 전 무기력증에 빠졌다.
아무리 누워 있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에너지를 다 써 버린 것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와 함께 무릎 통증도 찾아왔다.
지하철에서 타는 사람은 문 바깥쪽에서 서 있어야 했는데 내 정면에 버티고 있었다. 서로 피하려다가 몸은 피했지만 그 사람이 들고 있는 우산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내 나아가는 무릎을 때렸다. 하필이면..... 통증 재발.... 풀코스 뛰기 전에....
토요일 신묵초등학교에서 고단하였다. 참으로 애매한 햇빛... 카메라 감당을 못하였다. 지쳤다.
힘들었으니 일찍 잘 수 있었으면 좋은데 그렇지 않았다.
원래 다음날 6시 40분 무궁화호 열차표를 끊어 놓았는데 새벽 3시 30분이 안 되어 일어나 새벽 5시 50분 열차표로 바꾸었다.
잠은 세 시간 정도 잔 것이었다. 그것도 가면(假眠) 상태로.....
달리면서 눈을 감고 자기도 했다. 혹시 나는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생각도 했다.
7시 50분이 되기에 추첨권을 넣었는데 자동차가 될리가 없었다.
누가 받아 갔는지도 신경쓰지 않고 하품만 추스리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장안문을 지나면서 알았다. 내가 빠르다는 사실.
서울국제마라톤 때 보다 무려 KM당 30초 빠르면 문제가 된다.
옆에 달리는 4시간 페이스메이커의 계산은 무엇일까?
아! 일단 초반에 빨리 달리고 지치기 마련인 후반에 늦게 달려준다는 방식이란 걸 알았다.
페이스메이커도 여러가지 스타일이 있으니까.
초반에 늦게 달리고 후반에 빨리 달리는 방식은 없어도....
이븐 페이스로 계속 달리는 페이스메이커가 있거나, 초반에 빨리 후반에 천천히 달리는 페이스메이커가 있다.
가끔 페이스를 지키지 못해 달고 있던 풍선을 끊어 버리고 멋대로 달리는 페이스메이커도 있다.
너무 빨리 달리면 부상이 악화될 게 뻔하지만 일단 10킬로미터 페이스는 지난번 하프 달릴 때의 중간 10킬로미터 기록보다 빨랐다.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렸다.
소리질러 현재 페이스를 알려주고, 응원단이 나오면 함께 춤추며 왔다갔다 하는 페이스 메이커.
김용철씨. 이 분은 독도사랑 전국모임 페이스메이커 팀 소속으로 86번째 풀코스를 뛰는 것이었다. 풀코스 페이스메이커 경력만 해도 무려 37번이었다.
최고 기록이 3시간 4분이니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3시 40분 이내의 달림이들의 페이스를 조절하는 건 아주 식은 죽먹기처럼 보였다.
-아주 기운이 넘치시네요.
이렇게 말하니 그는 웃었다.
무릎부상이 있는 나로서는 15킬로미터 지점부터 페이스를 늦추고 주법도 달리 하였다. 오른쪽 무릎의 하중을 줄이기 위하여 왼쪽 다리의 힘을 많이 빌렸다. (덕분에 완주한 후에는 경련이 날 정도였지만)
졸리면 눈을 감고 달렸다. 눈을 감고 달리는 건 적어도 4차선 이상의 너른 도로에서나 가능하였다. 그것도 잠시.
단 몇 초라도 잤다고 생각하면 몸이 조금 가벼워졌다.
18킬로미터쯤 지나면서 지겨워졌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35킬로미터 표지판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달리지?
벚꽃이라도 만발하면 좋을텐데.....
건너편에서 선두 주자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봉주와 선두그룹을 형성한 사람들이 보였다. 마스터즈 단골 우승자 정석근씨도 있었다.
(2009년 춘마 우승자 김홍주씨도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이 분은 10킬로미터 대회 참가하여 4등 한다)
화성시에 진입하니 아주 시골 분위기였다. 20.0175킬로미터에서 반환하여 돌아오니 초죽음 상태로 보이는 심권호(전 레슬링 국가대표)씨가 4시간 페메 무리들과 달려 오고 있었다. 거기부터 10킬로미터 내외에서 우지원, 양준혁, 김세진을 보았다.
양준혁 파이팅을 외쳤더니 양준혁씨는 내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와는 10킬로미터 이상 차이가 나지만 여유만만이었다.
김세진 파이팅을 외쳤을 때에는 걸어오고 있던 김세진은 이런 분위기에 반응하는 방식을 몰라서 그러는지 어쩔 줄 몰라하고 지나쳤다.
24킬로미터에서 쵸코파이 주는 25킬로미터 지점까지는 지난한 오르막이었다. 갑자기 춘천마라톤 달릴 때 춘천댐 올라가던 일이 생각났다.
마라톤을 뛰다 보면 이전에 달렸던 마라톤과 자꾸 비교하게 되니까 사실 생각이 넘친다. 아무 생각없이 달리는 일은 별로 없다.
힘들면 힘든 순간을 이겨내기 위하여 훈련하던 일, 달림이들의 유니폼을 보며 이전에 참가했던 마라톤에 대한 추억들.
마라톤하는 여자치고 예쁜 여자는 왜 없을까 이런 생각..... 마라톤 입상하던 꼬마들 생각.
연양갱 먹는 30킬로미터 지점에서 많은 주자들이 페이스를 늦추었다. 사실 여기가 위기다. 20과 30은 차이가 크니까 많은 주자들이 주저앉거나 걷기 시작한다.
내 앞에서 줄곧 달리던 KBS PD는 아예 서 버렸다. PD님 왜 이렇게 잘 뛰세요라는 말을 건네기도 전에.
수원마라톤 클럽의 이상암님은 25킬로미터 지점부터 맹렬하게 앞으로 치고 나갔는데 30킬로미터 지점에 오자마자 내 뒤에서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걸을 때 걷고 싶은 충동과 유혹은 너무 강하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것도 마라톤이니까.
33킬로미터 지점에서 수원마라톤 클럽의 이상암님이 다시 옆에 나타났다.
-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 오늘 얼마 정도 예상하세요?
-네 시간 안 쪽으로 달리려고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이인데 금세 친해진다.
35킬로미터 지점까지 동반주하였다. 이 분과 끝까지 함께 달릴 수 있을 줄 알았다.
35킬로미터 지점 화서역에서 주변을 살폈다. 아는 분이 있었다. 손을 흔들어주었다.
-저기 저를 위해 응원을 다 나오셨네요. 나오실 줄 몰랐는데
급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과정에서 내가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이 분은 화서역에서 반환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1킬로미터 이상을 더 가서 반환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힘이 쭉 빠진 모양이었다. 좀처럼 앞으로 나오지 못했다. 반환한 이후에는 또다시 오르막에 시달려야 하니까. 사실 36킬로미터 이후에 만나는 오르막은 처음 4~5킬로미터 지점과 일치한다. 하지만 30킬로미터 이상을 달린 상태에서는 야트막한 오르막도 부담된다.
37.5킬로미터 지점을 만나기 전 응원온 분과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이 이후는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갈증이 생겼다. 아예 물통 2리터를 들고 달리고 싶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보도 옆 차도를 달리다 보니 담배 냄새에 너무 시달렸고, 담배 냄새를 맡을 때마다 내 나름대로의 정화(淨化) 방법으로 침을 늘 뱉어내니까 수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35킬로미터 지점 이후(누구는 30킬로미터 지점 이후)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순간이라 새로운 마라톤의 시작이라고 말하니 새로운 마음 가짐이 필요했다.
너무 지쳤기 때문에서라도, 무릎 때문에서라도 잠시 걷고 싶었다.
걸으면 더 힘들어진다는 걸 경험으로 아니까 버티었다. 이제 2킬로미터 정도만 가면 40킬로.
40킬로미터 이후는 사림이 달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 신이 달리는 것이니 견딜 수 있으리라.
내내 앞에서 달리던 63토끼 줄넘기 달림이는 39킬로미터 지점에서 내게 추월당하였다. 해남 땅끝마라톤에서도 후반에 내게 추월당했던 것처럼.
줄넘기를 하면서 달리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 1천 개만 해도 지겹고 힘든 나로서는 이 사람의 도전이 놀라울 뿐이다.
만석공원부터는 오르막..... 낯익은 곳이라 그 친숙함으로 달렸다.
종합운동장의 파란색 트랙이 보였다.
트랙을 한 바퀴 돌아야 하나 했는데 다행히 돌지 않고 골인하였다.
19번째 풀코스 도전, 19번째 완주였다.
'도전! 마라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천 38선 하프마라톤(2012/04/22) (0) | 2012.04.25 |
---|---|
고대 4*18 희망나눔 마라톤(2012/04/18) (0) | 2012.04.18 |
아디다스 MBC 한강마라톤(2012/04/08) (0) | 2012.04.09 |
국민건강증진 마라톤대회(2012/04/07) (0) | 2012.04.07 |
LIG KOREA OPEN MARATHON(2012/04/01) (0) | 2012.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