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부부인 것으로 보이는 남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남자가 따진다.
-이번에 다 평지로 바뀌었다며?
여자가 뭐라고 그러는데 잘 들리지 않고..... 내가 끼어 들었다. 크게 웃으며...
-지금 싸우시는 거예요? 마라톤 코스 힘들다고.....
남자분이 웃으시며 받는다.
-힘들어 죽겠어요. 이번에 코스 달라졌다고 이 사람이 설득해서 신청한 것인데 달라진 게 없으니까요.
그래도 분위기 화기애애하다.
-저도 힘드네요. 통영마라톤만큼은 아닌 줄 알았는데.....
옆에서 잠자코 뛰던 분이 말한다.
-여수 마라톤은 우리나라 악명높은 3대 마라톤올시다. 통영마라톤, 여수마라톤, 포항호미곶마라톤.....
아 그렇구나. 이 여수마라톤 풀코스는 사람 죽이는 코스다.
통영마라톤만큼 오르막이 자주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오르막이 나올 때는 길게 나온다.
오르막을 만나면 10명 중 9명은 걸었다.
-다들 걷네요. 오르막에서 뛰면 반칙인가요?
그런 말을 할 정도이니 나는 견딜만 한 모양이다.
운동량이 현저히 부족했는데 그래도 통영마라톤 보다는 4분 쯤 빨리 뛰었다.
골인지점에서 사회자가 내게 아직 힘이 남아돈다라고 그랬다.
통영마라톤은 36킬로미터 이후 평지였지만 여수마라톤은 36킬로미터 이후에도 모사금해수욕장, 만성리해수욕장 지나며 오르막이 수시로 나오기 때문에
스피드를 올릴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하면 빨리 달린 셈이다. 몸무게가 늘어 7,8년 전에 비하면 작은 쌀 한 포대 메고 뛰는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수마라톤엔 여수마라톤대로 각별한 묘미가 있다.
아직 개통되지 않은 제2돌산대교를 건너갔다 왔고, 오동도에도 들어갔다 나왔다. 모두 풀코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프 이하는 코스가 다르니까)
여수엑스포 개막일에 맞추어 짓고 있는 숱한 건물을 구경하는 재미는 또 어떤가?
겨울이지만 영하가 아니라서 반바지 입고 달려도 되고.....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인의 피와 땀으로 뚫려진 마래터널은 요즘 터널에서 느낄 수 없는 비애감이 깃들어 있다. 곡괭이와 삽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동원된 한국인들이 얼마나 시달렸을까 하는 짐작을 할 수 있다.
풀코스 2차 반환 직전 만나는 한구미 터널과 비교되었다. 최신식 터널로 왕복 4차선 도로로 뚫려져 있으니 찬 바람이 쌩쌩 들락날락하는 한구미 터널은 마래터널과 비교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같았다.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가로수로 조성된 주로나 검은 모래로 덮인 해수욕장, 석유공사 비축기지 공사 현장....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힘들어지면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지금 경치를 보면서 즐런(Fun Run)을 하는 것이야...그렇게 자기암시를 했다. 105길을 재미로 달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마는....
한달 만에 거의 운동도 못한 상태에서(그동안 참가한 대회는 고작 10킬로미터 대회 2번이다) 과연 내가 하프 이후, 또 30킬로미터 이후 견디어낼 수 있을까 우려했는데 의외로 잘 달렸다.
초반에 빨리 뛰려고 하면, 또는 빨라질 것 같으면 악착같이 속도를 늦추었다. 욕심 부리지마...되뇌이면서.... 그 덕분에 후반부에 지치지 않았다.
여수 가는 마라톤 셔틀버스는 새벽 3시 30분에 서울 올림픽 메인스타디움 앞에서 출발하였다. 아예 나는 근처 PC방에서 자정부터 버티고 있었다. 어차피 작업은 해야 되고, 잠자기는 힘든데...새벽까지 기다렸다가 심야 할증 택시타고 나오기는 싫었다. 3만원 가까이 나오는 택시비를 감당하느니 자정경 셔틀버스 출발지에 도착하여 PC방에서 기다리는 방법도 괜찮은 것 같다. 잠실 롯데시네마에서 심야영화를 볼까 하다가 말았는데 앞으로는 그 방법도 생각해 볼 만하다.
그런데 셔틀버스에서는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밤새고 내려가 마라톤 뛰는 것같아 수면문제는 꼭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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