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순간

약에 쩔어 살다

HoonzK 2015. 2. 9. 20:41

지난 4년 동안 감기에 걸린 적이 없었다.

2011년에는 감기 때문에 고생한 적이 더러 있었지만 2012년 매달 풀코스를 달리는 프로젝트를 시행한 이후 아프지 않았다.

콜록콜록 이런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온 적이 없었다. 적어도 4년 동안에는......

 

하지만 올 1월에 제주도에 다녀오면서 운동도 부족한 데다 과로를 하는 바람에 몸이 나빠져 감기 기운이 생겼다.

약통을 뒤져 보니 감기약이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먹었다.

유통기한이 지나도 3년은 훌쩍 넘어버린 약을.....

약을 먹은 순간 몸이 나았다고 생각했다. 밤이 되자 머리가 깨어지듯이 아팠다.

누워 있기는 했지만 밤새도록 깨어있는 느낌이었다. 뇌를 두 개로 나눈 뒤 한쪽으로 생각을 몰아넣은 뒤 몰아넣은 생각을 다시 다른 쪽 뇌로 보내는 일을 했다.

그렇게 한쪽 뇌에 생각을 모으고 나면 다시 반대편으로 보내었다. 밤새도록 기억보내기 작업을 반복하였다.

아이구 아파라 왜 이렇게 아픈 거야 중얼거리기를 끊임없이 해대었다.

아침에 깨어도 전혀 나은 기미가 없었다. 잠을 잔 게 아니라 고민만 계속 해댄 기분이었다.

두통약이라도 먹어야 하나? 그러나 집에는 타이레놀같은 약 하나 없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도 타이레놀은 없었다.

묵은 약을 먹어서 머리가 깨어지듯이 아픈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2월 1일 밤 마침내 약국에 가서 약을 샀다. 효과가 별로 없었다.

2월 3일 낮에는 병원에 갔다.

의사는 계속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내게 물었다. 

 

-머리가 왜 아파요? 걱정이 그렇게 많아요?

-걱정 때문에 아픈 것은 아니예요.

-술이나 담배는 자제하셔야 해요.

-술 담배 전혀 안 합니다.

-아플 때는 운전하시면 안됩니다.

-저, 운전 안 하거든요.

-혈압이 높으시네요.

-(저 아프니 정상일 수 없지요.)

-평소에 운동하셔야 합니다.

-(......)

 

급기야 이 검사 저 검사 해야한다면서 검사비가 얼마니 저쩌니 늘어놓았다. 손사래를 쳤다.

더이상 도움이 되지 않아 계속 고개만 저었더니 의사는 두통약과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주었다.

믿음이 별로 가지 않아 두 번쯤 먹고 말았다.

그날 오후 다른 약국에 가서 약을 새로 지었다.

36시간 가운데 30시간을 누워 지내야 하였던 중간에 겨우 몸을 일으켜 병원에도 다녀오고 약국에도 다녀온 것이었다.

내 생애 이렇게 아픈 적이 있었을까?

 

 

일요일(2월 1일) 구입한 약

 

 

 

머리가 아플 때마다 먹기로 했다.

 

 

약국에서 새로 지은 약(2월 3일 화요일)

 

조금 나아져 금요일(2월 6일) 오후 종합감기약으로 하나 더 지었다.

 

 

병원에 다녀온 하루 뒤에 지인을 만나 악착같이 점심 식사를 했고, 저녁에도 사람을 만나고 와야 했다.

거기서 묵은 약을 먹었기 때문에 내 병이 더 악화되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몹시 앓았던 원인을 알게 되자 오히려 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하였다.

바로 다음날 닷새만에 러닝을 하였다. 1킬로미터를 넘기도 전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몸의 노폐물을 뺀다는 기분으로 계속 발걸음을 놀렸다. 평소보다 얼마나 늦게 달렸는지 모를 정도였다.

 

서서히 나아졌다. 기침이 잦아들었고, 콧물 가래도 진정되었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전남 장흥까지 내려가 풀코스 마라톤을 달릴 수 있겠는가?

새벽차 타고 잠을 설치면서 내려가 42.195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겠는가?

비좁은 셔틀버스에서 4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데 가능하겠는가?

그동안 아파서 훈련을 거의 하지 못했는데 긴 거리를 감당해낼 수 있겠는가?

지난 해보다 빨리 달리고 싶어 신청한 대회인데 이 몸 상태로 대회에 나선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