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애환(讀書哀歡)

기생 매창

HoonzK 2013. 12. 25. 15:59

<난설헌, 나는 시인이다>를 쓴 소설가 윤지강의 역사 속의 여성 인물 그리기 2탄이다.

<기생 매창>

모든 남자를 사랑해야 하는 운명으로 태어난 여자가 자신의 아버지뻘인 남자, 그것도 천민을 사랑한다. 평생토록.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매창이 노래한 시, 교과서에도 실렸던 시의 '님'이 매창이 평생 사랑한 님이란다.

3인칭으로 써내려던 소설이 1인칭으로 바뀐 것이 소설을 준비하면서 생긴 최대의 변화라고 작가는 밝혔다.

김탁환의 <황진이>나 김훈의 <칼의 노래>처럼 인물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택한 소설이다.

윤지강은 철저히 매창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16세기 말의 부안읍성과 17세기의 한양 운종가를 몸소 방황하고 다닌 것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주어진 운명으로부터 단 한걸음도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187쪽) 깨달아야 했던 매창, 기생은 공물(279쪽) 취급 받는 조선에서 한 남자를 연모하여 절개를 지키려 한 매창, 태어날 때부터 제한된 여성의 삶, 그것도 순수한 사랑 따위는 감히 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된 기생으로 산 매창. 그 이야기를 <기생 매창>에서 만날 수 있다.

<기생 매창>의 여운이 강하여 <난설헌, 나는 시인이다>는 다음에 읽기로 했다.

<기생 매창>이 주는 감흥을 너무 빨리 흩뜨릴까 우려되어.

 

<기생 매창>을 읽는 데 사나흘밖에 걸리지 않았지만(2013년 12월 20일 완독), 책을 구입해서 밑줄 긋고 국어사전 찾아가면서 다시 읽고 싶다.

풍성한 한국어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이 단어는 무슨 뜻인가 알 수 없는 게 많았다. 이런 어휘도 있었나 하며 머리를 치며 '내 국어실력이 형편없구나'하고 뇌끼리기도 했다. 국어뿐만 아니라 한자 공부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자 1급 합격에 한자지도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여 나름대로 고사성어에 능통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보잘 것없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 보는 사자 성어가 쏟아져 나왔다. 그만큼 작가가 공들인 노고가 드러나는 작품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삶을 경험해 보면서 학습의 즐거움도 얻을 수 있으니 <기생 매창>은 거듭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68쪽에서 73쪽에 이르는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야한 동영상을 몰래 보는 것보다 더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