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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의 추억 1

HoonzK 2021. 5. 26. 16:13

 1991년 한여름이었다. 중위로 진급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비무장지대 철책 앞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철책에 올라온 지 만 24시간이 되지 않아 전임소대장과 DMZ 수색을 나가게 되었다. '*곰'이라고 통칭하는 수색작전이었다. 회색 방탄조끼를 입고 작전에 따라 나섰다. 통문까지 와서 소대장 옆에서 기웃거렸더니 선배 중위는 내게 경고했다.


-강중위, 저쪽으로 나가 있어라. 신고할 때 쥐새끼 한 마리라도 지나가면 애들은 욕부터 튀어 나온다.


나는 멀찍이 물러섰다. 소대원들은 안전검사를 실시하고 삽탄한 다음 대열을 꾸몄다. 통문이 열리고 무전병의 음성이 흘렀다.


-ㅎㅂㄹ기 독점에 2번 ㅆㄹ문 폭파하고 3번으로 홍길동하고 있다는 통보


진달래, 철쭉, 상수리나무, 갈대가 우거진 보급로를 따라 걸었다. 숨막히는 정적이 가로 놓였다. 침묵이 이 순간 최대의 미덕이었다. 혹여 발걸음 소리라도 날까봐 살금살금 발을 옮겼는데 병사들은 20대 초반의 젊은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근엄하고 숙연한 표정이 흘러 넘쳤다. 실탄 75발, 수류탄 2발, 소총을 들고 저렇게 가볍고 부드럽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아직, 나는 참관자의 입장이었지만 다음 작전부터는 내가 지휘자로서 숙연한 느낌까지 주는 병사들을 이끌고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담감이 매우 커졌다. 최전방 수색중대 소대장을 자원한 것은 그저 객기로 저지른 충동적 결정이 아닐까. 낡은 방탄조끼의 틈새로 땀이 흘러나오는 것이 드문드문 보였다. 10분을 못 가서 내 등이 흥건히 젖었다. 10킬로그램이 넘는 M60을 들고 7.62밀리 탄 200발을 멘 기관총 사수가 무척 대견해 보였다. 그저 상상만 했던 수색부대의 모습이 이런 것인가.


순간 폐 GP가 눈길을 끌어잡았다. 수색로 길목엔 선배 전우들이 경계를 섰던 폐 GP가 녹슨 철조망에 둘러싸여 있었다. 무성한 갈대와 타다 남은 벙커가 세월의 추이를 가늠하게 해 주는 것이 꿈에서 본 폐가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돌무더기로 담을 쌓아 놓은 진지에 오르니 거대한 회색빛 건물이 드러났다. 바로 ***GP였다. 이곳은 몇 달 후 내가 들어가게 될 감시초소였다. 유엔기와 태극기가 지상 초소 위에서 장쾌하게 휘날리고 있었다.

 

글과 사진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