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하프(2018/07/04)
2018년 7월 8일 일요일 한강뚝섬지구 수변무대에서 마라톤대회가 열린다.
모이자! 달리자! 월드런 마라톤대회. 지난 해에는 8월 초에 열렸는데 올해는 7월초이다.
지난 해에는 연대별 시상을 했지만 올해는 종합 50위까지 시상한다.
그런데 비상이 걸렸다.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따져보아도 도무지 풀코스를 달려낼 능력이 되어 보이지 않는다.
월드컵 시청으로 몸이 망가졌다. 대회 출전 횟수가 대폭 줄어 체중도 불었다.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연장전과 승부차기 때문에 그 시간이 늘어나기도 한다.
날씨가 더워 숙면을 취하지도 못한다.
지난 6월 16일 이후 아무 대회에도 출전하지 않았다. 하프 종목이라도 뛰어주었으면 그 대회 때문에 월드컵 시청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여 컨디션을 유지했을 것이다.
월드컵 > 마라톤. 등식 부호는 늘 이렇다 .
7월 4일 수요일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 출전하여 페이스를 체크해 보려 했지만 스웨덴과 스위스, 콜롬비아와 잉글랜드의 경기를 다 보고 어떻게 마라톤을 뛰겠는가? 시청이 끝나면 스마트폰으로 대회 관련 기사까지 일일이 찾아보면서 수면 시간을 줄이기까지 하는데.....
부족한 운동량을 어떻게 감당한담?
돌려 생각해 보면 몸이 좋아서 달린 일이 몇 번이나 되던가? 그냥 되더라 하는 것은 없었다. 악착같이 계획을 세워 그 계획을 이수하려다 보면 어떤 일이 되는 법.
한강뚝섬지구 수변무대로 갔다. 12시부터 2시 사이, 31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에서 월드런 마라톤대회 하프 코스를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복장은 싸늘할 때나 입는 긴팔 운동복, 칠부바지, 배낭. 아에드, 아에젤. 스마트폰. 캡.
5킬로미터를 넘으면서 힘들어졌다. 거기서 돌아가 10킬로미터만 달린다고 해도 쉽지 않아 보였다. 구리시에 들어서면서 6킬로미터부터 10.5킬로미터 지점까지는 아득하게 멀었다. 10킬로미터 이상을 달리면 페이스가 올라올지도 몰라 하면서 마음을 달래었는데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2년 전 더울 때 마라톤하던 시절로 몸이 돌아간 것같았다. 옥천마라톤대회에 출전했다 중도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2년 전 7월, 그 때의 고통이 그대로 떠올랐다. 수면 부족으로 몸도 망가졌지만 체중도 꽤나 불어 움직임 자체가 귀찮았다. 이 지경이라면 나흘 후 풀코스를 제대로 달려내지 못한다. 하프나 겨우 달리고 그냥 귀가하는 모습이 대번에 그려지지 않는가? 몇 사람이 같이 달려주기라도 하면 견딜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평일인데다 더운 날씨라 산책하는 사람도 없었다.
칭찬받을 일이라면 멈추어 사진찍는 순간을 빼고는 끊임없이 달렸다는 것이다. 이 가혹한 하프, 여름 풀코스에 나서기 앞서 면역 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달리기였다. 그 고통스러운 일을 왜 하는데... 되물으면 그렇게라도 해야 실전에서는 나아질테니. 21.0975킬로미터. 달리면 어쨌든 목표한 거리를 채우게 된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만신창이가 되어 골인했다. 미니스톱 편의점에 들러 2리터 물을 사서 75%를 그 자리에서 마셨다.
물품보관 금액이 단 몇 초 차이로 2백원이 추가되었는데 매우 짜증났다. 결제 화면에는 1200원이었는데 결제하는 순간 시간이 지나면서 1400원으로 바뀌었다. 돈이 아깝다기 보다는 너무 늑장을 부린 내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롯데리아에 들러 햄버거와 콜라를 먹을까 하다가 그냥 돌아왔다. 우리 동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먹을까 하다가 그 생각도 접어버리고 장을 보아 돌아왔다. 젖은 옷과 배낭이 적잖이 무거웠는데 거기에 먹거리까지.....
달릴 때 골인 지점이 아득하게 멀었던 것처럼, 물품을 구입하여 들고 돌아올 때도 집이 지독하게 멀었다.
뚝섬유원지역에서 내려가기 직전
물품보관함에 달린 후 갈아입을 옷을 넣어 두었다.
뙤약볕이 느껴진다.
한강뚝섬지구 수변마당으로 가려면 좀더 가야 한다.
점심은 삼각감밥으로 미리 먹었다.
춘천마라톤 기념티셔츠를 입고... 보온용 긴팔 티셔츠를 입어 내 자신에게 더 어려움을 주기로.....
마라톤대회 출발지가 눈 앞에.... 잠실롯데월드타워와 잠실종합운동장이 보인다.
일단 롯데타워를 바라보며 달려야 한다.
그동안 내린 폭우 때문에 아래쪽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대회에 나온 것처럼 출발한다.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코스를 혼자 달리게 되다니....
한강이 꽤 불어났군....
물이 꽤 불었다.
첫 오르막 지점. 2킬로미터 전이다.
이렇게 그늘 구간도 만난다.
5킬로미터를 달렸다.
우측 산책로를 따라 달린다.
6킬로미터를 조금 넘으니 서울과 구리 경계가 나온다.
구리시에 들어선다.
뒤를 돌아보고....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달리는 일... 쉽지 않았다.
일하다 낮잠자는 분도 있다.
암사대교.... 8킬로미터를 달렸다는 뜻이다.
구리의 대형태극기를 보아도 반환점까지는 아직 더 달려야 한다.
반환점이 있는 강동대교가 보인다.
H는 하프 반환이란 의미일 것이다. 일요일에는 이 지점을 두 번 지나야 하니 난감하다.
이제 돌아간다. 달리면 달릴수록 힘들어지지만.....
10킬로미터 남았을 때 아에젤을 먹었다.
아에드 500밀리가 남았다. 여기서 조금 마시고 6킬로미터 남기고, 또 4킬로미터 남기고 마시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달리는 구간에는 편의점이 전혀 없어 마실 물은 미리 챙겨야 한다.
구리에 사시는 분과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서울에 다시 들어선 후에야 통화할 수 있었다. 통화하면서도 계속 달렸다.
31도라고 하는군. 정말 덥구나.
기어이 서울에 들어섰다. 15킬로미터 쯤 달렸다.
달리고, 또 달리고..... 사진을 찍기도 귀찮지만.....
올림픽대교와 잠실롯데타워가 보인다.
19킬로미터 조금 모자라게 달렸을 때 만나는 오르막코스.... 1킬로미터, 1킬로미터가 고난의 행군이었다.
잠실철교 아래만 지나면 이제 곧 골인 지점이다.
달리는 구간에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
잠실종합운동장이 건너편에 보이면 거의 다 온 것이다.
돌아왔다. 한바퀴 더? 그것을 과연 나흘 후 할 수 있을까?
달렸던 구간을 되돌아 보는데.....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아에드를 조금 남겼네.
수영장 개장한 지 몇 일 되지 않았구나. 그 동안 비가 내리 왔으니 진정한 개장은 전날부터였을 것이다.
2리터 생수를 구입했다.
500밀리 생수와 비교하니 꽤 커 보인다. 바닥에는 내가 흘린 땀이 떨어져.....
달리고 난 후 벗은 옷
아주 중무장을 했구나...
GS25 편의점에서 사서 마신 우유
롯데슈퍼 수유점 미친데이 할인행사 기간이라 귀가하는 길에 사고 또 샀다.
에스컬레이터에서 포장한 박스 끈이 풀려서 뒤집어 엎었다. 앞에 있던 아주머니가 나 때문에 놀랐다고 엄청 짜증을 내었다.
틀림없는 사실 하나.
이렇게 달리지 않았으면 내 몸 상태를 전혀 모르고, 일요일 대회에 나가 기고만장하게 달리다가 서둘러 지옥을 맛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감을 더 잃은 것같다. 바깥술님은 그냥 서브4로 타협하자고 했다. 그것도 힘들 수 있겠지만 그것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