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8 전마협 이노쉐이브 마라톤대회(2018/06/10)-FULL 172

HoonzK 2018. 6. 12. 14:43

  이번 대회의 화제는 단연코 로운리맨님과 나의 배틀이었다. 로운리맨님은 배틀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 정작 나와 주변 사람들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풀코스든 하프코스든 3월 동아마라톤 이후 함께 출전한 5개 대회에서 로운리맨님보다 늦게 골인했다. 최근 페이스로 보아 로운리맨님보다 먼저 골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로운리맨님은 올해 상반기에 벌써 풀코스 기록 경신 3회, 하프코스 기록 경신 2회를 하고 있어서 그 기록 추이가 놀라웠다. 그런데 내가 배틀을 제안하다니..... 배틀을 제안하는 시점이 로운리맨님이 풀코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을 때라 터무니없는 객기처럼 보였다. 배틀에서 승리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다. 기온이 30도 정도로 높을 것, 해가 쨍쨍 내리쬘 것.


 하지만 대회 당일 날씨는 선선했다. 9시 출발인데도 서늘하고 구름까지 잔뜩 끼어 내가 바라던 날씨와는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누구보다도 배틀 결과에 관심이 많은 바깥술님은 날씨를 보니 나한테 불리하겠다고 했다. 화장실 이용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아쉬움도 있었다. 청소하면서 갑자기 생긴 허리 통증 때문에 스프레이를 잔뜩 뿌려주어야 한 것과 발바닥에는 여전히 테이프를 붙이고 있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긍정적인 요소는 일주일 전보다 그저 1킬로그램쯤 감량했다는 것.


 대회장에서 로운리맨님, 로운리맨님의 후배 원희님과 만나 달릴 준비를 했다. 로운리맨님은 뜻밖에 서브 335가 목표라고 했다. 그건 아닌 것같은데. 날씨가 도와주고 있는데 어찌 하여 천천히 달리겠다고 하는지..... 그래도 출발선에 서면 무한질주를 하시겠지.


 출발하기 직전 로운리맨님이 내 뒤쪽에 있었다. 왜 그러세요? 건달님 따라 뛰려고요. 네? 내 계획은 앞에서 질주하는 로운리맨님을 따라 뛰며 아무리 거리 차이가 나도 동요하지 않고 후반에 승부를 보는 것이었는데 뜻밖의 돌발 변수였다. 어떻게 하나? 따라 오신다고?


 정말 따라오시려나 싶어 평소보다 매우 빨리 달렸다. 폭풍같은 질주를 했다. 1킬로미터 기록이 4분 35초가 나왔다. 2.5킬로미터 기록이 11분대였으니 5킬로미터는 22분대가 예상되었다. 초반 더딘 내 스타일로 봤을 때 말도 안되는 스피드였다. 아무리 선선한 날씨이긴 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조금 늦추었다. 하프 종목에 참가하는 달해아름다워님이 그렇게 빨리 달리면 후반에 힘들텐데라고 조언했다. 스피드를 늦춘 사이 헬스지노님, 노원희규님 등이 내 앞으로 나왔다. 하프 1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 그룹도 앞으로 나왔다. 1시간 40분이라? 풀코스는 3시간 20분에 해당되는 페이스인데.....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3시간 10분대로 달리고 있었던 거다. 날씨가 계속 선선할리도 없는데.... 조금씩 늦추면서 페이스를 조절하였다. 5킬로미터를 23분 45초로 통과했다. 여전히 빨랐다. 내내 맞바람을 맞으면서 구리 방향으로 달렸는데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이라 맞바람이 심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5킬로미터에서 10킬로미터까지는 페이스를 더 늦추었더니 10킬로미터 기록은 48분 10초였다. 불과 일주일 전 페이스보다 3분 30초가 빨랐다. 계속 이 페이스가 유지되기를..... 배틀을 벌이는데 배틀 주자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압박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0.55킬로미터에서 1차 반환한 후에야 뒷 주자들을 볼 수 있었는데 로운리맨님은 바로 뒤에 있었다. 단번에 따라잡힐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로운리맨님은 내가 12등이라고 알려주었다.


 이제 바람이 밀어준다고 생각하고 달렸다. 페이스를 보면 4분 50초에서 55초 사이를 유지하니 편안해졌다. 12킬로미터쯤 지났을 때 뜻밖에도 바깥술님이 앞으로 나왔다. 두 사람이 왜 그런대? 서로 너무 견제하는 것 아니요? 저도 뜻밖이예요. 제가 속도를 늦추었는데도 왜 추월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로운리맨님의 스타일상 이건 아니잖아요.


 가까이 따라붙는 사람이 있어 고개를 돌려보면 로운리맨님이 아니었다. 추월 주자 가운데 광배님이 있었다. 오늘은 꼭 종합 시상 순위에 들었으면 하는 바램을 내비쳤다. 아직 30대인 그는 벌써 풀코스 100번을 넘겼고 연대별 수상은 수도 없이 했지만 종합 수상은 늘 아깝게 놓쳤다고 했다. 그런 에피소드를 한 보따리 풀어내었다. 광배님의 페이스라면 5위가 가능할 것같았다. 지금 제가 저 앞에 파란 옷 입은 분(바깥술님)에게 추월당해서 13등일 거예요. 후반에 조금 치면 가능하실 것같은데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속 가고 싶었지만 광배님의 스피드가 올라와 따라가기 힘들었다. 나는 내 페이스를 지키기로 했다.


  허수아비님은 로운리맨님과 나의 배틀에 바깥술님까지 가세하여 3파전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고 있었다. 로운리맨님과 건달의 배틀. 그 승리자는 결국 바깥술님? 바깥술님은 나와 거리를 벌리며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노원희규님은 그보다 더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부상으로 고생하시고 50일만에 출전하시는 데도 100킬로미터 1위의 아우라가 흘러 넘쳤다.


 배틀은 배틀이고 인사는 나누어야지. 하프에 출전한 상기님, 효준님, 광희님과 인사했다. 효준님과 광희님의 페이스로 볼 때 충분히 하프 100위 안에 들 것같아 트로피를 꼭 받아가라고 외쳤다. 하프 100위가 1시간 50분 45초라 1시간 54분대와 1시간 55분대를 기록한 두 분은 트로피를 받지 못했다.


 500회 풀코스에 도전하는 의계님, 400회 도전하는 남수님, 인천다모아 연형님, 로운리맨님 후배 원희님, 인천고 기옥님, 제비한스님, 고운인선님, 동대문 두경님, 칠순 용석님, 달물영희님, 정표님.... 인사 퍼레이드를 벌였다. 남수님은 칠순의 나이에도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를 맡고 있었고, 원희님은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와 동반주를 하고 있었다. (원희님은 후반에 조금 페이스를 떨어뜨리긴 했으나 서브 4에 여유있게 골인했다.) 배틀에 관심을 보였던 연형님은 바깥술님이 내 앞으로 나온 것을 보고 '뒤집혔네'라고 평했다. 이분은 어차피 배틀은 삼파전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것같았다.


 급수대가 나오면 물, 게토레이, 콜라를 3연타로 마셨는데 어느새 날씨가 더워져 수분이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1시간 43분이 되기 전에 1회전을 마쳤다. 꿀물을 마시고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2회전에 나섰다. 로운리맨님은 여전히 바로 뒤에 있었다. 그렇게 뛰지 마시고 함께 뛰어요라고 말해도 로운리맨님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2회전 할 때의 날씨는 급변했다. 목덜미에 떨어지는 햇빛이 뜨겁게 느껴졌다. 언제 개였담? 2회전의 시련이 시작되고 있었다. 같은 코스를 2회전하는 대회는 첫번째와 두번째를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이 대회의 1회전과 2회전은 극과 극이었다. 1회전은 선선한 봄날씨, 2회전은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 너무나 달라져 버린 상황에서 초반의 스피드를 그대로 이어나가기는 힘들었다.


 23킬로미터를 가기 전에 만나는 오르막에서 바깥술님을 따라잡았다. 이제 힘내는 거요? 아니예요. 여긴 오르막이잖아요. 제가 오르막을 좋아하니까요. 평소 훈련코스에 늘 오르막이 들어 있고요. 내리막이 나왔을 때 바깥술님에게 다시 따라잡혔다. 바깥술님은 추월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상체를 마구 흔들며 뛰는 주자, YJ님. 아직은 힘차게 달리고 있는 YJ님을 따라잡고 말겠다고 했다. 바깥술님의 승부욕이었다.


 24킬로미터를 넘기 전 급수대에서 현저하게 떨어진 속도로 달리는 헬스지노님을 지나쳤다. 급수대에서 500밀리 생수를 확보했는데 몸에 뿌리는 데 더 많이 썼다. 1회전 때 늦추어도 4분 55초가 나왔던 페이스가 2회전 때에는 빨리 달려도 5분을 넘겼다. 기온이 올라간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너무나 달라져 버린 환경에서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였다. 조금씩 속도를 늦추어 나 자신을 달래었다. 코스 기록을 못 깨뜨리면 어때? 다음에 하지. 6월 기록을 못 깨뜨리면 어때? 다음에 하지. 서브 330을 못하면 어때? 다음에 하지. 배틀에서 지면 어때? 다음에 또 하지. 이러면서.....


 '생로병사의 비밀'에 출연했던 80세의 장재연 어르신이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방송을 보았다고 하니 고맙다고 말해주셔서 참 좋았다. 인사 주고 받기가 아닐 때에는 몹시 인상을 쓰면서 버티기에 들어갔다. 26킬로미터가 넘었을 때 10여 미터 앞에서 달리는 바깥술님이 YJ님을 제쳤다. 걷는 듯 싶었던 YJ님은 바깥술님을 다시 제쳤는데 잠시일 뿐이었다. 28.1킬로미터 급수대에서 나 역시 YJ님을 제쳤는데 이번에도 YJ님은 나를 제치고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뒤로 왔다. 30.1킬로미터를 2시간 29분대에 지나면서 3시간 29분대 골인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1회전 때와 같은 날씨라면 가능할 일이었다.


 아득하게 멀었던 반환점. 드디어 반환했다. 생수, 게토레이, 콜라를 연달아 마시고 주최측에서 제공한 파워젤도 먹었다. 뒤에서 바람이 밀어주면 큰 도움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아예 바람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저 맞바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달렸다. 로운리맨님을 만났다. 초반보다 거리가 조금 벌어져 있지만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다. 바깥술님과 내게 서브 330하라고 응원해 주었다. 로운리맨님도 330하세요 했더니 '330 안해요'라고 받았다. 못해요가 아니라 안해요.... 할 수 있는데 오늘은 안 한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왜?
 
 32.2킬로미터를 달리고 시계를 보았다. 2시간 40분 초반. 충분히 3시간 29분대가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이후 1킬로미터 구간 기록을 체크해 보고 서브 330의 꿈을 접었다. 바람을 등지고도 페이스가 5분을 넘기 시작했다. 더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종반이 될 것이라고 그동안 쌓아온 마라톤 풀코스의 경험이 알려주었다. 바깥술님은 질주를 거듭하여 노원희규님까지 제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동요하지 않았다. 냉정해졌다. 5분 10초, 5분 20초.... 속도가 떨어지면 떨어지는대로. 달물영희님도 배틀을 아는지 내게 '여유 있어'라고 하셨다. 상관없었다. 로운리맨님이 스퍼트를 시작하여 나를 제치면 제치는 것이지. 마라톤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데 괜히 배틀을 제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달리는 일이 이렇게 힘든 것인지 오랜만에 절감하였다. 머리 속에는 내내 로운리맨님이 어디쯤 있을까, 도대체 어느 시점에 스퍼트하려고 이토록 앞으로 나오지 않는 것일까,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 앞으로 나올 수 없는 것일까... 배틀이 단 한번의 반전도 없이 싱겁게 끝나는 버리는 것인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헤집고 있었다. 나 자신이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더 힘들었다.


 만약 초반에 빨리 달리지 않았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텐데. 초반에 빨리 달려서 힘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후반 스퍼트를 위하여 힘을 아꼈어야 했는데 이런 생각이 줄곧 들었다. 이런 생각은 완전히 뒤집힐 수도 있었다. 초반에 좀 벌어 놓았으면 후반에 이렇게 스퍼트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런 식으로.... 실제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숱한 생각이 지배하는 운동, 마라톤이었다.


 최후의 결전을 위하여 힘을 아끼자. 로운리맨님이 나를 추월한다고 하더라도 따라갈 수 있는 힘, 따라가서 추월할 수 있는 힘을 남겨 놓자고 마음먹었다. 늦추고, 또 늦추고....  그렇게 늦추는데도 희규님과는 거리가 벌어지지 않았다. 바깥술님만 100미터, 200미터 차이를 내며 스퍼트를 거듭하고 있을 뿐, 희규님을 비롯한 다른 주자들 역시 나처럼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그건 경험이었다. 날씨가 더워지면 그런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분들은 알고 있었다.


 37.2킬로미터 지점 급수대에서 시계를 보니 잘하면 2주 전처럼 3시간 33분 33초에 맞출 수 있을 것같았다. 거의 3시간 24분대까지도 가능했던 페이스를 얼마나 늦추었던가? 38킬로미터 지점을 지났다.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려나갔던 바깥술님이 방벽을 부여잡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쥐가 나서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잘 추스려서 완주하기를 응원했다.


 KK-ACE장님이 치고 나오고 있었다. 지난 새벽강변마라톤에서 2차 반환 이후 골인 지점까지 나는 1시간 27분이 걸렸는데 이 분은 1시간 24분이 걸렸으니 후반 페이스가 뛰어난 주자였다. 이번에도 역시 후반 무서운 스퍼트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분의 최종 기록은 3시간 31분 21초 91. 광배님보다 빨랐는데 왜 입상자 명단에 빠졌는지 알 수 없었다. 배번도 4로 시작하여 현장접수가 아닌 것같은데.....)


 40킬로미터 이후 둔덕 하나를 넘으면 한강 건너편에 잠실종합운동장이 보였다. 곧 1킬로미터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3시간 28분 30초. 5분을 살짝 넘겨 골인하면 3시간 33분 33초가 될 것같았다. 그렇다고 그렇게 달릴 수는 없었다. 희규님을 비롯한 몇 분을 제치고 질주했다. 마지막 1킬로미터를 4분 30초로 끊었다. 100분의 1초 차이로 3시간 32분대에 들어갔다.


 3:32:59.99


 다시는 배틀을 하지 말아야지 싶었다. 연형님이 내게 1등을 축하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분이 생각할 때 로운리맨님, 바깥술님, 나까지 3파전을 벌였고 거기서 1등을 했으니 축하한다고 한 것이었다. 돌려 생각해 보면 로운리맨님은 배틀에 그다지 관심도 없어 보였는데 나 혼자 배틀한다고 여기 떠들고 저기 떠들고 한 것같기는 하다.



오전 9시 하프코스와 풀코스 주자가 동시 출발했다.

달해아름다워님과 헬스지노님이 내 앞쪽에 있다.


뒤쪽에서 스퍼트해서 올라온다.


내 바로 뒤에 로운리맨님이 따른다.



이 사진을 보고 바깥술님이 '신바람 났다'고 했다.




로운리맨님, 입을 꽈 다물고 레이스에 나선 모습이다.




현장접수로 참가한 연익님도 보인다. 연익님은 현장접수로 풀코스에 출전하셨는데 하프(1시간 47분 56초)만 달리고 말았다.








한강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는 로운리맨님과 후배 원희님




감자탕 뒷풀이





로운리맨님, 후배 원희님, 나.... 세 사람의 뒷풀이... 건배... 나만 맥주.... 두 분은 소맥....







감자탕 먹고 볶음밥까지.....




원희님이 사 준 포상콜라






이 면도기 괜찮음. 대회 당일 새벽에도 이 면도기를 썼음. 평소 쓰던 다이소 1천원 면도기에 비하면 말도 안되게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