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생활이다

한강시민공원 22KM LSD(2017/07/16)

HoonzK 2017. 7. 17. 03:21

 허접한 술이지만 저 술을 어떻게 한담? 로운리맨님 드려야 하는데..... 공원사랑 마라톤에 출전하신다고 하면 갖고 나갈텐데. 서둘러 할인권을 소진시킨다는 말을 슬쩍 하셨으니 공원사랑마라톤에 또 출전할 수도 있겠다는 예상을 해 보았지만 설마 한여름에 4주 연속 풀코스를 달리실까 싶었다. 다음 주 산악마라톤 대회도 있으니 이번 주는 쉬어가겠구나. 대회에 출전하시면 출전한다고 귀띰이라도 할까봐 단톡방을 들락날락했는데 7월 15일 오후부터 16일 오전까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13시 24분 단톡방에 아세탈님의 메세지가 떴다.

 

 로운리맨님의 공사마 풀코스 1위를 축하드립니다.

 

  이 소식을 접했을 때는 내가 여의도에서 22킬로미터 LSD에 도전하고 있을 때였다. 공원사랑마라톤 대회장에 가고 싶더라니..... 은밀하게 로운리하게 달린 로운리맨님 위대하게 1등을 하다니.... 그야말로 은밀하게 위대하게. 1등의 순간을 함께 좀 하시지. 어차피 운동은 필요했으니 내가 장소를 옮겼어도 되지 않았는가? 시간을 바꾸어도 상관없고...... 로운리맨님은 일본어로 메세지를 보내었다. みごとなはしりじゃないけれどもとにかくせいいっぱいはしりつづけてしました。훌륭한 달리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최선을 다해 계속 뛰었습니다. 내가 영어로 받았다. My running was not so excellent, but I just did my best to keep running.

 

 

 여의나루역 물품보관함에 갈아입을 옷을 담은 배낭을 넣고 달리기 복장으로 여의도이벤트광장에 섰다. 팀버라인 배낭에 보조배터리, 아에드 1병, 아에젤 2포, BCAA 1포, 카드, 비닐봉투를 넣었다. 복장은 바이저버프, 반팔티셔츠, 레드페이스 7부 바지, 아식스 젤카야노22 러닝화. 스트레칭을 잘 해주고 달렸다. 정말 달리기 싫었는데 먹기 싫은 밥을 입 속에 꾸역꾸역 밀어넣듯이 악착같이 달렸다. 어차피 LSD이니.... 매우 적게 먹고 나와 12시 30분부터 달리는데 2주 전 헝그리 러닝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달리기 직전 아에젤 1포를 먹었다. 로운리맨님의 선물인 BCAA는 하프 반환점에서 먹기로 마음먹었다.

 

 동작대교, 성수대교 방향으로 달렸다. 가끔 해가 났지만 비구름의 위력이 아직 남아 있어서 흐린 날씨가 이어졌다. 천천히 달리는데 걷뛰(걷다 뛰기)는 전혀 없고 멈뛰(멈추었다 뛰기)는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멈추어야 했다. 시간대가 정오를 넘어서 그런지 달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달리는 사람이 있어도 나처럼 배낭을 맨 사람은 없었다. 그냥 단출하게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달리고들 있었다. 성수대교 방향으로 달리기로 마음먹은 이상 7킬로미터 지점에서 횡단보도 신호등에 걸렸지만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어 달리기의 리듬은 이어졌다. 동호대교를 지나 10.5킬로미터 지점이 나왔으니 조금만 더 갔다가 반환하면 하프 달리기가 될 수 있었다. 애매한 것은 질색이니 11킬로미터 표지판까지 나아갔다. 지난 1월 8일처럼 22킬로미터를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드디어 BCAA를 먹었다. 잠시 멈추고 보니 나는 너무 젖어 있었다. 숏팬츠만 입어도 힘들었을텐데 칠부바지를 입고 달렸으니 땀을 너무 많이 흘렸다. (내가 입은 칠부 바지는 운동용으로 나온 것도 아니니 선택을 잘못했다.)


 11킬로미터까지 달리는 것만도 여간 힘들지 않았는데 또 11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니 눈 앞이 캄캄하였다. 하지만 반환하고 나자 몸이 풀리면서 스피드가 붙었다. 씽씽 달렸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걸핏하면 멈추어 서서 사진을 찍어야 했으니..... 오로지 달리기에만 신경쓰는 것과는 아무래도 다른 달리기였다. 데이타를 켜면서 로운리맨님의 공원사랑마라톤 1위 사실을 알았고 카톡을 주고 받다 보니 달리기 리듬 잡기가 힘들었다. 어차피 LSD 아닌가? 아직 5킬로미터를 더 달려야 한다는 소식을 보낼까 하다가 그냥 달렸다. 옷이 젖어 무거워졌다. 양말까지 적신 땀이 신발에까지 번졌다. 4킬로미터쯤 남았을 때 자전거족이 떨어뜨린 물병이 보행로까지 굴러와 한강으로 빠지려고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전력질주해서 물병 가까이 발을 들이밀었다. 물병을 전해주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다. 한강시민공원에서 마라토너가 자전거족으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다 듣다니.....

 

 22킬로미터를 모두 달렸다. 너무 젖어서 이대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한강시민공원의 샤워 시설을 이용하였다. 비누 없이 찬물 샤워를 해야 했지만 개운해졌다. 갈아 입을 7부 바지를 준비한 것이 다행이었다. RUN EASY 하얀색 티셔츠가 LET'S RUN TOGETHER 주황색 티셔츠로 바뀌었다. 버프는 캡으로 바뀌고. 젖은 양말을 다시 신어야 한다는 것은 찝찝했지만 어쩌겠는가?

 

 주말에만 왜 오래 달리고 있을까? 혹시 이것이 습관일까? 고등학교 때에도 주말만 되면 장거리 달리기를 했다. 평일에는 운동장을 5바퀴, 10바퀴 돌다가 토요일이 되면 50바퀴 이상을 돌곤 했다. 한번은 달리기를 마치고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밴드부원 한 명이 나를 찾아왔다. 저희 밴드부 형이 좀 오래요. 내가 왜? 시간 없어서 그냥 간다고 해. 안돼요. 저 형한테 저 맞아 죽어요. 알았다. 나를 불렀던 밴드부원은 몇 학년이냐고 물었다. 나 고 3. 고 3이었어? 아니 고 3이 왜 운동장을 뛰냐? 육군사관학교 준비라도 하냐? 너 100바퀴도 뛴다면서? 나는 아직 100바퀴까지 뛴 적은 없는데. (증언자 한 명 출현) 지난번에 100바퀴 뛰는 것 봤어요. 제가 세어 보기까지 했는데요. 어이없어라. 사실이 아닌 일을 사실로 만들다니. (그 이후 학력고사 시험을 마치고 125바퀴까지 달려보긴 했다.) 그렇게 달려서 뭐할건데? 내년에 서울마라톤대회에 나가보려고. 40킬로미터 넘는 대회를 뛴다고? 그게 운동장 몇 바퀴냐? 200바퀴는 넘겠지. 그럼 꼭 우승해라. (1킬로미터만 달려도  3분이나 걸리는데 그 실력으로는 좀 힘들 것같은데.-이건 내 속 마음). 그래 고마워.


 그렇게 말해 놓고.... 정작 풀코스를 달린 것은 20년이 더 흐른 뒤였다. 청춘을 다 보내고.....

 

 

 

지난 1월 8일 달렸던 코스와 똑같은 코스를 달리기로 했다.

 

 

63빌딩쪽으로 나아갈 것이다.

 

 

여의도 이벤트광장에 쓰레기통이 등장했다.

 

 

이 쓰레기통, 태양열을 이용한다.

 

 

 

배낭에 챙긴 물품. 보조배터리(필요없었다. 괜히 무게만 늘렸다). 에너지젤 2포, BCAA 1포, 아에드 1병, 캡, 비닐봉투 2장(혹시 비가 내리면 스마트폰을 넣을 용도로)

 

 

아세탈님의 선물과 로운리맨님의 선물이 큰 도움이 된다.

아에젤 1포는 미리 먹었다.

 

 

강변으로 나가 스트레칭을 했다.

 

 

가장 높은 가로대에 다리를 올려놓고 스트레칭을 했다.

 

 

마포대교. 오전까지 내린 비로 한강 물이 많이 불었다.

 

 

나무가 물에 잠겼다.

 

 

육지에 있을 나무가 물 속에 있다. 주산지도 아니고.....

 

 

0킬로미터 지점에서 출발한다.

 

 

가끔 이렇게 물이 가득차서 통행이 불편한 곳을 만난다. 1.5킬로미터 지점.

 

 

아래쪽 산책로가 잠겨 버렸다.

 

 

언제 통행이 가능할까?

 

 

 

 

한강철교

 

 

 

한강철교를 지나면서

 

 

낚싯대가 나란히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린 다음날 한강에 나오면 꼭 이런 장면을 보게 된다.

 

 

RUN EASY라고 적힌 리복 티셔츠를 찍고 싶었는데 스마트폰과 내 팔에 정확히 가렸다.

깃발을 들고 달린 유일한 대회 기념 티셔츠인데.....

 

 

5킬로미터쯤 달리니 동작대교가 보인다. 마라톤 대회 참가 초창기 10킬로미터를 자주 달릴 때에는 이 동작대교가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폭우가 내린 후 한강의 상태는 엉망이 된다.

 

 

겨울에는 볼 수 없었던 담쟁이덩굴이다.

 

 

 

산책로에 물이 차면 어쩔 수 없이 자전거도로쪽으로 달려야 한다.

 

 

 

 

횡단보도. 신호가 자주 바뀌어 좋다.

 

 

 

 

드디어 10킬로미터를 달렸다. 겨울에 지날 때 짧고 마른 풀 투성이였는데 여름이니 풍광이 다르게 변했다.

 

 

 

동호대교 아래를 지나 10.5킬로미터 표지판이 보인다. 더 나아가기로 한다.

 

 

날씨는 꾸준히 흐려서 햇빛 때문에 애를 먹지는 않았다. 습도가 높아 힘들었을 뿐.

 

 

성수대교가 보인다.

 

 

11킬로미터 지점. 아에드와 BCAA를 거리 표지판 위에 올려 놓고.....

 

 

대회에서는 거의 마시지 않으면서 훈련 때 마시게 된다.

 

 

이제 돌아가야지. 오늘 22킬로미터를 달리기로 한 거다.

 

 

섭취하고 난 BCAA

 

 

노래 공연이 있었는데 지날 때 막 끝나 버렸다.

 

 

 

또 다시 횡단보도

 

 

물에 비친 내 그림자

 

 

 

 

동작대교 아래. 이제 5킬로미터 조금 넘게 남았다. 17킬로미터를 달렸다는 뜻.

 

 

 

거울에 비친 나. 누가 알아보겠는가?

 

 

아에젤 1포를 또 마신다. 배고픔을 달래기 좋은 에너지원이다.

 

 

 

쓰레기통이 가까이 있어 아에젤을 먹었다.

 

 

 

무엇을 하는가 했더니 불교신도들이 방생 의식을 하고 있었다.

 

 

동작구청장배 마라톤대회 집결지였다.

 

 

 

쓰레기가 밀려 내려온 한강을 보는 것....으이구.

 

 

 

63빌딩을 다시 만났다.

 

 

22킬로미터 러닝 완료.

 

 

여전히 흐린 여의도이벤트광장

 

 

양말까지 젖어버렸네.

 

 

10번 물품보관함에서 1200원 결제하고 짐을 찾았다.

 

 

한강시민공원의 샤워실을 이용한다.

 

 

빨래도 하고 신을 신고 들락날락하나 보다.

 

 

 

샤워를 잘 했다. 아무도 없었다.

 

 

세탁물이 생겼네.

 

 

주황색 티셔츠로 옷을 갈아입었다.

 

 

바닥에 왕개미가 기어다녔는데 나갈 때 죽어 있었다. 밟을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생명을 죽였구나.

 

 

CU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면을 가까운 벤치에서.....

 

 

 

 

찰밥에 어묵 토막을 끼어 넣어 주먹밥으로 만들어 왔다.

 

 

라면과 함께 허기를 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