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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사 명부전에서 지장경을 읽다(2017/06/13)

HoonzK 2017. 6. 14. 16:13

 함께 자주 가던 식당에 간다.


한 분이세요?

두 사람이요. 한 사람 더 올 거예요. 오지 않을 수도 있고요. 오더라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요. 볏짚통 삼겹살 2인분에 소주는 처음처럼 주시고요.

 

맞은 편에 소주를 채워놓고 이따금 퇴주한다. 나는 소주를 마신다.
앞의 분이 묻는다.

 

웬일이세요? 소주를 다 드시고.
그렇게 되었네요. 살아 생전 대작도 못 해드리다 이제야 해 드립니다.

 

 이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화계사 명부전을 찾았다.
명부전에 들어가 지장경을 읽었다. 1년 전 유명을 달리하신 분의 명복을 빌며.
극락왕생을 바라는 연등이 천정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화재의 위험이 있으니 향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이 있어 향을 피우지는 않았다. 향을 피우든 피우지 않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지장경은 글씨가 큰 판형이긴 하지만 세로쓰기로 되어 있는데다 240쪽에 달하는 경이라 읽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을 구원하겠다는 원을 세운 지장보살을 생각하며 지장경을 읽는데 이건 경이라고 할 수 없었다. 지장보살의 전기였다. 마하반야바라밀다~ 이런 식의 어구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1시간 20여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읽었다. 사실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지장경을 묵독하는 동안 들어왔다 나간 사람은 단 세 명이었다. 이게 명복을 빌었던 것인가 독서를 했던 것인가 내 행위가 사뭇 의심스러웠다. 명부전에서 나와 대웅전에 들렀다가 결국 나는 명부전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불교도라고 할 수 없는 내가 불전 옆에 놓인 염주를 빌려 몇 번이고 돌렸다. 정말 108 염주일까 궁금하여 1부터 108까지 일일이 세는 작업부터 먼저 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극락왕생. 극락왕생.

 

 

 

 

화계사 대적광전

 

 

 

화계사 대웅전

 

 

 

화계사 명부전

 

 

 

지장경을 챙겨 갔다. 숄더백은 김대중노벨평화마라톤 기념품. 아에드를 챙기고......

 

 

 

지장보살

 

 

 

지장보살본원경 1품부터 읽기 시작한다.

 

 

 

 

지장보살상은 촬영하지 않았다.

 

 

 

 

 

 

제법 두꺼워 꼼짝하지 않고 읽어도 1시간 반 가까이 걸린다.

 

 

 

 

 

포스트잇도 붙이면서 읽었는데 불경 독경이라고 하기에 어울리지 않았다. 도서관에 와서 독서하기 아닐까 싶었다.

 

 

 

극락왕생을 비는 연등이 천정에 달려 있다.

 

 

 

나올 때 보니 누군가 내 신발을 신고 나가기 편하게 돌려 놓았네.

 

 

 

불전에 쌀을 비롯한 먹을 것이 놓으니 참새가 자주 들어오나 보다.

 

 

 

 

 

 

내가 읽은 지장경. 이 경은 보광사에서 나온 경전이다. 20년쯤 된......

 

 

 

 

 

 

 

 

화계사는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절인데.... 이번에 아예 국제선원을 만들고 있다.

 

 

그림자는 모두 내 그림자

 

 

 

 

대적광전 옆에 있는 극락왕생 기원 연등

 

 

 

 

 돌아가신 분은 한번도 죽음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힘들어도 희망에 찬 청사진을 제시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내게 안주발 좀 그만 세우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어느날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후배와 절교했다고 했다. 영원히. 다시는 아는 체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던 분이 지난 해 6월 6일, 자신의 55번째 생일이었던 날 후배와 화해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목숨을 끊었다. 그 후배에게 뒷 일을 부탁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형님 돌아가셨어요'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머리가 하애졌다. 장례식장에 가서 영정을 바라보며 '이게 무슨 일입니까?'를 수도 없이 되뇌였다. 그날 술까지 마셨다. 상주가 없는 장례식장. 오전 풀코스를 달려서 지친 내가 더 지쳐 버렸다. 비가 내려 축축하게 젖은 길을 한없이 걸어 돌아왔다. 죽겠다는 신호를 분명히 보냈을텐데 나 자신이 너무 무감했다. 돌아가시기 전날 전화를 걸고 싶었던 마음을 억제했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지난 1년 간 꿈 속에서 대여섯 차례 만났다. 왜 돌아가셨어요라고 몇 번이고 묻고 싶었지만 꿈에서 만나면 그냥 이런 저런 대화만 나누고 말았다.

108 염주를 몇 번 돌리고 난 다음 명부전을 떠났다. 명부전에서 나와 화계사 경내를 배회하다가 저녁 예불 구경을 하고 나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명부전으로 되돌아갔다. 염주를 돌렸다. 내가 나가기 직전 한 분이 들어와 기도를 시작했는데 나갈 때 그 분의 신발을 신기 편하게 돌려 드렸다.

 

 

 

 

타종. 화계사 종이 울리면 집에서도 크게 들린다.

 

 

 

 

 

 

 

화계사에서 나온 불경집

 

 

 

 

 

저녁 예불이라 신도들이 거의 없다.

 

 

 

 

 

 

 

 

 

 

 

지장경 사이에 끼어져 있었던 쪽지.

 

 


온 것도 모르는 이 인간이
갈 곳은 어떻게 알단 말까
갈 곳도 모르고 사느노나
그것도 멍텅구리

 

올 적에 빈 손에 온 인간이
갈 적에 무엇을 갖고 갈까
공연한 욕심만 부리누나
그것도 멍텅구리

 

백 년도 다 못 살 이 인간이
영원히 죽지를 않을 것처럼
천만년 준비를 하누노나
그것도 멍텅구리

 

세계적 학자라 하는 이들
무어나 모두 다 안다 해도
자기가 자기를 모르누나
그것도 멍텅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