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호의 악몽 The Terror
댄 시먼스 지음, 김미정 옮김
<테러호의 악몽> The Terror
오픈하우스 VERTIGO 초판 1쇄 2015. 7. 6
1845년 비운의 프랭클린 탐험대 소속 테러호는 북극에서 두 번째 여름을 맞이한다. 여름이 되어도 빙하가 녹지 않는 황량한 동토에서 또 한번 악몽은 시작된다. 끝나지 않을 것같은 맹추위 속에서 비축 식량은 썩어가고 석탄은 바닥난다. 하지만 탐험대의 진정한 적은 그보다 훨씬 끔찍하다. 저 매섭고 어두운 설원에 뭔가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포식자가 함선으로 다가온다. 가공할만한 공포가 발톱을 휘두르며 함선으로 침입하려 한다. (책 표지 소개문)
북극의 생생한 리얼리즘. 정말 생생하기 이를 데 없다.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보여주는 소설의 힘, 간접 경험이 주는 즐거움이 <테러호의 악몽>에 있다. 읽다 보면 이리버스호와 테러호의 실화를 다룬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이따금 이런 B급 모험 소설에 내 소중한 시간을 써도 되는가 하는 의문도 생겼지만 <모비딕>도 떠올리면서 모험의 세계에 빠졌다. 괴물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블랭키의 입장도 되어 보고, 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책임을 다하는 크로지어 함장도 되어 보고, 벙어리 에스키모 여인에게 끌리는 어빙 소위도 되어 보고, 관찰자 입장에 선 의사 굿서도 되어 보고 싶었다. 괴물의 정체는 무엇이고, 괴물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저 킬링타임용으로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더 있는 소설이었다. 극한 환경에서 인간이 어떤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남색 사실을 감추기 위해 어빙을 살해하고 반란을 도모한 끝에 신이 되고자 하다가 식인으로 연명하다 괴물로 절명하는 히키의 이야기와 인간성을 지키고 생명의 존엄성을 잊지 않으려는 의사 굿서의 고군분투가 대비된다. 함장 크로지어의 선택이 결국 문명 세계로부터의 이탈일 수밖에 없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1845년 프랭클린 탐험대의 절멸 과정을 그리는 가운데 등장시킨 괴물은 무슨 의미일까? '괴물이 히키의 영혼을 들이켰다.(2권 362)'는 표현은 괴물이 사람을 해치는 물리적 기재일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지배하는 심리적 기재이기까지 하다는 의미를 시사한다. 2권 384쪽에서 395쪽에 이르는 이누이트족의 설화는 이 소설이 단순한 모험 소설로 치부될 수 없는 위력을 선사한다. '인생은 외롭고, 가난하고, 추잡하고, 잔인하고, 덧없다(24권 420)'라는 언급대로 이 소설은 철학적이기까지 한 것 아닌가? 크로지어의 꿈은 몽롱한 무의식으로 북극해에 잠기는 느낌마저 준다. 탐험대의 고립, 탈출, 파멸의 과정이 생생한 현장 중계를 하듯이그려진다.탐험대의 실종 사건은 실화이다. 그 실화를 토대로 작가 댄 시먼스는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보태고 그에 버금가는 필력을 과시하며 인간의 파멸과 생존을 그려내었다. 잔인하고 가혹하지만 한없이 흥미롭다. 파멸을 그리지만 생환의 삶이 없지 않다. 리얼리즘의 승리라고 할 <테러호의 악몽>은 영화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게 하였다. 800쪽에 달하는 소설이다. (2015.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