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당일 새벽 올해 들어 첫 열대야가 발생했다. 내내 선풍기를 틀고 누워 있어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래도 꿈을 꾸었으니 아예 자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생명 보전을 위한 최소한의 수면은 취했다고 믿을 수 있었다. 꿈은... 물건을 놓아두고 오는 바람에 어머니가 차를 돌리게 만든 사춘기 아들로 나오다니. 차에서 내려주면 알아서 물품을 찾아 오겠다고 했는데 어머니는 함께 타고 있던 사람들을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게 한 뒤 나 혼자만 태우고 차를 돌렸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우리 어머니는 평생 운전대를 잡은 적이 없는데....
지하철로 이동하는 중에는 악착같이 빈 자리를 찾아 잠을 청했다. 전날 34도까지 치솟았던 햇빛 작렬하는 날씨가 이어졌다면 더 견딜 수 없었겠지만 고맙게도 흐렸다.
출발 준비하는 동안, 달리는 동안, 달린 후까지 도무지 아는 사람 한 명 없었다. 20대 주자 한 명이 출발하기 전에 칩을 본인이 직접 작동시켜야 하느냐고 물은 것을 빼고는 대화조차 못했다. 생애 첫 하프 도전이라는 젊은이는 하프 거리를 연습주 한 번만 했다고 했다. 이 첫 하프 도전자는 1시간 39분대로 골인했다.
600명이 되지 않는 하프 참가자들 속에 뒤섞여 있다가 2시간 페이스메이커 바로 뒤에서 출발했다. 세 명의 2시간 페메 가운데 한 명은 바로 제쳤다. 예전의 첫 1킬로미터와는 다르게 속도가 느껴졌다. 1킬로미터 5분 40초. 이건 정확히 1시간 59분대 후반 페이스였다. 앞의 페메 두 명을 따라잡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2킬로미터는 11분 15초였지만 3킬로미터는 17분이 살짝 넘었다. 2킬로미터에서 3킬로미터까지 5분 50초가 걸려 2시간 넘는 페이스가 된 것은 의외였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 4킬로미터 지점. 2시간 페메 바로 뒤에 붙어 있다가 5킬로미터 급수대를 앞두고 급수 편의를 위해 치고 나갔다. 그 후 2시간 페메 뒤로 밀리는 일은 없었다. 5킬로미터는 27분 32초였으니 2시간 이내 완주에서 50초 가량 여유를 얻었다. 그 와중에 빗줄기가 굵어져 내내 그치지 않고 쏟아졌다. 가끔 잦아드는 느낌도 들었지만 이내 굵어지기를 반복했다. 적당한 비라면 레이스에 도움이 될 수도 있었지만 방해가 되는 수준이었다. 뚝섬코스에서 비는 익숙했다. 지난 4월 20일 풀코스 달릴 때에도 비를 맞은 바 있었다. 풀코스를 달릴 때 잘 붙어 있던 근육테이프가 이번에는 하프를 채우기도 전에 떨어져 나갔는데 지속적으로 비에 맞아 테이프가 접착력을 상실한 것이었다.
반환한 후 꽤 빨라지는 느낌이 있었다. 10킬로미터를 남기고 5분 59초 페이스로 가도 2시간 이내 완주가 가능해졌다. 혹시 1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 정도까지 페이스를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반환점까지 57분 21초가 걸렸던 것이 반환한 후 골인점까지 53분 52초가 걸렸다는 것은 고무적이었다.
580명의 완주자 가운데 104등을 했다. 앞만 보고 달리다 한강을 보면 빗물이 일으킨 수증기가 아련한 동양화처럼 보였다.
18킬로미터 쯤 가서 무릎이 아팠고, 그 앞뒤로 허리와 아킬레스건 통증도 있었지만 조금 지나니 잊혀졌다. 5킬로미터를 남기고 1시간 26분 40초가 지난 상태라 1시간 40분대 골인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다. 남은 5킬로미터를 23분대로 달릴 수는 없었다. 다만 25분 이내로는 끊었다. 마지막 1킬로미터를 4분에 달리면서 가능해진 기록이었다. 그동안 해온 훈련량 때문에 자신감이 없지는 않았다. 지난 9일 하프 완주 이후에도 꾸준히 달리고 있었다.
6/10 10.10킬로미터
6/11 12.34킬로미터
6/12 10.10 킬로미터
6/13 15.16킬로미터
6/14 10.10킬로미터
6/16 12.44킬로미터
6/18 11.17킬로미터
6/19 7.54킬로미터(산길 포함)
6/20 10.11킬로미터
※ 6월 21일이야 하프 참가 전 날이라 쉬었지만, 6월 15일과 17일에 달리지 못한 데 대하여 반성하는 중
일단 뛰러 나가면 10킬로미터 이상 달리지 않으면 못 견디는 스타일이 된 것은 바람직했다. 그렇게 달리면서 뱃살과 옆구리살이 제법 들어간데다 날씨가 도와주는 덕분에 열대야 수면부족에 시달리고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난 3월 9일 똑같은 코스에서 기록한 1시간 51분 59초는 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지 않았다. 골인 지점에는 물웅덩이가 생겼는데 피해 달릴 공간도, 여유도 없었다. 이미 흠뻑 젖은 발이 또 젖는 것을 두려울 일은 없었다. 첨벙첨벙..... 삐비빅..... 골인했다.
1시간 51분 13초 50
지난 9일 기록이 1시간 50분 32초였지만 그때보다 이 대회 하프 거리가 300미터 길기 때문에 오늘 기록이 사실상 올해 최고 기록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는 없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있었다. 우산이 없는 나로서는 지하철역까지 가는 동안 마른 옷을 젖은 옷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물품 보관할 때 비닐에 담았던 그대로 짐을 들고 자양역에서 가까운 화장실까지 걸어갔다. 거기서 아주 굼뜨게 옷을 갈아 입었다. 흠뻑 젖어버린 신발과 양말을 추스리는 게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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