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공원사랑마라톤(2021/12/29)-FULL 229

HoonzK 2021. 12. 31. 14:24

도림천을 감싸고 있는 산책로가 새하얀 실타래처럼 이어져 있었다. 살짝 덮인 정도이지만 새벽에 내린 눈은 어둠 속에서도 서슬푸른 느낌으로 빛나고 있었다. 새벽 1시 20분쯤 잠들어 4시 49분에 일어나 5시 36분에 콩나물시루같은 우이신설선 경전철 첫차를 화계역에서 탔다. 신설동에서 서동탄행 1호선 열차로 갈아탄 후에야 앉아 쉴 수 있었다. 신도림역에서 내렸다. 뉴참치마요네즈 골드 삼각김밥 한 개를 먹으며 눈길을 걸었다. 바닥창이 닳아 일부가 떨어져 나간 아식스 춘마에디션 마라톤화가 밀리는 느낌이었다. 걸어도 이 정도니 달릴 때면 고생 꽤나 하겠구나 싶었다.


영하 2도 전후이고 곧 영상이 될 것 같아 반바지를 입을까 하다가 전반적으로 싸늘한 날씨라 츄리닝 바지를 그냥 입었다. 바지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후불교통카드와 대문 열쇠만 가방에 옮기고 마스크를 양쪽 주머니에 하나씩 넣었다. 긴팔 티셔츠 두 장을 겹쳐 입었다. 자켓까지 걸쳤다면 평소 훈련 복장과 똑같았을 것이다.


오전 7시 10분경 코스를 확인한 뒤 안양천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눈길에 발이 밀려서 안 그래도 굼뜬 몸이 더 느려졌다. 안양천을 만나 두번 좌회전하고 도림천 상류를 향해 나가는 3킬로미터까지는 눈의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원사랑마라톤 코스의 최고 장점인 고가 아래를 통과하면서 좀더 편하게 달릴 수 있었다. 오늘 코스는 징검다리 데크까지 가지 않고, 6.5킬로미터 쯤 지나 구름다리를 건너가니 노천 구간이 조금 늘어나긴 했지만 눈을 피할 수 있는 거리가 26킬로미터나 되었다.


1년여만에 달리는 풀코스라 지난 해 12월 26일 달린 풀코스와 꾸준히 비교하게 되었다. 그때보다 훈련량이 부족해 체중 감량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성탄절 연휴에 출전하려던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목에서 피가 나기도 했고 두통은 끊이지 않았다. 영하 15도로 떨어진 12월 26일 달렸다면 아마 쓰러졌을 것이다. 2006년부터 2020년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았던 풀코스 완주, 2011년 12월부터 2020년 7월까지 104개월 연속 풀코스까지 완주했던 사람이 왜 2021년은 그냥 넘어갔느냐는 질문에는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 수 있었다.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2021년을 풀코스 완주 없이 넘길 경우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공원사랑마라톤대회의 2021년 마지막 대회일에 나온 이유였다. 어둠 속에서 아직 5킬로미터도 뛰지 않았는데 30킬로미터쯤 달린 것처럼 피곤했다. 2백 번 넘게 풀코스를 완주하는 동안 이보다 좋지 않을 때도 많았다고 나 자신을 달래며 발을 놀렸다. 지난 해 풀코스를 달리고 난 후 1년이 넘는 동안 가장 멀리 달린 거리가 26킬로미터였다. 그것도 횡단보도 신호등에 걸려가면서. 아직은 5분 40초 페이스, 서브4에 가능한 속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26킬로미터를 넘어가면 훈련이 부족한 티가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풀코스는 30킬로미터를 달리고 다시 12킬로미터를 달리는 대회라 후반은 지옥이 될 수 있었다. 발 곳곳이 갈라져 속살이 벌겋게 드러난 자리에 마데카솔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 버티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에 난 상처 때문에 손을 말아쥘 수가 없어 장갑을 끼고도 손가락 끝이 시렸지만 내버려두고 있었다. 몸에 열이 나면서 다리 쪽에 습기가 느껴졌다. 다리 움직임이 불편했다. 반바지만 입고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땀이 많이 나서 어쩔 수 없다면 바지를 벗어 손에 말아쥐고 뛰어야 겠다는 궁리도 했다. 영하 1도와 영상 1도 사이로 기온이 정체되어 있어서 그럴 일은 끝내 없었지만. (완주를 마친 후 옷을 갈아입을 때 거울에 비추어진 상체가 두들겨 맞은 것처럼 빨갛게 변해 있었다. 날씨가 제법 추웠던 것이다.) 마스크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흠뻑 젖었다. 사람이 없으면 마스크를 살짝 내리는 융통성을 발휘하다가 하프를 달리고 급수할 때 효용가치가 사라진 마스크를 새 마스크로 바꿨다.


5킬로미터와 6킬로미터 중간의 급수대에는 급수 운영 요원이 있었지만 빈 컵만 놓여 있고 물은 전혀 따라져 있지 않았다. 페트병의 콜라는 꽁꽁 얼어 있었다. 주전자의 물을 컵에 따르는 동안 운영 요원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빈 컵이 앞사람이 다 마시고 내려놓은 컵인지 알 수 없었다. 코로나 시국에 남이 입을 댄 컵을 다시 쓸 수는 없지 않는가. 급수대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주자가 나타나면 재빨리 생수냐, 콜라냐를 묻고 컵에 따라주면서 응원 한마디해 주던 분이 그리울 수밖에 없었다. 이 지점을 다시 통과할 때 콜라가 따라져 있어 마시긴 했는데 공기중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콜라 같지가 않았다. 그렇게 김빠진 콜라는 처음 마셔 보았다. 10.55킬로미터이자 31.6킬로미터 지점의 무인 급수대 바구니 안에 담긴 초코파이를 먹으려다 깜짝 놀라기도 했다. 뚱뚱한 비둘기가 바구니 덮개 사이로 파고 들어가 초코파이를 죄다 먹어치우고 있었다.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비둘기도 아는 것이었다. 소규모 대회라 최소 운영요원을 배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이런 일도 벌어지는 것이었다.


지지부진했던 스피드가 14킬로미터를 지나 화장실에 다녀온 뒤 조금 회복되었다. 서브4 페이스로 나아가다가 시간을 꾸준히 까먹던 중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18킬로미터 이후에는 눈길에 발이 미끄러지는 느낌을 자주 받았지만 균형을 잘 잡았고 속도도 올렸다. 5분 50초까지 떨어졌던 페이스가 5분 30초까지 당겨지면서 하프까지는 1시간 58분으로 마쳤다. 2분 정도 벌어 놓았으니 후반에 조금 처져도 서브4가 가능하겠다 싶었다. 30킬로미터 이후 훈련이 부족한 티가 너무 나서 아주 느리게 달리게 되면 4시간을 넘을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이 있어도 아쉬워하지는 말아야 했다. 시간 기록보다는 완주 기록 때문에 출전한 대회이니까.

23킬로미터를 지나 화장실에 한번 더 들렀다. 26킬로미터를 지날 때 급수대 이후에 만나던 데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덜컹거려서 넘어질까봐 우려되었던 데크가 아스팔트로 바뀌어 있었다. 1년 동안 도림천변 정비가 꽤 이루어져 있었다. 4월에 달리려던 계획을 접고, 8월에 달리려던 계획을 다시 접으며 미루고 미루던 연말 출전을 한 뒤에야 도림천변의 변화를 알게 되었다. 산책로 정비가 끝난 곳이 여기저기 있었다. 이용하는 사람들이 좀더 편해진 것이었다. 자전거도로에는 마라톤코스라는 표시도 새겨져 있었다. 마라톤코스라고 되어 있으니 마라톤하는 사람들이 자전거도로에서 달려도 상관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어느때보다 많은 수요일 참가자였다. 지난 일요일 다섯 명밖에 되지 않았던 참가자가 13명으로 늘어났다. 공원사랑마라톤에 올해 66번 참가한 경두님, 50번 참가한 상덕님, 46번 참가한 아이언민님과 Watson님, 43번 참가한 100회동호님, 38번 참가한 관행님, 37번 참가한 문연님, 35번 참가한 용석형님 등과 인사를 주고 받을 기회가 있었다. 본 지 1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용석형님과 아이언민님은 나를 기억하고 응원해주었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Watson님은 한국어를 너무 잘 해서 영어로 대화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덧 31킬로미터를 넘었다. 여전히 서브4에 여유가 있어서 오만한 마음이 들었다. 끄덕없구먼. 1년만에 풀코스를 달리는데도 서브4 완주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씀. 오판이었다. 아직 모르고 있었다. 32킬로미터가 넘어가고 33킬로미터가 넘어가면서 몸이 한계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35킬로미터 지점이니 이제 질주를 해볼까 하던 일은 '아, 옛날이여!'였다. 도림천을 건너 안양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을 때 극도로 피곤해졌다. 과거의 경험과 기억으로 감당해 내려고 애썼지만 무리였다. 걷고 싶어졌다. 걷는 동안 잃어버리는 시간은 걸으면서 에너지를 충전하여 이후에 빠른 달리기로 되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악착같이 달렸다. 다만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타협했다. 5분 40초 페이스를 5분 50초, 6분까지 떨어뜨렸다. 6분 페이스로 가도 서브4가 가능하다는 사실만이 고무적이었다. 6분 이상의 페이스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후반에 시간을 너무 까먹어 최종 기록이 4시간 00분 00초가 되더라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장거리훈련이 부족했다는 것. 체중 조절이 되지 않았다는 것. 마음만으로, 절실함만으로, 정신력만으로만, 속된 말로 악이나 깡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 있었다. 풀코스를 달리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런 준비가 소홀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2개월 동안 특별 훈련을 하긴 했지만 지난 해에 비해 70% 수준에 불과했다. 라면, 치킨, 탄산음료, 커피 과다 섭취. 살찌는 행위는 뭐든지 하고 있었다. 다리가 몹시 무거워졌다. 천근만근이라는 표현만으로도 부족했다. 전체적으로 몸에 활기라곤 없었다. 나도 모르게 상체가 앞으로 숙여져 의식적으로 바로 세우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자세를 바로 잡고 속도를 늦추는 등 이런저런 요령으로 42.195킬로미터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었지만 후반의 1킬로미터는 전반의 5킬로미터를 달리는 것과 같은 부담이었다. 남은 3킬로미터에 이제 더 이상 눈은 없었다. 제설차가 지나간 지 제법되었고, 기온이 조금 올라 잔설마저 모두 녹아버렸기 때문에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 눈의 저항을 받으며 마무리했다면 서브4가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쉬지 않고 이동하면 마침내 골인점에 도달한다는 일념으로 버틴 끝에 달리기를 마무리지었다.

3:58:44

수요일 마라톤에서 서브4 주자가 나온 것은 거의 두 달만이었다.(지난 11월 3일 이후 처음) 서브4 주자가 되었지만 마음 속에는 환희보다는 슬픔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풀코스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 풀코스를 제대로 달리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훈련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 풀코스뿐만 아니라 어떤 일도 쉽게 되는 게 없다는 것. 산다는 게 그런 것이라는 것. 그리고 몇일 후면 다시 한 살을 더 먹어 초로(初老)에 든다는 것.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집에 돌아와 책장 앞에 걸린 기록증을 보았다. 2018년 12월 같은 코스에서 달린 기록이 새겨진.

3:23:49.63

3년만에 풀코스 기록이 35분이나 느려진 것이었다. 세월의 무게였다.

새벽 6시 45분경 신도림역 출구. 눈이 살포시 내려 있었다.

고난의 레이스를 예고하는 듯

곧 달리게 될 도림천 산책로. 6시 50분경이었다.

다소 무서운 느낌이 드는 눈길이었다.

도림교를 건너가는 중. 더 이상 눈이 내리는 일은 없기를.....

바닥 창이 손상된 마라톤화. 다시는 신지 않게 될 줄 알았는데......


자전거 전용도로에 마라톤 코스라고 별도의 표식이 있는 도림천변 길

출발점에서 가까운 반환점

왼쪽 바구니가 살짝 열려 있을 때 비둘기가 들어가 초코파이를 먹고 있었다.

출발점이자 골인점

하늘색 반팔티를 입은 키 큰 Watson님이 보인다. 한국 이름이 '이색'이라고 했다. 캐나다에서 온 지 10년이 넘어 한국말을 너무 잘했다. 영어를 섞어 대화를 나누다가 그냥 한국말로 대화하게 되었다. 어떻게 저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세요, 라고 말하며.

도림천 징검다리를 건너 귀가하는 중

살짝 얼어붙은 도림천, 아직 눈은 녹지 않았다. 정오를 넘었을 무렵.


신대방역까지 가지 않고 구름다리에서 반환하는 코스로 운용되었다. 출발점과 반환점이 가깝게 조정된 이후 급수대 운용의 효율성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과거 달린 경험이 여러차례 있어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공원사랑마라톤에 나와 풀코스를 73번이나 달린 분이 있었다. 이 기록은 지난 12월 26일까지의 기록이니 나는 0번이었다.

코로나19 상황이라 간식은 먹고 싶지 않았지만 허기가 져서 마스크를 내렸다 바로 올리는 방식으로 삶은계란 두 개를 먹었다.

바닥에 카페트를 깔아 색다른 느낌의 마라톤힐링카페였다.

기록증이 깨끗하게 출력되지 않아 사무실에서 새로 뽑았다.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인 공원사랑마라톤 완주라 완주메달을 받았다.

손바닥보다 작은 배번

꽁꽁 언 생수, 육개장, 등산양말.... 여기서 기념품은 등산양말이 되겠다. 

수건과 아이스컵은 대회 접수 담당 여사님이 챙겨주셨다.